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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한국 전쟁이 두렵지 않은가?

[프레시안 books] 헤어프리트 뮌클러의 <새로운 전쟁>

전쟁을 잣대로 보면, 1991년 옛 소련이 작은 공화국들로 쪼개지면서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고 나서 지금껏 2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 이웃 국가들끼리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 울타리 안에서 지난 냉전 시대 동안 내부에서 꿈틀대던 이질 집단(종족 또는 민족) 사이의 갈등이 유혈 투쟁으로 번졌다. 냉전 시대 아래 눌려왔던 인종·종교의 차이 등 이질 집단끼리의 갈등이 휴화산 터지듯 분출, 또 다른 전쟁과 분쟁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전반기 발칸 반도를 피로 물들였던 보스니아 내전(1992년 4월~1995년 12월)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소비에트연방 해체와 맞물린 유고연방의 분해 과정에서 일어난 종족 간의 분쟁은 25만 명에 이르는 전쟁 희생자를 낳았다. 한편으로 보스니아 내전은 서유럽 사람들에겐 동유럽의 발칸 반도에서 밀려드는 난민 홍수로 말미암아 진저리를 치게 했던 전쟁으로 기억된다.

보스니아 내전은 20세기 인류사의 잔인하고 수치스런 전쟁으로 기록된다. 25만 명쯤의 시민들이 내전으로 죽고 400만 인구의 40퍼센트가 살던 집을 떠나 난민 신세가 됐다. 40퍼센트의 집들이 불타거나 파괴됐다. 15세 이상의 남자들 7000~8000명이 떼죽음을 당한 스레브레니차에서의 집단 학살을 비롯, 내전 희생자 가운데 상당수는 인종 청소 차원에서 희생당했다. 적게는 2만, 많게는 6만에 이르는 부녀자들은 성폭행의 제물이 됐다.

3년 반 동안을 끌었던 보스니아 내전은 대량 난민과 더불어, 끔찍한 인종 청소, 나토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보스니아평화유지군(UNPROFOR)의 군사적 개입, 많은 비정부 단체(NGO)의 개입, 그리고 세계적인 언론 보도 집중 등으로 그전의 전쟁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 전쟁이었다. 그래서 일부 국제정치학자는 보스니아 내전을 '새로운 전쟁'이라 불렀다.

전쟁의 비대칭성

▲ <새로운 전쟁>(헤어프리트 뮌클러 지음, 공진성 옮김, 책세상 펴냄). ⓒ책세상
'새로운 전쟁'은 보스니아에서뿐만이 아니다. 1990년 대 이후 이른바 탈냉전 시대를 지금껏 20년 살아오면서 지구촌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새로운 전쟁 유형들을 경험하게 됐다. 그 새로운 전쟁에는 군벌, 민간 군사 기업, 용병, 소년병 등 다양한 군상이 등장한다.

독일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가 쓴 <새로운 전쟁>(공진성 옮김, 책세상 펴냄)은 지난 20년 동안의 전쟁들이 예전의 전쟁과는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본다. 서평의 결론부터 말한다면, 유럽 지식인 나름의 차분한 눈길로 현대 전쟁의 새로운 특징들을 차근차근 짚어본 역작이다. 깔끔한 번역도 책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페이지마다 보이는 졸속 번역과 오역 탓에 예민한 독자들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던 일부 번역서의 문제점을 적어도 이 책에서는 찾기 어렵다.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 교수로 정치 이론과 정치사상 전공인 뮌클러는 '새로운 전쟁'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먼저 '비대칭성'을 꼽는다. 군사력이 엇비슷한 국가끼리의 전쟁을 '대칭적' 전쟁이라면, 강대국의 월등한 무력에 맞서 약소 민족의 전사들이 게릴라 전술과 테러 전술을 결합시킨 가운데 혼전이 벌어지는 것이 '비대칭적' 전쟁이다.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전쟁은 국가 대 국가끼리의 전쟁이다. 선전포고가 있고 (물론 일본의 진주만 공습처럼 비겁한 기습도 있지만) 일정한 전선을 형성한 채 싸우다가 끝에 가선 휴전 회담이나 평화 협상 또는 항복 의식을 거쳐 전쟁이 끝난다.

이와는 달리 이즈음 전쟁의 양상은 대부분 내전이라 선전 포고도 없고 휴전 회담도 드물다. 전선이 따로 없이 게릴라전 양상을 보이며 흔히 '약자의 무기'라 일컬어지는 테러 전술이 동원되곤 한다. 뮌클러는 '새로운 전쟁'의 한 특징인 비대칭 전쟁이 지닌 문제점을 이렇게 요약한다.

