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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글 쓰다 '망명'…100년 전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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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글 쓰다 '망명'…100년 전에도 있었다!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사이버 망명과 유·이입물 검열

얼마 전 사이버 망명이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명박 정권이 요구한 인터넷 실명제를 구글에서 거부하면서, 네티즌들이 구글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네티즌들이 망명에 나섰다 함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민으로서의 권리가 짓밟히고 있음을 뜻하는 것 아닌가. 왜 이 정권은 네티즌에게 김구 선생의 고생길을 반복하도록 강요하는가. 왜 '다음'에서 구글로 망명하도록 등을 떠미는가.

'인터넷 실명제'란 게 도대체 뭔가. 누가 어디에서 무슨 글을 썼는가를 검열 당국이 모조리 추적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 아닌가. 왜 국가가 그걸 모조리 알아야 하겠다는 건가. 떳떳하면 왜 이름을 밝히지 못하느냐고? 떳떳해도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안 듣는 데서는 나랏님도 흉본다는 옛말이 왜 나왔을까만 생각해봐도, 익명성의 보장이란 표현의 자유를 위해 핵심적인 것임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익명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공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의 모든 글쓰기에 신원을 밝히라 요구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도발이다.

▲ 중국 베이징의 구글 사무소 앞에 촛불과 꽃들이 놓여있다. 중국 국민들은 인터넷 검열에 반대하며 중국 사업 철수 가능성을 제기한 구글을 지지하는 의미로 구글 사무소 앞에 꽃을 내려놓았다. ⓒtheepochtimes.com

10년쯤 전에 야후 사는 미 상원에 불려가고 언론의 지탄을 받은 일이 있었다. 중국 기자 시타오(師濤)가 중국 정부의 언론 통제 지침을 해외에 폭로했는데, 그 메일이 발송된 IP주소를 야후 사가 중국 당국에 제공하여 시타오가 한 짓임을 확증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이유에서였다. 한국의 권력자들이 볼 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태였을 것이다. 아니, 저 정도를 가지고 왜 저렇게 시끌벅적하지? 권력자가 저런 정도도 못 들여다보면 어떻게 통치를 하라는 거야. 무슨 맛에 권력을 갖나? 한국 정부는 중국 정부와는 달리 굳이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

한국은 주민등록제도라는 희한한 제도를 통해 18세 이상 전 국민의 지문을 채취할 권리를 국가가 보유하고 있고, 전 국민을 번호로 부를 수 있게 해놓은 유일한 나라이다. 그 주민번호를 입력해야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인터넷 실명제' 아닌가. 지문날인제의 인터넷판, 완결판인 셈이다. '망명'이 일어나지 않고 어쩌랴.

망명이란 한 국가 권력의 통치를 회피하기 위해 다른 국가 권력을 이용하는 행위이다. 국경이란 권력의 힘이 시작되는 곳이면서 끝나는 곳이므로 이런 회피 방식이 가능해진다. 국경이 있어야 국가는 그 권력을 집약하고 행사할 수 있지만, 그 국경 때문에 그 밖에서는 권력의 공백지대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국경 안에서 억압당하는 피통치자가 국경의 접경지대를 활용하여 국가 권력을 회피하려는 방식은 기실 꽤 오랜 역사를 지닌다. 국가 검열을 회피하려는 자 역시 이런 방식을 활용해왔다.

