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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 범죄. 학교 폭력이 웹툰 탓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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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 범죄. 학교 폭력이 웹툰 탓이라고?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모방 범죄 예방'과 검열

이번에도 만화였다. 또 불려나와 뺨을 맞았다. 1997년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사건 이후 15년쯤 만의 호출이다.

학교 폭력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조선일보>가 나서서 웹툰 <열혈 초등학교>를 손가락질했다. 이틀 만에 검열 당국이 웹툰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역시 '조선'과 '명박산성'의 찰떡궁합이다. 야후는 <열혈 초등학교>를 당장 삭제하기 시작했다. '19금'도 아니고 아예 삭제.

▲ 웹툰 작가들의 검열 반대 운동 로고. ⓒnocut_toon.blog.me
곧이어 방송통신심의위가 23개 웹툰을 청소년 유해 매체로 지정하겠다고 나섰다. 만화가들의 1인시위 등으로 반발이 거세지자 방통심위는 한걸음 물러서서 자율 규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거의 두 달 만의 일이다. 그런데 방통심위의 이런 후퇴는 문화 컨텐츠 사업의 육성 필요와 청소년 보호를 절충한 결과라고 한다. 폭력을 묘사한 일부 웹툰이 과연 실제로 청소년 폭력을 유발하는가를 면밀하게 검토하거나, 성급한 삭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표현의 자유가 부당하게 억압당할 것인가는 전혀 고민의 대상이 아니었다.

강력 사건, 특히 청소년과 관련된 범죄만 일어나면 모방 범죄라면서 '유해' 영화, 만화, 게임을 단속해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검열만 제대로 되면, '한 줌도 되지 않는 자'들의 반대를 깔끔히 쓸어버리고 검열만 강화하기만 하면, 문제는 해결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있었다. 장애인이면서 병을 앓아온 범인은 사회가 원망스러웠고 "많은 사람과 함께 죽고 싶어서 방화했다"고 말했다. 재발 방지 대책이 숱하게 나왔지만 실행된 것은 지하철 의자를 불에 강한 방염재로 바꾸기였다.

2010년 서울 신정동 옥탑방 살인 사건이 있었다. 옥탑방에서 가난하지만 단란하게 사는 가족의 웃음소리를 들은 게 범행 동기였다. 범인은 자기만 빼고 남들은 모두 행복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죽였다는 것이다.

이런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옥탑방을 없애면 된다. 청소년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모든 건물의 옥상을 폐쇄하자(아예 아파트를 없애 버릴까?). 학교 폭력은? 경찰이 강력 대처하자. 정권 비판이 심해지면? "극소수 불순분자들"로 몰아 엄중 처벌하자. 국가보안법, 명예훼손, 공공기물 파손, 경범죄 등 법 조항의 재고는 충분하니까 말이다.

물론 모두가 어불성설의 해결책이다. 청소년 범죄를 막기 위해 대중매체 검열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바로 이런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본말전도. 영화와 만화와 게임 때문에 범죄가 일어나다니? 백 걸음을 양보해서 그 매체들에서 범죄 수법을 배웠음이 입증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범죄 수법을 배울 수 있는 매체들만 차단하면 범죄가 없어지나. 살인과 상해사건을 막기 위해서 칼을 없애면 되고, 도둑이 판치면 <홍길동전>과 <로빈 후드>를 판금하면 될 노릇인가. 만화와 게임과 영화에서 범죄와 폭력을 송두리째 삭제해버리더라도, 범죄 수법은 뭔가 다른 방식으로 배울 수 있다. 갈등과 좌절과 분노가 있는 곳에 범죄는 생겨나기 마련이다.

범죄의 근원적인 동기를 없애지 않고서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 동기란 주로 사회적 갈등이다. 이 갈등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검열이라는 가위를 들이대려는 일은 고식책이거나 호도에 불과하다. 영화와 만화와 게임에 모든 혐의를 뒤집어씌우면 오히려 사회갈등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는 의제 설정에서 사라져버리게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처럼 심각한 갈등에 시달리는 근본적인 원인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이라는 약육강식의 세계관과 사회 체제에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살 충동에 빠지고 학교 폭력도 생긴다. 지하철 방화나 옥탑방 살인 같은 무차별적 범죄 행위 역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적개심에서 비롯된다. 경쟁지상주의를 고치지 않으면서 웹툰에만 가위질을 해대겠다는 사람들의 뇌 속이 궁금하다. 과연 어떻게 생겼기에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경쟁 지상주의는 이명박 정권과 자본이 결사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니 건드릴 수 없다. 그때 검열이라는 제도는 매우 효율적인 수단을 제공해준다. 이제 정권과 자본은 경쟁 지상주의를 옹호해야하는 불리한 입장에 서지 않아도 된다. 대신에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훌륭한 명분을 내걸고 검열을 강화하면 된다. 소수자를 억압하는 주체가, 오히려 청소년을 보호하는 주체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명분을 통해 검열이 합리화되면, 다른 차원에의 검열로 확산시키는 일도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다.

사정은 식민지 시기에도 비슷했다. 풍속 검열의 필요성 때문에 정치 검열까지 자동적으로 승인되는 경향이 강했다. 알다시피 일본의 출판물은 성적 표현이 강력한 편이고, 성리학의 전통을 간직해온 조선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일본발의 에로 출판물들 앞에서 공권력은 무엇하고 있느냐는 여론이 높아지고, 검열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뤄진다. 그러나 검열 기구는 풍속 검열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정치적 검열은 '무임승차'로 사회적 합의를 획득하는 것이다.

'잠수함 속의 토끼'라는 말이 있다. 잠수함을 처음 만들었을 때, 골칫거리는 사람이 잠수함 속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일이었다. 산소량 측정 장치가 없었던 시기에, 사람들은 토끼를 함께 승선시켰다. 토끼는 산소 부족에 사람보다 훨씬 예민해서, 그 녀석이 비실거리면 바로 잠수함은 물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 '잠수함 속의 토끼'는 예술가에 흔히 비유된다. 예술에 범죄 장면이 나오는 것은 그 사회가 아프다는 증거이다. 범죄 영화는 그렇게 해서, '범죄를 권하는 사회'에 대한 경고이다. 그럼에도 이를 범죄 수법의 교과서로 치부하는 자들은 '돌대가리'이거나, 더 가능성 높기로는 영리하고도 불순한 자들이다. 그들의 손에 '가위'를 들려준다면 그들은 '토끼'를 죽여 버릴 것이고 머지않아 '잠수함 속의 사람'들은 질식하게 될 것이다.

물론 살인 성폭행 인종 차별 등을 적극적으로 찬양하고 미화하는 것들까지 모조리 표현 자유의 영역에 남겨두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또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심의는 성적 묘사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하면서도 폭력에 대해서는 너무 너그러운 편향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인간을 만드는' 행위가 인간을 살해하는 행위보다 더 엄격하게 규제 당하는 모순은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후 검열은 불가피한 부분이 있지만, 항상 최소화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어느 선까지가 '최소한'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야말로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적어도 일개 일간지가 문제제기한 지 이틀 만에 특정 작품을 전면 삭제해버리는 기습 작전 식으로는 안 된다. 표현의 자유를 이렇게 손쉽게 짓밟는 것은 파시스트적이다. 검열 강화가 경쟁지상주의라는 범죄의 근본 원인을 덮어버리는 효과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곳곳에 민주주의는 실종되고 파시즘의 징후는 강화되는 요즘, '검열은 적을수록 좋다'는 최소화의 원칙을 재확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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