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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새로운 빅 브라더의 목소리, "사랑합니다. 고객님!"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교통카드와 스마트 감시 체제

얼마 전에 유령 성인 사이트를 차려놓고 매달 990원씩 이용료를 빼가던 사기단이 적발된 적이 있었다. 1000원 이하의 소액은 휴대폰 문자로 통지되지 않는 허점을 악용한 것. 있지도 않은 성인 사이트에서 돈을 빼갔지만, 워낙 소액이라 신경을 쓴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항의 전화를 해오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한 번도 성인 사이트에 들어가신 적이 없나요. 있잖아요. 그때 남은 기록이 이번에 전산 착오로 잘못 처리된 것뿐입니다. 큰 돈도 아니고, 뭘 그러세요. 곧 돌려 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흥분해서 전화를 걸었던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넘어가곤 했다는 것.

그 사기꾼들이 실제로 항의자들의 성인 사이트 방문 기록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항의자들은 지레 풀이 죽었다. 나는 감시당하고 있다는, 업체에서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감각만으로도 인간의 발언은 한풀 꺾이게 되었다. 물론 프라이버시에 대한 정보를 악용한 것이지만, 입에 재갈을 물리는 효과는 충분했던 것.

인간은 누구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그러니만큼 감시당하고 있음을 느낄 때 우리는 위축되고, 의사 표현도 삼가게 된다. 나에 대해서 나보다도 더 잘 아는 자가 "까불면 다치는 수가 있어"라고 하는데 어찌 "쫄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박정희가 야당 정치인들을 순치시키는 단골 수법 중의 하나도 여기에 있었으니, 금전 관계, 여자 관계 등으로 약점을 잡히면 정치인들은 "공화당 2중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약점 잡는 일은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검은 안경'들이 전담했다.

100년 전에도 그랬다.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1924년)에는 늘 감시당하는 조선 지식인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일본 교토에 유학중인 '이인화'는 전보를 받고 갑자기 귀국하는데, 가는 곳마다 미행 형사가 따라붙는다. 열차를 내리면 따라 내리고, 올라타면 따라서 탄다. 도처에서 체포당한 사람들을 만난다. 열차 안에서는 정복 헌병들이 검문을 하다가, 모처의 연락을 받고 바로 옆에 앉아있던 '갓장수'를 연행해간다. 서울 집에 도착했음을 확인한 뒤에야 그 감시는 조금 느슨해진다. "늘 쫓아다니지는 않겠습니다. 가끔가끔 올 테니 그 대신에 문밖이나 시골을 가시거든 요 앞 교번소(파출소)로 통기를 좀 해 주슈."

100년 전 이인화는 미행과 감시를 지긋지긋해했다. 독재 정권 시기 검은 안경이 미행하고 있음을 확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미행이란 블랙리스트에 오른 소수에 한하여 이뤄졌으며, 위압감과 반발감(그리고 부수적으로는 자존심의 미묘한 충족)을 불러왔다. 그러나 요즘에는 누구나 미행을 붙이고 다니고 있으면서도, 그 미행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교통카드와 신용 카드 얘기다.

현대인들은 '미행 형사'를 지갑 속에 넣고 다닌다. 카드는 형사보다 훨씬 '스마트'하다. 전자통신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이제 권력과 자본은 정보 수집에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편리하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 감시 체제를 수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교통카드. 이 조그만 플라스틱은 당신의 행동 반경을 모두 파악하고 정보로 집적한다. 2004년 연쇄 살인범 유영철을 검거하기 위해 경찰은 사건 현장 부근을 3회 이상 오간 사람들 모두를 추출해서 알리바이를 요구했다. 그 시간에 살인을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는지 대라는 것. 버스 승하차 기록을 기반으로 삼은 것이었다. 물론 택시 타고 현금 낸 사람들, 오가지 않고 그 부근에 머문 사람은 체크되지 않을 수밖에 없는 허점 많은 수사였다. 난데없이 살인 피의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황당했다. 범인 잡기 위해서이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그런 정도는 참아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참으로 착실한 '신민'('시민'이 아니라)이 아닐까. 공권력이 필요하다고 해서 내 정보를 함부로 동원해서 나를 피의자로 올려놓고 알리바이를 대라 해도 되나. 살인 현장 주변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 주변을 자주 오갔다는 이유만으로 주권자들이 알리바이를 입증해야 한다면, 세금은 왜 내나? 국가는 뭘 하는 것인가. 도대체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에게 무죄 입증을 하라고 요구하는 권력이 제정신인가.

살인범 추적의 경우는 정보를 공익적 이유로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당신의 행동 반경을 모두 파악하게 된 권력은 범인 체포에만 그 정보를 활용하고 싶을까. 이번에는 살인범 추적이었지만, 다음에는 정권 비판을 이유로 추적당할지도 모른다. 비판 발언 자체를 문제 삼기는 곤란하니까, 아마도 당신의 사생활을 미끼로 협박할 지도 모른다. 담당 형사가 이렇게 물어올 수도 있다.

"한 선생, 요즘 경기 좋으시던데요. 어제 가신 그 술집 아가씨 참 이~쁘던데 사모님도 아시나요? 그건 그렇고 술집에는 다 무슨 돈으로 다녀요?"

기업은? 정보들을 모으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 기업가의 취미 생활에 불과할까. 교통카드와 신용카드에 수합된 정보는 기업을 위해서 매우 훌륭한 영업 자료이다. 당신이 무슨 영화를 좋아하고 몇 시에 어느 부근에서 뭘 하고 지내는지 손금 보듯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여러 사람의 것을 조합해보면 당신 애인이 누구인지, 당신과 애인이 언제 어디에서 만나서 무얼 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당신보다 더 잘 아는 권력과 자본의 존재! 소름 끼치지 않는가.

