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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내 배인 글쓰기, 세상을 고발하다!

[프레시안 books] 에릭 호퍼의 <부두에서 일하며 사색하며>

지방에 강연을 가면서 차 안에서 책 세 권을 읽었다. <부두에서 일하며 사색하며>(정지호 옮김, 동녘 펴냄), <시작과 변화를 바라보며>(정지호 옮김, 동녘 펴냄), <우리 시대를 살아가며>(정치호 옮김, 동녘 펴냄).

모두 에릭 호퍼가 쓴 책이다. 첫째 권은 쉰일곱 살의 에릭 호퍼가 부두에서 일하면서 1958년 6월부터 1959년 5월까지 쓴 일기다. 뒤의 두 권은 앞에 <부두에서 일하며 사색하며>에서 사색한 내용들이 점점 발전해 가고 정리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에릭 호퍼,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이가 쓴 책을 읽기는 처음이다. 지식인이 경험을 하기 위하여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벌어먹고 살기 위해 일하면서 책을 냈다기에 마음이 끌렸다.

▲ <부두에서 일하며 사색하며>(에릭 호퍼 지음, 정지호 옮김, 동녘 펴냄). ⓒ동녘
게다가 이력이 아주 특이했다. 호퍼가 어릴 때 어머니가 호퍼를 안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어머니는 2년 뒤에 사망하고 호퍼는 사고의 충격으로 실명했다. 열다섯 살 때 기적처럼 시력을 회복했다니 이런 사람도 다 있구나 생각했다. 에릭 호퍼는 그 때문에 공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고 또 다시 눈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렇게 책을 읽은 덕분에 그의 독창적인 아포리즘이 탄생했다. 그리고 그가 사망한 뒤 2001년 그의 이름을 딴 '에릭 호퍼 문학상'도 제정됐다.

호퍼는 부두에서 일을 하면서 늘 독서를 하고, 사색했다. 일기를 쓴 날짜를 보니 3일에 한 권, 최소 일주일에 한 권을 읽었다. 어떻게 그렇게 힘든 노동을 하면서 책을 빨리 읽을 수 있을까. 게다가 일을 하면서도 늘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마빈 칼브의 책을 읽고 20세기의 극악무도한 범죄는 악착같이 돈을 긁어모으는 자본주의자가 아닌 외골수 이상주의자들이 저질렀다라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자유와 권력의 상반성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한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기본적으로 '가지지 못한 자'의 속성이라고 결론 내린다. 예를 들자면, 히틀러에게 진정한 예술가의 재능과 기질이 있었다면, 스탈린에게 일류 이론가가 될 만한 능력이 있었다면, 나폴레옹에게 위대한 시인이나 철학자의 소질이 있었다면 ,이들 모두 절대 권력에 온 힘을 다해 매달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 글을 읽고 우리나라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독재자들이 생각났다. 이들에게도 이 가운데 한 가지만 가지고 있었어도 그런 절대 권력을 잡고 휘두르려고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60년대에 호퍼는 어릴 때부터 독서하는 습관은 몸에 배었지만 글은 쓰지 못했다고 했다.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미셸 몽테뉴 에세이집>이었다. 1936년 네바다시티 근처로 사금을 채취하러 가던 중에 뭔가 읽을거리를 찾던 중에 산 책이었다. 호퍼는 눈 때문에 발이 묶인 동안 이 책을 거의 외울 정도로 세 번 되풀이해서 읽은 뒤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호퍼는 생각이 독특하다. 이를테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기술이나 관습의 뿌리는 대개 놀이라고 한다. 실용적으로 쓰이는 도구는 거의 다 실용성과는 관계가 없는 행위를 하거나 여가를 즐기는 과정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호퍼의 말이다.

