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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학, '좀비 학문'이 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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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학, '좀비 학문'이 된 까닭은?

[프레시안 books] <그들은 어떻게 최고의 정치학자가 되었나>

1945년 식민지에서 해방된 대한민국은 그 어느 곳보다 정치적인 나라다. 신생 근대 국가의 건설, 분단의 극복과 통일 그리고 민주주의의 확대는 지금까지도 살아있는 현재 진행형의 주제들이다.

돌이켜보면 해방 직후 새로이 문을 열었던 대학들의 이름 속에 한국인들의 정치적 열망이 상징적으로 들어있다. 가령 건국대학교, 동국대학교, 국민대학교와 같은 교명들 속에 새로운 국가 건설의 꿈이, 그리고 고려대학교, 조선대학교, 동아대학교 등의 이름 속에는 전통을 계승하여 새롭게 국가적 차원의 인재를 기르겠다는 비전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에 대학의 역할도 민주화와 근대화를 추동할 정치 엘리트를 배출하는데 집중되었고, 교양 교육 커리큘럼은 민주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북돋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학문 분야로 치자면, 사회과학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정치학 분야가 60여 년 세월 동안 국가 건설과 민주주의의 정착 과정에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발전해왔던 것이다.

다만 한국의 국가 형성 과정에 끼친 미국의 영향력이 강력했던 것만큼이나 정치학 분야 역시 미국학계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는 점은 염두에 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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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 비춰볼 때,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최고의 정치학자 10인과의 대화록이 번역, 출간된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다. 우선 위대한 정치학자의 속살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흥미롭다. 내내 딱딱한 논문이나 전공 서적으로만 접했던 최고 학자들의 숨은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정치학 전공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둘째 위대한 업적들의 핵심을 간추려 볼 수 있는 희귀한 기회라는 점에서다. 창조적 학술 작업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 내력을 헤아려보는 일은 전공과 관계없이 누구든 관심을 끌 만한 주제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책과 논문들이 한국 대학들에 개설된 정치학과의 교과서로서 구실해왔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학의 학문-정치적 성격을 추출할 수 있다는 점에도 그 의미가 크다. 이를테면 한국 정치학의 미국 '종속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이 책에 들어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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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어떻게 최고의 정치학자가 되었나>(리처드 스나이더·헤라르도 뭉크 지음, 정치학 강독 모임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책 제목은 <그들은 어떻게 최고의 정치학자가 되었나>(후마니타스 펴냄)로서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본래 15명의 학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것인데, 우선 10명의 학자들 분량이 먼저 출간되었다.)

수록 순서는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제1권의 전반부에는 1910년대 출생자인 게이브리얼 알몬드와 배링턴 무어 그리고 로버트 달과의 인터뷰가 실렸다.

알몬드의 연구 핵심은 "정치 발전과 정치 문화에 대한 구조 기능주의적 연구 방법론을 정식화한 점"에 있다. 이른바 정치 과학(political science)의 선구자가 알몬드인데, 특별히 '정치 발전'이라는 개념을 세계적으로 퍼뜨린 장본인이 그다.

한편, 무어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저서,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의 저자다. 이 연구를 통해 근대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한 국가 간 비교 연구의 문을 열었다. 이를테면 비교 연구(comparative analysis)라는 과학적 방법론을 실제 국가와 정치학 연구에 도입한 최초의 학자가 무어였던 것.

그리고 로버트 달은 행태주의(behavioralism)를 처음 정치학 분야에 도입한 인물이다. 카를 헴펠과 같은 실증주의 철학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정치학에 과학적 표준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사람이다. 역시 정치학의 과학화 운동의 기수였던 셈.

이어서 제1권의 후반부에는 1920년대 출생자인 후안 린츠, 그리고 새뮤얼 헌팅턴과의 인터뷰가 실렸다.

