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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꾼 소로스, 21세기 '케인스'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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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꾼 소로스, 21세기 '케인스'를 꿈꾸다!

[프레시안 books] 조지 소로스의 <유로의 미래를 말하다>

유럽 위기는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연장

유럽 위기로 세계 경제가 시끌벅적하다. 당초 유럽은 패권주의 미국의 전횡에 맞설 대항마로 각광을 받았지만, 지금은 도리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모습이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번 위기의 시작도 실은 미국 아닌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부실 여파가 유럽을 강타한 결과로 유럽이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유럽과 미국이 사실 한 몸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발(發) 세계 금융 위기를 "북대서양 위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헤지펀드의 대명사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가 이제 유럽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1990년대 초 영국을 벼랑으로 내몰았던 투기 공격이 아니라 유럽의 미래를 진지하게 재설계해야 한다는 당부가 핵심이다. 그의 신간 <유로의 미래를 말하다>(하창희 옮김, 지식트리 펴냄)가 그것이다.

그러나 정작 책의 원제는 "유럽과 미국의 금융 불안(Financial Turmoil in Europe and the United States)"이다. 그에게 유럽 위기는 미국에서 점화된 세계 금융 위기의 연장에 불과하다. 실제로 책 서두는 "금융 위기의 제 2막"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한다.

▲ <유로의 미래를 말하다>(조지 소로스 지음, 하창희 옮김, 손민중 감수, 지식트리 펴냄). ⓒ지식트리
여기서 소로스는 지금의 위기가 기본적으로 "지난 60여 년간 지속되어 온 슈퍼 호황의 종료"라고 진단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1980년에 시작되어 최근까지 지속되어 온 슈퍼 버블의 붕괴"다. 이러한 위기 진단은 이미 세계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발간된 그의 다른 저서 <금융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황숙혜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에서 강조되었던 테마다. 당시에 소로스는 지금을 "한 시대의 종결"로 규정했다. 즉 "미국의 지배력과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영향력을 기반으로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었던 상대적 안정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 위기를 이해할 때 중요한 개념 하나가 바로 '대완화'(the Great Moderation)다. 1980년대 이후 미국 등 선진 경제, 나아가 1990년대 이후로는 신흥 경제까지 아울러 세계 경제가 누려온 극히 이례적인 안정성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사실 금융 위기 직전인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구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경제 안정이 항구적일 수 있다는 기대를 제기했다. 통화 정책을 중심으로 각국의 정책 기량이 향상된 데 힘입어 말이다. 합리적 기대 학파의 거두, 로버트 루카스가 "경기 순환은 죽었다"고 선언했던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랄까? 경제 안정의 기대가 세상을 현혹할 즈음 위기가 터졌다. 1920년대 말 미국 주가가 천장 모르고 치솟고 있을 무렵, 위대한 경제학자였던 어빙 피셔가 "주가가 고원(高原)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언급하자마자 대공황이 시작된 것도 그랬다. 합리적 기대 이론이나 효율적 시장 가설의 예상과는 달리, 시장이나 경제는 이처럼 뒤통수를 때리면서 기대를 배반하곤 한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예고된 위기였다. 실물 경제의 수익성이 고갈된 상황에서 소득 부진을 신용 팽창으로 상쇄해 온 시대가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실패한 철학자 소로스의 금융 시장 패러다임

소로스는 투기의 화신으로서 세계 경제를 어지럽힌 주범으로 많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한국판 감수자도 지적한 것처럼, 외환 위기 당시 대외 신뢰도 회복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우리 대통령 앞에서 국제 금융계의 거물로서 위풍당당하던 그의 모습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국제 금융의 쓴 맛을 본 뒤로는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정언명령처럼 여겨졌고, 이에 따른 굴욕의 감정은 가슴 속 깊이 반감으로 자라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정작 우리 예상과는 딴판이었다. 자신의 막강한 재력을 활용해 구소련 붕괴 이후 아노미 상태에 빠진 동유럽을 구제하려 나서고 부시 행정부의 패권 정치에 저항하는 운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세계 금융 위기를 계기로 족쇄 풀린 금융의 위험을 강력히 경고하고 그 배경에 자리한 주류 경제학의 편협한 사고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나아가 스스로 "실패한 철학자"의 소회를 털어놓기도 하지만, 카를 포퍼에게서 배운 '열린 사회'의 철학을 금융 시장에 실천하고 나름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려고 심혈을 기울여 왔다.

