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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홍수 속 생존법? 큐레이션!

[프레시안 books] 사사키 도시나오의 <큐레이션의 시대>

책 제목에 포함된 큐레이션은 나의 직업과 연관 지어 근친성이 꽤 높은 용어이지만, 미술계에 한정하면 큐레이션이라는 직능보다는 그 수행자인 큐레이터를 지칭함으로써 그 기능이 암시될 뿐이다. 즉, 작가 발굴과 관련 자료 수집의 결산 격인 전시회를 '기획'하는 일 말이다.

큐레이션의 수행자를 미술계에선 큐레이터 또는 학예사라고 부른다. 이해를 손쉽게 돕기 위해서였는지 <큐레이션의 시대>(한석주 옮김, 민음사 펴냄)의 저자 사사키 도시나오도 제목 속 큐레이션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부도 아니고 본문 후반부인 '4장 큐레이션의 시대'에 가서야 미술 기획과 저자가 강조하는 큐레이션의 중요성을 유비시켜 설명한다.

간단히 큐레이션의 정의는 새로운 '관점 제시'로 요약된다. 지문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로 일본의 샤갈 전시가 나온다. 미술 애호가가 아닌 일반적 독자마저 인지하는 현대적 화가 마르크 샤갈의 정체는 환상적인 화면과 풍부한 색채 감각을 구사하는 러시아 화가 정도에 머물러 있다.

▲ <큐레이션의 시대>(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한석주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2010년 도쿄예대 미술관에서 열린 <샤걀과 러시아 아방가르드와의 만남> 전시회는 '기획(큐레이션)'을 통해 대중에겐 알려지지 않은 샤갈에 대한 새 '관점'을 제시한다고 저자는 본다. 샤갈의 독창적 색채와 초현실적 구성이 발현되는 여정을 따라가 보면, 고국인 러시아 전위 미술과 여생의 많은 시간을 보낸 파리의 야수파와 입체파 운동의 영향이 상호 조응하고 있다는 관점이 전시를 통해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전시회는 샤갈을 바라보는 세간의 고정된 '콘텐츠'를 뒤집고 샤갈이 영향을 받은 전후 문맥(콘텍스트)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샤걀 회화에 가해진 전후 영향 관계를 풀이한 그 전시의 기획안은 미술사에선 익히 알려진 정설이다. 하지만 높은 대중적 인기에 비해, 팬이라 자처하는 이들마저 샤갈을 오로지 '환상적인 색채의 마술사'라는 고정된 콘텐츠에 붙박아두는 건 일반적이다. 그건 정보의 공정 거래가 아닐 것이다. 때문에 샤갈 예술의 문맥을 공개적으로 짚은 전시는 잘 수행된 큐레이션이 맞다.

<큐레이션의 시대>는 어디까지나 급변하는 미디어 변화가 초래한 세계의 미래상을 진단하는 책이다. 때문에 그가 미술 전시회를 통해 예시한 큐레이션이 설마 하니 미술이라는 한정된 분야에 국한될 턱이 없다. 큐레이션이 변화된 세상사의 전 분야에서 명심할 지침이라고 저자는 본다.

4장에서 큐레이션의 정의를 미술 기획전에 비유하기 전에, 저자는 앞장에서 미디어 헤게모니의 변화를 다소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그에 맞는 대처 방안을 논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전대(前代)는 TV, 신문, 잡지, 라디오로 대표되는 매스미디어가 정보 유통을 지배한 긴 암흑 시대였다. 매스미디어의 작동 원리는 이름이 말해주듯 단일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대중에게 무차별 쏟아 붓는 것이다. 매스미디어가 쏟아내는 정보의 대표 선수가 광고다.

반면 현재로 대변되는 후대(책 출간 시점은 2011년이다!)에는 특정 정보들이 매스미디어와 별개로 독립되어 존재하고, 사용자는 자기에게 요긴한 정보를 찾기 위해 검색 엔진을 통해 직행한다. 인터넷 채널의 시대이다. 그것을 저자는 '다양한 종의 생물로 구성된 생식 공간'이란 의미로 "비오톱(biotope)"이라 칭한다.

단순하게 구분하자면 매스미디어는 정보 제공이라는 특혜를 쥔 소수의 공급자가 다수의 수요자를 향해 횡포를 휘두르는 시공간이다. 고정불변한 채널을 통해 무정형 정보들을 무작위로 쏟아내는 구조이고 공급자가 우위에 있으니 당연히 보수적이다. 반면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로 대표되는 비오톱은 소비자의 세분화된 관심에 직렬로 연결된 정보통이다. 주제가 고정 불변하지 않고 한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인터넷상에서 갑자기 부상한 관심사가 이내 사라지는 현상을 떠올리면 이해가 될 거다. 비오톱은 한시적(ad hoc)이고, 공급자와 수요자가 일치하거나 정보를 공유하는 구조다. 그런 점에서 진보 이데올로기에 근접한다.