우리가 툭하면 억압적 정치를 두고서 입에 올리는 상투어가 된 '권위주의'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개발한 사람이 린츠다. 린츠는 권위주의 체제 개념을 정식화함으로써 전체주의는 아니면서, 역시나 민주주의도 아닌 많은 나라들의 폭압적 정치를 이해하는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그리고 헌팅턴은 1990년대 세계적 베스트셀러였던 <문명의 충돌>의 저자로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학자다. 헌팅턴의 기여는 탈냉전 시대가 제기한 문화적 갈등에 초점을 맞춰 세계적 차원의 비교 정치학을 제시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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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에는 묘하게도 모두가 1936년도 출생인 학자 5인과의 인터뷰들이 실렸다. 네덜란드 출생으로서 협의체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개발한 아렌트 레이프하르트,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라는 개념을 제시한 기예르모 오도넬, 기업과 국가 간의 관계를 재설정한 코포라티즘 개념을 도입한 필립 슈미터, 또 제3세계 농민들의 저항에 대한 연구로 알려진 제임스 스콧, 그리고 군부의 정치적 역할을 새롭게 조명한 앨프리드 스테판 등과의 대화록이 실렸다. 여기 다섯 학자들은 제1권에 실린 원로학자들의 연구를 비판 또는 개선함으로서 비교 정치학 분야를 심화시키거나 확산시키는 데 공로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 가운데 내 눈길을 끈 학자는 오도넬이다. 대학원 재학 시절 그의 책, <근대화와 관료적 권위주의>와 <권위주의 통치로부터의 이행>을 읽고서 리포트를 썼던 기억이 새롭다. 오도넬은 청년 시절 학생 운동 지도자로서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과 투쟁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실은 오도넬뿐만 아니라 이 책에 실린 정치학자들 대부분이, 전쟁의 경험으로부터 빈곤과 이주, 혹은 혁명적 변동의 체험을 겪었던 사람들이다. 이런 현실적 경험들이 정치학자로서의 성취에 기반이 된 듯하다. 이렇게 보자면 정치학이란 학문은 제아무리 과학을 지향한다 할지라도, 역사적이고 규범적인 특성을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예감을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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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오늘날까지 미국 정치학계가 그려낸 '생각의 지도'를 한 데 압축한 점에 있다. 특별히 정치학 전공을 결심한 대학원생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부분이다. 심리학과 사회학 그리고 경제학 등 주변 학문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해온 현대 정치학의 이력서를 일목요연하고 세밀하게 헤아릴 수 있는 드문 사례를 이 책은 제공한다.

두 번째 특징은, 앞서 잠시 지적했듯, 위대한 학자들의 내밀한 인간적 삶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학문은 엄밀한 과학을 지향하였으되, 학자로서의 삶은 결코 과학적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특히 이들 대부분이, 최고의 학자로 만들어낸 소양으로서 고전에 대한 독서와 인문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 그리고 여행 체험 등을 지목한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세 번째는 미국 학계의 내부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학자들 간의 교유와 협력, 스승에 대한 비판과 갈등 그리고 어느 곳에나 있음직한 학과 내부의 헤게모니 투쟁과 알력 또 학자들의 이산과 결집에 따라 변동하는 학풍이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흥미롭게 전개된다. 또 미국 대학들 정치학과의 풍경이 우리나라의 그것과 너무나 비슷하게 닮았다는 씁쓸한 독후감은, 한국의 정치학계가 미국의 복사판이라는 당혹한 감상으로도 연결된다.

이런저런 점에서 이 책은 정치학 전공자와 사회과학 연구자들 그리고 대학원생들에게 필독서로 권하고 싶다. 그러나 동시에 유념해야할 점도 있지 싶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미국 중심주의, 또는 미국 예외주의의 시각은 주의해야 할 점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오도넬도 이점을 특별히 경고하고 있다.)

