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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걸 정치'의 몰락과 '꼼돌이'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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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걸 정치'의 몰락과 '꼼돌이'의 탄생

[데스크 칼럼] 민주통합당 패배의 진짜 이유는?

4·11 총선 결과를 놓고 설왕설래다. 18대 국회와 비교했을 때 무려 47석을 더 얻은 민주통합당은 온갖 뭇매를 맞는 처지가 되었다.

선거가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한명숙 대표가 앞장서서 1당은 물론이고 과반수를 얻을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선거 과정에서 갖가지 악재가 있었지만, 그래도 1당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민주통합당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결과는 정반대였다. 고사 직전까지 간 것처럼 보였던 새누리당은 단 10석을 잃는 데 그쳤다.

지금이야 너도나도 민주통합당의 패인을 분석하는데 주력하지만, 막상 선거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그 많은 지식인, 언론인 대부분은 새누리당의 승리, 민주통합당의 패배를 예측하지 못했다. 이런 착시 효과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왜 민주통합당은 그리고 내로라하는 자칭 타칭 '선거의 달인'들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제대로 답을 찾을 때 비로소 민주통합당 더 나아가 야권이 기대 이하의 성과밖에 내지 못한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구걸 정치'의 몰락

민주통합당 패인을 놓고 낮은 투표율을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번 총선의 투표율 54.3퍼센트로 2010년 6.2 지방 선거(54.5퍼센트)에 비해 0.2포인트 낮았다. 전국 선거 중 통상 총선이 지방 선거에 비해 투표율이 높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낮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재외 국민 투표가 실시돼 전체 유권자 수가 늘었으나, 재외 국민 투표자수는 5만6000명에 불과해 전체 투표율을 끌어내렸다. 실제로 투표한 유권자 수는 지난 지방 선거와 비교하면 전국에서 약 60만 명이 늘었다.

이번에 새누리당이 거의 싹쓸이한 경상남도, 충청도, 강원도 등에서 약권이 약진했던 2010년 6·2 지방 선거와 이번 선거 결과의 차이가 0.2포인트의 '낮아진 투표율'의 차이라고만 보긴 힘들다. 더구나 20대가 투표만 하면 야권을 찍으리라는 순진한 낙관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민주통합당이 참패한 이유를 확인하려면 딱 한 지역구를 살피면 된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을)이다. 이곳에서 새누리당 김태호 의원은 1년 전 4·27 보궐 선거에 이어서 다시 한 번 승리했다. 김 의원의 승리가 각별한 것은 그의 승리가 '노무현'을 상대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김태호 의원은 지난 4·27 보궐 선거에서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국민참여당 대표)와 사실상 대리전쟁을 치렀다. 이번 총선에서는 '낙동강 진보 벨트'를 꿈꾸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대리전쟁을 치렀다. 사실상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광을 업은 야권의 잠재적 대선 후보 두 명과 잇따라 싸워서 승리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이봉수 후보)든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김경수 후보)이든 야권은 김해 시민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한'을 풀어 주십시오!"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을 '심판'해 주십시오." 이런 야권의 호소는 곧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선거 핵심 구호였다. 반면에 김태호 의원은 일관되게 "김해의 일꾼"을 강조했다.

단언하자면, 이 또렷한 대비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표심을 갈랐다. 민주통합당 더 나아가 야권이 2010년부터 선거 때마다 해온 관행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구걸 정치'이다.

시민은 이명박 대통령도 심판해야 하고, 새누리당의 의회 권력도 끝장내야 한다.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은 구걸에 또 구걸을 거듭했다. 더구나 구걸하는 처지에 자세는 고자세였다! 시민은 욕망의 노예가 되었다고 타박 받고, 박정희 향수를 조롱당했다. 악마에서 천사 다시 악마가 된 20대는 어떤가.

