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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파 척결!" '반동의 시대'에 백낙청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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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파 척결!" '반동의 시대'에 백낙청을 읽는다

[철학자의 서재] 백낙청의 <흔들리는 분단 체제>

다시 한 번 통일 운동으로

남과 북이 긴장된 대치 국면을 이어온 지 벌써 수년이 지났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한 이래로 남북 관계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 전 민주 정부들 아래서 그나마 열어놓았던 몇 가닥 숨통조차 다시 막아버린 이후 이명박 정부는 이로부터 생기는 남북 간의 긴장을 국내 정치를 위해 이용해 왔다.

가장 결정적인 것이 바로 천안함 침몰 사건이었다. 미군과 공동 훈련 중이었던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되었다는 정부의 발표는 도올 김용옥의 말대로 100퍼센트 의문투성이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의문스러운 보고서를 좀 더 신뢰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는커녕 이 사건을 민주 세력을 탄압하는 데 이용해 왔다.

정부의 발표를 100퍼센트 믿는다고 선언하지 않았다고 야당 추천 대법관 후보를 끝내 승인하지 않았던 것이 단적인 예이다. 최근에 이명박 정부는 이 사건을 예로 들면서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는 국내 종북파가 있으니 마땅히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발언은 얼마 전 취임하자마자 국내 종북파를 척결하겠다고 하는 검찰총장의 발언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런 이명박 정부의 태도는 이승만, 박정희 이래 반공 수구 세력의 한결같은 태도이다. 남북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켜서 이를 내부 민주 세력을 탄압하는 명분으로 이용하는 것은 반공 수구 세력이 이 땅에 그 명맥을 유지하는 최후의 방책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이런 태도를 보다보면 남북 문제가 남한에서의 민주화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테제를 엄연한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지난 민주 정부의 역사를 보더라도 남북 관계를 개선하면 국내의 민주화가 진전되었다. 이런 민주화의 진전은 다시 남북 관계를 한층 더 발전시켜 왔다. 이런 선순환 역시 이 테제를 실증하는 사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백낙청은 이렇게 민주화와 남북 문제가 동전의 앞뒷면처럼, 아니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간파했다. 나는 지금 긴장된 남북 관계를 보면서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종북파 청산이라는 푸닥거리를 보면서 백낙청이 지은 <흔들리는 분단 체제>(창비 펴냄)라는 책을 다시 꺼내 본다.

외환 위기와 분단 체제론

▲ <흔들리는 분단 체제>(백낙청 지음, 창비 펴냄). ⓒ창비
그의 책을 서재에서 꺼내 보면서 문득 이 책이 언제 지어졌는가를 살펴보았다. 이 책은 바로 외환 위기 직후인 1998년 6월 20일 발간되었다. 문득 외환 위기라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맞이하여 모두들 목전에 닥쳐온 사느냐 죽느냐의 생존 문제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백낙청이 멀리 내다보면서 남북 문제에 전념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어떻게 본다면 그런 전망도 백낙청에게는 필연적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외환 위기라는 것도 한편에서는 분단 체제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짐작했던 대로 백낙청은 이 책의 2장 'IMF 시대 통일 사업'이라는 글에서 분단 체제와 외환 위기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 연관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 체제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왜냐하면 백낙청의 분단 체제라는 개념은 남북 관계를 규정하는 개념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남북 관계가 월러스틴이 말하는 세계 체제의 하위 체제이기 때문이다.

흔히 제국주의론이 주장하듯이 세계 체제라는 것은 19세기 말에 비로소 이루어진 체제는 아니다. 오히려 세계 체제는 자본주의가 역사에 등장하면서부터 전개되면서 다양한 국면을 거쳐 지나왔다. 20세기 후반의 국면은 동서 간의 진영 즉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이 서로 대립하면서 동시에 상호 구조적으로 결합하여 제3세계를 지배하는 국면이다.

두 적대적인 진영이 공모한다는 이 독특한 발상을 실증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제3세계에 살아온 민중들은 이런 공모를 피부로 절절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동서 양 진영의 대립과 타협의 산물인 분단을 생각해 보면 그보다 확실하게 느껴지는 증거는 없을 것 같다.

