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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혁명은 공자처럼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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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혁명은 공자처럼 이렇게!

[프레시안 books] 신정근의 <철학사의 전환>

<논어>를 쉬운 말로 바꾸어 놓고 읽다보면 공자는 참 잘 삐치고, 시샘도 많고, 권력에 대한 욕구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정근은 <철학사의 전환 : 동아시아적 사유의 전개와 그 터닝 포인트>(글항아리 펴냄)에서 "세상에 나를 써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곳을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리라!"(<논어> '양화' 편)고 말한 "공자는 '혁명'을 부르짖고 있는 셈이다"고 해석한다.

여러 사람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혁명적 인물로 평가를 할 때마다, 공자 자신은 아니라고 극구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은 그저 옛 성인의 말씀을 옮기는 학인이며, 굳이 바란다면 서주 초기 주공의 질서를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피력했을 뿐이다. 하긴, 천명을 뒤집어엎을 수 있을 정도로 공자가 대찬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유덕한 정치를 얘기하고, 어진 태도를 사랑하고,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시는 선생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뒤집을 생각을 했겠는가.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결과적으로 공자는 세상을 다 바꾸고 말았다. 그 어떤 권력자의 말씀보다 더 강력하게 중국과 동아시아 사람들의 삶과 생각에 영향을 끼쳤다. 나는 그것을 공자 스스로 예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치밀한 공부와 탁월한 상상력 그리고 넘치는 정열로 기존의 철학을 '전환'시켰다.

공자는 특정한 능력자를 지칭하던 성인이란 관념을 완벽한 인격의 소유자로 탈바꿈시켰고, 군주의 자제를 뜻하던 군자를 최고의 정치적 인격체로 탈바꿈시켰고, 신하의 신분으로 왕조를 뒤엎은 주공을 성인으로 탈바꿈시킨 진정한 혁명가였다. 공자는 중국적 사유의 전개에 있어서 터닝 포인트였던 셈이다.

▲ <철학사의 전환 : 동아시아적 사유의 전개와 그 터닝 포인트>(신정근 지음, 글항아리 펴냄). ⓒ글항아리
책의 제목에서 보듯 신정근은 참으로 거대한 기획을 하고 있는 듯하다. 동아시아적 사유를 터닝시키고 싶은 그의 장대한 '재구축 여정'이 그의 공부, 그의 상상력, 그의 정열로 인해 반드시 성공을 거둘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론에 해당하는 '책머리에'와 '중국 철학사 새롭게 바라보기'에는 그 새로움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더 발전시켜 저자가 읽고 자랐다는 풍우란과 노사광의 <중국 철학사>처럼 널리 두루 읽힐 책이 탄생하길 기대한다.

수십 종의 중국 철학사(사상사)를 중국어로든 한국어로든 읽어본 사람에게 '철학사의 전환'이란 말이 무척 자극적이다. 저자의 출발처럼 '다시' 쓰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700쪽이 넘는 이 책은 중국의 유학 사상사를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다르게' 쓰고 있다. 발표했던 논문들을 다시 구성한 것임에도 일관된 서술과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잘 담아낸 책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4000년이 넘게 같은 지역에서 동종의 사람들이 같은 말과 문화를 이어 온 나라이다. 중국 철학사를 지우고 다시 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결국은 해석과 재해석이 있을 따름이다.

어쩌면 철학자는 깊은 생각을 지혜로운 말로 풀어내는 사람일 것이다. 공자는 스스로 고백했듯이 옛 문헌들이 사라지고 없어서 문자 어원 밝히기를 어려워했던 사람이다. 그가 술자리를 많이 가진 사람인건 분명하지만 말이 많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원을 술안주로 삼지 않은 공자였지만 그의 말들은 짧고 지혜가 넘친다. 독서와 사색을 겸하라는 공자의 주장을 잘 구현하면서도, 신정근은 자료가 풍부한 시대를 맞아 <철학사의 전환> 곳곳에서 훌륭한 어원 탐색을 보여준다. 철인(哲人)을 시대를 광정하는 인물로 풀이하고(80~95쪽), 인(仁)을 포용력으로 풀이하는 등 매우 정치적인 해석을 내놓는다(148~176쪽).

