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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문에 루이뷔통 광고가 없는 '진짜' 이유는…

[손문상·김용민·장봉군·권범철] 이명박 정부를 <기억하라>

"제주 남쪽 강정 마을에 돌이 일어나 바람에 날린다. 새벽 마을 하늘엔 사이렌 소리 멈추지 않고, 사람들은 하나둘 돌 날리는 바람 속으로 모였다. 역겨운 화약 냄새와 장벽이 버티고 선 구럼비 앞에서, 울며 싸우는 사람들이 끌려갔다. 장벽 너머 외로이 고립된 구럼비가 동이트도록 웅 웅 울었다."

12첩 화폭에 담긴 강정 마을의 360도 전망에 청중들은 낮은 탄성을 냈다. (☞만평 바로 가기 : "역겨운 화약 냄새, 구럼비가 울었다") 그 그림이 걸어 일어나 폭파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어느 뉴스 한 줄보다 강렬하게 마음을 파고들었다.

해군의 구럼비 폭파 시도 직후, 강정 마을에 다녀온 <프레시안>의 손문상 화백은 그때 그린 3미터 남짓한 파노라마 스케치를 펼치고, 거기 적어 넣은 단상을 읊었다. 그는 "마치 공습처럼 새벽녘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것뿐이었다"고 말했다.

만평은 힘이 세다

▲ <기억하라>(손문상·김용민·장봉군·권범철 그림, 유한이 지음, 헤르츠나인 펴냄). ⓒ헤르츠나인
22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브이홀에서, 시사만평으로 2008~2011년의 역사를 정리한 <기억하라>(헤르츠나인 펴냄)의 출간 기념 북 콘서트가 열렸다. 영상과 토크, 음악 공연과 시 낭송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 행사다. <프레시안> 손문상, <경향신문> 김용민, <한겨레> 장봉군, <노컷뉴스> 권범철 등 책에 참여한 네 명의 시사만평 화백이 이 날의 주인공이었다.

<기억하라> 속에서는 BBK와 촛불 집회, 4대강과 쌍용자동차, 천안함과 용산 참사가 한두 컷짜리 그림으로 되풀이된다. 그러나 이 손바닥만한 그림은 힘이 세다.

"설명하지 않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토해낼 뿐이다"라는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의 책 추천사대로 시사만평은 시대 상황을 날카롭게 포착해 독자에게 직구로 던진다. 이날 초대 손님으로 출연한 명진 스님은 "신문을 볼 때 만평부터 본다"며 "그날 하루의 사건을 '아' 소리 나오게 기록하는 발상에 탄복한다"고 말했다.

기억하기 싫어도 기억하라!

사진보다 날카롭게, 텍스트보다 집약적으로 그날 하루의 역사를 기록해야 하는 사명을 지닌 네 화백은, 4년간 도통 밝은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운명으로 묶이기도 했다.

이들은 '죽음의 무도'를 췄던 김연아보다 "해고는 죽음"을 외쳤던 김진숙으로, 붉은 카펫을 깔았던 주요 20개국(G20) 정상 회의보다 불길로 휩싸였던 용산으로 지난 4년을 기억한다.

이날 행사에서도, 이들 만평 속의 주인공이었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했다. 송경동 시인은 여전히 벼랑 끝에 있는 수백 만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서, 심보선 시인은 용산 참사 2주기에 부쳐서, 송기역 시인은 파괴되는 4대강을 기리며 시를 읊었다.

공교롭게도 방송사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인기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며 만평 주인공으로 등장해야 했던 방송인 김미화 씨가 이날 행사의 사회자였다. 그에게는 수많은 만평 중에서도, 천안함 사건으로 희생된 장병들의 영정 사진이 '?(물음표)'로 만들어져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손문상 화백의 그림이 큰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들 외에도 김미화 씨의 남편인 윤승호 씨가 이끄는 '호세윤 밴드'의 음악, 사진작가 한금선의 사진, 지난 4년을 정리한 <칼라TV>의 영상과 아름다운 내성천의 모습을 담은 지율 스님의 영상 등이 어우러져 자리를 빛냈다. 다채로운 행사를 관통한 명제는 하나, "기억하라. 기억하기 싫다고 해도 기억하라"(김미화)였다.


▲ (왼쪽부터) 방송민 김미화 씨, <한겨레> 장봉군·<경향신문> 김용민·<프레시안> 손문상·<노컷뉴스> 권범철 화백. ⓒ헤르츠나인

탐욕의 MB 시대

"그만 좀 그려드리고 싶은데…" (김용민 화백), "귀엽게 그리고 싶어서 노력 중이다" (장봉군·권범철 화백), "굉장히 인자하고 너그러운 얼굴을 가진 분으로 그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손문상 화백)

네 화백은 4년간 만평에 가장 자주 등장했을 이명박 대통령을 그리는 일을 놓고 이렇게 재치 있는 감상을 내놨다. <기억하라>의 표지 정 중앙에도 이 대통령이 등장한다. 김미화 씨는 공연 순서 중 호세윤 밴드의 반주에 맞춰 "웃는 얼굴 다정해도 믿을 수 없어요. 해가 가면 바뀔 줄 알았는데…"라는 가사의 노래를 선보여 큰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명진 스님도 특유의 입담을 과시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측근들의) 얼굴을 보면 그냥 사악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 대통령이 서울 시장 할 적에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를 하나님께 봉헌하고 싶다.", "몰염치, 파렴치, 후안무치 3치 정권이라는 별명을 이 정권에게 붙였는데, '양아치'가 추가되어 4치로 늘었다"는 대목에선 웃음과 박수가 쏟아졌다.

