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제2의 박원순? '피리 부는 사나이'한테 속지 마!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제2의 박원순? '피리 부는 사나이'한테 속지 마!

[프레시안 books] <사회적 기업가 21인의 세상 고쳐 쓰기>

사회적 기업가 전성시대?

이 책 <살맛 나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적 기업가 21인의 살맛 나는 세상>(이회수 엮음, 부키 펴냄)의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 공표된 민주당의 비례대표 명단.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그 긴 명단의 1번은 사회적 기업가의 몫이었다. 물론 '전태일의 여동생'이라는 수식이 더 부각되긴 했다. 하지만 엄연히 사회적 기업의 대표로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에서 중심적 역할을 할 것"(안병욱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여의도 입성 행렬의 선두에 서게 된 전순옥 박사.

사회적 기업가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히 감회가 남달랐다. 내가 2008년 그와 함께 사회적 기업 '참 신나는 옷'을 공동 설립하던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당시 막 완성된 따끈한 사업 계획서를 갖고 그와 함께 조언을 구하러 갔던 멘토 그룹 중 한 명이 바로 박원순 서울 시장. 원내 1당과 집권을 노리는 유력 정당의 상징이 되고 서울 공화국의 수장이 된 사회적 기업가들. 바야흐로 사회적 기업가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 책에 소개된 21명의 사회적 기업가들이야말로 각 당이 다음 선거에 대비해 지금부터 눈 여겨 보고 관리해야 할 대상일 것이다.

평범한 영웅들의 아름다운 휴먼스토리

▲ <살맛 나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적 기업가 21인의 세상 고쳐 쓰기>(이회수 엮음, 부키 펴냄). ⓒ부키
이 책이 가진 가장 두드러지는 미덕은 쉽게 잘 읽힌다는 점이다. 치열하게 기업을 일으키고 그것을 유지하게 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인데도 결코 복잡하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21명 주인공 대부분은 한결같이 사회적 기업을 시작하기까지 개인사적 굴곡 내지는 그 일을 하게 된 필연적 전사를 갖고 있다. 모종의 어려움을 겪지만 그 끝에서 사회적 기업을 통해 희망을 보고 거기에 치열하게 매달린다.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많지는 않지만 모두 나름의 생존법을 익히며 정글에서 살아남았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것은 그래서일 거다. 일관된 서사 구조. 21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동일한 구조 안에서 아주 약간씩만 변주할 따름이다. 월간지나 여성지의 미담 기사 고유의 리듬감과 호흡에 익숙한 독자라면 아주 쉽고 편안하게 사회적 기업이라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서 익숙한 것 같지만 여전히 실체가 잡히지 않았던 대상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평범한 영웅들의 휴먼 스토리를 보다 쉽게, 널리 알리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면 그 목적 충실히 달성했다 할 수 있겠다.

스토리텔링의 부재인가, 스토리의 부재인가

엮은이 역시 머리말을 통해 그 점을 강조한다. "사회적 기업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이 책의 근간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회적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 판매를 지원하기 위한 홍보와 마케팅을 구상했으나, 자문위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사회적 기업 브랜드 파워를 알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사회적 기업가들의 이야기를 취재해서 책으로 담아 시장에 내놓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사회적 기업을 하면서 겪었던 고난과 애환, 사회 변화를 위한 도전과 로망, 성공을 위한 노하우와 지혜가 담긴 휴먼 스토리"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

요즘 들어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저기 등장하는 스토리텔링 전략이 이 책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문을 거둘 수가 없었다. 첫째, 풍부하지 않은 스토리에 기반을 둔 스토리텔링은 얼마나 효과적일까. 둘째,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하는 사회적 기업가의 스토리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셋째, 사회적 기업가의 스토리를 널리 알려야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첫 번째 의문에 대한 답은 비교적 쉽게 내릴 수 있다. 스토리라는 원재료가 부실할 때의 스토리텔링은 과도한 조미료 맛으로 점철된 느끼한 식사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 이번 총선에서 몇몇 정당이 <슈퍼스타K> 같은 예능 프로그램까지 벤치마킹하며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걸 꿈꿨지만 그 결과가 얼마나 초라한 지만 살펴봐도 답은 나온다.

사회적 기업가의 스토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사회적 기업을 이야기 할 때 사회적 기업가에 주목하는 것은 매우 타당한 접근이다. 세계적인 사회적 기업 지원 기관 아쇼카재단의 설립자 빌 드래이턴은 그 실체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사회적 기업을 이렇게 정의했을 정도다.

"사회적 기업가가 일하는 조직이 사회적 기업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기업가의 스토리가 이 책이 서술하고 있는 것처럼 주간지의 미담 기사 같은 식이어선 곤란하다. 위에서 언급한 아쇼카재단의 경우 (사회적 기업이 아닌) 사회적 기업가를 지원하는 독특한 방식을 30년간 고수하고 있으나 이들이 사회적 기업가의 스토리를 정리하고 알리는 방식은 일반적인 감동 충만한 휴먼 스토리와는 결이 다르다.

이들이 서술하는 사회적 기업가의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미담 기사가 아닌) 경영 대학원의 케이스 스터디에 가깝다. 개인의 역사를 다루지만 그것이 어떻게 시스템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로 확대/전이될 수 있을 것인지가 명확한 초점이다.

