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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 솔로! 당신이 진정한 '로맨시스트'!

[프레시안 books] 알랭 드 보통과 정이현의 <사랑의 기초>

별로 과묵한 편이 아님에도 연애, 결혼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 앞에선 입을 꾹 다문다. 김수영 시인의 표현으로 이유를 대신하자면, "모르는 것 앞에서는 엎드리는 것이 내 오랜 습관"이기 때문이다. 허나, 늘 그래 왔던 건 아니다. 드문 일이지만, 내게도 사랑이 있었다.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아쉽고, 애달픈 사람. 심수봉의 노래처럼 "비가 오면 생각나서" 마음을 마구 헤집어 놓았던 사람.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으니 과연 '시간은 약이다.'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아니, 거짓말이다. 계절이 바뀔 때면 그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미련으로 또 다른 계절을 맞았다. 기다림은 착각과 집착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다. 번번이 실망하면서도 기대했다. 그때마다 친구들은 "결혼해서 1년만 살아도 저렇게 미련은 안 떨지"라고 말했다. "청승에는 약도 없다"라는 말로 무모한 기다림을 나무랐다. 그네들의 말이 맞았다. 미련스럽고 약도 안 드는 청승이 자신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네들의 표현처럼 나는 영 연애에는 젬병이다. 이성과의 관계에서 미묘한 뉘앙스를 놓치기 일쑤였고, 진심과 농담을 구분하지 못한 채 필요 이상으로 진지했다. "너는 연애 유전자는 없는가 보다"라고 했다. 가끔 그 말이 사실인 것도 같았다. 헌데, 사랑은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시작되었다. 물론, 채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끝났다. 연애는 그런 거라고 했다. 사랑은 "순간을 낚아채는 일"이라고.

그의 사랑은 요란스럽고 빠르게 타올랐다. 그에 반해 나는 전혀 박자를 맞추지 못했다. 전형적으로 연애에는 소질 없는 사람의 패턴이라 했다. 여기저기서 훈수를 두었다. 학습 효과는 좋지 않았다. 사랑이 소멸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러웠지만, 쉽게 놓을 수도 없었다. 서툴고 미숙했으나, 힘겹게 얻은 불안한 행복을 포기할 수 없었다. '서로에게 비극이었겠다'라고 생각이 든 건 그가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난 한참 후의 일이다. 징그럽고, 촌스럽던 내 마음은 그 후로도 얼마간 끝을 모르고 내달렸다. '이제 멈춰.' 백번도 더 되뇌었지만 그건 또 어디 쉬운 일이던가.

'애가 탄다'라든가, '심장을 질근질근 씹어 삼키는 느낌'이라는 게 이거구나 싶었다.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생으로 앓고 견디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때, 알랭 드 보통에게 "남자들이 얼마나 쉽게 사랑에 빠지고 또 쉽게 싫증내는지"에 대해 들었더라면, 지독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조금은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 <사랑의 기초 : 한 남자>(알랭 드 보통 지음, 우달임 옮김, 톨 펴냄). ⓒ톨
<사랑의 기초>(톨 펴냄)는 제목처럼 연애와 결혼에 대한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로맨틱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한마디로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 : 한 남자>는 잔인하고 절망적이다. 물론 낭만적인 사랑과 완전무결한 '신화적 결혼'을 꿈꾸는 이에게 그렇다는 말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고 그 사람을 소유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깨닫는 순간, 최대의 시련과 맞닥뜨린다는 사실"로 시작하여, "결혼하고 난 다음부터 부부는 자식을 위해서 상대를 참아주어야 할 뿐 아니라, 깊이 사랑하고 또한 서로 욕망해야 한다는 놀라운 생각의" 고비를 넘겨야 한다.

"결혼하길 원하는 사실이 결혼 상태를 지속하는 법을 알아가는 데 있어서 특별히 신뢰할 만한 기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단계는 꽤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결혼 생활 곳곳에 침투한다. "아무것도 잃지 않으면서 결혼 생활의 갈등이 해결되는 상태를 원한다면 답은 없다"라는 것 역시 결혼은 영적 수련의 과정이라고 한 조셉 캠벨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 외에 "섹스는 잘 아는 사람과 하기엔 지나치게 사적인 행위"이며, "결혼이라는 협상 불가능한 제도적 의무"에 대한 얘기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낭만적 사랑과 신화적 결혼을 꿈꾸는 이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서다.

▲ <사랑의 기초 : 연인들>(정이현 지음, 톨 펴냄). ⓒ톨
정이현이 쓴 <사랑의 기초 : 연인들>에서는 사랑이 시작되고 소멸해 가는 과정을 군더더기 없이 풀어냈다. "애인을 사귀려는 목적으로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을 소개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우습고 괴상한 일"인지에서 시작하여, "함께 있다는 사실을 기적으로 받아 들이"는 단계를 거쳐, 소소한 공통점을 운명으로 엮어내는 과정을 지나면, "권태로이 시간의 더께가 쌓여가는 만큼 무력한 평화가 유지되는" 단계에 이른다. 이후 "더 오래 같이 있으면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도 아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헤어지는 연인"을 묘사하며 "이별을 위한 연착륙에는 실패하지 않았다"는 표현으로 마무리한다.

한 때 의미'있었던' 상대가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고들 하지만, 나처럼 속 좁고 뒤끝 있는 사람은 꼭 그렇진 않다. 가끔 그네들이 동화 속 주인공처럼 행복하게 산다는 상상을 하면, 배가 아프다.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딥다 후진 사람이 된 것 같지만,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연인들>은 아프고, <한 남자>는 통쾌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그저 전적으로 미성숙하고 유치하게 자신의 사랑을 지키지 못한 연애 맹물 관점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사랑의 기초>는 사실적이다. 환상은 없다. 하니, 정이현의 말처럼 "낭만적 사랑의 영속성을 굳게 믿는다면, 그 꿈에서 영원히 깨고 싶지 않다면, 이 소설의 첫 페이지는 열어선 안 된다."

이 두 권의 소설을 읽고 나니, 나는 진정한 로맨티시스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를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빌려 대신하자면 "사랑이란 그에 응해줄 구체적인 실체, 어떤 확실한 존재가 없을 때 훨씬 경험하기 쉬운 어떤 감정이며, "누군가와 사귀고 있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로맨티시스트 일지도" 모른다고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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