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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특목고 안 간 '진보' 명망가 애들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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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유학, 특목고 안 간 '진보' 명망가 애들을 찾습니다!

[어린이 잡지의 대안] <고래가 그랬어> 101호 펴낸 김규항

차례를 넘기면 판화가 이윤엽 '삼촌'의 "구럼비가 이긴다" 판화가 등장한다. 이어지는 만화들은 "대학? 꼭 안 가도 돼!"라고 말해주기도 하고('하양 이모의 네덜란드 표류기'), 노동자가 최저 임금을 걸고 사장님과 내기를 펼치기도 한다(마영신의 '동동이'). 다섯 명의 5·6학년 학생들이 '이름'을 둘러싸고 토론을 하며, "고기만 먹고 채소를 안 먹으면 몸이 허약해져요"를 수화로 배워 본다. '서태지'가 누군지 알려주는 '삼촌'도 있다.

독자를 '동무'라 부르는 어린이 교양 잡지 <고래가 그랬어> 최신호(101호)를 펼치고 새삼 그 충실함과 다양성에 놀란다. 키득거리게 만드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동무와 자연, 소통과 연대, 노동과 인권 등 본래 의미는 그토록 중요하지만 누구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가치'들을 새삼 발견한다.

▲ <고래가 그랬어>(100호, 고래가 그랬어 편집부 펴냄). ⓒ고래가 그랬어
지난 3월 100호 발행을 맞고 창간 10년을 바라보는 이 잡지의 현재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린이 잡지' 시장이 고사된 지 오래고 '노동', '인권'이 '빨갱이' 단어 취급 받는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발행인 김규항 씨의 오랜 별명 'B급 좌파'가 상징하듯이 그의 분명한 정치적 성향도 이 잡지에 선입견을 갖게 했다. 심지어 진보의 자장 안에 있던 어른조차 "애들 보기에 산만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김규항 씨는 의연했다. 결호 없는 긴 역사와 3000명 이상의 후원 회원('고래 동무'), 그리고 무엇보다 깨알 같은 엽서를 보내오는 독자 등 2012년 현재의 <고래가 그랬어>를 둘러싼 상황이 바로 그 이유다. "지금 자주 운영이 자리를 못 잡았거나 100호까지 오지 못했다면 평생 힘든 기억으로 남았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다. <고래가 그랬어>는 성공했다.

지난 2일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사무실에서 2003년 10월 창간호를 펴낸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 잡지를 둘러싼 우여곡절을 들었다. <고래가 그랬어>가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그의 질문은 간단했다. "시장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상품'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편집자>

10년, 고래의 자립

프레시안 : 창간호가 발행된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당시 어떤 구상에서 잡지를 만들게 됐나요?

김규항 : 어린이 도서·출판 자체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늘 한국 아이들이 좀 불쌍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 하다가 실현된 게 이거였죠. 불쌍하다는 의미는 당시 시점으로 민주화 된 지 20년이 되어 가는데 아이들의 삶은 독재 정권 때보다 속박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건, 역사 내내 인류가 아이들에게 가르쳐 온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를 어느 순간부터 가르치지 못하게 되어서 두렵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공부와 경쟁이 다가 아니다', '동무와 양보하며 살아야 한다' 같은, 너무나 기본적인 것들. 잡지 하나로 거대한 흐름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프레시안 : 모든 잡지가 그렇지만, 창간 때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었지요?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 씨. ⓒ프레시안(최형락)
김규항 :
<소년 중앙>이나 <새소년> 같은 소년 잡지가 상업 잡지임에도 불구하고 폐간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시점에(<소년 중앙>은 1994년에, <새소년>은 1989년에 폐간됐다) 비상업적인데다 발행인의 색깔도 의심스러운 (웃음) 어린이 종이 잡지가 현실에 나타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고래가 그랬어> 창간이 가능했던 건 박명신 씨를 만나면서부터입니다.

