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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도 '글래머'를 가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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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도 '글래머'를 가지고 있나요?"

[김용언의 '잠 도둑']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매혹>

스포일러 경고 :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매혹>(김상훈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는 모종의 함정이 숨겨져 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그 함정이 무엇인지 명시하지 않을 예정이지만, 어떤 분들께선 이것만 보고도 그 함정의 정체를 알아차리실 수도 있습니다.

<매혹>의 원제는 "The Glamour"다. '글래머'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눈을 잡아끄는 아름다움, 섹스어필과 결부된 매력'을 떠올리게 되는 건 아무래도 대중 매체의 공이 클 것이다. 그러나 영어라는 언어가 형성된 과정을 살펴보면, 애초의 뜻으로부터 결국은 전혀 다른 현재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경우가 종종 튀어 나온다.

어원의 추적은 일종의 정탐 행위기도 하다. '글래머'의 어원에도 뜻밖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 크게 두 가지 단어가 '글래머'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옛 스코틀랜드 언어 'gramarye(마법, 마력)'와 옛 스칸디나비아 쪽 언어 'glámr(달)'와 'glámsýni(환영(幻影), 마법에 씌인 눈)'이다. 그리하여 현재의 영어 사전에는 '글래머'의 뜻으로 '섹스어필' 뿐 아니라 이런 의미들이 등재되어 있다.

"외관을 향상시키는 어떤 아이템, 사람, 이미지 : 마법과도 같은 매력 : 사물들의 원래 모습과 다르게 보이게끔 눈에 거는 주문 : 사물들의 원래 모습과 다르게 보이게끔 작용하는 공기 중의 아지랑이 : 미혹된 채 사물이나 사람을 실제보다 훨씬 더 고귀하고 큰 존재로 보게끔 작용하는 부자연스러운 관심."

▲<매혹>(크리스토퍼 프리스트 지음, 김상훈 옮김, 열린책들 펴냄). ⓒ열린책들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소설 <매혹>의 출발점도 여기서 시작한다.

리처드 그레이는 런던의 독립 뉴스 통신사 카메라맨이다. 그는 온갖 위험한 상황에 내몰린다. 폭동이나 포화 한복판에서 카메라를 돌려야 하는 상황에서 그는 때때로 생명의 위협까지 무릅쓰며 사명을 다한다는 기자로 명성이 드높았다. 그는 런던 한복판에서 터진 폭탄의 옆을 지나가다가 큰 부상을 당하고 요양 병원에서 몇 개월째 회복 중이다.

문제는 폭탄 테러 이전 몇 주 동안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그의 옛 연인(이라고 하는) 수잔 큘리가 면회를 온다. 수잔은 "구름을 기억해요? 나이얼을 기억해요? 일광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남긴 채 도망치듯 병원을 떠난다.

이어지는 장들은 리처드 그레이의 1인칭 시점과 수잔 큘리의 1인칭 시점과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계속 바뀐다. 먼저 그레이의 회상. 그레이와 수잔은 휴가차 떠난 프랑스 비행기에서 처음 마주치고 남부 지역을 함께 여행하며 격렬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수잔에게는 질투심 많고 독점욕이 강한 옛 애인 나이얼이 있었고, 그레이와 수잔이 어딜 가든 나이얼의 기억은 그들의 현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어지는 수잔 큘리의 회상. 그녀는 그레이와 자신이 처음 만난 곳이 프랑스가 아니라 런던의 평범한 술집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왜 자신이 '글래머를 가진' 나이얼에게 복종하다시피 사로잡혔는지를 설명하고, 자신이 그레이와 진정한 결합을 이루기 위해 나이얼과 어떤 투쟁을 벌였는가를 회상한다. 수잔은 되풀이 주장한다. "나이얼은 글래머를 가지고 있어." "당신에게도 글래머가 있다는 걸 몰라, 리처드?"

이 시점에서 독자들은 그레이만큼이나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레이의 기억과 수잔의 기억 중 어느 쪽이 '현실'이고 '실재'인가? 게다가 수잔의 입을 통해서만 등장하는 나이얼은 실재하는 인간인가?