"인간은 단순히 살고 죽는 문제와 관련 없는 대상에 에너지를 쏟고 심지어 인생을 걸 때 인간 고유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창의적인 역량을 한껏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화는 자연 환경이 풍부하고 여가가 보장되며 뭔가 만지작거리고 노는 활동에 재미를 느낄 때 실현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인간의 승격은 황량한 전쟁터보다는 에덴동산 같은 놀이터에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오로지 자본가들의 욕심 때문에 먹고살기 위한 노동으로 여가가 없는 우리 사회는 창의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사회라는 말이다.

▲ <우리 시대를 살아가며>(에릭 호퍼 지음, 정지호 옮김, 동녘 펴냄). ⓒ동녘
호퍼의 글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도 있다. 그이는, 한 나라가 국민에게 자유를 허용하려면 우선 부를 충분히 쌓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는데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현재 국민소득 2만 달러일 정도로 충분한 부를 쌓았는데도 자유가 없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까. 아니, 호퍼가 살아 있다면 우리나라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할까, 없다고 생각할까? 우리나라의 자유는 부자들만의 자유 아닌가.

또 호퍼는 미국 흑인이 협동과 자립을 담당할 조직적인 진정한 공동체를 만들 만한 역량이 있는지 의문이고, 미국 흑인이 미국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주장도 터무니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당시 미국 사회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 부분도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호퍼는 지나간 대부분의 시대에서 역사적 사건의 주체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가장 오래된 공동묘지의 유골의 나이를 조사한 결과 고대에서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25세였다.

"신석기 시대의 중요한 발견과 발명, 예를 들어 가축 사육, 농경, 바퀴·돛·쟁기의 발명, 관개, 발효, 야금술의 발견은 거의 모두 어린아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작품이며, 아마도 모두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과 발명이 이루어졌을 거라고 보는 편이 신빙성이 있다."

호퍼는 '역사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도 무대에 등장하는 주연 배우가 미성년자들'이었다고 한다. 13세에 결혼하고, 10대에 전쟁터에서 전사와 장수로 활약하고, 35세나 40살에는 이미 노인이 됐다는 것이다. 그 글을 읽으면서 얼마 전 귀농운동본부에서 간디학교 교장 양희창이 한 말이 생각났다.

남녀공학이 아이들의 성 부분에서 타락하지 않을까 하고 수강생이 질문했는데 양희창은 아이들이 서로 가족 같아서 그런 일은 없었다고 대답한 뒤 "그런데 저도 조물주가 왜 16세 청소년들에게 성욕이 가장 활발하게 만들었는지는 궁금합니다" 하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래, 16세면 이미 어른이라는 증거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세까지도 선거권을 주지 않는다.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호퍼는 기계의 자동화를 보면서 같이 일해 온 동료들이 거의 순식간에 쓸모없어지고 불필요한 존재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1963년에 자동화로 이미 4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걱정한다. 실제로 현대 사회는 모든 게 자동화로 변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실직자와, 회사가 금방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 ⓒ프레시안
호퍼의 책을 보면 '독서'와 '사색'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생각의 흐름으로 발전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호퍼의 인생 기록이 풍부해진 건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뒤 부두 노동자가 되고 난 이후였다. 호퍼는 1978년, <안식일 전에>를 탈고한 직후, 인터뷰에서 "내 글에서는 땀 냄새가 납니다"라고 했다. 땀 냄새가 나는 글. 가난한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우리나라는 이런 땀 냄새가 나는 책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그 힘든 부두 노동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글을 썼는지 놀랍다. 에릭 호퍼는 "나에게 글쓰기란 사이사이 짬을 내서 하는 일이다. 글을 수정할 때는 다르지만 초고는 분주하게 일하면서 쓴다"고 했다. 나도 버스 운전을 할 때 신호 대기에 서 있을 때나 길이 막혔을 때 글을 써서 책을 냈지만 에릭 호퍼에 비하면 견줄 바가 아니다. 게다가 나 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그 깊이 있는 철학이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볼 걸 하는 생각과 함께, "아니야, 아직 늦지 않았어"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독자님들도 늦지 않았으니 이 책부터 사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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