박명신 씨는 과거 벤처 붐이 일었을 때 영어 학습지 <튼튼영어>를 내던 회사(유니북스)의 사장이었습니다. 박 씨는 <고래가 그랬어>에 대한 조건 없는 후원을 약속해 주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후원을 받아서 한창 창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그가 돌아가셨어요.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그분이 개인적인 판단에서 <고래가 그랬어>에 대한 지속적인 후원을 약속한 거지 가족이나 회사 차원에서 한 게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고래가 그랬어> 창간 초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일단 창간한 <고래가 그랬어>를 계속 운영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었어요. 애초 계획이 없었던 상업적인 장치를 갖든지, 아니면 원래 하고자 하는 정체성을 지키면서 궤도에 오를 때까지 일정 기간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다른 방안을 찾든지. 저희는 후자를 선택했죠.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비로소 자주 운영을 한다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2011년 초부터 그 비슷한 상황에 근접했고 실제로 자주 운영에 이른 건 최근입니다. 지금은 임금 수준도 다른 잡지와 비교해 결코 낮은 편이 아닙니다. 초기엔 당시 출판사(야간비행) 대표였던 조대연 씨처럼 2년 동안 집에 돈 한 푼 못 가져간 사람도 있었지만요.

프레시안 : 지금은 후원 구좌의 숫자가 3000개가 넘더군요.

김규항 : 네. 알려져 있다시피 <고래가 그랬어>의 구독은 일반 구독과 후원 단체 '고래 동무'를 통한 구독,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어요. 처음에 <고래가 그랬어>마저 '잡지를 사줄 수 있는 여유 있는 집의 아이들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커다란 마음의 짐이었는데, 저희 부속 기관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후원 단체가 생긴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지요.

'고래 동무'는 구독 방법은 똑같은데 책이 자기 집으로 오는 게 아니라 보육원이나 지역 아동 센터(공부방), 시골 분교로 가는 겁니다. 집으로 구독하면 겨우 한두 명의 아이들이 보지만, 후원으로 구독하면 최소 서른 명이 보거든요. 그렇게 보면 최대 10만 명까지 <고래가 그랬어>를 본다고 할 수 있죠. 이런 구조가 정말 느리게, 천천히 자리를 잡아 왔어요.

"알아, 하지만 현실이 이렇잖아?"

프레시안 : 잡지가 나오기 전 대체로 전망은 밝지 못했죠. 그런데 보란 듯이 101호까지 나왔고, 자주 운영이 가능해졌네요. 다행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합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김규항 : 독자인 아이들이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잡지를 포함해 어린이 상품은 구매자와 사용자가 다르단 문제가 있어요.

아이들 책이 잘 팔리려면 어른들이 '아이들 보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생산을 할 때 일종의 대상화된 관점이 필요한 겁니다. <고래가 그랬어>는 그걸 거슬러 봤습니다. 그래서 창간 전 교육·인문 분야의 소위 여론 선도 층에게 모니터링을 해봤는데 마음에 든다는 분이 거의 없었어요. 만화가 너무 많고 구성이 어수선해 아이들이 차분히 볼지 의심이 된다고요.

그런데 실제 결과는 달랐어요. 처음에 어수선하다고 비평했던 부모들이 아이들이 <고래가 그랬어>를 끼고 산다는 반응을 보내 왔습니다. 처음에 이 잡지를 구독한 부모들 중엔 '짱돌 좀 던진', 그러니까 소위 386 세대의 일원이 많았는데, 이런 부모들 특징이 인문·사회 과학이나 책 관련해선 동네의 어느 부모보다 잘 설명할 수 있는 자부심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아이들한테도 그런 지식들을 전해주고 싶어 했는데, 아이들은 그런 이야기를 재미없어 하거든요. 하지만 <고래가 그랬어>를 보고 나서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하게 되고, 인권이나 생태 같은 가치를 개념어가 아니라 삶과 연관된 생생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겁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고래가 그랬어>가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나왔어요.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10년 동안 <고래가 그랬어>가 한 역할을 자평하자면….

김규항 : 더 이상 누구도 들려주지 않는 너무나 당연한 인간의 기본 꼴에 관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해냈고, 그래서 10년 전 가졌던 뜻을 조금은 이뤘다고 생각해요.