"'인'은 경쟁자들이 상대에 대해 공동체에서 중심적 역할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맥락이다." (167쪽)

"나는 <좌전>에 나온 인의 의미를 세력의 규합(alliance) 또는 하나의 중심으로 모으기(conglomeration)로 규정하고자 한다." (174쪽)

정치는 인간사회의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하고 구성원들로 하여금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이끄는 일이다. 이 점에서 이른바 '동아시아적 사유'란 거의 모두 정치철학 또는 사회철학일 수 있다. <논어>든 <춘추번로>든 정치학 교과서이며, 신정근의 이 책도 정치사상서일 수 있다.

"유학에서는 앎보다는 행위와 의식의 근원성을 강조한다고 나는 생각한다"(274쪽)는 말은 윤리와 정치가 하나였던 동아시아 전통 사상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사마천이 <사기> 글들의 말미에 '태사공 왈~'로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듯 책 곳곳에 보여주는 '신정근 식'의 한국 정치에 대한 평가는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법가의 시대 상황과 한국 현대의 정치 상황이 놀랄 만치 유사한 만큼 민과 진의 제국, 시민(중산층)과 개발 독재는 공생 관계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고 생각한다." (211쪽)

신정근은 "이 글을 통해서 동아시아인들이 나를 얼굴이라는 걸 표면에 드러내지(表現) 못하고 속 이면에 꽁꽁 감추어야(內藏) 하는 맥락의 사상적 원인을 밝혀냈다고 생각한다."(299쪽) 5막으로 구성된 책 전체에서 보여주는 중국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유려한 문체를 보고 있노라면 그 말에 수긍이 간다. 특히 혜강의 '성무애락론'을 분석한 음악론은 소설로 쓰고 싶을 정도로 저자 스스로에게도 흥미로운 소재고 읽는 독자도 재미를 더하게 된다. "음악이 음악다워지려면 감정의 편중을 넘어서서 평정과 조화를 본체로 삼고 고정된 반응 양상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358쪽) 공자 또한 음악에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다.

문학, 역사, 철학이 하나로 소통되는 유학 공부로 공자는 현실의 정치권력만 장악하지 못했을 뿐 마침내 도덕 권력과 학문 권력을 모두 장악한 소왕(素王)이 되었다. 부침은 있었지만 오늘날에도 천안문 광장에 그의 동상이 서고, 세계 곳곳에 공자 학원(Confucius Institute)이 만들어지면서 중국 문화와 공자는 한 몸이 되었다. 이렇게 한 번의 혁명으로 이데올로기의 통합과 정신적 일체감이라는 항구적 권력을 장악한 공자는 전무후무한 정치철학자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공자는 정녕 혁명을 부르짖었던 것일까? 옛 사람의 법도를 기술할 뿐 창작하지 않았다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은 겸손의 말씀이 아니라 의도적인 말은 아니었을까. 공자 스스로는 중국적 사유의 터닝 포인트를 생각해 본적도 없는 듯하다. 심지어 자신과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로 인하여 무엇이 '전환'되기를 애써 부르짖지도 않았다. 전통 유산을 열심히 정리하고 비근한 말들에 풍성한 사회과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세상의 지도자들에게 어진 정치를 하라고 충고를 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일상이 내내 포근해지기를 바란 장기 기획을 한 것이다.

아마도 공자가 무엇을 새로 쓰겠다거나 창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었다면 당대의 권력자가 되었을지 모르나, 역사의 동력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전통의 입장에서 당대의 언어로 문화를 엮어내고자 했다. "공자는 국가 권력의 등장과 그것의 횡행이라는 낯선 현상을 목도하고 자신의 무기력을 절감"(600쪽)했다기보다 너무도 낯익은 권력 현상의 심연을 꿰뚫어보고 넘치는 기력으로 해답을 찾아간 사람이다. 신정근이 분절적이고 연결이 끊긴 시간들 사이를 메워가면서 앞으로 완성해갈 중국 철학사는 타자와 디아스포라에 '내몰린' 문화로서 중국이 아닌 동서양 문화를 '융합시킨' 보편 언어로 충만하리라 예상한다.

신정근이 말하는 '동아시아'는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 개념일 것이다. 책을 잘 만드는 출판사의 고민이 느껴진다. 수입 학문에 대한 질타에 공감하고 조동일의 <우리 학문의 길>이 생각난다. 아쉽다면 "협치協治의 이상사회"(403쪽)나, 공진(共進) 즉 다 함께 나아가길 바라는 평화주의 정치철학자 신정근의 소명이 제목에 깃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마련이다. 정치사상을 전공하는 나에게 신삼강오륜 문제(534~571쪽)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뛰어난 재능, 친유교적 성향, 글쓰기 실력, 진지하고 성실한 학자와 같은 시대를 사는 즐거움에 비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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