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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 식민지, 부산의 잃어버린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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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 식민지, 부산의 잃어버린 20년

[정희준의 '어퍼컷'] 정주고 쪽박차고…부산은 지금

"박근혜가 이번에는 대통령 한 번 해야 안 되겠나."

올해 초 부산 지역의 한 언론이 전한 민심이다. "주변의 노인들이 열이면 열,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렇다면 젊은이들은 다를까? 그렇지 않다. '반 한나라당 정서'가 압도적인 수도권과는 달리 이곳 젊은이들의 보수와 진보 지지 성향은 반반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몰려나가 투표하더라도 달라질 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사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총선과 지방 선거에서 사하(을)의 조경태 의원 단 한명을 제외하면 부산의 진보는 '전패의 역사'를 걷고 있다. 정말 이곳 부산은 '푸른 피'가 흐르는 땅이고 부산 사람들에겐 '한나라당 DNA'가 새겨져 있는 것일까.

'박정희 타도'의 선봉장 부산

원래 부산은 야도(野都)였다. 1979년 10월 16일 박정희 군사 독재에 환멸을 느낀 부산대, 동아대 학생들이 '유신 독재 물러가라', '정치 탄압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부산 시내로 진출하자 시민들이 합세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파출소, KBS, 구청, 세무서를 공격했고 독재 정권은 18일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투입한다.

그러나 민주화 시위는 19일 마산 지역으로 번져 나갔고 결국 노동자, 고등학생까지 합세하자 20일 마산에 위수령이 선포된다. 이때 연행된 사람 수만 1513명, 군사 재판에 회부된 사람 수는 125명이었다. 바로 '부마 민주 항쟁'이다.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현장 시찰 후 박정희에게 "학생이 주축이 된 데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지에서 보니까 그게 아닙니다. 160명을 연행했는데 16명이 학생이고 나머지는 다 일반 시민"이라고 보고한다. 또 시민들이 시위대에 주먹밥과 사이다, 콜라를 갖다 주고 이들이 경찰에 밀려면 집에 숨겨주기까지 하는 양상에 그는 놀랐던 듯하다.

결국 독재자 박정희는 26일 김재규의 총에 피살된다. 부산에서 저항이 시작된 지 딱 열흘 만의 일이다.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 독재 아래서도 부산 시민은 쫄지 않았다. 1988년 13대 총선 때 부산 시민은 16개 지역구 중 15개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를 뽑아 반독재 민주화 진영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YS를 쫓아낸 한나라당을 사랑한 부산

ⓒ프레시안(최형락)
이러한 기개와 저항성이 완전히 엎어진 계기가 바로 1990년 1월 집권 여당 민정당(민주정의당)과 야당인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간의 3당 합당이다. 이때 만들어진 민자당(민주자유당)은 이후 신한국당, 한나라당, 지금의 새누리당으로 이어진다.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해 정국 주도권을 상실한 노태우와, 자신이 만든 통일민주당이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이 이끄는 평민당(평화민주당)에 밀려 제3당으로 전락해 대권 도전에 적신호가 켜진 김영삼의 계산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사실 3당 합당은 반독재와 민주화를 평생의 기치로 내걸었던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군사 독재 집단에 투항한 것이다. 한 마디로 '변절'이었고 '야합'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가 휘하의 정치인들 뿐 아니라 부산·경남(PK)의 정치적 자산을 대구·경북(TK)를 기반으로 하는 5공 세력에게 몽땅 갖다 바쳤다는 점이다. 이때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았던 이기택, 노무현, 김정길 등이 만든 정당이 일명 '꼬마 민주당'이다.

물론 3당 야합 덕에 김영삼은 대통령의 꿈을 이루긴 했다. 그러나 그가 퇴임사에서 밝혔듯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길었"다. 특히 자신이 국무총리에 임명했던 이회창은 민정계, 즉 TK의 지지를 등에 업고 대통령 후보가 되면서 김영삼을 철천지원수마냥 공격한다. 대선 직전 경북 지역에서 있었던 신한국당 전당 대회에선 현직 대통령의 (인형) 화형식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김영삼은 결국 대선 한 달 전 쫓겨나듯 당을 떠나야 했다.

