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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 이 '황량한 전선'에서 싸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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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 이 '황량한 전선'에서 싸우는 방법

[박권일의 '소셜 맥거핀'] 북한 인권 외면하는 '진보'

중국의 탈북자 북송 문제로 남한 사회가 한동안 들썩였다. 중국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외교적 긴장도 급속히 올라갔다. 남한 사회는 북한 인권 문제를 두고 다시금 첨예한 갈등을 노출시켰다.

이번 북송 반대 운동을 주도했던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인권은 이념을 초월하는 문제"라며 운동에 동참하길 호소하는 한편,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하는 진보 개혁 세력을 강하게 비판했다. 북한 주민, 북한 이탈 주민들의 인권 유린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 문제 자체를 아예 부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남한의 좌·우파는 현격한 차이를 보여 왔다. 우파는 공격적으로 문제 제기해왔고, 좌파는 수세적이거나 무관심했다. 대부분의 첨예한 사회 문제가 그렇듯, 이 문제도 똑 떨어지는 정답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이 문제를 지나치게 오랫동안 방치해오다 보니 이른바 진보 혹은 개혁 세력이 지향하는 가치의 일관성이 의심받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한 마디로, 북한 인권이라는 의제를 완전히 우파에게 빼앗겨버리면서 인권 문제 일반에 대한 진보 세력의 의지나 노력까지 정치 공학적 위선으로 폄훼되고 있다. 가장 뼈아픈 사실은, 북한 인권이라는 의제를 오랫동안 우파 일각이 주도하면서 정작 북한(이탈) 주민의 인권 상황은 실질적으로 전혀 개선되지 못하거나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권 문제는 북한 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 회의 쥐 그림 낙서로 법정에 서야했던 박정수 씨, '음란' 사진 사건의 박경신 씨, 트위터 농담 RT에 국가보안법을 적용당한 박정근 씨 사건 등 최근 남한 사회에서 벌어진 황당한 인권 유린 사건들은, '인권'이 우리 모두의 첨예한 전선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바 있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 인권만 챙기는 '북한인권위원회'로 변태해 버린 현실과 과연 무관한 일일까? 단지 진보 개혁 진영의 일관성 문제를 넘어, 인권이라는 의제를 놓고 어떻게 싸워야할지를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북한 인권이라는 난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싸움의 전선을 명확히 그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중국의 탈북자 북송을 반대하는 시민 단체. ⓒ연합뉴스

미디어는 관성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대체 북한 인권 문제란 무엇인가? 탈북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회자된 계기는 1990년대 중반이었다. 그 전에는 탈북자가 아니라 '귀순 용사'였다. 1990년대 초반까지 약 600명 규모였던 탈북자는 10여 년이 지나자 열 배 이상 불어났고, 더 이상 '귀순 용사'도 '성대한 환영'도 없었다.

북한에 참혹한 식량난이 발생하고 엄청난 수의 탈북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서 돈을 받고 탈북을 도와주는 소위 탈북 브로커, 탈북 중개업자들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도 1990년대 후반부터다. 한편, '북한 인권'이라는 용어가 국제 사회와 남한에서 본격적으로 이슈가 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특히 2004년 미국 하원이 북한인권법안(North Korea Human Rights Act 2004)을 통과시키면서 '북한 인권'과 '북한 인권법'이 명실상부한 관용어가 됐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라고 말할 때 그것은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가리킨다. 하나는 북한이라는 사회 '내부'의 인권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 이탈 주민, 소위 '탈북자'의 인권 문제이다. 이 둘은 근본적으로는 서로 연결된 사안이지만, 문제의 해법이란 층위에서 본다면 사실상 개별 사안이라 할 수 있다.

탈북자는 일단 북한이라는 '국가 밖의 존재'이고, 이것은 그 존재가 북한이 아닌 제3국의 주권이 미치는 곳에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라보지 않고 둘을 '패키지'로 묶어 단번에 해결하려 들면 사태가 더 복잡해질 뿐 아니라 쓸모없는 갈등만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식의 해법은 결국 북한 주민과 북한 이탈 주민의 인권 상황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파들이 북한 인권 문제를 대할 때 저지르는 수많은 패착들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이고 핵심적인 패착이 여기에 놓여 있다. 미국과 남한의 냉전적 북한 인권 관련 단체들은 북한의 인권 탄압 때문에 탈북자가 대량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북한 내부 권력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이념 공세를 벌이는 짓을 지치지도 않고 반복해 왔다.

생각해 보라. 가해자가 있고 그가 통제하는 공간에 다수의 실질적, 잠재적 피해자가 있다. 그런데 가해자를 당장 단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때 가해자를 공격하고 자극하는 행동이 (잠재적) 피해자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을까? 전혀 개선할 수 없다. 이념 공세에 인권 문제를 복속시키는 이런 형태의 운동은 북한 인권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남한 우파 일각의 북한 인권 운동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이유다.

