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김지윤 씨가 그런 은유를 사용할 권리에 대해서는, 볼테르를 빌어, 전적으로 지지한다. 은유마저 명예 훼손으로 걸어버린 해군의 처사는 협량(狹量)의 극치이며, 잘코사니하고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조·중·동의 행태는 마녀 사냥을 연상케 한다.
그러고 보면 명예 훼손죄는 이 정부 들어 부쩍 자주 들먹여지고 있다. 사찰을 당했다고 폭로하자 국가정보원이 박원순 변호사를,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서 농림수산식품부가 <PD수첩> 담당자들을, 이명박 대통령은 BBK 보도와 관련하여 <한겨레>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보도와 관련하여 역시 <한겨레>를 고소했다. 천안함 관련 의혹을 제기한 신상철 조사위원을 해군 장교들이,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을 이동관 홍보수석이,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연아 회피' 동영상과 관련하여 네티즌을 고소했다.
소위 '쥐 벽서' 사건 역시 다른 죄목으로 기소되었지만 "타인의 명예나 공중 도덕을 침해할 경우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는 판결문으로 미루어 명예 훼손 소송의 성격이 강하다. 그를 '공용 물건 손상죄'로 기소한 장면은 묘한 기시감을 부른다. 3·1 운동에 참여했던 33인의 민족 대표들이 기소된 주요 근거는 출판법 위반이었던 것이다. 검열을 받지 않고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였다는 것.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 격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괘씸죄를 기필코 처벌하겠다며 법전에 코 박고 법조항을 찾아 들이대는 장면은 계속 이어진다. 1958년 <동아일보> 만화 '고바우영감'(1월 23일자)에서 김성환 화백은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를 비판했다가 경범법 위반으로 즉결 심판에 회부되어 450환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타인의 私事(사사)에 대하여 허위사실을 게재'했다는 것이다. 소위 '경무대 똥통 사건'.
'허위 사실'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함인가. 경무대의 똥을 수거하는 청소부에게 고개를 90도로 숙여 인사하는 일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있는 것처럼 묘사했으니 허위 사실이라는 것. 만화(더구나 시사만화)란 어차피 허구에 의존하는 것이며, 그것이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일어난 사건보다 더 현실을 잘 묘파함으로써 대중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게 허위 사실이라면, 만화가가 아니라 만평이라는 장르 전체에 혐의를 씌운 셈이다.
게다가 권력의 핵심인 경무대의 행태가 어찌해서 '사사'란 말인가. 이 만화는 하다못해 청소부에게까지 잘 보이려는 사람이 나타날 정도로 경무대가 사적 네트워크(소위 '빽')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비판이 아니었던가. 서울시경국장과 유죄 판결을 내렸던 판사는 함께 호흡을 맞춰 만담가로 전업하는 게 더 나을 뻔했다.
▲ 이 땅의 검·경은 최근까지도 의연하게 괘씸죄 처벌의 직무를 이행해왔다. 미네르바를 기소하기 위해 전기통신기본법이라는 근거를 찾아낸 것은 대표적이다. ⓒ뉴시스 |
이 땅의 검·경은 최근까지도 의연하게 괘씸죄 처벌의 직무를 이행해왔다. 미네르바를 기소하기 위해 전기통신기본법이라는 근거를 찾아냈으며, 법원의 판결에 따랐다는 이유로 정연주 한국방송(KBS) 사장을 기소하는가 하면, 광우병 사건 보도와 관련하여 <PD수첩>을 기소했다. 이 사건의 판결들은 모두 검찰이 망신을 자초한 결과로 나타났다. 판사들이 '협조'를 해주지 않았으니, 검찰은 블랙코미디를 홀로 이끌어가는 막중한 부담을 지고 있는 모양이다. '짝 잃은 외기러기'의 형국, 안쓰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고소 고발은 권력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1927년 <조선사론(조선사론)> 발행인은, 자신의 잡지가 검열 당국에 압수당하자, 총독을 불경죄로 고소한다. 잡지의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는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전체를 압수하였으므로, 메이지(明治)천황의 조칙까지를 감히 압수한 불경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총독이 천황에 대해 불경죄를 저질렀노라고 고소하였으니 충격적이었다. '천황'이라는 단어를 발음하기 위해서는 차렷 자세를 취해야 했던, '불경죄'라는 말을 담는 것 자체가 '불경'이었던 시기였으니 총독의 정치적 타격은 적지 않았으리라. '네 칼로 너를 치리라'하는 수법이 제법 통쾌하다.