금융 투기로 천문학적인 돈을 번 그이지만, 소로스는 금융 시장에 극히 냉소적이다. "금융 시장은 자율 규제에 맡길 경우 반드시 균형으로 수렴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버블을 형성하기 쉽다"는 이유다. 버블은 "불건전한 방식으로 신용과 레버리지가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그는 금융 시장의 가격이라는 것도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단순히 수동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기본 조건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시장 가격이 기본 조건 자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며 효율적 시장 가설과 합리적 기대 이론의 환영을 깨뜨린다.

소로스는 이러한 비판적 시각 혹은 패러다임을 첫 저작 <금융의 연금술>(김국우 옮김, 국일증권경제연구소 펴냄) 이후 여러 책들을 통해 꾸준히 소개해 왔다. 이제는 일종의 고유 명사로 자리 잡고 있는 그의 '재귀성(reflexivity) 이론'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그는 인간의 인지 기능에 자리 잡고 있는 한계, 인간과 현실의 재귀적 상호 작용, 나아가 경제나 시장 현상의 근본적인 불확실성을 강조한다. 이처럼 불완전한 이해를 기반으로 시장이 움직이기 때문에 오류의 발생도 불가피하다. 그래서 소로스는 "금융 시장이 등장한 이후 금융 위기는 늘 존재해 왔다"고 역설한다.

그가 오늘 날 위기의 배경으로 지목하는 슈퍼 버블이 형성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보통신(IT) 혁명과 같은 기술 혁신이건 CDO(부채 담보부 증권) 등의 금융 혁신이건 간에 특정한 트렌드가 형성될 때, 이를 항구적인 추세로 간주하고 그 한계에 맹목적인 인간 습성으로 인해 버블이 형성된다.

특히 여기에 정부 당국이 개입하여 일반적인 소멸 과정을 밟지 못하고 슈퍼 버블로 확대되는 것이다. 정부 혹은 정치 역시 불완전한 이해에 따른 오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처럼 시장과 정부의 상호 작용, 그리고 금융 위기의 반복이 금융 시장의 역사이기도 하다.

세계 경제의 취약 고리로서 유럽 위기

<유로의 미래를 말하다>는 1장 총론을 빼고, 그가 세계 금융 위기 발생 직후인 2008년부터 2011년 사이 여러 신문을 통해 기고한 칼럼들을 모은 것이다. 그런 만큼 위기의 경과를 면밀히 주시하면서 현안과 쟁점들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려 한 그의 열정, "실시간의 사고 실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가 단순히 금융 시장의 투기꾼이나 세파에 초연한 철학자가 아니라, 현실과 부단히 씨름하며 해법을 고뇌하고 있음을 역설하는 대목이다.

때가 때인 만큼 소로스는 이 책에서 유럽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가 유럽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무엇보다 세계 금융 위기의 연장 혹은 새로운 계기라는 시각이다. 세계 금융 위기로 인해 망가진 민간 금융 기관의 신용을 정부 재원으로 지원하는 국가 신용으로 대체한 결과, 이른바 소버린 리스크(sovereign risk : 국가 신용 위험)가 부각된 것이다. 문제는 출범 당시부터 구조적인 취약성을 지니고 있던 유로가 문제의 중심으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오늘 날 세계 경제의 취약 고리로서 유럽이 자리매김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여기서 소로스는 역시 포퍼의 '점진적인 사회 공학'이라는 개념을 차용하여 유럽 위기의 진화 과정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민주적 절차에 의한 상호 타협 등을 통해 조금씩 통합이 진전되어 오다가, 이제는 일종의 동맥 경화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유럽 통합이 공공 부문의 과잉이나 불균형에만 초점을 맞추고 민간 부문, 특히 은행의 과잉과 불균형을 외면한 결과로 평가된다. 출범 당시에는 역내 국가 간 수렴을 목표로 했지만 정작 그 결과는 분리의 심화, 즉 취약국의 버블과 독일의 긴축 강화로 나타났다. 재정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해 일정한 기준을 맞추었지만, 민간 불균형이 커지면서 역내 불균형이 심화된 것이다.

