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스티븐 소더버그가 연출하고 베네치오 델 토로가 체 게바라로 분한 영화 <체 : 게릴라>를 보고 나면 그런 이미지가 허물어지고 만다. 두 시간 넘는 시간 내내 보는 이는 고통을 맛보아야 한다. 체 게바라와 함께 볼리비아 숲 속에 남겨져 그의 절망을 복기하는 듯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소더버그가 그린 게바라식 혁명 전쟁은 전혀 시적이지 않다. 아주 메마른 산문이다. 그것은 동지의 범주에 속하는 이들과의 끊임없는 논쟁으로 점철되며, 때로는 그들의 배신과 일탈 행위로 환멸을 불러일으킨다. 승리의 가능성은 오히려 희박하다. 투쟁은 어느새 투사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것이 되어버린다.
게바라는 이런 투쟁을 선택해서 그 속에서 살고 그 속에서 죽은 사람이다. 아마도 여기에서 '낭만'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일 것이다.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헬렌 야페가 쓴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류현 옮김, 실천문학사 펴냄)은 체 게바라의 삶의 이러한 '비낭만적' 면모를 더욱 강하게 각인시켜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만나는 체 게바라는 심지어 한 명의 정치경제학자이자 경제 관료다.
쿠바 사회주의 이행을 둘러싼 '대논쟁'
▲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헬렌 야페 지음, 류현 옮김, 실천문학사 펴냄). ⓒ실천문학사 |
그런데 게바라가 쿠바국립은행장과 산업부흥부 장관을 일할 무렵, 쿠바 혁명 정부 내에서는 이른바 '대논쟁'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혁명적 민족주의 노선으로 출발했던 쿠바 혁명은 이 무렵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에 맞서 투쟁하면서 사회주의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사회주의를 건설할지가 문제였다. 이를 둘러싸고 격렬한 토론이 시작된 것이다.
소련이 파견한 경제 고문들은 자신들의 '앞선' 경험과 기술을 따라 배우라고 강권했다. 이들이 제시한 모델은 쿠바에서는 '자율금융시스템(AFS)'이라고 불렸다. 그것은 탈스탈린화 이후 자유 시장의 요소를 일부 도입한 당시 소련, 동유럽의 경제 체제를 표준화한 것이었다. 소련 측 학자들은 공산주의에 도달하기 이전의 사회주의 단계에서는 가치 법칙(시장 교환)이 여전히 중대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 모델을 옹호했다.
체 게바라는 감히 이 모델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것이 쿠바 혁명의 독특한 점이었다. 중국이나 유고슬라비아 정도를 제외한 대다수 사회주의 국가들이 소련의 교리와 체제를 성서처럼 떠받들고 그대로 따라 한 데 반해 쿠바에서는 게바라와 같은 이단적 목소리가 허용되었다. 심지어는 트로츠키의 저서도 읽고 토론할 수 있었다.
게바라가 보기에 가치 법칙은 자본주의 극복을 위해 점점 더 그 작동 범위를 축소해야 할 것이지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 아니었다. 자유 시장의 요소에 계속 의존하는 것보다는 중앙 계획을 강화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게바라는 자신의 생각을 AFS에 맞서는 또 다른 모델, '예산재정시스템(BFS)'으로 정리했다. 게바라의 강조점을 그의 육성으로 직접 들어보자.
"우리는 가치 법칙을 의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고 보고 논의의 초점을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모순을 자동적으로 드러내는 자유 시장의 부재에 돌리고자 한다. (…) 사회주의 이행기에 가치 법칙이 모순이라면 중앙 계획은 그것의 해결책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앙 계획이 사회주의 사회의 특징이고 그것이 정의(definition)라고 주장할 수 있다." (122쪽)
혁명 정부의 경제 부처들 사이에서 AFS 지지자들과 BFS 지지자들이 벌인 토론이 바로 '대논쟁'이다. 보통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이 정도 논쟁이 있고 나면 논쟁에서 밀린 쪽이 대거 숙청되고 심지어는 목숨을 내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쿠바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쿠바 정부는 AFS로 작동하는 부문과 BFS로 작동하는 부문을 다 같이 운영하며 실험해 보자는 입장이었다.