가령 가끔 아빠들이 '<고래가 그랬어> 때문에 집에서 담배도 못 피운다' 이렇게 애교 섞인 항의를 보내오곤 합니다. 아이들이 '엄마나 다른 가족이 싫어하는데 아빠는 왜 담배를 피우느냐'고 비민주적인 상황을 놓고 문제 제기를 한다는 겁니다. 당황한 아빠가 이유를 찾아보니 <고래가 그랬어> 밖에 없더랍니다.

어른들은 뭘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맞지만 현실이 어쩔 수 없잖아' 하면서 말을 뒤틀죠. 아이들에겐 그게 없습니다. 잘못된 건 잘못되었고, 아닌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분명이 있어요. <고래가 그랬어>는 그걸 판단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해왔어요. 그런데 그건 <고래가 그랬어>가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워낙에 누구도 그런 기본적인 얘길 안 한다는 뜻이죠. 저희는 너무 당연한 얘기를 직접적으로 한 것뿐이에요.

프레시안 : <고래가 그랬어>는 대상화를 거슬렀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래도 독자가 '아이'라는 특수성을 끊임없이 의식해야 하지 않나요? 초기에 좌파 계몽이냐, 의식화냐 하는 우려가 많았죠.

김규항 : 초기에 있었던 일인데,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학교 어느 학급에서 아이들이 <고래가 그랬어>를 읽고 누가 간식으로 쏜 맥도널드 햄버거를 안 먹은 적이 있었어요. <고래가 그랬어>에 거대 햄버거 기업에 비판적인 막간 꼭지가 실렸는데 그걸 읽은 거죠. 이걸 가지고 일부 어른들은 '이런 걸 읽고 애들이 미국에 대해 나쁜 생각을 가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비판했어요.

전 이게 아이들 편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아도 분명히 대상화 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을 약한 존재로 보고 보호해 주는 게 페미니즘이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이런 걸 보고 '물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말로 잘못된 거죠. 아주 복잡한 문제가 아니라면, 아이들은 어른 이상으로 직관적으로 사안을 이해하고 알아서 판단합니다.

결국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가가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단행본은 모르겠는데 잡지는 결국 구독으로 반영되거든요. 어른들도 잡지 첫 쪽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경우는 별로 없잖아요. 아이들은 더 심하거든요. 뭘 좀 가르친다 싶으면 넘겨버려요. 그래서 아이들이 보내는 독자 엽서를 어떤 반응보다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아이들이 재미없다고 하면 문제 꼭지가 되는 거죠. 지금은 편집장이나 저나 일부러 아이들 눈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프레시안 : <고래가 그랬어>도 제2의 독자로서 어른도 함께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고민하지 않나요?

김규항 : 완전히 안중에 없는 건 아니지만 (웃음) 어른들이 함께 읽는 걸 염두에 두는 노력은 없습니다. 어린이 문학잡지라고 했을 때 말 그대로 어린이들이 보는 게 있고, 어린이 문학에 관한 어른들이 보는 잡지가 있을 수 있겠죠. 저는 이런 경우에는 대상을 분명히 하는 게 좋다고 봐요. <고래가 그랬어>는 전자입니다.

그런데 이런 건 있군요. 어른들은 인권 문제 같은 걸 '공부를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을 못 해요. 자기도 뻔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죠. 하지만 실제로 공부해 보면 우리는 정말 인권 문제에 대해서 많이 모르고 있거든요. 그래서 어른 독자들도 <고래가 그랬어>를 보고 많은 공부가 되었다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보지요.

ⓒ프레시안(최형락)

'아이들=상품', 가장 위험한 위기

프레시안 : 여러 칼럼과 필자를 통해 이야기해 온 딸(김단)과 아들(김건)은 <고래가 그랬어>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또 그들이 받은 영향은요?

