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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완소남'은 정조도 세종도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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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완소남'은 정조도 세종도 아니라…

[편집자, 내 책을 말하다] 김도환의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서연문답>

<여자가 사랑할 때>(The Pumpkin Eater, 1964년)라는 영화가 있다. 임신하고 있을 때만 행복을 느끼는 여자의 이야기다. 그 여자는 일단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의 운명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나 역시 그 영화에 나오는 여자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책이었지만.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피터 버거 지음, 노상미 옮김, 책세상 펴냄), 94쪽)

내 경우도 '책'이다. 원고를 쓰는 저자들의 심경에야 비기기 어렵겠지만, 편집자들 역시 책을 만드는 동안 아이를 품은 임신부처럼 행복에 충만했다가 출산(?)의 고통과 기쁨을 겪고는 이내 또 다른 책에 빠져드느라 아이의 운명에 무심하게 된다.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김도환 지음, 책세상 펴냄)가 나온 것이 3월. 아직 두 달 남짓 지났을 뿐인데, 지금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막 초교를 끝낸 그리스 여행기 원고의 잔상들이다.

그러나 호흡을 가다듬고 돌아보면, 이 책은 (편집하고 있을 때 무한 애정을 쏟다가 일단 책으로 출간되면 무심해져버리곤 하는 나에게) 분명 깨물어서 좀 더 아픈 손가락이다. 지금까지 작업한 책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원고를 매만지며 수없이 들여다보고 수없이 고민했으며, 때로 시행착오를 거치며 제법 난산의 고통을 경험한, 저자에게나 나에게나 의미가 깊은 책이다. (☞ 바로 가기 : 저자 후일담, 편집자 후일담)

▲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서연문답>(김도환 지음, 책세상 펴냄). ⓒ책세상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는 역사학자가 홍대용의 <계방일기>를 번역하고 해설한 책으로 고전과 역사와 소설 그 사이 어디쯤 자리하고 있다. <계방일기>는 세자의 교육, 즉 '서연'을 담당하는 관직인 '계방'에 임명된 홍대용이 당시 왕세손이던 정조와 약 300일간에 걸쳐 서연에서 나누었던 문답을 기록한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정조와 홍대용의 대화에 주목하고 이를 되살려낸 저자의 작업이 돋보였다. 보통 내공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리라.

그런데 홍대용의 <계방일기>를 번역, 해설한 책이건만 (저자도 책세상 블로그를 통해 썼지만) 왜 제목이 '홍대용'으로 시작하지 않고 '정조'로 시작하는가. 어느 독자의 서평에 힌트가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정조'다. 그러니까, 홍대용의 '정조' 관찰 일기쯤 되겠다. 왕세손인 정조가 왕이 될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학문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성격은 어떤지, 행동거지는 어떤지 등… 홍대용은 이 관찰 내용을 오로지 대화와 지문을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이 나눈 대화 기록은 <한겨레> 기자 임종업의 말처럼 '된장'과 같다. "오래 쌓인 시간의 주문"으로 "주문을 풀어낼 때 비로소 가치와 풍미를 알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주문을 <정조실록>, <영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의 편년 기록과 박지원을 비롯한 관련 인물들의 문집, <예기>, <논어> 등의 그야말로 고전 텍스트들까지 모두 동원해 친절히 풀어주었다. 된장을 찍어 먹기 좋게 다채로운 쌈 채소들과 함께 내놓은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쌈일 수밖에. (처음 홍보 마케팅 전략도 그쪽으로 포인트가 맞춰졌고, 많은 독자 분들도 그렇게 이 책을 집어 드셨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내게는 '홍대용'이 주인공이었다. 홍대용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이 다가왔다.

홍대용 : 생산하는 자가 많고 소비하는 자가 적은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큰 줄거리입니다. 이른바 노는 백성과 요행히 자리나 바라는 사람들이 국가를 소모시키고 백성을 병들게 합니다. 마땅히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204쪽)

함께 서연에 참여했던 임득호라는 자가 벼슬아치들이 이리저리 챙기는 녹봉과 세금 덕분에 백성들이 입에 풀칠하며 연명할 수 있다고 말하자 홍대용이 발끈해서 아뢴 말이다.

<서연문답> 속 홍대용은 아테나와 닮았다('뜬금없이 무슨 아테나?'라고 하겠지만 그리스 원고의 여파가….) '아테네'라는 지명에 얽힌 이야기인데, 아테네를 두고 신들이 서로 다투자 제우스는 그 도시의 시민에게 가장 유용한 선물을 해주는 신을 그 도시의 주인으로 삼겠다고 했단다. 이에 포세이돈은 말을 준비했다. 사람들이 이동하거나 전쟁하는 데 가장 유용한 것이 아닌가. 포세이돈은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아테나가 이때 등장한다. 올리브 나무를 들고서. 결과는?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시민들은 올리브 나무를 택했다. 확장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제국의 꿈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기름지게 하는 일용할 양식을 선물한 그 마음이 이긴 것이다. 아테나와 홍대용의 접점은 그 마음에 있다. (정조라면 아마 말을 택하지 않았을까. 소심하게 괄호 안에 넣어본다.)