이회창과 TK가 김영삼을 쫓아냈고 또 김영삼을 지우기 위해 한나라당으로 간판을 바꿔달았음에도 부산·경남은 한나라당을 대놓고 사랑했다. 부산의 상징 YS를 내동댕이친 TK인데도 부산은 TK를 '같은 편'이라고 착각했다. 남의 새끼인데도 내 새끼인 줄 착각하고 키워줬다. 그리고 마치 국정의 주체, 권력의 중심이라도 된 듯 뿌듯해 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TK 출신 대통령을 만드는 데 앞장섰고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등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경상南도'가 아니라 '경상下도'?

그러나 대구가 지역구인 박근혜는 '뼛속까지 TK'다. 지난 2월의 '남부권 신공항' 파문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박근혜는 대구 시장과 대구 지역 의원 만찬에서 작년 폐기된 '동남권 신공항'을 충청·호남 지역을 아우르는 '남부권 신공항'으로 명칭을 바꿔 재추진하기로 했다. 이는 부산이 미는 가덕도를 배제하고 대구가 원하는 밀양을 밀기 위한 꼼수일 뿐이다. 그는 3시간가량 이어진 간담회 직후 "대구의 장래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는 말까지 했다.

YS 때나 지금이나 TK는 PK를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로. 사실 이는 적어도 200년 된 역사적 사실이다. 대구·안동 지역의 문벌들은 순조 때 김조순의 딸이 왕비가 된 이후 안동 김 씨 중심의 세도 정치로 패권을 잡았고 이러한 외척 세력의 득세는 대원군 때 약화되지만 일제 시대를 거치며 다시 부활한다. (당시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안동 지역 지주 엘리트들도 있었지만 이는 소수였다.) 이후 이들이 남한 사회의 권력을 움켜쥔 것이다.

그런데 예부터 대구 지역 문벌들은 부산 등 경남 지역을 '남(南)도'가 아니라 '하(下)도'라도 불렀다. 이는 경남의 연안 지역은 일본의 침략에 대비한 군사 기지 역할을 했고 따라서 문과급제자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부산 기장군의 경우 500년 간 1만4600명을 뽑는 동안 단 한명도 없었고 인근의 양산 지역도 비슷했다고 하는데 경상남도에 대한 경상북도의 이러한 분위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 사례는 많지만 우리 학교 한 교수의 경험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철학을 전공했던 그는 대구 모 대학의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신이 평소 찾던 칸트의 고서가 그 학교 앞 서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그 교수를 앞세워 서점을 찾았다. 그 교수가 서점 주인에게 부산에서 온 교수라 소개하면서 그 책을 찾는다고 하자 서점 주인이 돌아서며 뱉은 말에 부산의 교수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고 한다.

"부산 사람도 그런 책 읽어요?"

TK의 '투표 공출' 20년의 결과 : 정 주고 쪽박 차고…

PK는 TK 정치 권력에게 20년 넘게 표를 갖다 바쳤다. 조국 서울대학교 교수의 말처럼 선거 때마다 한나라당에 '몰빵'해줬다. 그러니까 부산의 국회의원들도 부산 시민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친이,' '친박'의 끈을 잡기 위해 애간장을 태우지 않던가. 즉, 부산 시민보다는 오직 TK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쪽에 가서 굴종한 게 부산의 국회의원들 아니던가.

그 결과는 참담하다. 부산은 한때 대한민국 전체 수출액의 무려 27퍼센트를 혼자 담당했던 국가 중추 도시였다. 지금은 고작 3퍼센트로 쪼그라들었다. 모든 경제 지표에서 부산은 밑바닥에 깔려있다. 당연히 젊은 사람들은 부산을 빠져나가고 있다. 지난 10년간 무려 40만 명이 부산을 떠났다.

무엇보다 전국 7대 도시 중 자살률이 최고란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자살률 최고라니까 부산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란 말이 된다.

일제가 전쟁에 사용할 식량과 물자의 확보를 위해 실시한 게 공출이다. 경제 수탈 정책이다. TK 정치 권력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PK의 투표를 공출해갔다. 그런데 지난 20년 넘게 부산·경남이 TK 정치 권력에게 그렇게 표를 갖다 바치면서 얻은 것은 결국 경제 수탈이었다.

솔직히 정말 민망한 건 따로 있다. 인구 360만의 '메트로폴리탄시티' 부산에 동물원이 하나 없다. 놀이공원도 없고 워터파크도 없다. 그래서 부산 사람들 요즘 자식들 데리고 대구, 경주 같은 TK동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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