식민지 시기에도 조금이라도 검열이 느슨한 지역으로의 이동은 활발했다. '인쇄 망명'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사전 검열이었지만 일본이나 만주는 사후 검열이었고 비교적 검열도 느슨한 편이었으므로, 원고를 이들 지역으로 반출하여 인쇄한 뒤에 다시 조선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수법이었다. 예컨대 상해 임정의 <독립신문>은 중국에서 인쇄되어 비밀조직에 의해 국내에 밀반입되었으며, 카프는 기관지 <예술운동>을 도쿄에서 인쇄했는데 국내 판매 과정에서 압수되는 경우가 많아지자 도쿄로 직접 주문해서 우편으로 받아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권력은 이를 막아야 했다. 우편물 검열도 강화됐고 일본과의 교역창구인 부산, 만주와의 교역창구인 신의주 등에는 검열분소가 설치되었다. 짐을 검색하면서 책이나 유인물을 일일이 기록했다. 이를 '유·이입물 검열'이라고 불렀던 바,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에는 그런 상황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큰 트렁크를 맡은 자는 잠깐 쑤석쑤석하여 보더니, 그 위에 얹어놓은 양복이며 화복(和服; 일본 옷)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휙휙 집어서 내 옆에 선 형사에게 주섬주섬 던져주고 나서, 그 밑에 깔리었던 서류 뭉텅이와 서적 몇 권을 분주히 들척거리고 앉았다. (…) 서적을 한 권씩 들어 보아가며 일일이 책명을 수첩에 기입하며 앉었다."

이렇듯 사람과 책은 사람 손으로 일일이 검색했지만, 미디어의 발전은 유·이입물 검열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해방 직전에는 단파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이 있었다. 경성방송국(JODK)에 근무하던 일부 조선인들도 단파 라디오를 통해서 일본 패망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한다. 전파는 물론 국경을 인식하지 못한다. 새나 바람이 국경을 모르듯이, 그리하여 국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듯이.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 시절에도 부산 등지에서는 일본의 라디오나 텔레비전 수신이 가능했으니, 부산 발 소식은 꽤 유의미한 정보였다. 그 시절에도 해외 서적에 대한 검열은 물론 지속되었다. 우편을 통해 들어오는 <타임>이나 <뉴스위크> 등에도 군데군데 검은 먹칠이나 가위질이 되어 있었다. '검은 안경 끼신 분'들이 미리 읽어보셨다는 산 증거였다.

인터넷은 더 자유롭고 더 신속한 미디어이다. 그러나 국가 권력 역시 통제에의 열망을 결코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한국의 권력자들은 글쓴이의 추적이 참으로 쉽게 만들어 놓았다. 인터넷에서 무슨 일만 터지면 며칠 안에 글쓴이를 찾아낸다.

어디 그뿐인가. 누군가가 명예훼손 또는 사생활 침해라는 이의를 제기하기만하면 포털은 그 기사를 즉각 삭제해야 한다. 2007년 발효된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적법행위이다. 물론 소송을 걸어 승소하면 다시 복구할 수 있다지만 번거롭기 짝이 없는 일인데다가, 소송 기간 동안에 별 쓸모없는 정보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말썽의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일단 삭제부터 해버리고, 억울하면 소송하라는 식의 행정 편의주의는 물론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다.

새로운 미디어로서 인터넷은 새로운 유통 질서를 모색하는 중이다. 미디어 기술의 발전 못지않게 미디어 통제 기술 역시 눈부시게 발전해가고 있다. 권력과 자본, 그리고 대중들은 이 새롭고 위력적인 미디어를 놓고 한판의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이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에 따라서 앞으로 100년의 담론장은 좌우될 것이다. 새로운 민주적 담론질서냐 완벽한 '빅 브라더'의 사회냐.

인터넷은 자본과 권력이 결탁한 완벽한 족쇄가 될 수도 있고 역으로 국가 권력의 진공지대, 새로운 접경지대가 될 수도 있다. 글로벌화 된, 그리하여 국가 권력으로부터 일정 부분 자유로워진 미디어 자본이, 소비자의 압력 때문에 대중의 편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국가 권력은 하릴없이 검열에의 꿈을 접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고객들, 대중들, 우리들의 손에 달려있는 셈이다.

망명도 좋지만, 아예 국내의 인터넷 통제 관련 법규들을 바꾸는 노력이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일 것이다. 먼저 이름부터 바꾸자. '인터넷 실명제'란 이름은, 금융실명제 등을 연상케 하여 긍정적 인상을 준다. 급한 대로 '인터넷 지문날인제' 정도로 바꿔 부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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