사실 이 실험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쿠바는 점차 소련의 눈치를 보면서 AFS를 표준 모델로 정착시켰다. 게바라가 돌연 쿠바를 떠나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새로운 혁명 투쟁 현장으로 향한 것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았다. 비록 숙청은 안 당했지만, 정부에서 밀려난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한 동안은 쿠바 내에서도 게바라의 경제 사상은 별로 관심을 얻지 못했다. 쿠바 바깥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사정은 이 거인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천박한 수준에 머물게 만들었다. 500년 제국주의의 역사가 쿠바, 더 나아가 남반구 인민에 강요하는 숙명을 뒤엎고자 했던 그의 필생의 이상과 고투는 가려진 채 낭만적 이미지만이 창궐했다.
야페의 책은 게바라의 삶과 우리의 관심 사이를 가르는 이 거대한 간극을 단번에 뛰어넘게 해준다. 야페는 BFS로 정식화된 게바라의 대안 경제 구상을 이론적 차원에서 소개할 뿐만 아니라 게바라가 이런 문제의식 아래 쿠바 정부에서 직접 펼쳤던 실천들을 더없이 상세히 보고한다. 마치 반세기 전으로 돌아가서 쿠바국립은행장과 마주 앉아 혁명 정부의 경제적 성과와 한계에 대해 세미나라도 벌이는 느낌이다.
게바라의 대안 경제 구상의 빛과 그림자
게바라의 대안 경제 구상은 단지 마르크스주의 고전 독해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 더, 이것은 미국 주도 독점 자본주의 혹은 법인 자본주의에 대한 냉철한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야페는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에서 이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게바라가 보기에 소련은 러시아 혁명 당시에 세계 자본주의가 도달한 수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소련이 부분적으로 도입하려던 자유 시장이라는 것 자체가 과거의 자본주의에서나 중요한 요소였을 뿐이다.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의 미국 중심 자본주의에서는 이미 거대 법인 기업이 시장보다 우위에 서서 이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도 이제는 현대 자본주의가 도달한 이 정도 수준에 발을 딛고 그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려 시도해야 한다는 게 게바라의 생각이었다.
게바라는 쿠바에서 영업하다가 철수한 미국 기업의 운영 실태를 조사하면서 이런 생각을 굳혔다. 그의 예산재정시스템(BFS) 구상은 이때 발견한 미국 법인 기업의 회계 시스템의 혁신성을 쿠바 사회 전체에 확대, 적용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국유화 조치 이후, 국유화된 미국 기업들의 회계 장부를 확인한 게바라는 이들 기업들이 자회사들에 청구서를 발행한 적도, 반대로 자회사들이 모회사들에 실제 비용을 지급한 적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선진 회계 처리, 관리, 분석 기법을 가지고 있던 미국 기업들은 화폐를 생산물의 가치를 계산하는 수단, 즉 계산 화폐로 한정했다. 게바라는 예산재정시스템에서 이런 방식을 채택했다." (123쪽)
게바라는 쿠바에 사회주의를 '가르치려 한' 소련의 관료들보다 몇 십 년을 앞서가고 있었다. 누구보다 먼저 전자공학과 자동화의 중요성에 주목했고, 1960년대에 막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던 포드 자동차의 CEO 리 아이아코카의 경영 기법을 도입하고자 시도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게바라의 대안 경제 구상은 오늘날에도 돌아볼 만한 구석들이 있다. 야페의 책을 통해 이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은 분명 유쾌한 독서 체험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계나 오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예산재정시스템(BFS) 구상 자체가 우리 시대에 그대로 추진되기에는 많은 근본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BFS를 주창하면서 게바라가 제시한 '중앙 계획'은 사회 전체가 마치 하나의 공장과 같아져야 한다는 시각을 깔고 있었다. 그에게 대안 사회는 공장의 확대판이었다. 현대의 대기업 내부에서 그런 것처럼, 일체의 시장 교환을 계획적 결정이나 협상 계약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게바라뿐만 아니라 고전 사회주의자들의 '계획 경제'론에는 항상 이러한 '사회=공장' 관념이 함께 했다.
그러나 사회는 결코 하나의 공장일 수 없다. 사회는 본래 다양한 주체들로 구성된 생태계와 같은 것이다. 이런 역동적 생태계가 기업 조직의 내부 체계처럼 정리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도 계속 '사회=공장' 관념을 고집한다면, '사회'를 '국가'와 등치시키게 된다. 공장 체계의 합리성을 구현하는 것으로 가정된 국가 관료 체계에 항상 사회를 치환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모종의 국가 사회주의일 뿐이다.