<뉴욕타임스> 등 여러 매체에서 사회 개혁 이슈를 다루는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사회적 기업에 대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해 온 데이비드 본스타인은 2007년 발간한 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여러 나라의 여러 사례를 다루는 것을 통해, 뛰어난 사회적 기업가들이 어떻게 '시스템적인' 변화를 선도하는 지 상술한다."

며칠 전 미국에서 출간된 비벌리 슈와츠의 역시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아쇼카 펠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사회적 기업가 개인의 간난고초보다는 그가 어떻게 변화를 만들고 그것의 효과가 사회를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이 책에 등장하는 '스토리'들은 개인의 그야말로 사사로운 이야기에 천착하는 느낌이다. 그리하여 책을 읽는 독자는 "사회적 기업계의 '엄친아'라 할 수 있"는 우수한 장애인 보장구 제조 기업이 실제 장애인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가 궁금한데도 여기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 알 수가 없다(그렇다고 검색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라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대신 이 회사의 설립자가 이 회사의 실질적인 자본 공급 주체인 대기업 담당자와 호형호제 하는 사이며 둘 사이의 끈끈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 회사가 탄생했다는 막후의 '사연'만을 파악할 뿐이다.

친환경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젊은 여성 기업가가 강원도 산골에서 펜션 사업을 하고 된장 사업을 하다가 결국 웨딩드레스를 만들게 되었다는 사연은 잘 알게 되지만, 그 웨딩드레스가 결혼 문화를 얼마나 바꿨는지, 그 웨딩드레스는 대여가 아니라 구매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또 다른 환경오염이 발생하는 건 아닌지, 하는 이런 저런 궁금증을 풀 기회는 찾을 수가 없다.

공정 무역 커피 브랜드의 로스팅 담당자가 알코올 중독자로 살다가 우연한 계기에 커피 교육을 받고 어엿한 로스팅 담당자로 발전하게 된 이야기는 알 수 있지만, 그가 어떤 식으로 부족한 제품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커피 로스팅의 혁신을 시도했는지, 그것을 다른 수많은 공정 무역 커피 사회적 기업들이 복제할 방법은 없는지, 알 길은 없다.

좋은 아이디어는 성공과 성장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복제를 통해서도 확대될 수 있어야 한다(Good ideas should be up-scaled by replication not only by growth)는, 사회적 기업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명제가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기업의 스토리란 감동을 주는 하나의 사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제를 통해 시스템화 될 수 있는 통찰과 혁신의 내용을 담은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게 바로 사회적 기업가의 스토리가 널리 알려져야 하는 거의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물론 한국의 현실은 정반대다. 이 책은 상당히 점잖고 정직한 편에 속한다. 거의 모든 주요 일간지와 방송에 등장했던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대부분의 한국의 미디어가 사회적 기업가를 다루는 맥락은 철저히 미담 내지는 '세상에 이런 일이' 수준이고, 그런 소모적인 소비를 통해 사회적 기업가는 지쳐간다.

한국 사회적 기업의 자화상을 보다

이 책은 한국의 사회적 기업가를 매우 한국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외에도 한국 사회적 기업의 상황을 투사해 볼 수 있는 여러 요소를 담고 있다.

첫째, 여기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회적 기업은 노동부 인증을 받은 사회적 기업이다. 사회적 기업은 본질적으로 풀뿌리 경제 조직이며 때문에 정부 부처가 인증하고 관리하는 한국형 모델은 매우 특수한 결과물일 뿐임에도 사회적 기업의 기본 요건은 제도권이어야 한다는 것인가 싶다.

노동부 인증을 받지 않은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여기에 등장하는 사회적 기업가들 못지않은 훌륭한 스토리를 가진 이들이 많은데도 인증 기업으로 범위를 국한했다는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자면, 내가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역시 노동부 인증을 받은 사회적 기업이다)

둘째, 이 책이 만들어지게 된 방식 역시 한국의 사회적 기업 모델을 빼 닮았다. 이 책은 모 증권 회사의 사회 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자금 지원을 받아 발간되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정부 지원이나 대기업 지원이 사회적 기업의 유력한 재무적 자원이 되는 사회적 기업의 현실과 유사하다.

물론 그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후원과 지원의 과정에서 책이 가지는 본질적인 가치가 왜곡된 것이라면 자본의 성격이 문제가 된다. 사회 공헌 성격의 지원금 기반으로 책을 제작하니까 홍보 사례집 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그게 앞서 말한 노동부 인증 기업만을 다룬 이유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 보자. 전순옥과 박원순은 정말 사회적 기업가로서 의회에 입성하고 시장이 된 것일까. 그들의 성공기를 사회적 기업가 전성시대의 증표로 삼아도 되는 것일까?

이 책에 나오는 21명의 "지혜와 노하우가 담긴 성공 스토리"를 따라 실업의 고통에 봉착한 많은 청년들이 무작정 사회적 기업가의 길로 매진하면 되는 것일까? 그들은 박원순과 전순옥이 될 수 있을까? 한국 사회는 경기고등학교 출신의 변호사도 아니고 전태일의 여동생도 아닌 수많은 청년 사회적 기업가들에게도 기회와 희망의 땅일까?

나 역시 대학과 현장에서 많은 강연과 기고 활동을 통해 사회적 기업을 통한 사회 혁신의 가능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종종 스스로에게 의심하곤 한다. 나는 많은 젊은이들을 낭떠러지로 몰아가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