천황에게 충성을 바치다가 불경죄의 혐의를 쓴 총독이나 검열 당국으로서는 억울한 노릇이겠지만, 그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들은 한번만 억울했지만, 언중들은 무수히 많은 억울함을 지니고 살아가야 했으니까. 명예 훼손죄는 총독부가 조자룡이 헌 칼처럼 툭하면 써먹던 수법이었으니까. 처벌 규정이 모호하거나, 혹 무죄가 나올 경우에 대비해야할 필요가 있을 때 그들은 명예 훼손죄를 들먹였다. 정치인을 비판해도, 부정을 저지른 면 서기에 대한 비판 기사를 써도 명예 훼손에 해당될 수 있었다.
'불경죄'라, 경건하지 못한 태도까지 죄가 될 수 있는 것이 식민지 시기였다. 오늘날에는 명예 훼손죄가 불경죄의 바통을 이어받은 셈이다(실제로 근대의 국가 원수 모독죄는 '대역죄'의 족보를 이어받고 있다). 최근 통계에(2005년) 따르면, 전 세계에서 명예 훼손으로 투옥된 사람의 28퍼센트 정도를 대한민국에서 배출하여 단연 '세계 1등'을 구가한다니까(박경신) 말이다.
묘한 기시감이다. 고위 공직자들이 뇌물 받았다, 자기 딸을 특채했다 등등의 의혹을 받으면 그들은 한결같이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면서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겠노라 펄쩍 뛴다. 압권은 자위대 행사에 참가했다가 친일파라는 비판을 받자 명예 훼손이라고 고소한 나경원 씨 사건이다. 게다가 현직 판사인 그의 남편은 기소를 청탁하는가 하면, 법원으로 오면 그 다음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기소에서 사법 처리까지 아예 '컨베이어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 아닌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도 모자라, '유권(有權)무죄 무권(無權)유죄'로 나아갈 태세 아닌가. 이 무슨 기막힌 퇴행이란 말인가. '고바우영감'이 즉결심판에서 과태료 처분을 받았던 당시, 해당 법원장은 정식 재판을 청구했더라면 그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판결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소에서 유죄 판결까지의 컨베이어 시스템을 시사하는 현직 판사의 발언과는 매우 대조되는 대목이다.
명예 훼손죄를 들먹이는 사람들은 대개 신분이 높거나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먹고 살기 허덕이는 보통사람이라면 웬만하면 참고 말게 마련이니까. 법원 출입을 삼갈수록 무병장수한다고들 하니까. 그런데 툭하면 명예 훼손죄를 들먹이는 높으신 양반네들에게는 과연 지켜야 할 명예가 있기나 한 것일까.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한 점 부끄럼이 없다'고 발뺌하지만 얼마 안 있어 헛소리라는 게 드러나곤 하지 않던가. 그 사람들을 '死者(사자)에 대한 명예 훼손죄'로 고소해야 할 판이다. 그들의 입에 윤동주 시인의 시구가 운위되는 일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면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이 정결한 시인에 대한 더없이 심각한 모독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윤 시인은 소송을 말릴 듯하다. "원래 명예란 법이 아니라 천하의 민심에 의해 생겨나고 지켜지게 마련이네. 법에 의존해야만 존립할 수 있는 명예라면 뭐 그리 못 지켜내서 애달파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구구절절히 옳은 말씀이니 소송은 포기해야 할 듯하다.
그래도 못내 궁금해지는 한 가지. '공작 각하'를 '개'라고 부르면 명예 훼손이라는데, 그럼 '개'를 '공작 각하'라고 부르면 어떻게 되나. 다른 사람들은 공작 각하라고 부르지만, 내 눈에는 아무리 보아도 개로 보이는 한 인물에게, 공작 각하라고 부르는 것 역시 죄가 되지 않을까?
말을 하고나니 좀 두렵다. 이런 말을 하면 '개'들이 나를 고소할 것 같으니까. 견공족(犬公族)에 대한 '불경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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