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개봉한 한 영화의 여주인공이 살면서 지나칠 법한 세상의 모순을 깨알같이 잡아내 뱉었다. 그런 말들에 관객을 폭소를 터트렸다. 생각지 못했던 것 그래서 누군가가 알려주면 깨닫게 되고 그것이 너무 사소해서 웃기기까지 한 그런 것들은 일상에 널려 있다. 하지만 가끔은 오히려 웃음을 사라지게 하는 끔찍한 모순들도 있다.
그중 단연 으뜸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다. 실로 끔찍하고 잔인하고 이중적이다. 대한민국 건국 60년 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 성장'을 선언하고서 보란 듯이 4대강 사업과 핵발전소를 확대한 이 정부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핵에너지와 관련해서는 푸른 들판 위에 해맑게 뛰어노는 아이들 뒤로 핵발전소가 등장하는 홍보 영상, 평화를 운운하며 핵 마피아들의 축제의 자리를 만들어준 '핵 안보 정상 회의', 이웃 나라 일본에서 54기 모든 핵발전소를 중지시킨 역사적인 날 진행한 신울진원자력발전소 1, 2호기 기공식과 함박웃음을 지으며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 등 하나하나 열거하려 해도 끝이 없다. 소도 웃을 말도 안 되는 핵에너지를 둘러싼 녹색의 모순을 왜 우리는 바로 잡지 못하고 있는 걸까?
실제 일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원자력에 대한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설문 조사가 있다. 지난 3월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원자력 에너지 안정성에 대한 대국민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89.9퍼센트가 전력 공급원으로써 핵에너지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응답하면서도 46.1퍼센트는 보상이 있더라도 자신의 거주 지역 내 핵발전소 건설에는 반대한다고 답했다.
핵발전소 확대에 대해서도 10명 중 7명이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고 핵에너지에 대해 에너지 자립이나 경제 성장 같은 긍정적인 측면을 떠올리는 비율보다 핵 방사능 사고나 두려움을 연상하는 비율이 높았다. 분명 핵에너지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고 더 이상 확대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 되고 있지만 핵발전소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하는 모순적인 모습.
이 모순은 끊임없이 주입되어 고착화 된 핵에너지에 대한 믿음과 핵 발전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진 핵 없는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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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를 쓰는 일이 목숨보다 중요한 사회
올 여름의 전력 수급 문제가 연일 화두다. 올 여름은 유독 더 더울 것으로 예상 되고 기온이 오른 만큼 전력 사용량도 늘어날 것이다. 작년의 대규모 정전을 격은 정부는 이미 국무총리를 주재로 장관회의를 갖고 '하계 전력 수급 및 에너지 절약 대책'을 내놓았다.
현재 우리나라 21기 핵발전소 중 영광 5호기(100만 킬로와트), 고리 1호기(60만 킬로와트), 울진 4호기(100만 킬로와트), 신월성 1호기(100만 킬로와트)가 가동이 중지된 상태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 여름 최대 전력 공급 능력(1일 기준)이 7854만 킬로와트 정도에 머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런데 최대 전력 수요는 8월 셋째 주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80만 킬로와트나 늘어난 7707만 킬로와트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되어 예비 전력이 147만 킬로와트로 떨어지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작년과 같은 기습적인 정전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현재 가동이 중지된 원자로 중에 영광 5호기를 제외하면 모두 핵발전소에 문제가 생겨서 당장은 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핵발전소의 끔찍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이런 문제가 있는 핵발전소들에 대해 면밀한 점검을 요구하고,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핵발전소를 폐쇄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방송과 신문은 핵발전소의 중지로 전력 수급의 이상이 생겨 그야말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의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말로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 게다가 만약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면 엄청난 경제 손실이 일어날 것이라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핵발전소를 돌려서 국민들의 목숨을 걸로 도박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국민의 안녕을 위한 정당한 요구도 다 침묵해야 마땅한 걸까? 일본의 핵발전소가 전면 가동 중지에 들어갔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은 우리나라 신울진 핵발전소의 기공식이 있던 날이다.
이 역사적인 순간에 대해 보수 언론은 핵발전소 가동 중지로 결국 일본의 경제가 몰락할 것이라 전망하면서 핵 발전이 없으면 곧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이 말을 찬찬히 곱씹어 생각해 보면 단순해진다. 한 국가의 에너지 시스템이 핵이라는 단일 에너지원이 없을 때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은 오히려 매우 심각한 에너지 믹스의 오류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만큼 그 나라가 핵이라는 에너지에 하나에만 의존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그렇기 때문에 하루 빨리 단일 에너지원의 의존을 낮추고 다양한 에너지 믹스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그리고 안전한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해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 나온다.
탈핵의 목소리를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방사능 물질의 확산은 분명 한국 시민들이 핵에너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실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 먹는 음식들에서 방사능 물질을 확인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이은 국내 고리 핵발전소 사고와 이에 대한 은폐 사건은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핵발전소에 대한 불신을 만들어 내기 충분했다.
핵발전소의 안전이 문제가 될 때마다 핵 마피아들은 당장 모든 핵발전소를 가동 중지하면 전기 요금이 천정부지로 오르게 될 것이라는 협박 한다. 일반 국민들에게 생계비가 오른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서는 실제 핵발전소 축소시 전기료 인상에 대해 78.6퍼센트가 전기료 인상에 대해 감내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핵에너지에 대해 편치 않은 지지를 보내던 국민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몫을 감내하더라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탈핵을 위한 사회 분위기가 충분히 조성된 것 아닐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국민의 마음, 사회 분위기를 담아낼 그릇은 아직 마땅치 않다.
꾸준하게 탈핵, 반핵을 외치는 시민 사회 진영의 목소리는 여전히 일반 국민의 가슴을 울리기에 너무 멀다. 정치적 화두로 탈 원전을 던져 줄 정치권 역시 지난 총선에서 다양한 진보의 깃발을 들었지만 아쉽게도 그들의 존재를 알리는 수준에 만족해야만 했다.
서두에 언급한 시시콜콜한 모순을 끊임없이 뱉어 내던 영화 속 여주인공은 현실에서 가장 슬픈 순간에 "침묵에 길들여지지 마세요, 침묵은 무서운 거예요" 하는 말과 함께 앞으로도 독설을 계속 하겠다고 다짐한다. 다 알겠지, 하고 생각하고 말을 하지 않다보면 침묵하게 되고 결국 모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식상하고 지겨운 탈핵의 이야기를 더 지속적으로 더 크게 외쳐야 한다. 그리고 그 아우성 안에서 탈핵의 변화를 이끌 주체가 된 국민들과 이 열망을 담을 그릇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녹색의 모순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변화를 이끌어 낼 그릇, 침묵 하지 않을 목소리가 필요하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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