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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고립 없다면 '북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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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고립 없다면 '북핵'도 없다!"

[프레시안 books] 정욱식의 <핵의 세계사>

인류사는 전쟁의 역사라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사람들은 약소국(약소 민족)이 강대국(강한 민족)에게 잡아먹히는 그런 정글 같은 세상을 살아 왔다. 21세기에도 본질은 바뀐 게 없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 통치가 대표적인 보기이다. 자유니 평등이니 박애가 인류 보편의 가치로 자리 잡을 날은 아직은 멀어 보인다.

주먹 센 놈이 뒷골목 패거리들을 제압하고 목에 힘주는 게 세상 이치다. 국제 질서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냉전 시대의 미국 정치학자 한스 모겐소는 국제 정치를 '힘을 위한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모겐소 같은 현실주의 입장에서서는 '힘'(power)이 바로 국제 정치를 풀이하는 주요 분석 단위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나 국가는 힘을 추구하며, 따라서 국제 사회는 '힘의 균형 상태' 아래 평화가 유지된다.

고전적 힘의 균형 깨뜨린 괴물

그런데 핵무기가 문제다. 핵무기는 모겐소가 말한 고전적인 힘의 균형 개념을 깨뜨리는 파괴력을 지닌 괴물이다.

19세기 나폴레옹 시대 때처럼 병력 숫자로 힘겨루기를 하던 고전적 '힘의 균형' 개념을 깨뜨렸다. 균형이 있다면, 그것은 곧 '공포의 균형'이다. 핵전쟁이 일어날 경우 참전국은 전쟁의 승패를 떠나 핵공격으로 서로를 파괴해 버릴 수 있다. 이른바 '상호 확증 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줄여 MAD)' 논리다.

MAD 논리는 핵전쟁에서 승자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전쟁 억지력을 지녀왔다. 앞뒤 잴 것 없이, 요즘 유행하는 말로 '닥치고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전쟁광들이 불쑥불쑥 느끼는 핵전쟁 충동을 그나마 눌러 왔다. 그러나 많은 국제정치학자와 평화 운동가는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므로 핵무기의 전쟁 억지론이 만능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왔다.

핵의 위험한 두 얼굴

핵은 두 얼굴을 지녔다고 한다. 공포의 전쟁 무기를 만들지만, 귀중한 에너지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핵에너지는 21세기 안에 사라질 유한한 자원인 석유의 대안으로 꼽힐 정도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매우 위험한 에너지원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옛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의 악몽을 되살려 주었다.

그래서 <핵의 세계사>(아카이브 펴냄)의 저자 정욱식은 이렇게 묻는다.

"인류는 핵 때문에 평화로워졌는가, 전쟁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졌는가, 에너지난에서 해방되었는가?"

이 물음들에 대해 저자는 단호히 "아니오"라고 고개를 젓는다.

영국의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2012년 1월 8일 70회 생일을 맞아 "우리 인류가 핵전쟁이나 지구 온난화와 같은 재앙으로 1000년 이내에 멸망할 것"이라는 우울한 예언을 했다. <핵의 세계사>의 저자는 호킹 박사의 이 예언을 언급하면서, 인류 멸망이 '1000년 이내'가 아니라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의 핵폭탄 투하가 전쟁 끝냈다?

▲ <핵의 세계사>(정욱식 지음, 아카이브 펴냄). ⓒ아카이브
<핵의 세계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 입력돼 '상식' 또는 '고정관념'으로까지 자리 잡은 핵무기에 관한 일반의 통념을 깨뜨린다. 그 가운데 하나가 '미국의 핵폭탄 투하가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냈다'는 통념이다.

저자는 그 통념이 틀렸다고 말한다. 일본은 거듭된 연합국의 재래식 폭격에 이미 초토화된 상태였다. 또 일본은 천황제만 유지될 수 있다면 연합국에 항복할 수 있다는 뜻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그런데도 미국은 두 차례에 걸친 핵폭탄 공격(히로시마 1945년 8월 6일, 나가사키 1945년 8월 9일)으로 수많은 비무장 민간인을 살상했다. 저자는 미국의 핵전문가인 워드 윌슨의 연구 성과를 빌려, "일본의 항복은 핵폭탄보다 소련 요인이 더 컸다"고 풀이한다.