물론 미국 정치학계에서 발전시켜온 과학주의는 정치학의 영역을 크게 심화시키고 또 확장시켰다. 다시 말해 비교적 방법론을 통해 그리고 통계나 확률과 같은 수학적 방법론을 다듬어 학문적 엄밀성을 심화시켜온 점은 미국에서 형성되어온 비교 정치학의 큰 기여다. 50여 년에 걸친 정치학의 과학화, 정교화 과정은 두 권의 책 속에 실린 훌륭한 인터뷰들을 통해 실감나게 맛볼 수 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제국'으로서 미국이 행사해온 권력과 힘의 논리가 과학이라는 이름의 학문 세계에서도 투사되고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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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정치 과학 또는 비교 정치학이라는 것이 순수한 과학성에서 비롯된 학문 분야가 아니라 현실 정치권력의 필요성에 의해 '조작된 것'임을 말하는 사례를 들어보자. 똑같이 미국에서 훈련받은 정치학자인 더글러스 러미스는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 대통령인 트루먼이 연설에서 '발전'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비교 정치학 분야가 활성화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트루먼이 1949년 1월 20일의 취임 연설에서 "미국에는 새로운 정책이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개발의 나라들에 대해 기술적·경제적 원조를 행하고, 투자를 하여 발전시킨다는 그런 새로운 정책이었습니다. (…) 당시의 경제학 논문을 보면 트루먼이 썼던 '미개발 국가'라는 용어가 그 이전에는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발표된 학술 논문이 모두 실려 있는 잡지 기사 색인이란 게 있습니다만, 1949년의 연설 이전 것을 보면 '미개발 국가'라는 항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근대화'라는 항목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 발전(development)이라는 언어 자체가 트루먼의 연설에 의해 바뀌고, 다시 만들어진 말입니다. (<경제 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61쪽)

요컨대 비교 정치학 내부의 과학성 문제는 따로 논하더라도, 미국 정치의 '세계 경영'의 측면과 연구 주제(정치 발전론)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덧붙여 러미스는 그가 대학원생으로서 정치학을 훈련받던 미국 대학의 현실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인용하는 내용이 상당히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국의 대학 사정과 정부 기관 그리고 정치학이라는 학문 분야의 밀접한 권력 관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모두 인용하겠다.

이미 앞에서 조금 언급한 것처럼 트루먼이 그 연설을 하고 나서 바로 새로운 학문 분야가 생겼습니다. 갑자기 수많은 경제학자가 '발전 경제학자'가 됐습니다. 그들만이 아니고 사회학자도, 정치학자도 '발전'이라는 낱말을 반복하여 사용하며 연이어 책을 썼습니다.

(이 서평의 주제인 <그들은 어떻게 최고의 정치학자가 되었나> 제1권 첫 번째 대담자 게브리얼 알몬드의 주요 저서가 <정치 발전론>임은 기억해둘 만하다.)

즉, 이 새로운 학문분야는 이른바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라 창립되었다고 보면 좋습니다. 그런 학자들은 자신의 학문 분야가 중립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지만 실은 지극히 정치적인 정책에 의해 생긴 분야입니다. 그 일을 위해 막대한 돈이 투입됐습니다.

바로 그 때 나는 미국의 대학에 있었습니다. 학부 때도 대학원 때도 캘리포니아 대학의 게시판은 이런 학문을 장려하는 장학금의 게시로 넘치고 있었습니다. 포드 기금이라든가 록펠러 기금이라든가, 특히 국방성의 장학금이 가장 좋았습니다. 국방성 장학금의 조건은 정부가 정한 "전략적으로 중요한 언어"를 하나 공부하는 것, 즉 정부가 배우길 바라는 제3세계의 언어를 어느 것이나 하나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서평의 대상인 '최고의 정치학자들'이 권하는 비교 정치학자의 자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외국어 능력과 외국 체험이라는 사실과 미국 정부의 요구 사항이 이 지점에서 기묘하게 만난다.)

그리고 경제 발전 이데올로기를 공부합니다. 그러면 3년간 생활비와 학비를 대줍니다. 대단히 많은 액수의 장학금이었습니다. 내 동료 중에도 자신의 흥미나 관심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돈이 들어오기 때문에 전공을 바꾼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학문 분야를 돈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경제 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75-76쪽)

즉, 1960년대 미국 대학에서 이뤄진 학문(비교 정치학)의 형성과 발전에는 외부, 즉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책이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하나의 학문 분야를 돈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라는 증언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미국 현실 정치의 필요성, 과격하게 말하자면 미국의 국제 정치 전략의 필요성에 따라 생겨난 것이 사회과학의 학과목들(정치 발전, 경제 발전)이라는 것이고, 또 그에 따라 비교 정치학 분야의 '특수'가 생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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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한국 정치학에 미친 미국 정치학의 '정치적' 영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최고의 정치학자들"은 군데군데 한국에 대한 증언을 남기고 있기도 하다. 그 증언들의 틈새에서 외국의 정치학자들이 바깥에서 관찰하고 있던 한국 정치의 변모를 읽는 것도 독서의 짭짤한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가령 스테판의 증언을 들어보자.