미디어 지형이 매스미디어에서 비오톱으로 급속하게 이행되는 형편에서 취해야할 생존법을 저자는 큐레이션이라고 본다. 미디어 변화의 큰 지형도를 읽지 못한 이들은 '뉴미디어의 제스처'를 시늉하다가 줄줄이 망한다는 것이다. 요즘 잘 먹히는 전술이나 최신 유행 따위를 무작정 쫒아서 수많은 광고업계가 단발적인 마케팅을 짜다가 망하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가 매스미디어에서 인터넷 검색 엔진으로 이양된 현재의 환경에 무사안일하게 안주하는 것 같진 않다. 고전적(?) 인터넷 검색 엔진이 웹1.0 기반이라면, SNS로 흡수된 웹2.0 시대에 대한 강한 신뢰를 반복적으로 표한다. 예를 들어, 키워드 검색은 다만 사용자에게 요긴한 1차 정보만 직렬 연결하고 끝나지만, '관점'에 따라 상대를 팔로우하는 SNS 시대에는 관심사 때문에 상대와 연결된 거지만, 상이한 상대방의 여러 관점을 공유하기 쉽다.

쉽게 예를 들자면, 좋아하는 블로그를 발견해서 즐겨 찾기로 등록하고 더러 댓글을 남기다고 치자. 댓글을 통해 '교류'로 형성되면, 그의 원래 목적이던 정보도 획득하되, 상대방의 상이한 관점을 나눠 갖기도 하게 된다. 저자는 이를 "정보 그 자체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정보를 얻기 위한 관점을 얻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평한다. 더구나 SNS에서 상대방의 관점을 공유하는 건 강요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용자가 자청한 것이므로 잡음도 적을 것이다.

<큐레이션의 시대>는 자기 계발서 투의 표현과 구성, 장황하다 싶게 긴 에피소드 인용이 몰입을 더러 방해한다. 또 자국민을 1차 독자로 간주하고 집필했을 터여서, 기술되는 주제의 연관성 때문에 왕왕 소환되는 일본의 과거사의 인용은, 해당 분야에 기본 지식이 일천한 독자라면 독서의 흐름이 가끔 끊기는 경험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최신 대중문화와 아이폰이나 아이튠처럼 최신 뉴미디어를 매개로 저자의 견해를 전파하기 때문에 공감의 지평이 꽤 넓은 편이다. 책 말미에서는 그가 줄곧 지지하는 유튜브나 아이튠즈 등의 플랫폼이 글로벌화 될 경우, 누구나 어디서든 저렴하게 콘텐츠를 즐기는 장점도 있는 반면, 미디어의 세계화로 인해 오히려 문화적 획일주의를 돌려받지 않겠나 하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려고, 저자는 다시 과거사를 재밌게 소환해서 뉴미디어를 바라보는 당대의 비관주의를 잠재운다.

중국에선 백자가 궁정의 제기로 쓰일 만큼 귀한 물건이어서, 오로지 단색을 고집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던 중 몽골이 중국을 지배하면서 백자 위에 파란 그림을 그려 넣은 청화백자가 탄생한다. 저자는 그 당시의 몽골 제국이 현대적 뉴미디어 플랫폼처럼, 다종교 다민족 다언어 다문화를 모두 포섭하는 불간섭주의를 택했다고 말한다. 그 덕에 청화백자라는 '다양한 문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족의 백색 모노톤과 몽골이 당시 교류한 이슬람에서 가져온 코발트 안료가 만나 새로운 문화적 융합 청화백자를 낳은 것이라고. 지난 몽골 제국의 문화적 성취는 현대 사회에서 애플이 구축한 인터페이스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앱스토어라는 유통 시스템은 일면 획일적이지만, 앱스토어를 통해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의 개발 판매가 용인되면서, 풍성한 문화 생태계의 형성이 보장받는 점에서.

지문에도 반복되는 표현이지만, 정보 공유가 만드는 평평해진(flat) 사회에선 전문 분야야 존속하되, 결과물의 품질과 유통은 투명성의 검증을 통과해야만 생존하게 될 게다. 미디어 환경의 향후 진로를 확정할 수 없으니 <큐레이션의 시대>의 메시지를 전적으로 신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본 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한 말은 평평해진 세상을 대하는 겸허한 태도로 꽤 새겨들을 만하다.

"어떤 분야에서든 당연시되는 영업의 철칙이 예술의 세계라고 해당 안 된다 하는 것은 정말로 자기 편한 대로 하는 말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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