주목할 점은 미국 수뇌부도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는데 핵폭탄 투하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젠하워 장군은 "일본은 이미 항복할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끔찍한 무기로 그들을 피격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루먼 역시 7월 18일 일기장에 소련이 참전하면 "일본은 끝장일 것"이라고 적었다. (57쪽)

기록에 따르면, 소련이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시점은 1945년 8월 8일. 선전포고를 한 바로 그 다음날인 8월 9일 소련군은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로 침공해 들어갔다. 일제가 자랑하던 관동군은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일본의 패배는 불을 보듯 뻔했다. 바로 그 무렵 미국의 지도자들의 걱정은 제2차 세계 대전 뒤 새로 짜일 국제 질서에서 소련이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었다.

저자는 "소련이 개입하기 전에 우리가 전쟁을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미국 국무장관 번스의 발언을 옮기면서, 당시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일본이 소련의 참전으로 항복하면 전후 질서 구상에서 소련에 밀릴 것을 우려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미국의 핵폭탄 결정은 '스탈린의 소련을 겨냥한 무력시위'였다는 것이다.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한 것은 일제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그리고 일본의 결사항전으로 더 큰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스탈린의 소련을 상대로 한 '대량 살상' 외교라고 보는 것이 역사적 진실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59쪽)

전쟁과 오판

우리 인류사에서 전쟁의 대참화는 지도부의 잘못된 판단(오판)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2003년 3월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국은 결정적인 오판을 했다. "사람 후세인 독재에 시달리던 이라크 민중들이 점령군인 미군에게 장미꽃을 던질 것"이란 헛된 낙관론을 품었다. 그래서 전후 이라크 안정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지 못했다. 그런 탓에 8년 넘게 '이라크 수렁'에 빠져 허우적댔다.

'오인(misperception)'이란 용어를 정치학의 주요 개념으로 정립시킨 미국의 이름난 학자 로버트 저비스(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교수)는 <국제정치학에서의 인식과 오인>(1976년)에서 군사적 낙관론과 같은 오판이 그 국가로 하여금 패전에의 길로 몰아간다고 분석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 지도자 히틀러의 오판은 대표적인 보기다.

<핵의 세계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전쟁(1950~53년) 당시 미국과 소련의 지도자들의 오판을 핵무기와 관련시켜 분석한 대목들이다. 저자는 1950년 한반도에서 비극적인 전쟁이 터진 배경에는 핵무기의 최초 개발국 미국 지도자의 오판, 그리고 1949년에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소련 지도자의 오판이 깔려 있다고 본다.

먼저 미국의 오판. 1950년 1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미국의 극동 방위선은 일본을 포함한 알류산 열도로부터 필리핀으로 이어지고, 극동 방위선에서 한국과 타이완을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저자는 "미국이 핵의 위력을 믿고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시킴으로써, 북한과 소련에게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비판한다. 미국 군부도 핵의 위력을 믿고 오판을 했다.

또한 맥아더의 휘하에 있던 극동 사령부 역시 "어떤 아시아인도 미국의 이익을 위협함으로써 명백한 패배를 감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미국의 군사적 힘에 의해 전멸"될 각오를 무릅쓸 만큼 무모하지 않다는 믿음이었다. 전후 맥락으로 볼 때 당시 미국 정책결정자들과 군부가 맹신한 '군사적 힘'은 핵무기를 의미했다. 비록 소련의 핵실험으로 미국의 핵독점은 무너졌지만 압도적인 핵 우위를 자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96쪽)

또 소련의 오판. 애치슨 라인은 모스크바와 평양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져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란 잘못된 믿음을 주었다. 저자는 소련이 1949년 핵 개발에 성공한 것도 한국전쟁 발발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핵실험 성공으로 대담해진 스탈린은 김일성의 남침 승인 요구를 받아들였다. 트루먼과 마찬가지로 스탈린도 미국이 제3차 세계 대전을 불사할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개입 가능성이 낮고 개입하더라도 중국을 앞세우면 소련이 직접 피를 흘릴 일은 없다고 봤다. (105쪽)

따라서 저자는 한국전쟁이 트루먼과 스탈린의 '핵 위력'에 대한 맹신이 만나는 지점에서 일어났다고 본다. 비록 소련이 핵 개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상당 기간 핵 독점과 우위를 자신한 트루먼 행정부는 미국보다 핵 전력이 크게 뒤진 소련이 북한과 중국에 남한 공격을 명령할 정도로 무모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트루먼과 맥아더의 핵 위협

그런 오판 끝에 한국전쟁이 터지고 수세에 몰리자,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개성에 핵폭탄을 투하할 계획을 세웠다. <핵의 세계사>는 이에 얽힌 숨은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미국의 수상쩍은 낌새를 알아챈 영국 수상 애들리는 워싱턴으로 날아가, "핵폭탄 사용이 제3차 세계 대전을 불러올 수 있다"고 강력히 막아섰다.