이쯤 되니 피터 버거(<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의 어쩌다 사회학자가 된 그)도 떠오르는데, 홍대용은 그와 닮은 듯하지만 정반대였다. 피터 버거는 학문은 진보적으로 하고 현실(과 정치적 사상)은 (중도) 보수를 고수했다.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가난을 보았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옹호할 수밖에 없다고 했었나.

"도덕적으로 예민한 사회과학자라면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 본능적으로 중도적인 입장(급진적 변화와 완고한 보존 사이의 중간)으로 향할 것이다."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242쪽)

홍대용은? 학문은 보수적으로(여기에 정치적 의미는 없다) 했으나 현실의 삶과 사상은 진보적이었다. 누군가는 홍대용이 실학자이니 학문도 진보적이지 않았겠냐고 물을 수 있겠다. 그러나 홍대용의 학문적 뿌리는 주자에게 있었다. 하지만 구절이나 따지는 다른 학자들과 달리, 성리학을 바탕에 둔 '실용'(누군가 말하는 그 실용 말고)을 이야기했다.

홍대용 : 일상 생활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을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여 일에 따라서 몸소 실천한다면 '성리'라는 것도 별다른 것이 아니라 곧 '일용'에 흩어져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 지식과 실천이 아울러 진보되면 한 근원이며 큰 근본인 성과 천도를 활연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처음 배우는 사람이 자리에 앉아 성명이나 이야기하는 것은 유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해로운 것입니다. (182쪽)

(처음 배우는 사람이 운운한 것은 정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라는 것은 잠깐 묻어둘까.)

그의 스승 미호 김원행이 말한 "진실한 마음으로 실용적인 일을 하면 허물이 적고 업을 성취할 수 있다"라는 것을 상기하며 학문이 민생과 일용의 일이므로 실생활에 적용(실용)하는 것을 언제나 우선으로 했다. 그랬기 때문에 천문학이며 수학, 기하학에도 능통할 수 있었고 실학이니 북학과 같은 말들이 따라올 수 있었던 것이다.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의 대화 속에서 나타나는 그가 품었던 과거제, 관료제, 신분제의 개혁 구상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하지만 학자 군주, 개혁 군주라 일컫는 정조조차 그 깊은 뜻을 알아주지 못했고, 알았다 하더라도 그 학문을 정치적 도구로 쓰려 했음이다. 결국 높아지려 했던 군주 정조와 낮아지려 했던 선비 홍대용은 함께할 수 없었다.

실학은, 홍대용과 박지원에 한정하여 말하자면,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본 사상 위에 서 있다. 그 위에서, 답도 안 나오는 이념 논쟁과 결별한 채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는 노력이었다. (…) 그들에게 '실'은 실제로 행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의 '실'이었고, 아는 것을 실천한다는 의미의 '실'이었으며, 참된 마음이라는 의미의 '실'이었다. (321쪽)

홍대용과 마음과 생각을 나누고 홍대용의 뜻을 이어갔던 둘도 없는 벗 박지원은 홍대용의 묘지명을 이렇게 썼다.

세상에서 홍대용을 흠모하는 사람들은, 그가 일찌감치 스스로 과거를 그만두어 명예와 이익에 뜻을 끊고 한가로이 앉아 향을 사르고 거문고와 비파를 타며 세속 밖에서 놀고자 하였던 것만 알 뿐이다. 사람들은, 그가 세상 많은 사물의 이치를 종합하고 정리하여 나라 살림을 맡거나 먼 곳에 사신으로 갈 만한 사람이었고, 나라를 지킬 기이한 책략을 가진 사람이었음은 알지 못한다. (282쪽)

세상이 알아주지 못하고 또 제대로 쓰이지 못했던 홍대용의 기이한 재주를 박지원은 한탄했다. 그는 홍대용이 세상을 뜨자 함께 연주했던 거문고를 남에게 주어버리고 다시는 켜지 않았다고 한다.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알아주는 사람을 지음이라 한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벗을 그렇게 일컬었다. (11쪽)

이제라도 우리가 그의 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고, 그 소리를 알아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그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그의 생각을 우리의 지금에 실천하며 살아야 할 때가 아닐까.

덧붙임

여담이지만, 그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당대의 손꼽히는 거문고 연주자였고 북경에서 파이프 오르간을 처음 접했으나 건반 몇 번 눌러보고 이내 조선의 음악을 연주하던 사람"(7쪽)이었다고 한다.

나는 거문고는 못 뜯으니, 초여름 밝은 달 아래 거문고 뜯는 홍대용 곁에서 오르간이라도 연주하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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