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이 쓴 칼럼을 읽다가 걱정이 더럭 들었다. 몇 해 전 주변의 출판인 한 분이 박정희 유족에게 고소·고발을 당해 한동안 고생한 일이 생각나서다. 고소·고발 내용은 박정희의 간도특설대 관련 가능성을 서술한 책을 펴냈다는 것인데, 박권일의 위 글에 비하면 명예 훼손의 위험이 아주 약소한 것이었다. (☞관련 기사 : 박정희와 싸우다 박정희가 될 뻔한 이정희!)
민주주의에 대한 박정희의 도발을 감히 이정희와 비교하다니! 민주주의 원리에 맞선 박정희의 기개는 20세기 후반을 통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 기개를 좋아하고 말고는 각자 취향에 달린 일이지만, 민주주의의 적으로서 그의 위상을 이정희 정도에 비교한다는 것은 실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정희 대표가 겪은 난처한 문제 하나를 어떻게 희대의 반민주주의 영웅 박정희에게 갖다 댈 수 있을까? 궁금증 때문에 박권일의 글을 들여다보게 된다. 따져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 눈에 띈다.
관악(을) 경선 선거 조작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사퇴로 이어진 일련의 스펙터클을 가지고 여러 '결'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테지만 사태의 핵심은 무척이나 간명하다. 역시, 민주주의다. 이정희 캠프의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선거 부정이 드러났을 때 소위 진보 개혁 진영의 많은 이들이 두 번 경악했다.
첫 번째 경악은 이 선거 부정을 저지른 주체가 다른 정치인도 아닌 '진보 정치인 이정희' 캠프라는 점에서의 경악이었다. 두 번째 경악은 그 명백한 선거 부정을 옹호하는 소위 진보 개혁 진영 일각에 대한 경악이었다. 이정희 캠프와 맞붙은 상대 진영의 선거 부정 의혹을 가리키면서, 혹은 야권 연대와 정권 심판의 대의를 내세우며 사퇴가 아니라 재선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던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식의 억지와 피장파장의 논리가 판을 쳤다.
"선거 부정"이라. 후보 통합을 위한 경선도 '선거'였나? 적어도 '공직 선거'는 아니었다. 국가 사회의 공직 선거를 위한 선거법이 아니라 두 정당이 합의한 방법에 따라 진행되는 공동 행사였다. 서둘러 준비한 이 행사가 공직 선거 수준의 엄정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잘못된 일은 수없이 많겠지만, 그것을 참여한 양측에서 '연대의 정신'으로 포용할 수 있으면 성공이 되는 것이다. "선거 부정"의 절대적 기준이 없는 행사였다.
첫 번째 경악. "진보 정치인 이정희"에 대한 박권일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 아닌가? 나도 정치인 이정희를 높이 평가하고 큰 기대를 거는 사람이지만, 그만한 일도 일체 없으리라는 상상은 한 적이 없다. 나는 이정희를 거룩한 사람(聖人)이 아니라 어진 사람(賢人)으로 본다.
두 번째 경악. 이건 경악을 위한 경악 같다. 이쪽에 잘못이 있으면 저쪽 잘못을 지적할 자격도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긴가? 경선은 두 정당의 공동 행사였다. 피차 불만스러운 일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함께 털어놓고 최선의 처리 방법을 타협하는 것이다. 일단 거둬놓은 승리를 포기하겠다는 재경선 제의는 바람직한 타협의 자세였다. 두 정당 모두 애초의 후보를 내보내지 못하게 된 결과보다는 '연대의 정신'을 잘 지키려는 노력이었다.
이정희 캠프에 잘못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나이를 속이라고 권한 것은 경선이고 선거고 관계없이 나쁜 짓이다. 더구나 '바른 정치'를 표방하는 후보의 캠프에서 승리를 위해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몇몇 사람의 개인적 잘못이라고 본다. 그런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정치 활동을 해야 하는 이정희가 안쓰럽기는 하지만, 그것을 그의 '부덕함'으로 보지는 않는다.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살아왔어도 대한민국 정치판의 속성과 상황을 아주 모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박권일은 "피장파장의 논리"라고 하는데, 상대 캠프의 잘못 한 가지를 빌미로 연대의 틀을 깨뜨려버린 김희철의 행동과 어떻게 피장파장이 될 수 있는가?
