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붓다가 종교 지도자? 아니, 정치철학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붓다가 종교 지도자? 아니, 정치철학자!

[철학자의 서재] 피야세나 딧사나야케나의 <불교의 정치철학>

고대 인도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독특한 정치철학이 있었음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의 정치 체계와는 달리 인간생활 전체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독특한 면모를 보인다. 삶의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측면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을 다룬다.

분별력 있는 연구가라면 초기 불교가 엄격한 의미에서 통상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종교의 범주 속에 들지 않는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누군가는 붓다를 예언자와 같은 인간으로 간주할지 모르겠지만, 그의 가르침에는 지식에 대한 이론, 실체에 대한 이론, 국제적 관계와 법의 체계를 포함한 사회, 정치철학과 윤리 체계가 담겨 있다.

피야세나 딧사나야케의 <불교의 정치철학>(대원사 펴냄)은 정치사상이라는 용어의 일반적인 의미 내에서, 그리고 인도 고대 언어 팔리어로 기록된 경전을 통해서 초기 불교의 본래적인 면모를 보존하고 있는 교단 테라바다에서 강조하는 불교의 정치사상을 검토한 책이다.

인간 사회 분석의 정치적 의의

불교는 우주 전체의 근본적인 진실을 요소들 속에서 발견한다.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의 세 원리가 그것이다.

무상(無常)의 진실은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명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무상을 체험할 수 있다. 언어의 일상적이고 피상적인 의미에서 고(苦)의 실재는 경험 세계에서 충분히 목격할 수 있지만, 그것은 좀 더 깊은 진실을 의미하며 무상의 다른 한 면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고가 있으면 무상이 있고, 반대로 무상이 있으면 고가 있기 때문이다. 고는 단순히 우울이나 염세를 의미하지 않는다. 염세주의도 아니며 낙천주의도 아니다. 그것은 현실이다.

불교의 무아설은 개체의 실존을 명료하게 부정한다. 불교는 인간의 사상사에 있어서 영혼이나 자아의 실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아라는 개념은 머릿속에서 지어낸 것이고 인간에게 뿌리 깊이 물든 거짓된 믿음임을 붓다는 명백히 했다. 세상의 모든 잘못은 그로부터 기인한다고 밝혔다. 붓다의 가르침에 있어서 주요한 목표는 '나'라는 관념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자연현상은 어떻게 실존할 수 있으며, 세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붓다는 연기론을 설명하면서, 공간과 시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인과의 뚜렷한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았다. 이 법칙에 종속되지 않은 우주 속에서 결코 어떠한 것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과의 법칙에 의하면, 온갖 요소들의 발생 기원은 그 전에 이루어졌던 것에 달려 있다. 불교적 개념에서 인간이란 논리적 전후 관계에 따라 쉴 새 없이 흐르는 자연적 힘들이 결합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인간 속에서 영혼이나 자아라고 인식될 수 있을 만큼 변치 않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붓다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불행은 자아라는 거짓에서 생기는 것이다. 이 거짓이 사람으로 하여금 동료를 희생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자 몸부림치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무아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써만이 이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들이 특수한 입장에서 본 견해를 유일하게 올바른 견해라고 너무 집착할 때, 결과적으로 그것이 자신들의 견해가 되고 그들은 그 견해를 옹호하기 위하여 모든 가능한 수단을 호소한다. 이 때문에 그들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아의 개념이 생겨나는 근본 원인을 갈망이라고 보며 이것에 집착이 생성된다. 존재의 계속성을 유지하는 갈망은 쾌락, 부, 권력에 대한 욕구와 집착뿐만 아니라 관념과 이상, 의견, 이론, 개념, 믿음에 대한 욕구와 집착을 포함한다. 붓다의 분석에 의하면, 개인적 다툼에서부터 국가와 민족들 간의 큰 전쟁에 이르기까지 세상에서의 모든 분쟁과 투쟁은 이기적 갈망에서 발생한다.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모든 문제는 그 근원이 이기적 갈망에 있다.