반면에 새누리당은 어땠나? 그것이 진심이든 거짓이든 혹은 공약(公約)이든 공약(空約)이든 이 당은 끊임없이 "~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준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지역 개발을 위해서 서민 생활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태호 의원의 잇따른 선전은 또 새누리당의 선전은 바로 이 호소가 서민들의 표심을 파고든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정치인은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처럼 걸핏하면 선거에서 시민에게 나라와 정당과 정치인을 살려 달라고 말한다. 반대여야 하지 않을까? 나라와 정당과 정치인이 시민을 살려 준다고 해야지(바로 이것이 정치의 존재 이유다!), 어떻게 살기 팍팍한 시민에게 구걸만 거듭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 민주통합당의 실패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2011년 10·26 보궐 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된 이유가 정권 심판 때문이었나? 단순히 그렇게만 보기 힘들다.

당시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원순 시장이 시민에게 선택을 받았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무상 급식' 때문이었다. 무상 급식으로 상징되는 복지 국가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젊은이와 서민들의 표심을 움직였던 것이다. 복지 국가, 경제 개혁의 비전을 상실한 민주통합당의 이번 모습과 대조적이지 않은가?

▲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와 부산 사상에 출마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뉴시스

'꼼돌이'의 탄생!

민심과의 이 괴리를 왜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은 물론이고 내로라하는 지식인, 언론인도 파악하지 못했을까? 강준만 전북대학교 교수는 <강남 좌파>(인물과사상사 펴냄)에서 이런 분석을 한 적이 있다.

"열성 지지자들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구속이 비교적 덜한 젊은 층이었는데, 이들의 뜨거운 분노와 그에 따른 열화와 같은 지지는 주로 '이데올로기적 쟁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회 경제적 이슈에 민감한 서민층은 인터넷을 들여다볼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먹고사는 일에만 몰두하느라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으니, 그런 대표성 왜곡으로 인한 문제가 노무현 정부의 성찰과 자기 교정을 방해한 것이다." (122~123쪽)

강준만 교수의 이 말에서 '노무현 정부'를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으로 바꿔 본다면 어떨까? 강 교수의 지적대로 지금 인터넷 공간의 여론은 실제 밑바닥 민심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

트위터와 같은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의 타임라인만 놓고 본다면, 민주통합당의 패배는 물론이고 진보신당, 녹색당이 합쳐서 2퍼센트의 지지도 얻지 못하는 현실이 설명이 안 된다. 통합진보당 심상정 후보가 새누리당 손범규 후보를 상대로 170표차의 신승을 거둔 것도 설명이 안 된다. 아니, 아직도 이명박 대통령이 하야를 하지 않는 것도 설명이 안 된다.

'멘토'를 자처하는 '셀러브리티'(유명인)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기자들이 밑바닥 민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이들의 말을 전하는데 급급한 동안 그리고 한명숙 대표,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의 정치인들이 그것에 취해 있는 동안 새누리당은 밑바닥부터, 외곽에서부터 표심을 공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정신을 차리자! 인터넷에서 백날 끓고, 쏠리고, 들끓어도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전원 스위치만 끄면 그만이다. 두세 개 다리만 건너면 그 나물에 그 밥인 사회 연결망 서비스에서 백날 울어봤자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백날 대통령을 '쥐'로 만든 들, 여전히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이다.

민주통합당 더 나아가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야권이 지금부터 할 일은 구름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는 것이다. '고공 정치'가 아닌 '생활 정치'의 복원 없이는 지역의 각종 풀뿌리 네트워크로 엉겨 붙어서 자신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새누리당을 비롯한 온갖 구질서(Ancien Régime)를 절대로 극복할 수 없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계기로 능력 부재, 비전 부재, 윤리 부재의 이른바 '백팔번뇌' 혹은 '탄돌이'라고 불렸던 이들이 당선되어 17대 국회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우리는 본 적이 있다. 이번 총선 결과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과 더 나아가 통합진보당이 진짜 '민심'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헤맨다면 <나는 꼼수다>의 인기를 등에 업은 이 '꼼돌이'들이란 비난이 쏟아질 것임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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