박권일은 이정희 캠프의 잘못을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선거 부정"이라고 했다. 그 계획과 의도의 주체가 누구란 말인가? 아래의 말에서 박권일은 이정희도 주체에 포함되는 것처럼 풍기는데, 이건 너무 '조중동' 식이다. 나는 지금까지 관찰한 이정희의 행동 양식으로 보아 그럴 리가 없다고 믿는다. 그런 의심을 할 바에는 그에게 기대를 걸지도 않고 지지도 하지 않는다.
이정희 본인은 캠프의 부정행위를 몰랐다고 말했지만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주장일 뿐이다. 부정행위 당사자와 직접적 이해관계에 있는 이정희의 말을 근거로 사안을 판단할 수는 없다. 더구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정희 캠프의 선거 부정행위는 이정희라는 정치인이 책임을 져야한다.
이정희 캠프의 부정행위에 이정희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책임의 범위에 대한 박권일의 요구는 너무 무절제하다.
현실적으로 '사퇴' 아니면 '재경선'이라는 선택지만 남은 상황에서 재경선은 택할 수도, 그리고 택해서도 안 되는 선택지였다. 반칙을 저지른 측에게 몰수패가 아닌 재경기를 할 권리를 주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직관적으로나 결코 '패널티'가 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 재경선이 택해서는 안 되는 선택지인가? 운동 경기에서 모든 반칙에 대한 벌칙이 몰수패라면 관중을 끌 수 없다. 박권일의 논리와 직관이 모두 실망스럽다. 이정희의 재경선 제안은 책임을 지기 위한 합리적 대응일 뿐 아니라 '야권 연대'를 살리려는 뜻을 담은 것으로 나는 평가한다. 그리고 왜 택할 수 없는 선택지가 되었는가? 김희철이 자기 당과 의논도 없이 판을 깨버렸기 때문이다.
박권일의 생각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정희의 정치적 반대자가 트집 잡는 얘기라면 구태여 글로 반박까지 할 생각 없다. 그런데 박권일은 "결과적으로 증명된 셈이지만, 이정희의 사퇴는 전략적으로 옳은 선택"이라며 자기가 이정희와 같은 편인 것처럼 얘기한다. 야권 연대와 민주주의를 함께 아끼는 사람인 것처럼 얘기한다. 정말 동지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저토록 상식적 기준을 무시하고 상대방에게 최악의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이정희의 사퇴가 '옳은 선택'이 아니라 '부득이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 선택을 부득이하게 만든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지만, 민주통합당의 지도력 부족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재경선이란 선택지를 김희철 개인이 뭉개버리고 자기 당의 대응 여지를 없애버리는 등 '야권 연대'를 저버리는 오만한 행태를 통제하는 힘이 약했다. 사퇴를 늦춘 것 때문에 이정희가 오만 욕을 다 먹었지만, 그렇게 늦추고 버틴 덕분에 그 정도라도 수습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제기됐다고 바로 사퇴했다면 다른 지역 문제들도 봉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박권일이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민주주의를 '목표'가 아니라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한 것은 훌륭한 견해다. 나도 동의한다. 그런데 본론에 들어가 '민주주의 원칙'을 경직된 의미로 내세우는 것은 민주주의를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민주주의가 과정이라면 누군가가 절대적 기준을 갖고 아무 거나 닥치는 대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자기 위치에서 어떤 자세를 취했는가, 있는 그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면, 그건 그냥 지는 것"이라고 하는 박권일의 마음속에는 어떤 괴물이 들어있는 것일까? 그는 민주주의의 적을 모두 괴물로 보는 것일까? 그래서 박정희를 괴물로 보는 것일까? 그리고 이정희 캠프에서 '비민주주의적'인 일이 있었으니 그도 괴물이 되었다고 보는 것일까? 그렇게 많은 괴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그의 마음속에서는 민주주의 바로 그것이 괴물인 것이 아닐까?
나는 여러 가지 일에 대해 꽤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지만 정의감이 강하지 못해서 진보주의자로 행세하지 못한다. 정의감이 강한 사람을 보면 부럽다. 그러나 더러 딱할 때도 있다. 정의감에 눈이 가려져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자기가 받든다는 가치를 스스로 해치는 모습을 볼 때. 내 기준에 맞춰주지 않는다고 노무현 대통령을 괴롭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다음 국회에서 이정희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데는 일각의 지나친 독선과 독단이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