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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신부'가 권하는 '꽃이 피는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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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신부'가 권하는 '꽃이 피는 그림책'

[親Book] 옌 보이토비치·스티브 애덤스의 <꽃이 피는 아이>

나는 그림책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저 그림책 전문가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소개해 주는 설명에 감탄해 마지않을 뿐. 그림책에 담긴 깊은 세계를 보기까진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그런 내가 서가에 꽂고 곧잘 집어 드는 책이 있다. 수십 번도 더 읽었지만 볼 때마다 내 눈과 입이 묘한 곡선을 그리는 책. 표지엔 꽃과 신발을 들고 수줍은 듯 미소 짓는 소년이 서 있다. 나는 그 소년이 나를 구하러 와준 왕자님이라도 된 것처럼 오랫동안 눈길을 떼지 못한다.

▲ <꽃이 피는 아이>(옌 보이토비치 지음, 스티브 애덤스 그림, 왕인애 옮김, 느림보 펴냄). ⓒ느림보
<꽃이 피는 아이>(옌 보이토비치 지음, 스티브 애덤스 그림, 왕인애 옮김, 느림보 펴냄)는 보름달이 뜨면 온몸에 꽃이 피는 소년의 사랑을 다룬 아름다운 이야기다. 링크네 식구는 마을과 멀리 떨어진 론섬산 꼭대기에 산다. 마을 사람들은 수군댄다. 링크네 식구는 저마다 이상한 능력을 갖췄다.

방울뱀을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놀거나, 몸의 모양을 마음대로 바꾼다. 가장 특별한 능력을 지닌 링크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달콤한 향기를 뿜는 꽃을 피운다. 친구들은 링크를 피한다. 부끄러움이 많은 링크는 교실 뒤에 얌전히 앉아 책을 읽거나 생각에 잠긴다.

그러던 어느 날, 앤젤리나라는 소녀가 전학을 온다. 앤젤리나는 미소가 아주 예쁜 아이로 솔직하고 당당하며 친절하다. 그런데 한쪽 다리가 조금 짧다. 한쪽 귀엔 항상 꽃 한 송이가 꽂혀 있다. 링크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앤젤리나도 늘 혼자인 링크가 궁금하다. 하루는 앤젤리나가 댄스 대회를 피하자 링크는 그녀의 진짜 속마음을 눈치 챈다. 이에 방울뱀 가죽으로 각각 굽 높이가 다른 특별한 구두를 만든다. 며칠간 링크가 보이지 않아 시무룩한 앤젤리나는 노크 소리에 깜짝 놀란다. 문을 열자 링크가 서 있다. 바로 이 책의 표지처럼 말이다.

작가 옌 보이토비치는 자폐증에 걸린 남동생을 위해 글을 썼다고 한다. 신비로운 상상력에 캔버스를 그림으로 가득 채운 이 책은 색감 또한 무척 아름답다. 나는 링크네 식구가 어떤 사람들인지, 몸에 꽃이 피는 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모른다. 다만 작가의 배경으로 보아 남들과 조금 다른 사람들에 대해 말하려 한 건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할 뿐이다. 이를테면 그게 성격 이상이나 신체 장애일지도 모르겠다. 그들 또한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라고 알리려 했을까? 그러나 나는 이 책을 그렇게만 보지 않는다. 이 책은 내 기도와 맞닿아 있다.

연애 한 번 못해 본 나는 여느 기독 청년처럼 <우리…사랑할까요?>(박수웅 지음, 두란노 펴냄) 같은 책을 섭렵하며 아예 배우자에 대한 이상형을 그려보곤 했다. 하루는 설교 시간에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다.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사람은 절대 만나지 말라고 했다. 상처에서 벗어나려 해도 악순환이 되풀이된다고 했다. 마치 나는 결혼을 하면 안 된다는 선고처럼 들렸다. 절박한 심정으로 <독이 되는 부모>(수잔 포워드 지음, 김형섭·황태연·지성학 옮김, 푸른육아 펴냄) 등 역기능 가정에 대한 책을 열심히 뒤져보았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한편, 나는 여러 강의와 모임에 참석했다. 계속 뭔가 배우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도서관 잡지의 도서 추천 위원을 맡게 되었다. 매달 한두 차례 회의에 얼굴을 내밀었다. 거기서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났다. 짓궂은 여고생들의 놀림을 받을 것 같은 노총각 선생님이었다. 먼저 반갑게 인사하고, 다른 사람을 챙겨주고,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바쁜 와중에도 숙제를 대충 하지 않는 착실한 성품이 호감을 주었다. 왜 아직 혼자일까. 괜찮은 사람 같은데 다들 모르는 걸까.

