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홍보(PR·Public Relation)에 대해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린다"는 간단 명료한 말로 정의하곤 한다.
하지만 이를 잘못 이해한 사람들은 좋은 것은 최대한 잘 포장해 알리고 나쁜 것은 속여서라도 알리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는 가짜 홍보다. 가짜 홍보가 들통 나면 더 큰 문제가 닥친다. 불신이다. 홍보와 소통은 서로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라 같은 지붕 밑에서 함께 사는 가족이다. 소통의 가장 큰 적은 불신이요 친구는 신뢰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99.99999퍼센트는 일본 후쿠시마 핵 재앙의 첫 단계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 2월 9일 핵발전소 고리 1호기에서 핵 재앙으로 번질 수 있는 전원 중단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발전소 쪽의 사고 은폐와 보고 누락, 허위 운전 일지 작성 등 입이 딱 벌어질 수밖에 없는 충격적인 일들이 사건 한 달 여 만에 속속 드러났다.
고리 핵발전소 사건이 뒤늦게 드러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하마터면 완전 범죄로 사건 자체가 없었던 것이 될 뻔했다. 부산시의회 김수근 의원(기장2)은 지난달 20일쯤 부산의 한 식당에서 우연히 "핵발전소 전원이 차단됐는데 비상 발전기가 안 돌았다. 아무 문제가 없나" 하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3월 8일 고리 핵발전소에 이를 문의했다. 그리고 사건이 원자력안전위원회에까지 보고되는데 나흘이 더 걸렸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고리 1호기에서 발생한 정전 사고가 수습된 직후 간부들이 회의를 열어 사고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기로 모의했다. "사고 수습 직후인 지난달 9일 오후 9시에서 9시 30분 사이 발전소장과 실장, 팀장 등 간부들이 현장에서 논의, 이번 사고를 보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한 달 뒤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3월 11일)가 난 지 1년이 되는 때여서 사건이 알려질 경우 엄청난 사회적 파장과 이로 인한 문책, 핵발전소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 증폭과 신규 핵발전소 반대 여론 등이 뒤따를 것이라는 판단이 이들을 은폐라는 범죄 차원으로 몰고 갔다.
그 어느 누구도 소통의 제 1원칙, 즉 있는 대로 알린다는 투명성의 원칙을 존중하지 않고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 그 결과 핵발전소 운전 일지에도 1호기가 정상 가동됐다고 허위로 기록됐다. 보고를 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 정전 대란에 이어 발생한 고리 핵발전소 사고 은폐 등과 관련해 핵발전소 안전, 에너지 분야 등 국가 핵심 기반 분야 위기 관리 실태 전반에 대해 4월 총선 이후에 실지 감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핵발전소 사고 은폐 기도에는 일본 후쿠시마 참사 이후 일본과 독일 등 여러 선진국에서 핵발전소 추가 건설 포기 등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핵발전소 확대 정책을 부르짖는 이명박 대통령과 핵 마피아들이 버팀목이 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핵발전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위험을 과장되게 부풀리는 집단과 위험을 축소하려는 집단들이 뒤엉켜 대중들이 혼돈 속에서 살고 있다. 위험을 과장되게 부풀리고 싶은 집단이나 축소하려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부각시키려 하거나 이를 통해 이익을 얻고 싶어 한다. 쉬운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위험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위험에 대한 정확한 인지와 생활 속 행동 요령이 필요하며 안전한 사회를 위해 애쓰는 정치 세력에게 표를 던질 필요가 있다.
또 위험으로 인한 인명 피해와 건강 피해 그리고 사회 경제적 손실을 정확하게 파악해 어떤 위험 요소에 대해 얼마만큼의 예방 투자를 할지 과학적인 결정을 하도록 만드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위험에 대해서는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하면서 정작 매우 중요한 위험에 대해서는 인력과 예산을 별로 들이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에서 석면 노출로 인한 인명 피해는 연간 수백 명 수준이지만 간접 흡연의 경우 연간 3000명가량, 직접 흡연은 수만 명 수준이므로 당연히 흡연(간접 흡연 포함) 피해 예방에 훨씬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피해는 한국 사회의 경우 아직 그 피해자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일본 후쿠시마나 옛 소련의 체르노빌 사건에서 보듯이 한 번 터지면 돌이킬 수 없는 대재앙의 성격을 띠므로 잠재적 위험 예방을 위해 엄청난 투자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대중은 새로운 위험이나 알지 못했던 위험에 대해서는 더 두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위험에 대한 올바른 대처도 좋지만 마치 우리와 한 몸처럼 돼 피하기가 쉽지 않은 위험에 대해서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알코올과 흡연, 교통사고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위험의 희생물이 되어가고 있다. 휴대폰(스마트폰) 중독이나 게임 중독, 인터넷 중독, 도박 중독 등이 바로 그런 예들이다. 이들 위험의 특징은 한 번 위험의 세계로 빠져들면 흡연이나 알코올 중독처럼 헤어나기 쉽지 않다는 것이고 주위에 비슷한 중독자들이 너무나 많아 이를 병적인 중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 게임 중독 등 중독에 관해 내가 집중적으로 글을 실었을 때 일부 누리꾼들이 글을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는데 아마 이들 중 대부분은 중독 상태에 있는 이들이 아닌가 싶다. 중독자들은 자신의 중독 현상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이를 지적하는 사람에 대해 적대시 한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중독 위험의 수렁에서 헤어나기 쉽지 않다.
위험 가운데에는 이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그 위험이 만연되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석면 재앙, 흡연 중독, 암과 에이즈 등이 모두 그렇다. 대개 이런 위험들은 사람이 그 위험요소에 노출된 뒤 즉각 그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년 또는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나타나기 때문에 그렇다. 대중이 잠복기 때 이런 위험에 대한 적절히 대처하기란 매우 어렵다. 국가가 나서서 위험의 특성을 밝혀내고 적절한 법과 제도, 교육과 정보 소통으로 국민들이 그 위험과 단절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처한 위험은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사회적 수단을 동원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 두 가지 성격이 뒤섞여 있는 것도 있다. 이처럼 현대 사회의 위험은 단순하지가 않고 복잡하다.
우리가 암을 정복하지 못하는 것은 암의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즉 미생물, 방사선·햇빛과 같은 물리적 요인, 유해 화학 물질, 석면과 같은 광물질 등이 우리의 피부로, 공기로, 음식물로 들어오고 있으며 우리 주변에는 발암 물질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 시민들도 발암 물질이나 유해 물질이 어디에 많이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지를 잘 헤아려야 한다. 그리고 이를 최대한 회피할 수 있는 생활습관과 양식을 길러야 한다.
위험 사회 연재를 마치며 가장 피해야 할 위험 한 가지를 들라면 망설임 없이 흡연(간접 흡연)을 꼽겠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 연재를 계속하지 못하는 점을 아쉽게 생각하며 그동안 글을 읽어주신 <프레시안> 독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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