김규항 : 그 둘이 <고래가 그랬어>에 미친 영향은 실제로도 컸어요. 창간호를 만들던 2003년에 건이가 일곱 살, 단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나? 그땐 딱 단이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나이였어요. 자라면서 둘 다 지근거리에 있는 표준 독자의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아빠가 만든 거라고 좋게 말한다든가 제 기분을 살피는 게 아니라 굉장히 솔직했으니까요.

어떤 분들은 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완전히 운동권 수준의 의식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식이라든가 의식면에서 평범한 수준이에요. 오히려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인문·사회적 지식 같은 걸 강요한다거나, 아이들을 일부러 촛불 집회에 데리고 나가는 것이야말로 피해야 할 일입니다. 아이들에겐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세계와 우주가 있고, 거기서 어떤 분노와 감동과 슬픔을 느끼는가가 중요한 거죠.

프레시안 : 두 자녀 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걸로 알아요. 공교육에 대해 불신감을 갖고 있는 건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김규항 : 아까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말씀드리면서 중요한 의미를 빠트렸어요. 한마디로 아이들이 사람이 아닌 상품으로 길러지는 게 불쌍하단 거죠.

학교는 사실, 이제 아이들을 상품으로 키우는 시장주의 교육으로 완전히 치달은 상태죠. 한편, 대안 학교 역시 아이의 재능과 적성에 맞게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통로가 되지 못했어요. 큰 흐름으로 보면 '대안 입시 학교' 비슷하게 변해버렸어요. 입학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학비도 비싸고, 설사 학비를 감당할 수 있어도 이른바 문화 자본이 없는 이들은 면접조차 통과하지 못하잖아요.

그렇기에 오히려 우리의 출발점은 공교육, 공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대부분이 학원에 갈 돈이 없어서 오후 시간을 사교육 없이 보내는 아이들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보수·진보를 떠나 모든 이가 선택 가능한 교육 기회, 방식에 중점을 두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프레시안 : 주변에서 어린 친구들을 만날 일이 없다 보니,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거나 생각할 기회가 겨우 언론 기사 정도입니다. 그런 걸 읽다 보면 '학교 폭력'과 '미용·연예인에 대한 과도한 관심' 이런 문제들이 대표적으로 떠올라요.

김규항 : 아이들이 좀 더 공격성을 갖게 되고 고전적인 의미의 '공동체적'인 감성을 잃어버린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거꾸로 보면, 아이들이 지금 그 감성을 갖고 있는 게 이상한 거 아닐까요?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성장하는데…. 아이들이 힘들어진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뭔가를 풀어야 하고 결국 자기들끼리 괴롭히는 상황으로 치닫는 겁니다.

미용이나 연예인에 대한 열광의 정도가 커진 것은 저도 느껴요. 희망 직업 1순위가 연예인이고, 이미 많은 아이들이 '준 연예인'의 감성을 갖고 살아요. 지금 한국은 온 나라가 연예 시장과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잖아요? 포털만 봐도 쇄골이 어쩌고, 허벅지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일부의 관심사가 아니라 온 국민을 들썩거리게 만들고 있죠. 마찬가지로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사람의 내적인 가치가 어떻고 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것 아니겠어요? 그만큼 어른들의 사회가 껍데기와 숫자로 표현 가능한 것들로만 채워지고 있다는 뜻이고, 아이들은 당연히 따라가겠죠.

프레시안 : 포털 사이트 말씀을 하셨는데, 어린이나 청소년 관련 문제가 일어나면 <조선일보> 같은 데선 웹툰이나 인터넷 공간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의 선정성을 문제 삼아요. 이런 게 어이없는 '때리기'란 건 누구나 알지만, 한편으론 분명 보호가 필요한 부분도 있을 거라고 보는데요. 보호와 구속의 딜레마를 느낀 적은 없나요?