비대칭적 전쟁은 대칭적 전쟁보다 폭력의 강도 면에서는 약하지만 더 잔혹하고 끔찍하며, 무엇보다도 훨씬 더 오래 지속된다. '새로운 전쟁'의 지속 기간은 몇 년이 아니라 몇 십 년이다. 비대칭적 전쟁은 결과적으로 사회 구조에 훨씬 더 깊이 파고들며, 그렇기 때문에 또한 대칭적 전쟁보다 사회 경제적으로 더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강대국에게도 위협적인 '새로운 전쟁'

2001년 9·11 테러 뒤 벌어진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도 새로운 전쟁의 모습을 지녔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 상황도 고전적인 전쟁 개념과는 달랐다. 휴전도 없었고 평화 협상도 없이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졌다. 그 뒤 점령군인 미군과 반미 저항 세력의 전투, 시아-수니 사이의 거의 내전에 가까운 유혈극과 사회적 혼란은 전승국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다. 뮌클러는 이라크에서 2003년 뒤 나타난 비대칭 전쟁이 점령자에게 매우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이라크 전쟁은 국가 간 전쟁으로 시작했지만 개입 세력의 신속한 승리 후에 내전으로 변했다. 이 내전은 여러 해를 끌면서 과거의 통상적인 전쟁보다 사회 경제 질서에 더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라크 전쟁은 그런 의미에서 전혀 고전적인 전쟁이 아니었다. 이라크인의 저항은 게릴라전과 테러리즘의 혼합 형태로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 저항은 서구의 군사력에 정규 이라크 군대가 이전에 끼쳤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손실을 끼쳤다.

그렇다. 이라크 반미 세력의 저항은 미국의 정치와 군사력에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 뮌클러는 "바로 이것이 모든 면에서 우월한 서구의 군사력에 맞선 이라크가 보유한 가장 위험한 무기였다"고 강조한다. '신(new) 탈레반'이라 일컬어지는 반미 무장 세력을 상대로 미국이 현재 진행형으로 벌이는 아프간 전쟁도 미국에겐 골칫거리다. 미국이 지난 10년 동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수렁에 빠져 지출한 돈은 무려 1조3000억 달러에 이르며, 미국 재정 적자를 악화시킨 주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전쟁은 정치 행위이자 경제 행위"

19세기 프러시아의 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책 <전쟁론>에서 "전쟁이란 다른 (물리적) 수단을 동원한 정치의 연장"이라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전쟁은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군사적 수단이다.

200년 전에 쓰인 클라우제비츠의 책은 지금도 유효하다.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것이나, 2003년 이라크에서 반미-반이스라엘 노선을 펼쳐온 사담 후세인 체제를 뒤엎은 것 또한 '정치적 행위'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전쟁은 정치적 측면에서만 말할 수 없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중동 지역에서의 미국 패권 확보와 석유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였다는 비판을 받는다. 전쟁이란 정치적 이해관계와 아울러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을 폭력적으로 푸는 수단이다. 따라서 200년 전의 클라우제비츠가 오늘 다시 태어나 <전쟁론>의 개정판을 낸다면, 전쟁이란 "전쟁이란 정치적 관계의 연장이지만 아울러 경제적 관계의 연장이기도 하다"라고 쓸 것이다.

19세기 중반 영국이 중국 청나라를 상대로 벌였던 아편 전쟁이 '19세기의 더러운 전쟁'을 대표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석유 이권 확보와 더불어 단기적으로는 군수 업체의 매출 증대(더불어 주가 상승)를 가져온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21세기의 더러운 전쟁'이다. 따라서 전쟁이란 결국 '누군가의 주머니를 불려주기 위한 폭력적 경제 행위'라 말할 수밖에 없다.

전쟁의 경제화

위의 논점과는 조금 다르지만, 뮌클러가 꼽은 '새로운 전쟁'의 두 번째 특징은 전쟁의 경제화이다. 그의 논의의 초점은 두 가지, 즉 군벌과 군사 서비스 공급 업자들인 이른바 '민간 군사 회사(Private Military Companies, PMCs)'에 모아진다.

전쟁의 경제화의 주역으로서 한 쪽에서는 군벌들이,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버섯처럼 땅에서 솟아난, 민간 경제 방식으로 조직된 군사 서비스 공급 업자들이 등장했다. 양자의 특징은 전쟁이 경제적으로 유익할 수 있고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 지출보다 더 많은 수입을 보장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여 군사적 폭력의 사용과 공급을 경제적 자원(돈벌이의 수단)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뮌클러는 특히 군벌의 문제에 대해 집중 논의한다. 그에 따르면, 군벌은 자본주의 세계의 논리에 순종하는 민간 군사 회사와 더불어 돈을 노린다는 공통점을 지녔지만, 단지 돈만 탐내는 민간 군사 회사와는 달리 권력에도 욕심을 낸다. 우리가 1990년대 초 소말리아 또는 21세기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중앙 정부가 허약해 힘을 제대로 못 쓰는 이른바 '실패한 국가'에서 군벌은 돈뿐 아니라 권력을 쥐려든다.

