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1년간 한국 사회에서도 핵 발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탈핵'을 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오는 4월 11일 총선에서는 '탈핵'을 전면에 내건 녹색당, 진보 신당 등 진보 정당의 출마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핵 발전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마다 항상 나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대안이 뭔가요?" 전체 전기 생산량의 약 30퍼센트를 차지하는 핵 발전의 비중을 염두에 둔 반문입니다. "석기 시대로 돌아가자고?" 하는 퉁명스러운 반응도 나옵니다. 입만 열면 "핵, 핵, 핵"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 수준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과연 대안이 없을까요? 국내의 민간 싱크탱크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에너지 대안을 찾고자 고심했습니다. 지난주 이 연구소는 <핵 없는 사회를 향한 대전환, 어떻게 가능한가> 팸플릿을 펴냈습니다. 에너지 대전환이 몽상이 아닌 현실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이 팸플릿을 <프레시안>이 연재합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2009년 8월 창립한 에너지·기후 분야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한국 사회의 에너지 전환 방향을 선도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노동자·농민·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서 기후 변화와 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 팸플릿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한재각 부소장이 대표 집필했습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로 연락하면 책자도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편집자> |
▲ ⓒ프레시안 |
재생 가능 에너지가 만능은 아니다
재생 가능 에너지가 만능이 아니라는 또 다른 이유는 좀 더 근본적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에너지 수요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계속 증가한다면 에너지 전환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부는 한국 사회의 에너지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최대 전력 기준 '2010년~2024년 기간에 연간 평균 2.2퍼센트 증가―증가하는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핵발전소 신규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4년까지 핵 발전을 통한 발전량 비중을 거의 50퍼센트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계획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박년배의 최근 박사 학위 논문에 의하면 정부가 제시하는 예측처럼 에너지 수요가 계속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재생 가능 에너지를 통해서 이를 모두 대체하는 것이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모두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경우에 재생 가능 에너지를 통해서 생산해야 하는 양도 계속 증가해야 하는 것인데, 재생 가능 에너지 설비에 들어가는 자원의 한계 등으로 그 가능성을 낙관할 수 없다. 따라서 에너지 수요를 절대량의 차원에서 감소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에너지 수요는 계속 증가한다?-자기 충족적 예언
다시 정치 영역, 그리고 일상적인 삶의 영역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여기서 이야기하는 정치는 미시적인 비제도적 정치를 의미하는데, 한국 사회의 에너지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객관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일종의 '전문성의 정치'의 결과라고 하는 점을 우선 지적한다.
한국 사회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쟁점은 그런 예측이 '자기 충족적 예언'으로 작용해 실제로 에너지 수요를 증가시키는 근거가 된다는 점이다. 에너지 수요가 더 많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 것이 실제로 더 많은 수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중앙 집권화되고 엘리트에 의해서 통치되며 핵 발전과 같은 대규모 발전 설비를 가진 프랑스와 한국의 전문가들이 만들어 낸 에너지 수요 예측이 그런 역할을 했으며, 핵 발전 확대 정책의 현실적 근거가 되었다. 이런 접근에 반대해 우리의 미래에 규범적으로 접근하여(이를 백캐스팅(Backcasting) 접근이라고 부른다.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미래의 에너지 수요를 어느 수준에서 고정·축소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해서 필요한 계획과 정책을 수립하여 집행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수요를 감축한다는 것은
에너지 수요를 감소시킨다는 것은 우선 산업 부문에 초점을 둬야 할 일이다. 낙후된 산업 부문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에너지 다소비적인 산업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보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우리의 대표적인 수출 산업인 철강, 석유화학 등의 산업 생산량을 축소해야 한다는 뜻인데, 이것은 자본과의 대결이기도 하지만 그 산업에 고용된 노동과의 갈등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본격적으로 거시적인 정치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누구의 이익을 보호할 것인가, 또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 계속적인 경제 성장과 그로부터 얻어지는 이윤 때문에 기업들은 대규모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원하며, 그런 이유로 핵 발전을 지지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대부분의 노동자들 또한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광범위한 핵 동맹에 어떻게 균열을 내며, 어떻게 에너지 수요를 감축하고 에너지 전환을 위한 동맹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만만치 않은 과제이다.
그러나 보다 도전적인 과제는 가정과 상업 부문의 에너지 소비 감축에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일상적인 삶의 영역으로 다시 경계를 넘게 된다. 이는 점점 더 전력에 의존하여 생활을 유지하는 근대적인 삶을 어떤 식으로든 재구성하는 일이다. 자신의 집에 어떤 전기 제품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 개별 전기 제품의 에너지 효율이 얼마나 높은지 생각해 보라. 그러나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전기 제품이 많다고 하더라도 일반 냉장고, 김치 냉장고, 와인 냉장고, 화장품 냉장고, 옷 냉장고……. 이런 식으로 제품이 늘어나면 전체 전력 수요는 증가하고, 이는 핵 발전 정책의 근거가 되는 에너지 소비 증가 예측을 실물화하는 것이 된다. 악마는 일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단열이 안 되는 낡은 주택과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상가에서 쓰는 전열기, 한 명이라도 손님을 더 끌기 위해 설치한 상점의 네온사인, 매일같이 광고와 드라마에 나오는 편리한 삶의 배경이 되는 가전제품들. 동료 시민들과 함께 이런 삶들을 재구성하는 일은 정부와 기업을 비판하고 정책을 변화시키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며, 생각해 보면 이런 도전을 넘어서지 못하면 아마도 정부와 기업의 벽을 넘어서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3. 2030년까지 핵 발전에서 벗어나자
이제는 탈핵 시나리오에 대해서 토론하자
핵 발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하고 에너지 소비를 감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길게 했다. 순서로 보자면, 에너지 소비를 감축하는 것이 보다 우선되는 일이며 재생 가능 에너지 전환은 그런 감축 속에서 진행될 일이다. 이를 보다 개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탈핵 : 포스트 후쿠시마와 에너지 전환 시대의 논리>(이매진 펴냄)라는 책을 통해서 제시한 탈핵 에너지 전환의 개념적 시나리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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