<매혹>에는 몇 번의 결정적인 '접힘'이 존재한다. 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은 다음 재독을 시도할 때, 그제야 처음에 빠르게 읽어 내려갈 때 놓쳤던 그 접힌 구석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다시 말해 대부분의 독자는 독서 행위 중 어떤 '글래머'에 사로잡힌 채, 작가가 명시하는 어떤 트릭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오해와 오독은 비단 추리 소설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추리 소설은 그 오해를 형식화했을 뿐, 오해는 독서 행위 자체에 본질적으로 스며드는 조건과도 같다).

작가 프리스트가 그 설정을 처음부터 간파당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문장과 단어와 상황들을 재배치했는지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접힘을 암시하는 대표적인 도구로는 엽서가 있다. 오래전 프랑스 생트로페 지역을 찍은 사진을 복제한 그림엽서는 수잔에게 세 번 도착한다.

"당신도 여기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단 한 문장과 함께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X라는 서명이 있는 엽서다. 처음엔 프랑스 여행 도중 나이얼을 만나러 간 수잔 때문에 질투심에 사로잡힌 그레이가 엽서를 쓰고 수잔의 영국 주소로 띄운다(그레이의 회상). 이후 장에 넘어가면 수잔이 그레이와 사랑에 빠지자 분노한 나이얼은 혼자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엽서를 보낸다(수잔의 회상). 그리고 마지막 장, 모든 사건이 종료(라고 쓰기엔 좀 어색하지만)된 다음 그레이는 수잔이 아닌 다른 현재의 연인과 프랑스로 떠난 뒤 관광지에서 충동적으로 수잔에게 엽서를 쓴다(또 다른 '나'의 전지적 시점 회상).

이 세 번의 엽서의 수신인은 모두 수잔이다. 엽서를 부치고 도착하기까지의 그 지연 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건들은 사뭇 다르다. 발신인도 다르고, 혹은 부쳐진 시간도 다르다. 그 사이에 저 문장만이 세 번 되풀이되며 우리를 끊임없이 압박한다. "당신도 여기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X" X라는 서명에는 누구라도 포함될 수 있다. 이름을 명시하지 않은 서명, 무엇이라도 누구라도 될 수 있는 텅 빈 기표로서의 X. 수신인은 같지만, 발신인과 발신 내용의 의미는 계속 달라진다.

이쯤 되면 우리는 <매혹>의 화자가 계속 바뀐다는 것 말고도, <매혹>의 시간의 흐름조차 직선상에 놓여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당사자들의 기억과 해석이 모두 다르다는 고전적인 상황을 떠올릴 수 있다. 기억의 진실성과 인과성은 의심받아 마땅하다.

혹은 아예 우리는 각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의 시간의 흐름이 누군가와 충돌할 때 각자의 시간의 진행 방향과 속도는 제멋대로 뒤틀리고 변형되거나 급기야 재창조된다. 해변에 앉아 있던 그레이는 (그 자신은 인지하지 못하지만) 동일한 공간의 몇 십 년 전 풍경 속에 들어간다.

조금 뒤 그레이는 수잔과 산책하던 중 자그마한 몸집의 중년 화가를 발견하는데, 수잔은 그가 피카소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의 이젤을 훔쳐본 다음 "내가 가진 책에 저 그림이 있었어!"라며 경악한다. 이 에피소드는 그레이의 목소리로 아주 짧게,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되지만 "수잔은 그 의견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 이번 경우는 훨씬 더 심원한 수수께끼를 내포하고 있었고, 대화는 결국 그 얘기로 귀착되곤 했다."

공간과 시간 속에 어느 쪽이 더 흐물거리는가? 아니, 질문을 바꿔야 한다. 무엇이 바뀌지 않는가? 불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얼마만큼 허약한 토대 위에 자리 잡고 있는가?

들뢰즈는 <시네마 1 : 운동-이미지>에서 베르그송의 논의를 끌어들이며 고대의 운동은 "스스로 영원하고도 고정적인 형태 혹은 관념에 준거"했으며, 포즈 혹은 특수한 순간들의 질서를 통해 물질로 체현되었다고 썼다. 하지만 고정되었다고 믿어지는 이 잠재성들은 어떤 운동과 지속과 변화의 단면에 불과하다. 들뢰즈에게 있어 부동적 단면은 환영이고, 동적인 단면으로서의 운동은 현실이자 질적인 변화다. 그는 "존재한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소설 속에서 되풀이되는 몇 가지 '포즈들'을 떠올린다. 해를 가리는 구름, 일광욕하는 사람들, 프랑스 남부의 풍경, 그 풍경을 담은 사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가닿을 수 없는 과거의 한 장면을 영원히 프레임 안에 포착한 그 사진. 시간을 잡아채고 결빙시켰다고 믿어지는 그 사진. 그러나 진실은 그 포박된 이미지들이 아니라 그 오브제들이 되풀이되는 과정 속에서 몇 번이고 형체를 바꿔가면서 등장한다. 우리는 매 장마다 여기 등장하는 목소리와 외관을 믿어선 안 된다.