대승은 물론이고 소승의 모든 체계에 있어서 불멸하는 아트만을 부정하는 것이 공통적 입장이다. 현대 심리학은 붓다의 이러한 근본 교설과 일치한다고 하면서, 인간의 구조가 결코 동일하진 않지만 언제나 변화하는 상태에 있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경향이다. 정신 물리적 유기체라는 외적 현상 뒤에 있다고 가정하는 자아라는 실체를 인정하길 거부하는 것도 많은 심리학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평화와 위안을 찾고자 하는 방안으로 아트만의 존재 여부에 대한 문의는 수없이 경전에서 논의된다.

'자아'라는 수렁에 깊이 빠져 있는 인간이 이로부터 벗어나려면, 자신의 사회적 의식과 행동을 아주 근본적으로 바꾸어서 이로 인해 맞는 사회 환경은 자아 관념과 이로부터 갈라져 나온 모든 아류(亞流)들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이것은 우리를 사회과학의 영역으로 이끈다. 불교의 입장에서 비이기적 사회의 건설을 뒷받침하는 기본적 관념과 이와 관련된 연구는 본래 정치적인 측면과 관련 있다.

상가(Saṃgha)와 그 정치적 역할

불교 상가가 확립된 후 은둔 생활의 양식은 한 곳에 정착하여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제도적 방식으로 변하였다. 붓다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하나의 잠정적인 수단으로서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모범적인 사회 조직체를 설립하여, 자신의 철학이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역에 널리 이행되도록 공헌할 사회적, 정치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붓다가 자신의 일생의 많은 부분으로 사회 일반의 복지와 행복을 추구하는 데에 헌신하였음은 너무나 유명하다. 붓다의 삶에는 충분히 발전된 사회의식을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기록들이 있다. 붓다는 권력자들과 어울렸고 비천한 사람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빔비사라와 코살라의 파세나디 같은 국왕들과 함께 활동하였다. 아나타핀디카와 같은 부유한 자본가와도 교제하였다. 그의 문하에는 비사카, 케마, 웁팔라반나와 같은 귀부인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교제가 앙굴리말라와 같은 강도, 수니타와 같은 청소부, 암바팔리, 파타차라, 순다리와 같은 매춘부 등과 친분을 맺는 데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병자를 보살피고 버림받은 자와 가난한 자를 구제하였으며 약자를 위로하고 불행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붓다는 사회를 회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들의 모임 속에 늘 살았다.

여러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불교 상가는 공화 제도나 부족 제도의 사회와 연관 있다. 상가 생활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한다면 윤리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 모두를 보아야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상가 구성원은 물론이고 인류의 선을 위하여 붓다가 설립한 것이 민주주의 제도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다수의 뜻을 따라 결정에 이르지만 상가 조직에서는 합의나 만장일치 쪽을 선호한다. 상가 회의 결과를 위해 규정된 표결 절차에서는 표결에 붙인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하여 만장일치를 구하는 방안이 깊이 뿌리내려 있다. 또 현대 민주주의와는 달리 상가는 스스로 법률을 제정할 권력을 갖지 않는다. 붓다는 율(律)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법률을 제정할 상가의 권리를 신랄하게 부정한다. 특수한 필요에 직면하여 개개의 상가가 율장의 규율을 수정하거나 변경하도록 허락했다면, 상가의 통일성이나 아니면 그의 균등 및 순수를 유지하기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상좌부(上座部) 전통에서 '보다 중요치 않고 사소한' 계율에 대해서는 폐지하도록 하라는 붓다의 유언에 따라, 교단에서는 붓다 사후에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 문제에 대해 그 자유를 이용하려는 경향으로 기울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상좌부 전통에서 결론 내린 것은 붓다가 규정한 그대로 모든 율장의 규율들을 보유하는 것이 현명할 것임을 자기들끼리 동의하였다.