린츠와 나는 새로운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있는지 서로 알아보려고 학기 첫 수업 후 항상 통화를 한다. (비교 정치학의 '비교'를 위해서는 다양한 국가 출신의 유학생들이 제공하는 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국가든 권위주의 체제로부터의 이행이 가능해지기 약 5년쯤 전부터 그 나라 학생들이 수업에 나타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에 린츠는 내게 전화해서는 흥분한 목소리로 "한국 출신이 두 명이나 있어!"라고 말했고, 나는 "내 수업에도 한 명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5년 전에는 미국이 캠퍼스마다 한국의 정보 요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한국 학생도 우리 수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뭔가 바뀌었다. (2권, 369~370쪽)

그러나 한국 정치학의 기원과 관련하여서는, 러미스의 증언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하나의 학문 분야를 돈으로 만들었던) 동시에 '남(南)'의 국가에서 온 젊고 유능한 사람들을 불러 미국의 대학에서 박사가 될 때까지 길러, 경제 성장 이데올로기를 집어넣은 다음 그의 나라로 돌려보냅니다. 각 나라의 '경제 발전 엘리트'를 길렀던 것입니다. 그것도 의도적인 국가 정책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발전 이데올로기는 엄청난 힘을 지닌 이데올로기로 변해갔습니다. (<경제 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76쪽)

여기 개발 도상 국가를 뜻하는 '남(南)의 국가에서 온 젊고 유능한 사람들' 속에는 당연히 남한의 사회과학자들, 특히 정치학자와 경제학자들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정치학 분야에서 교수된 '정치 과학'은 엄밀하게는 과학이 아니라 미국의 시각에서 세계를 경영하기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부산물들이었던 셈이다.

나는 1970년대 후반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여, 1990년대 초반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와중에 한국 대학의 정치학 교육 속에는 도무지 한국인의 현실적 삶과 이 땅의 역사가 부재한다는 느낌에 내내 목이 말랐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주입되는 미국의 사례와 서양의 사상들은 그것이 아무리 정밀할지라도 이 땅의 삶의 개선에 소용되지 않는 한, 박제에 불과하다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 책, <그들은 어떻게 최고의 정치학자가 되었나>를 읽으면서 얻은 개인적 소득은 과거 대학 시절의 목마름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특별히 러미스의 증언을 교차하여 읽으면서 미국 정치학의 빛나는 성취가 막상 이 땅의 정치학에는 그늘을 드리웠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현재 한국의 정치학의 처지는 비극적으로 지리멸렬하다. 지방의 정치외교학과들은 문을 닫거나 그 명패를 바꿔달고 있는 실정이다. 요컨대 정치가(사람)를 기르지도 못하고, 또 오늘날 한국 땅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처방도 제시하지 못한 불모성이 한국 정치학을 폐절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디디고 선 제 땅의 삶에서 제기된 질문을 차갑게 응시하고, 또 그 해결책을 열정적으로 추적하는 사람만이 참된 정치학을 건설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는다. 정치학이란 결국 학자가 제 나라 민중들의 삶을 뿌리로 삼고 주체로 보존하지 않는 한, 금방 남의 시각의 포로가 되고 마는 위약한 학문이라는 점을 배운다. 서툴더라도 내 눈으로 이 땅의 삶을 지켜보려는 시각의 주체화가 얼마나 중요한 노릇인지를 다시금 인식하게 한 계기였다.

덧붙임

이 책과 더불어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 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또 미국의 정치학자로서 종신 교수직을 던지고 자발적 가난의 삶을 선택한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김종철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도 함께 읽기를 권한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과학적 정치학'에 대한 비판을 위해서는 피터 윈치의 <사회과학의 빈곤>(박동천 옮김, 모티브북 펴냄)을 참고하면 좋겠다. 이른바 '사회과학'이라는 것이 내포한 신화적 특성과 서유럽적 시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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