이제 서서히 <매혹>은 '본다'는 것의 의미로 넘어간다. 그레이는 필름 카메라를 사랑했고 비디오카메라로 넘어가는 시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필름과 조용히 돌아가는 모터 소리를 매개하지 않고서는 피사체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요양 병원에서 기억 속에서 사라진 수잔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기 힘들다는 것을 인식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세부는 기억할 수 있었다. 가지고 있던 캔버스백, 스타킹에 감싸인 발목, 꽃무늬 스커트, 코트, 자꾸 흘러내려 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 따위였다. 한번은 마치 비밀을 공개하듯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중이 되자 그녀의 얼굴을 뇌리에 떠올릴 수가 없었다. 평범하고,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이목구비라는 사실은 기억나지만, 이것들 또한 마치 가면처럼 그녀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레이가 최면 시술을 받을 때에도 그의 상태에 대해 끊임없이 합리적 설명을 시도하려는 외부의 과학적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의 지각은 우리가 믿는 바와 무의식적인 태도에 의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결과에 놀라며 신비스러운 마법을 떠올리면 안 된다고, 그 목소리는 여러 번 타이른다.

그러니까 '유도된 음성 환각'이라 불리는 테스트에서, "그레이 씨는 제가 저기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저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지만, 마음이 저를 인식하지 못했던 거예요.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최면술사들도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내지만, 그 사람들은 주로 피험자들에게 옷을 벗은 상태의 사람들을 보이려고 해요." 또는 최면 과정에서 가끔 발생하는 '부(負)의 환각'에서, "되풀이되는 말, 마음을 안정시키는 제안, 조용한 방. 이런 것들 모두가 최면 시술자 본인을 가벼운 트랜스 상태로 유도할 수 있고, 결국은 피험자와 마찬가지로 암시에 걸리기 쉬워지는 거죠.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 두 사람 모두 똑같은 부의 환각을 경험했고, 그 결과 당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거예요."

"너에게 망각이란 보이지 않는 걸 의미하니까."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에서, 생각하는 대상의 형체가 사라지거나 달라지더라도 존재할 수 있을까? A가 누군가를 보겠다는 나의 '의지'를 통해서만 보인다면(내가 A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인파 속에서 그 얼굴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고, 내가 A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무수한 '보이지 않는' 얼굴들 속에서 A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 의지가 사라짐으로써 (내가 아닌) 상대방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인가?

아주 가볍게 말할 수도 있다. 당신은 사랑에 빠졌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그 사람의 얼굴이고 목소리고 그의 몸짓이다. 해와 달과 길거리의 꽃 모든 것이 그 사람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고, 당신과 그 사람은 너무나 친숙해졌다. 이전까지 당신의 눈과 영혼을 사로잡았던 그 사람의 특별한 매력이 상실되는 걸 느낀다. 그 사람은 그대로지만 당신의 눈이 달라졌다. 아니,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던 매력의 한 겹이 떨어져나갔고, 당신의 눈은 이제 냉정해졌다.

이것은 단지 뇌의 신경 물질이 분비되며 일어나는 생리적 현상인가, 아니면 존재와 비존재 사이, 정지와 지속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할 수밖에 없는 양태인가. 도마뱀을 여러 마리 그린다. 그 연쇄 과정 속에서 도마뱀은 생명을 얻고 종이 바깥으로 나왔다가 다시 한 번 길게 원을 그리며 그림 속 도마뱀의 행렬로 끼어든다. <매혹>은 에셔의 그 그림의 완벽한 현현이다.

확실한 증거를 얻었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한 번 미세한 망설임과 얼버무림의 순간이 존재한다. <매혹>의 마지막 순간, '나'는 쓴다.

"그래서 너는 네가 원한다고 생각한 결말을 박탈당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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