그런데 뮌클러의 책에서 그가 꼽은 전쟁 경제화의 주역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처럼 약소국의 자원을 노린 강대국의 정치 군사 지도자들과 그 동맹 세력인 전쟁 기업인(군수 업자, 건설 업자, 석유 업자)들이 아니다. 뮌클러는 군벌과 민간 군사 기업을 전쟁 경제화의 주역으로 보고 비판적으로 서술한다.

군벌과 민간 군사 기업이 전쟁 특수를 누리면서 이름 없는 이들이 흘리는 피를 거름 삼아 떼돈을 버는 속성을 비판적으로 서술한 것은 뮌클러의 노작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라크에서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난 전쟁의 경제 패권적 성격에 대한 서술을 짧게 하고 넘어간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쟁의 탈군사화

'새로운 전쟁'의 세 번째 특징으로 뮌클러는 '전쟁의 탈군사화'를 꼽는다. 전통적으로 군인 집단은 제복, 조직을 갖추고 그 나름의 행위 규범을 지녔기에 시민 사회와는 한 눈으로도 구별이 돼 왔다. 뮌클러에 따르면,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낡은 전쟁'이 군대와 민간인을 구분했다면, '새로운 전쟁'은 새로운 전쟁 참가자 유형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얼핏 보면 민간인이지만, 상황에 따라 전사로서 총을 들고 싸운다. 뮌클러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전쟁의 탈군사화'라고 일컫는다.

민간인처럼 보이는 이 '새로운 전쟁 참가자'들은 '새로운 전쟁'이 지닌 경제적 행위 논리에 따라 다른 민간인에게 노예 노동을 강요하기도 한다. 아시아-아프리카 분쟁 지역에서 흔히 보는 소년병은 전쟁의 탈군사화, 노예화를 말해주는 하나의 보기다.

뮌클러에 따르면, '새로운 전쟁'에서 전쟁 폭력은 일상적인 삶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자리 잡는다. 민간인에 대한 성폭력, 도끼로 손목을 자르는 잔혹한 짓이 되풀이해서 저질러진다. 그런 짓들이 전쟁 범죄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뮌클러의 지적대로, 전쟁과 범죄의 경계도 흐려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새로운 전쟁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강대국의 병사들도 마구잡이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병사가 한밤중에 부대를 이탈해 민간인들은 마구잡이로 죽인 사례는 어쩌다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네델란드 헤이그에 자리한 국제형사재판소(ICC)는 강대국의 전쟁 범죄에 관한 한 개점 휴업이다.

한반도에서 '새로운 전쟁' 가능성은?

끝으로 짚어볼 대목. 한반도에서 '새로운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1990년대 초 옛 소련이 무너지고 이른바 탈냉전 시대가 온 뒤 지난 21세기에 동안의 전쟁 양상은 국가와 국가끼리의 대칭적 전쟁보다는 내전이 대부분이다. 한반도는 남북한과 미군을 합쳐 170만 명의 무장 군인들이 대치 중인 세계적인 분쟁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뮌클러도 바로 그런 점을 걱정한다.

유럽의 지식인의 눈에 비친 한반도는 '새로운 전쟁'의 가능성보다는 대칭적 정규전이 벌어질 가능성을 더 많이 지닌 지역이다. 바로 이런 점은 한반도의 남쪽에 사는 우리들이 평소에 애써 잊고자 하는 '불편한 진실'에 속한다.

분쟁 지역을 가보면 "우리 그만 싸우자"는 말조차 통역이 필요한 곳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올해 2월에 가본 이스라엘-팔레스타인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이다. 도로를 막아선 이스라엘 병사가 "차를 세우라"고 말해도, 팔레스타인 운전기사는 그 히브리어를 알아듣지 못한 탓에 총알받이가 된다. 통역이 필요 없는 한반도의 장점을 살리려면, 대화를 자주 나눠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이명박 정부 들어와 지난 몇 년 사이 대화의 통로조차 막힌 답답한 모습이다. 뮌클러의 <새로운 전쟁>에서 다뤄지는 대칭적 전쟁이든 비대칭적 전쟁이든, 새로운 전쟁이든 낡은 전쟁이든,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만큼은 우리 모두가 온몸으로 막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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