나는 지난해가 참 힘들었다. 나란 사람은 사회생활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네가 진짜 고생을 안 해봐서 정신을 못 차렸다는 말이 정말 싫다. 세상살이 원래 그렇다며 독기를 품은 채 살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다. 내가 학교 일로 헤맬 때, 애들을 어떻게 대하나 고민할 때 선생님은 조근조근 알려주었다. 마침 가까운 곳에 재직하는 선생님은 자주 도와주었다. 도서부와 장을 보다가 비가 와 발을 동동 구른 날 차도 태우고, 내가 늦게 퇴근하면 간식이나 도시락도 배달했다. 독서 교육 대상 증빙 자료를 만든답시고 방방 뛸 땐 클리어 파일에 종이라도 꽂았다.

우리는 책 이야기를 많이 한다. 서점에도 자주 간다. 별 부담 없이 서로 읽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내가 우왕좌왕 말해도 선생님은 언제나 진지하게 반응해 준다. 반면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얼마나 재밌는지 나도 모르게 아이처럼 귀를 쫑긋댄다. 내가 서평을 쓰면 덩달아 찾아본다. 무심코 책 이름을 말하면 기억 창고에 저장해 뒀다가 잊지 않고 사다 준다. 내가 모르는 책을 건네기도 한다. 나는 <꽃이 피는 아이>를 선생님 덕분에 알게 되었다. 교제를 시작할 즈음, 내게 선물한 첫 책이었다.

"댄스 대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둘은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 앉았어요. 앤젤리나는 링크에게, 링크는 앤젤리나에게 식구들 이야기를 했지요. 링크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보름달이 떠 있는 동안 온몸에 꽃이 핀다는 걸 앤젤리나에게 보여주었어요. 앤젤리나는 환하게 웃으며 링크에게 꽃을 꽂은 오른쪽 귀 뒤를 보여주었어요. 링크의 온몸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앤젤리나의 귀 뒤에서도 꽃이 피어나고 있었어요!"

나는 허물이 많은 사람이다. 외모도 그저 그렇고, 학력도 고만고만하다. 사교성도 떨어지고 특출한 재능도 없다. 마음이라도 당당하면 좋겠는데 열등감이 심해서 가끔 이상한 신경질을 부린다. 상처를 대물림할까 겁도 난다. 나는 대단한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장점은 격려하고, 단점은 보완하고……. 더 바라는 게 있다면 둘이 함께하는 모습이 주변에 미덕이 되면 좋겠다.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 앉아 서로 내밀한 속내를 고백하는 링크와 앤젤리나의 모습은 내가 꿈꾸는 사랑의 이상향이었다. 선생님과 나는 그런 사이가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된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지금은 론섬산 꼭대기에 살지요. 론섬산은 이제 별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동산으로 유명해졌어요. 앤젤리나와 링크는 정원 가꾸는 일을 해요. 그게 두 사람의 일이에요. 보세요! 일곱 명의 아이들도 태어났어요. 아이들 모두가 정원 가꾸는 능력을 타고난 건 절대로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몇 달 전, 청혼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5월의 신부가 된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혹시 후회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든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세상만사가 두려움을 부추긴다. 선생님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선 생각하지 말자고 했다. 그래서 나도 좋은 생각만 하려고 노력한다.

현재는 돈도 없고, 직장도 없지만 내가 살아온 날들, 경험, 연민, 소망, 꾸준한 일상,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이 합하면 뜻밖의 좋은 일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 거창한 삶은 아닐지라도 마음이 따뜻한 선생님과 지금처럼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밥도 맛있게 먹으며 차분차분 살고 싶다. 나는 이 사랑을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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