붓다는 공동 재산이라는 원리를 상가 조직에 도입하였다. 붓다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부(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붓다는 부(富)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가 비난하였던 것은 사회적 투쟁을 야기하는 사유 재산이라는 관념이었다. 붓다의 정책은 상가의 구성원 개개인에게 개인 재산을 소유하도록 허락하지 않으며, 한편 사회생활에 있어서 필수적인 재산의 사유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재산은 항상 공유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붓다의 근본 이념이었다.

▲ 빔비사라 왕의 방문. ⓒopentemple.or.kr

상가의 법적 체계

살생과 관련된 규율들은 비구들에게 크든 작든 고귀하든 비천하든 모든 형태의 생명을 철저히 탈취하지 말도록 명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예는 적지 않게 발견된다. 상가 전체의 체계 뒤에 있는 기본 목적은 비구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며, 상가 조직의 안에서든 밖에서든 비구들의 궁극적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창조하고 보전하려고 한다.

특별하게 관심을 갖고 주목할 만한 것은 상가 조직에서 범법자에게 처벌이 주어지는 경우이다. 이 처벌 체계의 배후에 깔린 철학은 그 처벌이 공정하며 결코 보복될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율장에 규정된 징계 절차에서는 고발된 자에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기회를 가능한 한 최대로 준다. 일단 비구가 유죄로 입증되더라도 상습자라고 간주되어 완전히 제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을 개혁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바르게 수정한다면 상가는 기꺼이 그를 원래의 위치로 회복시켜 주려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상가의 인적 구조와 입문 절차

인간의 삶을 완전하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인류 사상의 역사를 더듬어볼 때 그 완성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에 두 가지의 선택적인 답변을 할 수 있다. 마음과 정신의 전적인 정화(淨化)에 의해서 개인에 있어서의 내적 발전으로 인간의 삶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도적인 변화에 의해서 환경에 있어서의 사회적 변혁으로서만 인간의 삶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생각은 종교생활의 주창자들이 폭넓게 채택한 것이고 두 번째 생각은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국내외의 모든 정치가들이 채택하여 왔다. 붓다의 가르침에서는 불교의 사회철학과 관련되는 한, 이 두 가지 생각이 조화롭게 결합되었다.

개인주의를 배제함은 궁극적 행복으로 이끄는 길에 들어설 준비를 갖추어지게 되는 상태로 도달함이다. 개인주의 배제란 이기심이 없는 상태를 말하며 다른 한편으로 불교 상가 조직에서의 삶을 나타낸다. 우리는 불교의 정치 이론이 견해상 동일한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가의 사회적 기능이 스스로 드러나기 시작함은, 비구들이 스스로 모범적인 삶을 살면서 훈계해 줌으로써 그들을 지지하는 속인들을 가르친다는 점은 사실이다.

불교 정치사상의 기원과 발전

정치사상의 역사는 정치 이론이라는 것이 정치적 공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입증하고 있다. 현재든 과거든 모든 정치 사상가들은 그들이 각각 처해 있는 사회적, 정치적 조건에 큰 영향을 받았다.

붓다가 출현했던 기원전 6세기 인도에는 두 종류의 주요한 정치 체제가 있었다. 그것은 공화제와 군주제였다. 공화국들은 개인적이며 독자적인 의견에 대해 군주국들보다 덜 억압적이었으며, 비정통적인 견해를 더 쉽게 묵인하였다. 공화국에서 정치적 권위의 산실인 집회는 상가 또는 가나(gana)로 불렸다. 공화국의 중요한 특징은 그들의 내적 결합과 통일이었으며, 이것은 역시 혈연관계에 기반을 둔 그들의 구조 때문이다.

군주제를 채택하지 않았으므로 브라만들에 의해 제시되고 군주 통치의 왕국에서 실천된 생활 방식에 반대하였음을 분명히 나타낸다. 브라만의 정치 이론을 모두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국가의 기원에 대한 불교의 설명이었을 것이다. 불교의 설명은 사회 계약론을 최초로 표현한 것이다. 불교 정치 이론의 궁극적 목표가 비이기적 사회의 창조에 있음을 주시하였다. 그러한 사회의 창조를 착수할 수 있으려면 먼저 우리의 사회의식과 행동이 근본적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주목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