한때나마 '핵폭탄을 만지작거리던' 트루먼은 한반도에서의 핵폭탄 사용 계획을 백지화했지만, 자칫하면 한반도가 제2의 히로시마가 될 뻔한 위기 상황은 그 뒤에도 있었다. 미국 극동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가 중국군의 진공을 막기 위해 청천강 지역에 핵폭탄을 투하함으로써 북한을 오염 지대로 만들려던 무모한 계획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일이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정윤미 이은진 옮김, 살림 펴냄)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 전쟁 지도부의 오판을 분석하면서, 특히 맥아더의 오판, 아집, 독선이 한국전쟁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를 상세하게 비쳐준다. 핼버스탬에 따르면, 맥아더는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 뒤 북진을 결정하면서 중공군의 개입과 관련해 결정적인 오판을 저질렀다.

맥아더는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압록강으로 진격해가더라도 (유엔군의 진격은 압록강-두만강까지라서, 미국이 중국을 위협할 의도가 없음을 중국 지도부가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플랜 B'를 마련하지 않았다. 그 결과 미군은 중공군의 매복 공격과 겨울 동장군의 이중고로 참담한 패배를 겪어야 했다. 핼버스탬이 책 제목을 '가장 추운 겨울'로 잡은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한국전쟁이 남긴 것은…

핵시대의 첫 전쟁, 한국전쟁은 각국이 핵무기에 더욱 매달리도록 만드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핵의 세계사>는 △북한에 대한 핵 위협이 총성을 멈추게 했다고 믿은 미국이 대량 보복 전략에 바탕을 두고 더욱 공격적인 핵 정책을 펼치고, △소련과 중국 또한 미국과의 대결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더욱 많은 핵무기 개발에 나서고 △미국의 핵 위협에 떨어야 했던 북한도 핵무기 개발에 사활을 거는 모습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브레이크 없는 세계적 차원의 핵 시대가 활짝 열렸다고 개탄하는 저자는 아울러 핵에너지 의존도가 점점 커지는 현상이 낳는 부작용을 걱정한다. 전 세계가 핵에너지에 의존하면 의존할수록, 많은 국가들이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연료 확보→핵발전소 가동→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이어지는 '핵연료 주기 완성'을 통해 핵무기 개발의 유혹도 커지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 해법은?

이즈음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북핵 문제에 대해 저자의 해법은 단순 명쾌하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에 핵이 없이도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에 '다른 수단에 의한 안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을 들어보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협상다운 협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6자 회담의 9·19 공동 성명에도 명시된 한반도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회담이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은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핵 포기는 김정은 정권에 엄청난 결단을 요하는 문제다. 이는 거꾸로 김정은 정권으로 하여금 핵 포기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한·미·일 삼국에도 이에 걸맞은 전략적 결단이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바로 적대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의지와 정책을 가리킨다. (408쪽)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국제 질서가 세계 정부 없는 무정부 상태라는 점이다. 유엔 같은 국제기구는 세계 정부와는 거리가 멀다. 국제법을 어기는 강대국의 못된 침략 버릇을 제대로 손보지 못한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오늘은 국제 사회의 슬픈 날"이라 한탄만 했을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 국가(민족)를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선 국가(민족)의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핵무기 보유의 유혹은 강해지기 마련이다.

끝으로 인간적인 이야기 하나. 저자 정욱식은 '평화 네트워크'의 대표로 여러 해 동안 평화 운동에 열정을 바쳐온 행동가이기도 하다. 몇 해 전 그의 사무실에 공부 모임 차 들렀을 때의 일이다. 내가 맡은 발제문을 참석자들에게 나눠주려고 복사기를 찾으니 없었다. 그 흔한 복사기 한 대 없는 옹색한 살림살이에 속으로 조금 놀랐고 걱정도 됐다.

그렇지만 정욱식은 씩씩하고 성실하다. 평화를 향한 그의 열정적인 모습은 한반도의 앞날에 귀중한 자산이다. 제주 강정에서 해군 기지 건설 반대를 외치는 등 길거리에 나서야 할 때는 서슴없이 나서왔고, 한편으로는 반전 반핵의 이론적인 내공을 다져왔다. <핵의 세계사>도 그런 내공을 다져온 열매라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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