이런 국가 사회주의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에 나타날 수 있는 반응 중 하나가 의식적 측면의 강조다. 시스템이 삐걱거릴수록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전체 시스템의 발전을 위해 인민이 적극 참여해야 하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의식이 변화해야 한다, 운운. 아름다운 이야기이지만, 본질은 동원의 이데올로기다.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강조한 게바라의 '의식 혁명'론도 이런 측면과 무관하지 않다.
게바라의 사상은 분명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진지한 자기비판의 성격을 지닌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뛰어넘는 대안까지 보여주지는 못했다. '대논쟁'에서의 그의 기여도 국가 사회주의의 닫힌 원환을 넘어서는 지평을 열지는 못했다. 볼리비아 숲 속에서 그가 마주한 삶의 비극성은 경제 영역에서 펼친 파우스트적 시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새로운 행위 양식을 만들어가는 이행 전략
그러나 이런 평가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게바라가 사회주의 건설의 가장 중요한 측면으로 부각시킨 인간의 주체적 측면을 국가 사회주의의 동원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맥락에서 바라볼 여지는 없을까?
게바라의 예산재정시스템(BFS)에는 몇몇 눈에 띠는 요소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이윤이 아니라 비용 절감으로 기업의 실적을 평가한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반대 진영의 자율금융시스템(AFS)은 여전히 재정 수익성을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이런 차이는 각 시스템 안에서 활동하는 기업의 행위 양식을 다르게 진화시킬 것이다. 게바라식 시스템에서는 기업의 목표가 이윤 극대화에서 다른 쪽으로 바뀌면서 기업 활동의 구성 요소들 전반이 자본주의의 통상적 기업들과는 다르게 재배열, 재구성될 것이다.
개인의 인센티브 체계도 흥미롭다. 자율금융시스템(AFS)에서는 개인의 생산 실적이나 노동 성과에 따라 상당한 보너스가 지급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노동자들 상호 간의 노력 경쟁이 중요한 경제적 행위 양식으로 정착될 것이다.
하지만 게바라가 구상한 시스템에서는 오직 교육, 훈련 정도에 따라서만 급여 수준이 차이가 나도록 되어 있었다. 당장의 생산 실적은 약간의 보너스 지급으로 끝난다. 안정적으로 더 많은 급여를 받으려면 더 높은 수준의 교육, 훈련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게바라와 그의 동지들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지식 및 기술 능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행위 양식을 정착시키려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체 게바라가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흔히 보이는 노력 동원의 측면에서만 주체적 요소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게바라는 좀 더 깊게 파고들었다. 인간 주체성에 대한 선전 문구만 늘어놓은 게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서 반드시 발전되어야 할 새로운 경제적 행위 양식이라는 차원에서 문제의식을 전개했다.
자본주의의 지배적 행위 양식과는 다른 새로운 행위 양식이 등장하지 않는 한, 지금의 사회와 본질적으로 다른 새 사회는 등장할 수 없다. 반대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려는 제도적 틀은, 다름 아니라, 이러한 새로운 행위 양식들을 발전, 정착시키는 방향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게바라는 예산재정시스템(BFS)을 구상하면서 중앙 계획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게 아니라 각 경제 주체들 사이에 새로운 행위 양식이 등장해 확산될 계기들을 마련하려 했다. 즉, 경제 관료 시절 게바라가 진지하게 고민한 것은 대안 사회에 필요한 경제적 행위 양식을 만들어가는 체제 이행 전략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에서 예기치 않게 만난 체 게바라의 또 다른 얼굴이다. 사실 게바라의 게릴라 전략('포코'주의)이나 예산재정시스템(BFS)이나 모두 결국은 실패한 시도들이다. 그러나 대중운동과 선거를 통한 라틴아메리카 '좌파 붐'이 전자를 완전히 과거 역사의 한 페이지 정도로 만들어버린 반면 후자는 그 실패에도 불구하고 경제 체제 변화 과정에 대해 여전히 심오한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문득 '쿠바국립은행장 겸 산업부흥부 장관' 게바라가 '게릴라 투사' 게바라보다 더 끈질기게 우리의 곁에 남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여전히 우리에게 할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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