백낙청은 남북 사이의 분단 체제가 세계 체제의 하위 체제로부터 출발하였고 이런 분단 체제의 결과 한국 자본주의가 기형적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한국 자본주의는 극도로 심각한 대외 의존적인 경제 발전 모델을 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분단 체제 하에서 이 모델은 성공적이었고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 발전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 진영이 몰락하면서 세계 체제가 흔들리게 되고 이에 따라 분단 체제도 함께 흔들리면서 나타난 위기 증상 중의 하나가 곧 외환 위기라고 한다.

백낙청이 외환 위기를 분단 체제와 연결시키는 것은 물론 앞으로 좀 더 실증적인 연구를 해 보아야 입증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 속에서 분단 체제를 제시하는 백낙청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그 문제의식이라면 곧 남과 북의 통일 운동을 민중의 일상적인 삶과 직결시킬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다.

통일 운동의 일상화

분단 체제가 '흔들린다'는 표현은 한편으로는 세계 체제의 위기로 인해서 드러나는 분단 체제의 위기 증상을 말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흔들림은 분단 체제의 한쪽 당사자인 남한 내부에서 통일 운동을 통하여 얼어붙은 분단 체제가 해빙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포함하기도 한다.

1980년대 말부터 청년 운동의 주요 과제로서 통일 운동이 제기되었다. 그와 동시에 민주화 운동의 대부인 김대중이 통일 운동에 적극적으로 매진하는 방향 전환이 일어났다. 이런 두 계기를 통해서 남쪽에서 통일 운동은 과거에 보지 못했던 폭발적인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런 통일 운동에 대해서 민중의 일상적인 삶과는 너무 동떨어진, 상당히 낭만적인 동포애에 기초하는 운동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특히 민중 운동은 당면 과제로서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넘어서 민중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운동을 제기하고 있었다. 이런 마당에 통일 운동은 민중 운동의 당면 과제를 간과하는 잘못을 범하고 운동을 낭만화시킨다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백낙청의 문제의식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백낙청은 민중의 삶과 직결되는 통일 운동은 불가능한가를 모색하기 시작했고 그런 모색의 결과로 분단 체제론이 탄생했다. 백낙청의 이런 문제의식은 이 책의 1장 '분단 체제 극복 운동의 일상화를 위해'라는 글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의 핵심 논지가 이 장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책에 실린 다른 논문들은 백낙청이 분단 체제라는 개념을 제시하기 위해 참조한 다른 통일론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거나 (7장 '독일과 한반도 통일에 관한 하버마스의 견해', 11장 '통일 사상으로서의 송정산의 건국론'), 또는 백낙청의 분단 체제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비판을 담고 있거나('9장 김영호 씨 비판'), 분단체제론의 입장에서 현실의 다양한 부문 운동들을 이해하는 관점을 제시한다(3장에서는 김일성 사후 한반도 정세를 논하며, 4장에서는 문학론과 관련시키며, 5장에서는 생태 운동과 연결시키는 등).

이 1장에서 제시된 논지에 따르자면 세계 체제와 마찬가지로 분단 체제 역시 남과 북의 지배 세력들이 상호 대립과 공모에 의해 한반도의 민중을 지배하는 체제라 규정된다. 백낙청이 이런 분단 체제 개념을 통해 설명하려는 현상은 우리에게 이미 익히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박정희 시대 7·4 공동 성명이 남과 북이 서로의 체제가 가지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맺은 타협책이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남북 지배 세력들의 공모처럼 보이는 현상들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도 가능하다. 최근 이를 냉전 시대의 '거울 효과'라는 개념으로 정치적인 전략의 차원에 한정하여 이런 공모를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다. 그런데 백낙청은 이런 현상들을 분단 체제라고 하나의 지속적인 '체제'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시도했다. 그 이유는 아마 이런 남북의 공모 관계가 고착되면서 이미 두 사회의 내부 구조를 상당한 정도로 비틀어 왔기 때문이다. 분단 체제가 야기하는 왜곡 현상은 정치적인 차원을 떠나서 경제적이며 사회문화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뿌리내리게 되었다.

