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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대상 노리는 감독, 파격 집착하다 파탄!

[프레시안 books] 알렉산더 멕켄드릭의 <영화 수업>

알렉산더 맥켄드릭(1912~1993)의 <영화 수업>(폴 크로닌 엮음, 김윤철 옮김, 북하우스 펴냄). 띠지에는 "미국 명문 예술 대학 칼아츠에서 40년간 내려온 전설의 영화 교본"이라고 위엄 있게 표기돼 있다. 뭔가 약장수가 선전하는 만병통치약 같은 느낌이 나는 표지를 넘기면 마틴 스콜세지(!)의 서문이 나온다.


요약하면 이 책의 저자인 알렉산더 맥켄드릭은 영화 연출을 '잘 가르친다'는 말이다. 이정도면 영화 연출자가 되겠다는 거창하지만 막연해 보이는 꿈을 지닌 소년들에게 성경처럼 읽힐 수 있는 책처럼 보인다. 물론 그 출판 의도 역시 마찬가지로 보인다. 일단 시작하자마자 맥켄드릭은 영화 <베로나의 연인들>(1949년)의 한 장면을 설명하면서 문자 언어와 영상 언어가 어떻게 다르고, 또 압축적인 영상 언어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 기선을 제압한다. 너무나 명쾌한 설명이다.

알렉산더 맥켄드릭이 남긴 수많은 영화 수업용 아티클 중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그의 제자인 폴 크로닌이 엮어낸 이 책은 '영화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매우 기초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영화 속에서 스토리텔링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며 그것을 어떻게 시나리오화하고, 또 나아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영상화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이 매우 구체적인 행동양식을 예로 들거나 혹은 제안하는 식으로 구성돼 있다. 어떻게 보면 영화학과 1학년생들이 읽어야 할 필독 도서류의 '재미 없는 교과서'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현대 영화, 특히 21세기 영화들이 놓치고 있는 영화의 본질적 가치를 수호하는 책이라는 점도 발견할 수 있다.

▲ <영화 수업>(알렉산더 멕켄드릭 지음, 폴 크로닌 엮음, 김윤철 옮김, 북하우스 펴냄). ⓒ북하우스
책의 초반부인 1부 '드라마 구축하기'의 4장에서, 맥켄드릭은 칼아츠의 학생들이 주장하는 영화 만들기의 포인트들을 되짚어 준다. '플롯은 필요 없다, 플롯은 지루하다'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플롯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하는' 플롯이 진정 훌륭한 플롯임을 이야기한다. 또 초보, 신인 감독들이 플롯의 설계를 추월해 버리고 만들어낸 일련의 사건들이 '자연스러운 이야기 구조를 만들 재능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경종을 울린다.

특히 많은 21세기 '칸 프랜차이즈 아트 필름'들이 플롯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화로 등장하는 것을 목격한 영화학도들은 이제 플롯보다는 사건 그 자체의 나열에만 신경을 쓴다. 맥켄드릭은 '특히 초보' 연출자에게 스토리텔링의 자유를 허하지만 그 무계획성과 모호함 그리고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인물의 등장에 대한 경고를 아끼지 않는다. 이런 경고는 자신이 이미 플롯이 존재하고 현실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 따위는 오래전에 초월해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기존의 어떤 감독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규칙을 어기고 도발하는 것으로 새로운 영화 문법을 탄생시킨 선구자들의 영화를 너무나 존경한 나머지 그들의 영화로부터 모든 것을 수혈 받아 계속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나가겠다는 생각은 분명히 모순어법이다. 하지만 그런 모순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이야말로 영화 학교다.

세상의 모든 규칙을 지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겨도 괜찮은 규칙이 존재하고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될 규칙이 존재할 수 있다.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어기기 위한 노력은 매우 크지만 그것을 어겨서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은 크게 적은 경우가 존재하기도 한다.

어떤 규칙을 어떻게 어겼을 때 어떤 결과가 돌아오는지를 아는 자들만이 현명하게 규칙을 위반할 수 있다. 맥켄드릭이 가르치는 스토리텔링의 규칙들은 언제나 그것이 절대적인 하나의 도그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규칙 자체를 이해한 후에 어떤 방식으로 위반할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할리우드에는 '규격화된 시나리오 양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어느 회사에서는 '한 신이 8쪽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수준의 매우 구체적인 양식이 존재한다. 수많은 영화 강의자들은 이런 규칙을 알려주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할리우드에서 살아남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방법임을 주입한다.

