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그는 1969년부터 1977년 사이에 미국 닉슨과 포드 행정부에서 안보 보좌관과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중국과의 관계 재개를 막후 교섭하여 성사시키는 등 미국의 외교 정책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역사의 산 증인이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당시에 중국과 미국이 수교를 맺지 않았다면 중국은 물론 세계의 모습도 지금과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내정된 시진핑이 금번 미국 방문 중 국무부 오찬에서 "물을 마실 때는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라"는 중국의 속담을 인용하면서 특급 게스트로 초대된 키신저에게 찬사를 보낸 것은 단순한 공치사가 아니다. 그는 미국과 중국 간의 우호를 상징하는 인물인 것이다.
▲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헨리 키신저 지음, 권기대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
중국은 유엔에서 상임이사국이 되었고 문화 대혁명도 몇 년 후에 종결되었다. 키신저는 이러한 역사적 만남의 막후에서 저우언라이와 함께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였으니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 역사의 흐름에 그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 후 그는 쉰 차례 이상 중국을 방문하면서 마오쩌둥에서 후진타오에 이르는 4대에 걸친 중국의 지도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는 등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매우 드물고도 귀한 경험을 쌓는다.
1977년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그는 국제 컨설팅 회사를 설립해 미국 정부나 중국에 투자하려는 회사들에게 중국 관련 자문을 하면서 수십 년 동안 중국을 예리하게 관찰해온 매우 독특한 '중국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원래 외교 이론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학자이기도 하다. 하버드 대학의 정치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외교 정책에 관한 유명한 책을 쓴 저자이다.
이런 키신저가 89세의 나이에 중국을 중심으로 자신의 경험을 회고하는 동시에 그간의 국제 문제에 대한 분석과 제언을 '통섭'해서 내놓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따라서 중국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이 때 중국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정말 일독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하버드 대학 시절 그가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은 긴 역사적 안목으로 어떤 정부나 정치를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도 키신저는 중국 고대의 역사와 문화로부터 출발해서 중국의 특이성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현명한 방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공자의 규범이 중국에서 성경과 헌법을 합쳐 놓은 기능을 했다는 지적이나 손자병법과 바둑에 주목하여 서구와 다른 중국의 군사 외교적인 특징을 도출하는 부분은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가 없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바둑은 세를 중시하고 포위를 위주로 하는 놀이인데 반해 서구인이 좋아하는 체스는 중심의 장악과 전면적 승리를 추구하는 게임이라는 지적은 중국과 서양, 양측의 전략적 사고의 차이를 비유적으로 잘 개괄하고 있다.
작금에 중국에서 전통 문화가 부흥하고 전통 고전 붐이 불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향후 중국의 행동의 근원에 중국의 전통 사상이 다른 어떤 외래의 이데올로기(마르크스주의나 자유주의)보다 점차 중요한 작용을 하리라고 전망되기 때문에 주목을 요하는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소련, 중국은 모두 같은 편이었다. 중국의 경우 국민당과 공산당이 현대화의 방식을 두고 다투면서도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 서로 힘을 합쳐 싸우고 있었고, 미국과 소련은 각각 먼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동맹국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다음 대략 1949년까지는 이들 세 대국들 간의 관계가 동맹 관계에서 애매한 상태로 변화한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한 다음 이들 간의 애매한 관계가 새롭게 변화한다. 공산당이 승리한 중국은 소련과 동맹을 맺고, 미국과 대립하게 된 것이다. 한국 전쟁은 이런 국제적 배경에서 발발한 것이다. 말이 한국 전쟁이지 그것은 사실 국제전의 성격이 강한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후 강대국이 모두 개입된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한국 전쟁을 다룬 방식도 그렇다. 그는 주로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각축이라는 시각에서 한국 전쟁을 다룬다.
하지만 전쟁의 결과를 평가한 부분에서 키신저의 적나라한 현실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잘 확인할 수 있다.
"(중국에게) 한국 전쟁은 단순히 비긴 게임 이상이었다. 그것은 새로이 건국된 중화인민공화국을 군사 강대국인 동시에 아시아 혁명의 중심으로 확립해 주었다."
삼팔선에서 시작해서 휴전선으로 끝났으니 얼핏 보면 비긴 것이다. 하지만 서구에게 패한 이래 1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온갖 혁명과 전쟁을 겪으면서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새롭게 건립된 중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던 세계 최강의 미국을 상대로 이룩한 결과인 점을 상기하면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공군은 전무하고 변변한 무기조차 없던 중국이 최신의 무기를 보유한 세계 최강의 미국을 상대로 어떻게 싸울 수 있었으며 도대체 무엇이 이런 의외의 결과를 가능하게 했을까.