예를 들어서 앞에서 말했듯이 한국 자본주의 경제가 과도한 수출 의존적인 경제 모델을 취하게 된 것도 분단 체제의 효과이다. 우리 사회에서 극우 반공 이데올로기가 질식할 듯이 팽배해 있는 것 역시 분단 체제의 효과이다. 외환 위기 이후 세계 체제에 종속하는 현상이 더욱 심화되면서 사회 전반에 만연하게 되는 양극화 현상도 따지고 보면 분단 체제의 결과이다. 그 외에도 우리가 돌아보기만 하면 우리 사회, 문화 곳곳에서 분단 체제가 남긴 깊은 상흔을 찾을 수 있으니, 이런 현상들은 분단 체제라는 괴물이 없다면 도저히 설명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서 백낙청의 분단 체제론이 사회 구조에 관해서 과도한 정치 중심주의를 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비판될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백낙청의 분단 체제론은 정치 군사적인 분단의 결과 사회 경제적인 왜곡이 일어난다는 식으로 현상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백낙청이 피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설명이다. 이런 설명은 기왕의 거울 효과 개념을 이용하여 남북 관계를 설명하려는 정치학자들이 이미 취해 왔던 방식이다.

오히려 백낙청 선생의 입장은 사회 경제적으로 남한과 북한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된 결과 사회 경제적인 왜곡이 일어났으며, 이런 왜곡을 최종적으로 상부 구조의 차원에서 확정하는 것이 정치 군사적인 대립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백낙청의 입장이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인 경제 결정론도 아님에는 틀림없다. 백낙청 선생의 분단 체제론은 경제 결정론이나 정치 결정론과 같이 하나의 차원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차원들이 상호 복합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고 본다.

분단 체제론의 효율성

분단 체제론은 민중의 삶이 분단 체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민중의 삶을 변혁하는 데만 몰두하는 민중 운동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 분단 체제를 허물어뜨리려는 운동이 없이는 민중 운동 자체가 더 이상의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등장했던 민족해방 이론에 토대를 둔 NL 계열의 통일 운동에도 백낙청은 비판적이다. 지금에 와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너무나도 이상화된 허구적인 개념이므로, 그것에 기초하는 운동은 낭만성과 감정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운동은 1990년대 들어 한때 폭발적인 양상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통일운동을 민중의 일상적인 삶의 차원에서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고양시키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백낙청의 분단 체제론이 제시된 이래 많은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그런 가운데 백낙청의 문제제기에 호응하는 새로운 통일 운동론들이 다수 출현했다. 그런 지식인들의 관심은 백낙청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이면서도 분단 체제라는 과도한 개념 장치를 벗어놓고 좀 더 실천적으로 접근하자는 태도이다. 그런 접근으로서 남북의 지배층의 공모를 앞에서 말한 거울 효과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을 뿐만 아니라, 통일 운동의 과정에서 일정한 목표를 미리 세우는 것이 아니고 그 단계마다 그 다음의 과제를 처리하는 과정적인 운동론이 등장하는가 하면 통일의 최종 결과에 관해서도 남북 사이의 통일을 민족 국가 개념이 아니라 복합 국가적인 관점 또는 지역 국가 공동체(예를 들어 유럽연합과 같은)의 관점에서 접근하기도 한다. 이런 시도들은 모두 백낙청의 문제제기가 불러일으킨 공명이라고 하겠으며 그런 점에서 백낙청의 저서 <흔들리는 분단 체제>는 이미 통일 문제를 이해하는 고전으로서 받아들여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백낙청의 분단 체제의 개념에 관해서는 아직도 의심스러워하지만 그의 문제의식만은 아주 귀중하다고 생각한다. 남북의 긴장된 대치가 이어져온 지 수년째이고 결과적으로 남북 사이의 적대감은 내부의 긴장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런 내부 긴장은 누구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그것은 분단 체제에 기대어서 지금껏 권력을 누려왔던 기득권층, 지배층 외에 누구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남북 간의 긴장을 해소하려는 민중적인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날 필요가 있다. 그럴수록 통일 운동을 민중의 일상적 삶과 직결시키려 했던 백낙청의 글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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