김규항 : 사실 지금 수준에선 보호라는 게 하나마나한 소리죠. 그건 어른들이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지, 막는다고 해도 막아지는 게 아니거든요. 많이 허락한다고 해서 사회가 타락하거나, 막는다고 해서 사회가 건전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는 이 문제가 폭력주의나 선정주의의 결과물이 아니라 상품과 시장화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보편적인 가치 기준이 그거잖아요. 옛날엔 선정성이나 폭력성에 대한 통제, 창작에 대한 검열이 국민들을 지배하려는 수단이었고 실제 효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실효조차 없죠. 선정성이나 폭력성은 상업성이란 문제 앞에 설 수가 없어요. 청년과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가치를 상품화하는 상태에서 폭력이 어쩌고 하는 게 정말 우스운 것 아닌가요?

'발행인 삼촌' 김규항

프레시안 : 인터뷰 오기 전에 '내가 아니라 다른 고래 가족을 인터뷰하면 어떻겠느냐'고 슬쩍 제안하셨는데, 좀 찔렸습니다. <고래가 그랬어> 하면 김규항, 동격으로 두는 게 너무 익숙해진 것 같아서요. 여럿이 만드는 잡지에 한 명의 개인이 크게 부각되는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프레시안(최형락)
김규항 :
제가 앞에 나서서 얻는 이득이나 손해에 대해 고래 식구들이나 저나 별로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물론 실무적인 부분까지 제가 도맡는 양 이야기되면 안 되겠지만요.

프레시안 : '김규항'이 나서서 얻는 손해라면 정치적 입장 때문인가요?

김규항 : 한국이 워낙 좌우파 할 것 없이 자유주의화되다 보니까, 솔직히 그렇게 급진적인 좌파도 아닌 제가 상당히 교조적인 순혈 사유주의자처럼 묘사되곤 해서 스스로도 민망할 때가 있습니다. 때문에 '김규항이 만든다'는 이유로 안 좋게 보는 분들도 있고요. 이건 <고래가 그랬어>의 작은 숙명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김규항은 좀 그렇지만, <고래가 그랬어>는 저 사람이 하는 좋은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넓게는 새누리당 쪽 지방자치단체장까지 포함해, 저와 정치적인 갈등을 벌일 수 있는 지형에 있는 많은 분들이 <고래가 그랬어>를 읽히며 아이를 키워 왔다고 고백해 왔어요. 제가 오히려 '거부감 안 드세요?' 하고 물어보고 싶은 경우까지 있었어요. (웃음) 정치적 입장과는 별개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공부의 일부라 생각하는 유연한 사고겠죠. 그리고 실제로 들여다보면 아이들한테 뭔가를 주입하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보면서 자신(부모)들도 변하는 예가 많았어요.

설사 부모가 거부감을 갖는다고 해도 아이들은 달라요. 가령 저희가 전태일을 다룬 <태일이>를 연재했을 때 '왜 분신까지 한 극단적인 성격의 사람을 위인으로 다루느냐'고 불만을 표시하는 분들이 있었는데요. 어른들은 전태일 하면 '분신'에서부터 거꾸로 출발해요. 그러면 어릴 때부터 분신을 향해 달려 나가는 특별한 아이가 되는 거죠. 하지만 분신은 전태일 삶의 마지막이었을 뿐, 실제로는 아주 평범한 개구쟁이였다는 걸 아이들은 알거든요.

프레시안 : 회사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나요?

김규항 : 정체성이 살짝 특이합니다. 완전한 운동 단체도 아니고, 주식회사 형태를 갖추긴 했지만 이윤을 바라고 주주로 참여하는 분은 없고요. 하지만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게 역으로 실제 노동자들의 생존권, 정체성을 제약하는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는 부분 때문에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그렇다고 대표와 노동자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배치되는 일은 없고요. 이것들이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정말 많은 공부이자 실험이 되고 있고요. 이런 긴장이 이 회사의 정체성이나 내외적 상황을 조화롭고 건강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프레시안 : 한 가지 민감한 질문을 드리자면,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어떤 분과 설전이 오갔어요. 2006년 무렵에 있었던 만화가, 필자들의 원고료 체불 사건을 언급했기 때문이었는데요. 해묵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잡지를 만들기 위해 외부 필자들에 대한 처우엔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비난이 남아 있어요. 그와 함께 여러 소문들도 아직 나오고 있고요.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노조에서 곧 정식으로 조사 결과를 발표하게 될 겁니다. 저나 동료가 오랫동안 져 온 짐이니 만큼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공정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저까지 대상화하는 게 좋다는 판단에서 노조가 조사나 상황 파악을 해 왔고 지금 정리가 끝난 상태입니다.