호응에는 이유가 있다. 책에 기록된 그림대로 이명박 대통령은 멀쩡한 삶의 터전에 '삽'을 들었고, 그 휘하에 있던 사람들은 시민에게 물대포를 쏘거나 노골적인 언론 장악을 시도했다. 명진 스님은 "대놓고 '부자 되세요'라고 말하는 이 정권에 소름이 끼쳤다"면서 "이제 (MB로 대표되는 경제 중심의) 시대가 달라져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와야 한다"고 말했다.

내 마음속의 이명박과 이건희

하지만 "기억하라"는 외침이 이명박 시대에 대한 분노와 풍자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고 출연자들은 강조한다. 자기성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는 문화기획단 '물음표' 대표 이동준 씨의 프레젠테이션에서 잘 드러난다. "내 마음속에는…"이란 제목의 짧은 발표에서 그는 "이 대통령의 사전에 경쟁력과 근면·성실, 강대국은 있어도 '가해자'는 없는 것처럼, 우리 속에도 피해자, 심판자, 지지자, 참여자는 넘치는데 '가해자'는 없다"고 말했다.

그의 슬라이드 속에서는 값비싼 몽클레어 패딩 점퍼를 입은 손녀와 시장 순례에 나선 이 대통령의 사진 다음에 50만 원을 호가하는 '노스페이스' 점퍼가 점령한 졸업식 사진이 나온다. '학벌 문제'를 논하기 위해 청년들과 간담회를 갖는 이 대통령의 사진 다음으로는 '스카이(SKY,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사진이 뒤따른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 이상주 씨의 삼성그룹 내 초고속 승진 기사를 보여준 뒤 "아들딸이 삼성에 입사했다고 하면 온 동네에서 축하받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비난하는 대상과 우리 자신이 닮아 있는 모습을 지적한 것이다.

이동준 씨는 자신 역시 지금까지의 직장 생활에서 9명을 해고했고 30명 정도의 비정규직을 채용했다며 "내 마음속엔 루이뷔통이, 이건희가, 이명박이, 뉴타운이 살고 있다. 나와 그들이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 노동자가 하루 4시간 일하고 연봉 7800만 원을 받는 사회를 참을 수 없다면, '내가 더 공부 많이했는데…'란 이유로 보상 욕구를 느낀다면 우리는 언제든 이명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저소득층 궁상맞아서 명품 광고 안 들어와"

이날 행사의 주인공인 시사만평 화백들은 분노할 일이 비단 이명박 정부 때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손문상 화백은 자신이 보수 언론에 재직할 당시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혹한이 닥쳐 온 어느 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저소득층을 주인공으로 한 만평을 그렸더니, 편집국장이 "당신이 이런 궁상맞은 그림을 그리니 우리 회사에 명품 광고가 안 들어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 화백은 "이게 2001년,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한참 전의 일이었다"고 강조하며 "우리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투표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분노를 넘어서는 행동을 호소했다. <한겨레> 장봉군 화백은 "이명박 정부 4년에 대한 미움만 가질 게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도래했으며 어떤 문제를 낳았느냐에 대해서 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김용민 화백도 "기억하는 데서 머물지 말고,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반드시 행동하셨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기억하라>, 좋은 역사책 될 것"

제대로 행동하기 위한 첫째 행동은 기억, 그리고 이 네 만평가가 하고 있는 '기록'일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기억을 뒤로 밀어냈다가 다시 앞으로 보낸다. 우리의 다음 순간을 만드는 것은 뒤로 밀려난 줄 알았던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역광일 터다. 그렇기에 기록은 내일을 건 사투다.

이날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이라는 시를 낭송한 심보선 시인은 용산 참사 피해자 진상 규명을 위한 손팻말 시위를 하던 중 충격을 줬던 일화를 소개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커피를 들고 '아, 여기? TV에서 본 적 있어'라면서 지나갔다. 용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마치 이제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이었다." 시 제목의 '나지막한 돌'은 이러한 무감각한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세우고 싶은 기념비를 의미한다.

"지금 남일당이 있던 자리는 평평한 주차장이 되어 있다. 거기서 있었던 지난한 기억들이 묻혀 돌 하나 없는 콘크리트 평지가 된 현장을 보면서 나지막한 기념비 하나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를 썼다. 3년이 지난 지금, 곳곳에서 나지막하지만 단단한 돌들이 세워지고 있는 것 같다. 오늘 이 자리도 그 돌 중 하나가 되길 바란다."

이날 행사가 앞으로도 고단한 기록을 매일 진행해야할 네 화백에게 어떤 의미일까? <노컷뉴스>의 권범철 화백은 이날 행사를 통해 "더 정신 바짝 차리고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면서 "(출연자와 참석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석화정 교수의 <풍자화로 보는 러일 전쟁>이 그 어느 때보다 당대를 잘 표현하는 책이듯, <기억하라>도 후대에 분명 훌륭한 역사책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이 책이 어떻게 자리매김되어야 할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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