자본이 파악한 당신의 시시콜콜한 정보는 물론 이윤을 위해 활용된다. 무엇으로 공략하면 당신의 지갑을 털 수 있을지, 그는 잘 알고 있다. 카드를 가위로 잘라버린 다음날이라도 명품 가방이 '폭탄 세일'로 나오면 '지름신'의 강림을 경험하고 마는 당신을 그는 잘 안다. 어쩌면 당신의 성감대까지도 포착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당신에 대한 수많은 정보들을 토대로 그들은, 당신을 아예 조종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권력과 자본은 늘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싶어 한다. 감시와 검열은 단 한 발짝 차이고 서로 참 좋은 사이를 유지한다. 효율적인 검열을 위해서는 감시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검열로 얻은 블랙리스트의 인물들은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이런 감시를 극단적으로 효율화할 수 있었던 것은 전자 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정보의 집적을 매우 효율적으로 만들었으며 별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했다. 기술은 발전했는데 그 기술을 민주적이고 인간적으로 사용하도록 통제해야 할 인간들의 문화는 그만큼 빨리 변화할 수 없으니, 이런 과도기일수록 기술의 오남용 사례는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정보의 지나친 집중은 항상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다분하다. 일정 정도 이상의 정보 수집을 아예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정보 집적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예컨대 모 기업에서 노조 간부의 출근 기록을 조작해서, 잦은 지각을 이유로 해고한 적이 있었다. 회사에서 관리하는 출근부만 있던 시기라면 아무 항변할 근거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고자는 늘 출근시간 훨씬 전에 회사 근처 정거장에서 하차한 교통카드 정보를 근거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정보 집적 기술이 감시에 쓰이게 될지 유용한 정보가 될지는 인간들이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과학 기술에 대한 시민 사회의 감시 및 통제 시스템이 시급한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사회에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비교적 낮은 편이다.

'빅 브라더' 상이 한국에서도 2005년 제정되었지만 그다지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1회로 종료되고 말았음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한국의 제1회 '빅 브라더 상'은 주민등록번호(가장 끔찍한 프로젝트상), 정보통신부(가장 가증스러운 정부상), 삼성 SDI(가장 탐욕스러운 기업상), 국가정보원(내 귀의 도청장치상) 등이 선정됐다.

특히 주민등록제도라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망감시의 체제는 주목할 만하다. 모든 성인에 번호를 부여하고 지문을 보유하겠다는 발상처럼 파시즘적인 것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재일동포에게 지문 날인을 요구하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다. 재일동포만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말고 일본인 전체를 그렇게 취급하면, 대한민국 정부를 본받아서 그렇게 하면, 아무 불만도 없다는 뜻인가. 더욱이 정부는 더 많은 개인정보를 전자 칩에 모으는 전자 주민등록증 제도를 도입하려고 세 차례나 시도한 바 있다. 다행히 시민 사회의 반발로 국회 통과는 저지되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을 자세이다.

▲ 정부가 도입하려고 했던 전자 주민등록증 예시 사항. (2011년). ⓒ행정안전부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정보 인권을 보장하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작년부터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개인정보를 돈벌이를 위해 제멋대로 이용해온 기업들의 관행을 억제할 장치가, 어느 정도는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아직 기업과 개인의 인식 부족으로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인터넷 카페라도 가입하려면 숱하게 많은 "동의합니까" 에 클릭하여야 한다. 신용카드를 만들 때도 개인정보 제공에 관한 동의를 요구받지만, 그 깨알 같은 글씨들을 일일이 읽어보는 소비자는 몇 명이나 될까. 동의하지 않으면 아예 가입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그저 무조건 동의할 수밖에. 하지만 당신은 도대체 무엇에 동의하고 있는가. 하루에도 몇 통씩 "안녕하십니까. 고객님"하고 걸려오는 광고 전화들은 어쩌면 그렇게 내 정보를 잘 알고 있는가.

'스마트 감시 사회'를 막기 위해서, 뭔가 시민 단체라도 필요할 듯하다. '빅 브라더를 감시하는 시민 모임'(감시자를 감시하는 시민들) 같은 것. 그렇지만 뭐 거창한 실천만이 오로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먹고 살기도 바쁘지 않던가. 마음이 가는 시민 단체에 작은 돈이나마 기부하고, 가능한대로 시간을 쪼개어 모임에 참석하는 일만으로도 버겁다. 예컨대 이런 작은 실천은 어떤가.

이제부터 텔레마케팅 전화가 오면, "지금 회의 중입니다" 라는 식으로 끊지는 말자. 그렇게 하면 똑같은 전화를 끊임없이 받게 될 것이다. "이제 회의 끝나셨나요? 고객님" 이런 방식은 어떤가.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제 신상을 그렇게 잘 아세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아닌가요?" 물론 감정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텔레마케터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기업의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 감시와 검열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내게는 나만이 알고 있고 싶은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걸 우리는 프라이버시라고 부르는데, 정부나 자본은 정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것을 권력 강화와 이윤 확대를 위해 사용하고 싶어 한다. 과학 기술은 가치중립적일 수 있지만, 그 사용은 늘 가치의 충돌과 대립을 불러온다. 과학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다툼은 앞으로 더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며, 그 승패는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과 의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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