당시에 미국은 핵무기 사용을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소련이 유럽을 폭격할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런 결과가 중국만의 힘으로 이룩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소련과 동맹을 맺는 마오쩌둥의 고도의 전략적 판단과 그것을 배양한 중국의 역사와 문화라는 소프트파워라는 요인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논어>에 나오는 말처럼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더라면 이와 같은 사람이 어디에서 이러한 덕을 얻었겠는가." 중국의 고전이 없었다면 마오쩌둥도 없었다! 진시황에다 마르크스를 합체했다고 할 수 있는 마오쩌둥은 <자본>은 읽지 않았지만 <자치통감>은 열일곱 번, <홍루몽>은 다섯 번을 읽은 사람이다. 혹자는 "이 책에서 마오의 모든 행보를 고도의 전략, 전술로 이상화한 경향이 있는 등 지나치게 친중국적 시각에서 쓴 책"이라고 비판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서문에서 키신저 스스로 밝힌 것처럼 이 책은 철저하게 미국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다. 따라서 이런 판단은 마오쩌둥을 이상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직접 경험과 오랜 관찰과 연구를 통해 도출한 것이다.
사실 키신저는 마오쩌둥의 계속 혁명론보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 중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마오쩌둥의 신비에 가까운 거대한 존재감과 그것을 가능케 했던 주된 요인인 전통 사상에 대한 깊은 조예에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지금도 중국의 손자병법에 대한 연구가 가장 발달한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이 손자병법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손자 때문에 아니라 사실 마오쩌둥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마오쩌둥을 "손자의 제자"라거나 "마오쩌둥은 레닌보다는 오히려 손자에게 빚진 바가 컸다"고 표현하고 있듯이 손자병법과 같은 중국의 고대 병서들은 마오쩌둥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고전은 그에게 강한 적을 상대할 수 있는 지혜와 신념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미국의 종횡가(縱橫家)답게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크게 좌우됨이 없이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연관시켜 마오쩌둥과 같은 지도자의 전략적 사고 유형을 도출하고 분석한 점이 이 책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중국의 오랜 역사를 통해 중국의 정치가들은 우회적이고 함축적이며 지속적인 외교를 좋아하고 직접 충돌하고 무력으로 대항하는 방식을 회피하는 전통을 형성하여 왔다.
따라서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고 견제할 것이 아니라 중국과 함께 태평양 공동체를 건설하는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중원)을 침략하고 지배했던 많은 민족은 중국의 판도를 넓혀주고 나서 소리도 없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지금은 소수 민족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적어도 중국의 지난 역사를 보면 그렇다.
키신저의 이런 결론은 단순히 중국과의 우호를 위해 내린 것이 아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국제 문제에 대한 냉정한 전략가로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 장기적인 역사적 안목에서 중국을 관찰한 기초 위에 내려진 것이다. 주변 강대국의 충돌은 곧바로 우리에게 재앙으로 다가왔던 지난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이런 결론은 환영할 만한 것이다.
지적하고 싶은 이 책의 한계도 있다. 아편 전쟁을 두 개의 세계(즉 서양과 중국) 질서의 충돌로 접근한다든지, 앞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 전쟁을 중국 마오쩌둥과 소련 스탈린의 게임처럼 다루고 있는 부분에서는 키신저의 서양 중심주의나 미국 중심주의가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사실 아편 전쟁은 영국이 중국과의 무역 적자를 만회하고자 아편과 같은 마약을 팔아먹기 위해 의회의 승인을 거친 추악한 전쟁이 아니었는가. 또 <중국은 불쾌해>와 같은 대중적 베스트셀러로부터 중국의 언론이나 엘리트들이 민족적 승리주의자적 관점을 가진 것으로 평가한 것은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다. 일부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해 따끔한 지적을 하고 싶다. 키신저가 "민족주의", "민족주의자"라고 표현한 것을 도처에서 거의 전부 "국수주의"로 번역한 점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마오쩌둥을 '국수주의자'로 묘사한 키신저의 언급이 이상해서 확인해보니 "nationalism", "nationalist" 등을 전부 국수주의, 국수주의자로 번역하고 있었다.
키신저의 견해 자체도 논란이 있겠는데 이를 국수주의라고 한다면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전국 시대를 춘추 전국 시대라고 한 것, 화궈펑의 '양개범시론(兩個凡是論)'을 몰라 한참 고생했다는 고백 등은 중국에 대한 역자의 무지를 반증해주는 것이다. 더구나 대한민국과 북한을 혼동해서 번역한 것을 편집 과정에서조차 바로 잡지 않는 것은 변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런 거듭된 오류는 다른 부분의 번역마저 신뢰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출판사의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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