이러한 통합 유럽의 문제점은 세계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이 때 결정타를 날린 것은 독일 총리 메르켈이었다. 메르켈은 위기가 터지고 적극적인 구제 금융이 필요한 시점에 유럽연합(EU) 차원의 연대 보증은 없으며 각국이 알아서 자국 금융 기관을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로스는 이때부터 유럽이 통합에서 분리로 방향 전환을 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금융 위기로 인한 위기국의 재정 악화로 이미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사실상 무력화된 상황에서 정작 그 조약이 명기한 구제 금융 금지 조항을 획일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이러한 독일의 처신을 소로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비유한다.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과거 독일의 초인플레이션 악몽에 치중하여 인플레이션 위험에만 초점을 맞추고 디플레이션 위험을 경시했던 유럽중앙은행(ECB)의 취약성도 이에 가세했다. 역내 재정 통합이 결여된 가운데 역내 금융 불안의 전염에 따른 지불 불능 문제를 그저 유동성 공급만으로 커버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럽 경제, 아니 세계 경제 전반은 지금도 (유가 불안과 맞물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유럽을 구해야 세상을 구한다, 현대판 케인스?

이런 맥락에서 소로스는 유럽 위기를 "민주주의의 위기"로 보고 있다. 시장 근본주의의 좌절과 통합 유럽의 위기로 인해 역내외 정치적 갈등이 확산되고 곳곳에서 외국인 혐오자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이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유럽의 구원을 민주주의 회생 출구, 혹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출로로 보고 있는 듯하다. 마치 대공황과 제1, 2차 세계 대전의 폐허를 딛고 파시즘이나 사회주의의 위협에서 자본주의를 구원하는 데 정열을 쏟았던 케인스처럼 말이다. 과연 소로스가 '현대판' 케인스가 될 수 있을까?

실제로 그는 단순히 칼럼 등의 시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세상에 호소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직접 액션 플랜을 세워 각국 정부를 추동하고자 한다. 책에 담긴 '유럽을 위한 파도아-스키오파 계획'이 핵심인데, 그동안 유럽 위기의 진화 과정에서 논의되어 온 여러 쟁점들과 역내 정책 공조 내용을 꼼꼼히 점검하며 그 한계와 약점, 나아가 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여기서 소로스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효과적인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장기 대출(LTRO, Long Term Refinancing Operation) 등과 같은 ECB의 유동성 지원 차원을 넘어서 역내 재정 통합의 부재로 드러난 구조적 문제점과 지불 불능 위험을 해소할 과도기적 방편으로서 말이다.

이처럼 소로스는 시장 다이내믹스에 대한 냉철한 이해를 기반으로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아마도 이런 태도가 가장 돋보이는 것은 유럽 위기에 맞선 독일의 능동적이고 전향적인 역할에 대한 그의 주문일 것이다. 게다가 미국에 대해서도 "국제 사회의 리더 자격을 유지하려면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의 여파가 주변국에 미치지 않도록 보호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위기의 글로벌 차원과 글로벌 해법의 필요성을 환기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세계의 지도자들은 시장을 따르는 게 아니라 시장을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21세기 자본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그의 절박함이 묻어나는 외침이다.

사실 소로스는 2009년 5000만 달러를 기부하여 '새로운 경제 사상 연구소(Institute for New Economic Thinking)'를 세운 바 있다. 이 단체는 위기 이후 드러난 주류 패러다임의 한계를 직시하고 21세기 세계 경제가 직면한 도전들을 타개할 새로운 사고의 육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여기에는 조지 애커로프와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을 비롯하여 쟁쟁한 경제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21세기 세계 경제의 미래와 관련해 그의 행보에 주목할 또 다른 이유다. 오지랖 넓혀 의롭게 설쳐 대는 그의 노익장이 부럽기만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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