(원고료 체불은) 불가능했던 <고래가 그랬어>의 창간을 가능케 했던 분이 급서하면서 생겨났던 일입니다. 이후 급속하게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즉시 임금, 원고료, 제작비 체불이 발생했죠. 세상에 그 자체로 '좋은' 체불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표나 발행인이 좌파라고 해서 그 신념과 의지로 돈을 찍어낼 수 있는 건 아니죠. 제가 당시 할 수 있는 일은 그거였습니다.

하지만 상황 자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루머도 만들어졌죠. 입길에 오를 만한 이야기잖아요. '그 사람 좌파라면서 알고 보니…' 하는 식으로. 그게 어떤 분들에겐 단지 흥밋거리지만 어떤 분들에겐 용이한 공격 수단이 되고요. 저로선 치명적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 사람 사실은 위선적인 자본가였다', 이 얘긴 제게 사회적 죽음이나 다름없죠. 그걸 기정사실화한 이들에게 저는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고래가 그랬어>는 복잡한 가치와 정체성을 가진 회사고, 또 그게 누군가의 평가 하나로도 아주 간단히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저로서는 사실 아예 이런 형태의 일에 발을 담그지 않고 그저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하지만 선택의 문제였던 거죠. <고래가 그랬어>를 세상에 구현시키는 일과, 그런 위험성 없이 안전한 상태에서 활동하는 것.

그 사이에서 저는 전자가 더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아무튼 애석한 상황에서 제가 중요시하는 가치를 지키면서 어떻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가를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곧 나오는 발표도 뭔가에 휘둘려서 해명하는 게 아니라, 마지막으로 정리된 형태로 털고 가고 싶기 때문이고요.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고래가 그랬어>이든 김규항 개인이든, 향후 계획이 있다면요.

김규항 : 고래 교육연구소가 5월 5일부터 <경향신문>과 함께 '아이를 살리는 7가지 교육 약속'이라는 교육 서명 운동을 합니다. 서로 이 정도는 지키자는 취지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서로 떨어져 있으면 약속을 지키기 어려워요. '아니 현실이 이 모양인데, 15년 후에 우리 애가 날 원망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게 마련이죠. 그 부분에서 외롭지 않게 부모들을 모으고, 알릴 만한 사례도 만들어 내는 게 목적이에요.

한국의 교육 지형을 보면 더 이상 보수, 진보는 구분점이 아니에요. 계급 문제죠. 이번 서명 운동과 함께 기사를 만들어야 하니까 진보적 성향을 가진 명망가나 지식인 중 아이들을 특권에서 배제한 사례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했대요. 아이들이 전부 외국에 있거나 외국어고등학교나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그도 아니면 대안 학교에 모여 있더래요. 애석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진보적 명망가 부모들)이 이중적 행동을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그들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행동인 거죠. 왜냐하면 진보의 가치가 자유주의가 되어버렸잖아요. 좌파를 자처하거나 인권 운동, 노동 운동 하는 분들도 아이들 교육에 있어선 '내 아이' 위주로 통합되어 있는 현실이 전체적인 사회 진보에 있어서 굉장히 큰 장벽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얘길 들으면 오히려 또 우리 애가 뒤처질까 불안해 할 부모도 많을 거라고 봐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같이 손잡고 나가야 한다는 게 우리 생각입니다.

<아이를 살리는 7가지 교육 약속>(5월 1일, 최종 확정된 약속은 5월 5일 발표된다.)

1. 아이 인생의 주인은 아이입니다.
2. 교육은 상품성이 아니라 인간성을 키우는 일입니다.
3.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공부는 '마음껏 놀기'입니다.
4. 대학에 가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5.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성공입니다.
6. 지금 행복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합니다.
7. 아이와 노동자가 행복해야 좋은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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