하지만 맥켄드릭은 다르다. 12쪽이 넘는 한 신을 써버린 작가가 회사로부터 신을 줄이라는 명령을 받고 절망에 빠졌다가 결국 절묘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사건을 보여줌으로 '일정 분량의 한 신이라는 것은 도대체 왜 필요한가'와 '그런 난관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가'를 동시에 가르친다. 규칙을 이해하고, 그것을 어긴 사람들의 사례를 보여주고, 또한 그것을 해결하는 대안까지 제시한다. 이런 귀중한 지식을 '현장에서 깨져가며 경험하지 않고 책으로 알게 하는' 부분은 이 책의 가장 귀중한 포인트다.

2부인 '영상 문법'은 수많은 영화 교과서들이 그렇듯 그림 콘티를 통해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촬영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수업이다. 어떤 사이즈의 화면은 어떤 뜻을 지니며 어떤 앵글은 어떤 앵글 뒤에 붙어야 하는가 등은 솔직히 영상 문법을 이미 어린 시절부터 몸에 익힌 1980년대 이후 세대에게는 재미가 없거나 불필요한 부분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시 '영화를 보는 것으로 익힌 촬영 감각'과 '찍어 가며 익힌 촬영 감각'은 대단히 다르다. 모든 다독가가 좋은 필자가 될 수는 없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와 같은 부분이다. 맥켄드릭은 영상 문법의 수많은 규칙을 간략하게 설명하며 어떻게 찍는 것이 관객의 혼란을 줄이고 안정적인 영화를 만들어내는가를 넘어서 현장에서 배우들의 한 연기를 얼마나 다양한 각도와 사이즈로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을 잡게 한다.

이쯤에서 이 책의 비밀을 누설하자면 이 책은 학생들에게 영화 연출을 가르치는 책인 동시에 '강사가 영화 연출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영화학과에 들어와 도대체 영화 연출이라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인지 궁금해 하며 눈동자에 별이 총총하게 들어차 있는 신입생들을 어떻게 하면 실망시키거나 절망시키지 않고 '가르칠' 수 있는지의 노하우가 들어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교수법'이나 '교육 기획안'에 해당하는 책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 책만 보고 그대로 가르쳐도 어디 가서 좋은 강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되돌아가 보면 서문에서 스콜세지가 기왕 덕담을 하는 김에 '이 책을 읽으면 좋은 감독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왜 '맥켄드릭은 잘 가르친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했는지 감이 잡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영화 제작 환경과는 전혀 맞지 않는 부분도 존재한다. 1부에서 맥켄드릭은 감정을 표현하는 지문의 부사들. '화가 나서'나 '조용히' 등의 사용을 자제할 것을 역설했다. 프로듀서나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들의 '연출적 침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본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겨줘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것은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기능적으로 훌륭한 시나리오를 쓰기 위한 방법이긴 하지만 한국 영화 현실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 '거장'으로 분류되는 감독이 아닌 경우, 시나리오는 보통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이들에게 읽히고, 그들로부터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선고를 받게 된다.

일단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시나리오 작가들이 감독을 겸임하고 있으며 이전에 인상 깊은 작품이 없었던 신인 감독의 경우는 그 시나리오를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사 하나 하나 자세한 지문을 주고,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배우의 신체조건, 로케이션의 분위기 하나하나 모두 '설명하듯' 써야만 한다. '연출자와 프로듀서가 창작할 부분을 여백으로 남겨 둬'야 하는 할리우드의 시나리오와 한국 영화 현장의 시나리오는 이렇게 달라야만 한다.

물론 시나리오의 전문가들이 '잘 쓴 시나리오'가 무엇인가를 가릴 때는 '주관적인 형용사나 부사가 배제된' 시나리오를 선호하는 경향은 어느 나라나 똑같다. 이 차이가 한국에서 영화 만들기를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한국 영화계와 할리우드의 현실적 차이점이 책 속에서 드러난다는 것은 얼마나 이 책이 '현실적'으로 집필됐는지에 대한 방증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쨌든 저자 알렉산더 맥켄드릭으로 돌아가 보자면 그는 스콜세지가 말한 대로 훌륭한 영화 연출 선생인 동시에 훌륭한 영화 연출자이기도 했다. 그가 남긴 작품들 중 책 속에서도 몇 차례 언급된 <레이디킬러>(1955년)는 50여 년이 흐른 후 코엔 형제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플롯이 선명하면서도 조금씩 드러내는 기술이 세련됐으며 배우가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행위 그 자체가 결국 영화 전체와 유기성을 지니게 되는 코엔 형제 특유의 영화야말로 맥켄드릭이 역설한 방식대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닐까 한다. 물론 코엔 형제는 맥켄드릭으로부터 직접 강의를 들은 적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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