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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대륙의 유랑자, 공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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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대륙의 유랑자, 공원국!

[프레시안 books] 공원국의 <여행하는 인문학자>

역사 없는 부족의 역사를 찾아

공원국의 <춘추전국 이야기>(역사의아침 펴냄)를 집어 들었을 때, "아니 이렇게 젊은 친구가 이런 걸 다 쓰고?" 했다. 피터 퍼듀의 <중국의 서진 : 청의 유라시아 정복사>(길 펴냄)라는 대작의 번역자가 또 그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이번에 읽게 된 <여행하는 인문학자>(민음사 펴냄)의 저자가 바로 공원국이라는 점에 서슴지 않고 책을 펼쳤다.

중국의 변방사인 내륙 아시아(Inner Asia)에 대한 탐구로 세계적 명성을 올린 오웬 라티모어 이후 역사는 유라시아 대륙의 영광과 비극을 새롭게 조명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자신의 역사가 한족(漢族)으로만 채워진 듯 굴었지만, 사실은 그들이 오랑캐라고 부른 북방 초원의 유목 기마 민족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세운 이른바 외래 정복 왕조가 중국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숨길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제 내륙 아시아, 중앙아시아 또는 유라시아의 벌판과 사막 그리고 골짜기와 오아시스에서 옛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말과 낙타로 이 지역을 누볐던 종족은 마치, 에릭 울프가 말했던 것처럼 "역사 없는 인민(the people without history)"이 되어버렸고, 자본주의의 진군 앞에서 퇴락한 종족처럼 비애의 얼굴을 하고 있다.

1960년대 이 땅에는 김찬삼이라는 여행가가 아이들에게 세계 여행의 꿈을 키워주었다. 밖으로는 굳게 닫혀 있고,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열려 있던 여권 취득의 은총은 여행이란 서구로 가는 것이라고 인식되었다. 그러다가 지도의 경계 밖으로 뛰어나간 여자 한비야가 이 땅의 청년 세대에게 여행의 열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역사와 지도가 하나로 엉켜서 오지의 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을 찾아나서는 일이 일상이 되기에는 아직 멀어 있었다.

공원국, 우리의 오웬 라티모어

정수일이 실크로드에 대해 발언하고, 중국의 변방사에 눈을 돌리게 만들었을 때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이 아시아의 오랜 역사에 대해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고 있을 때, 어느새 10년이라는 세월을 쌓아가면서 타클라마칸 사막과 티베트 고원을 온몸으로 헤쳐나간 젊은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경이롭기조차 하다.

동양사에 대한 훈련을 바탕으로 유라시아의 오지를 두 발로 밟고 다닌 이 청년 공원국은 그래서 우리의 오웬 라티모어이기도 하고, 또 그 이상이 되어가고 있기도 하다. 소문에 듣자 하니 그는 유라시아 신화 대전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필요한 현지 답사와 이야기 모으기에 열정을 퍼붓고 있다고 하니 아득히 먼 고대 내륙 아시아 초원의 어느 말을 타고 다니던 부족의 후예가 세월을 거슬러 조상의 넋을 찾으러 나선 것이 아닌가 하는 환몽도 하게 된다.

역사적 상상력의 지적 기초가 풍성한 책

▲ <여행하는 인문학자>(공원국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우선 이 책 <여행하는 인문학자>는 흥미롭다. 낯선 곳을 찾아가는 그와 함께 우리도 동행자가 되게 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풍경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에 더해 그는 그렇게 매일 벌어지는 풍경이나 자연의 모습 속에서 긴 역사의 호흡을 불어넣는다. 역시 오늘날 여행은 역사적 상상력의 지적 기초가 없이는 진부하거나 빈약해지거나 또는 기억 속에 가물가물 남는 흔적 없는 시간이 되고 만다. 공원국은 그런 여행에 깊이와 의미 그리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중국 소식이 들릴 때 위구르의 저항, 반발 등으로 기록되는 곳에 가서는 그들의 부족사를 꿰어 우리에게 들려준다.

"6세기 중반 돌궐의 비상은 유라시아 초원에 투르크 돌풍을 일으켰다. 원래 유연에 소속된 조그만 부족에서 출발한 돌궐은 6세기 중반 몽골리아는 물론 페르시아와 비잔틴까지 영향을 미치는 강대한 초원의 제국사를 만들어 낸다. (…) 이 투르크 계열인 위구르는 초원에서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중국은 강대해진 위구르 제국을 통제하기 위해 토번(지금의 티베트)을 끌어들여 위구르를 견제하고 위구르의 자금줄인 서역 상인들의 왕래를 방해하여 위구르를 고사시키는 방법을 쓰고 싶었다."

이렇게 미미한 부족에서 강대한 초원 제국이 되었던 내륙 아시아의 종족들은 그렇게 몰락하게 되었고, 한때 세계를 재패했던 몽골족도 소수 부족이 되어 어느 종족은 말살당하고 어느 부족은 이제 트럭에 비해 별 쓸모가 없게 된 낙타를 보신용으로 먹어버리고 마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준가르, 낙타 그리고 그의 부족에 대한 기억

그가 준가르의 비사(悲史)를 더듬어 나가면서 초원을 경유할 때 우리는 중국의 공식 관변사가 배제한 자들의 아픔을 맛보게 된다.

"그날 산허리에 동료들과 함께 꼼짝없이 묶여 있었다. 어서 밤이 찾아오기를. 그런데 이게 뭔가? 옆구리를 묵진한 것이 파고 든다. 처음 느끼는 고통. 커다란 쇠공이다."

이건 그가 낙타가 되어 죽어가는 고통을 대신 체험하면서 쓴 글의 일부다. 바로 이런 시선과 감각이 공원국이 유라시아를 유랑하면서 느끼는 초원 부족의 기억과 그 역사의 육체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진한 애정과 그리움이 배어 있다. 또한 도처에서 만난 이들에 대한 정겨운 추억이 일기처럼 담겨 있다.

인문학 없는 여행은 그저 관광일 뿐이다. 그러나 여행과 인문학이 만나면 역사와 지리와 부족은 어느새 하나가 되어 우리에게 아무에게도 말해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비밀스럽게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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