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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털남' 김종배는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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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털남' 김종배는 '짐승'이다!

[프레시안 books] 김종배의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김종배

김종배는 '짐승'이다. 언론인으로서 그의 감각은 '동물적'이라는 수식어를 넘어선다. 배고픈 짐승은 먹잇감을 발견한다고 무작정 달려들지 않는다. 때를 노리고 한 번에 급소를 공략하는 것, 기진한 자신의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권력의 감시견'으로서 언론의 생리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마구 물어뜯는 게 능사가 아니다. 주위를 잘 살피다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는 게 중요하다. 최근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서 김종배의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가 그런 역할을 했다. <이털남>을 통해 나온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실 주무관의 충격적인 폭로는 이 사건을 검찰이 재수사하도록 만드는데 중요한 도화선이 됐다.

김종배가 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쌤앤파커스 펴냄)는 먹잇감을 관찰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짐승'스러운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책이다. 출판사가 뽑은 카피 "우리 시대 대체 불가능한 저널리스트 김종배"라는 말이 자화자찬이라고만 할 수 없다.

뉴스와 진실

▲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김종배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쌤앤파커스
뉴스는 '퍼즐 맞추기'다. 기자가 수사권이 있는 형사나 검사는 아닌지라, 자신이 취재한 여러 가지 사실을 근거로 뉴스를 구성한다. 그래서 '퍼즐 맞추기'를 하는 기자와 언론의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뉴스가 나올 수 있다. 심지어 기자가 '누구'를 먼저 만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기사가 나올 위험도 상존한다.

내가 12년 전 모 매체에서 인턴 기자를 하던 시절 이를 절감한 일이 있었다. 초짜 기자인 나는 당시 일곱 살 난 성폭력 피해 아동을 취재했다. 조두순 사건 등을 계기로 '아동 성폭력 범죄'에 대한 인식과 법제도가 크게 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아동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에 대해 무지한 남자 형사가 일반 사건과 똑같은 방식으로 수사했다.

피해 아동이 신체적, 정신적 충격으로 심한 '외상 후 증후군'을 겪는다는 것도, 피해 아동에게 성폭행 사실을 여러 차례 진술하게 하는 게 '2차 가해'라는 것도 인정되지 않았었다. 피해 아동뿐 아니라 부모도 정신적 치유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한국 사회는 무지했다.

나는 피해 아동의 어머니가 쓴 글을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보고 취재를 시작했다. 아이와 어머니를 만났고, 이들을 도와주는 시민 단체 활동가도 만났다. 성폭행 사실을 입증하는 병원 진단서가 있었고, 일곱 살 난 아이는 '외상 후 증후군' 증상으로 보이는 이상 행동을 보였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자기 딴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림도 여러 장 그렸다. 아이는 그림을 통해 성폭행 가해자가 이들 모녀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 주인 할아버지이며, 자신 말고 두 명의 또래 친구가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아동의 그림 따윈 진술로 효력을 인정받지 못하던 때였다.

이어서 담당 경찰을 만났다.

"이거 기자님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사실 아이 엄마가 혼자 살아요. 지금 엄마가 딸 팔아 먹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남자 형사는 피해 아동의 어머니가 가해자로 지목하는 집 주인이 왜 범인이 아닌지에 대해 설명해줬다. 첫 번째 이유는 70대 고령인 그 할아버지는 10여 년 전부터 신부전증을 앓아 발기 불능이라는 것. 하지만 노인 등 자신의 성적 능력에 대해 의심받는 사람들이 자기 보호 능력이 없는 여아를 성폭행하면서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병리학적 심리가 작동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동 성폭행 사건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금세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그러나 이 형사는 성폭행 범죄자는 성욕이 강할 것이란 편견만 갖고 있었다.

두 번째는 피해 아동의 어머니가 성폭행 발생 직후 아이가 입었던 속옷 등을 물증으로 제시했는데 여기서 검출된 정자가 집주인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경찰 입장에선 피해자 어머니를 의심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였다.

취재는 난관에 부딪혔다. 데스크는 가해자로 의심받는 집 주인 할아버지를 만날 것을 지시했다. 단, 남자인 선배 기자와 함께. 둘은 어렵사리 집 주인을 만났다. 이 남자는 시종일관 자신이 얼마나 늙고 병들었는지 말했다. 피해 아동의 어머니에 대한 험담도 늘어놓았다.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사실과 이 때문에 돈을 노골적으로 밝힌다는 요지였다. 이 어머니가 아이에게 세뇌시켜 집 주인인 자기의 돈을 뜯어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로 돌아왔다. 집주인만 같이 만난 선배 기자는 그 할아버지의 말에 더 신뢰가 간다고 했다. 하지만 피해 아동을 직접 만나본 나는 달랐다. 일곱 살 난 아이가 성폭행 피해를 거짓으로 꾸며댄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진단서도 있었다. 그 아동이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는 것은 명백한 '팩트(fact)'였다.

다만 나는 형사가 아니기 때문에 범인이 누구인지까지 밝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다수의 가해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고, 어머니가 돈 벌러 간 동안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는 점에서 그럴 개연성도 있어 보였다. 기사는 결국 성폭행 피해 아동의 사후 보호 및 치료 문제에 초점을 맞췄고, 별 무리 없이 보도될 수 있었다.

기사가 나가고 2년 뒤, 피해 아동의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집 주인을 상대로 한 민사 소송에서 이겨 위자료를 받게 됐다고. 결국 집 주인도 여러 가해자 중 한 명이었다.

합리적 뉴스 소비자

뉴스가 넘치는 시대다. 인터넷에 이어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의 활성화로 뉴스의 소비 속도는 더 빨라졌다. 뉴스를 생산하는 기자 입장에선 당혹스럽다. 빨라진 소비 속도에 생산 속도가 맞춰져야 하는 부담이 점점 커진다.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 '합리적 의심'의 강도가 옅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그 틈을 타 진영 논리에 기반을 둔 억측과 비상식이 뉴스라는 포장을 얻어 유통되는 경우도 늘었다.

'합리적 뉴스 소비자'만이 이런 부작용을 없앨 수 있다. 그래서 '저널리스트 김종배'는 무작적 "참여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의심하라. 사고하라. 그리고 참여하라." 이것만이 "마름에 불과한 고관대작과 언론이 위임된 권한을 남용하고 희롱하는 걸 막을 수 있는" 진정한 주인으로서 국민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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