진전된 북한 인권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파들이 북한 인권이라는 의제의 주도권을 계속 쥘 수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진보 개혁 세력의 무능, 무관심, 무책임 때문이다. 특히 소위 '자주 계열'의 일부는 "북한에 인권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태도를 보여 왔다. 바로 이런 진보 개혁 세력의 대응을 '알리바이' 삼아 우파들이 북한 인권 문제를 이 지경으로 망가뜨려온 것이다.

북한 인권 이슈는 이미 국제 사회의 의제로 굳어져 버렸기 때문에 외면하고 무시한다고 자연히 수그러들 리가 없다. 문제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계속 우파에게 질질 끌려 다닐 수밖에 없고 북한 문제에 대한 진보 개혁 세력의 발언권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당장 명확한 대안을 내놓기 어렵다 하더라도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최소한의 원칙을 합의하는 게 시급하다.

사실은 2004년에 월간 <말>이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대적인 특집 기획을 내보낸 적이 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진보적 가이드라인"이란 제목의 표지 기획이다. 많은 탈북자를 인터뷰하고 북한 인권 관련 좌·우파 단체와 전문가를 만나 취재한 결과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진보 진영의 5대 원칙'을 잠정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무려 8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 봐도 이 원칙의 시의성이 크게 떨어져 보이지 않는다. 참고 삼아 소개해 둔다.

북한 인권에 관한 5대 원칙

첫째, 북한 인권 문제를 남한의 문제로, 진보 진영의 시급한 과제로 인식한다.
둘째, 북한 정부를 비판하지 않은 채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난다.
셋째, 북한 인권 문제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일괄 해결이 아닌 단계적 대안을 제시한다.
넷째, 북한 인권과 기타 현안(대량 살상 무기, 마약, 위조지폐 등)의 연계를 최대한 차단한다.
다섯째, 자본주의/사회주의라는 이분법을 버리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적 경제 공동체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박권일, '북한 인권에 대한 진보적 가이드라인', 월간 <말> 2004년 9월호, 64쪽)

기사에는 각 원칙에 해당하는 설명이 붙지만 생략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원칙만 간단히 부연해보기로 한다. 아무래도 가장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칙은 북한 인권 문제에 진보 개혁 세력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온 것과 직결된다. 남한에서 이른바 운동권의 다수파는 '자주 계열'이다. 민족 문제에 경도되어온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물론 자주 계열에 속한다고 해서 북한 체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자주 계열의 대다수는 북한이라는 사회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거나 선망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문제는 그렇다고 북한 인권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도식화된 결론, 즉 '북한 인권 문제는 인권 문제라기보다 식량 부족 사태이고 미국의 봉쇄 정책 때문이니 인도적 대북 지원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소위 '평등 계열' 등 자주 계열이 아닌 진보 세력은 북한 체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긴 하지만, 북한 인권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위의 기사 내용 중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조성렬 박사의 말을 재인용해보겠다.

"진보 진영이 기존의 틀에 사로잡혀 있는 한 영원히 북한 인권이란 이슈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각종 토론회에서 만나본 진보 진영 사람들은 탈북자들이 이데올로기를 떠나 자신의 체험을 호소하는데도 굉장히 냉소적으로 대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 북한 정부를 비판하지 않고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 정부도 이제 남한 진보 진영의 비판을 견디는 맷집을 키워야 하며 그것이 북한 정권을 위해서도 이롭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원칙은 인권이라는 개념을 구체화시켜 문제에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1966년 유엔 총회에서 제정되어 1976년에 발효된 두 개의 국제 인권 규약이 있다. 하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The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The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이다. 전자를 일명 'A규약'이라 하고 후자를 일명 'B규약'이라 부른다.

한국의 진보적 인권 단체들은 북한 인권 논의에서 공히 A규약, 즉 식량권과 생존권이 중요한 인권이라는 대전제를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막연히 이것만 주장해서는 국제 사회의 동의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A규약을 어느 정도 충족시킨 이후 B규약, 즉 정치범이나 사상의 자유 등의 문제를 단계적으로 제기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만약 향후 진보 개혁 세력이 북한 인권 가이드라인을 합의하게 된다면, 이렇게 보편적인 개념들을 의식적으로 활용해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북한 문제의 특수성만 강변한다고 해서 국제 사회의 지지를 얻어낼 수는 없다.

위에 제시한 가이드라인은 어디까지나 8년 전의 것이다. 전문가도 아닌 20대 풋내기 기자가 만든 물건이니 당연히 허술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허술한 것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진보 개혁 세력의 태도 아닐까. 8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진전이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이제는 보다 세련되고 구체적인 북한 인권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한다. 사실 북한 인권이란 문제는 당장 정치적 이득이 생기기 어려운 '황량한 전선'이다. 그러나 정말로 북한의 변화를 바라고 한반도 평화 체제를 원한다면 북한 인권이라는 전선에 최소한의 방어선을 쳐야 한다.

'인권'이 아무리 기만과 위선으로 얼룩진 단어라 할지라도 이 보편적 가치를 냉소하고 포기해버려서는 결코 '진보'하거나 '개혁'할 수 없다. 진보 개혁 세력은 북한 인권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이 칼럼은 <프레시안> 게재 후, 팀 블로그 '리트머스'에도 실립니다. (☞바로 가기 : 리트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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