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미국 공군 기지에서 일하던 에드워드 머피 대위는 급격하게 감속을 할 때 관성의 힘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는 족족 실험이 실패하자 크게 낙담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부하가 몸에 다는 센서를 반대로 부착한 것이 원인이었다. 사실 머피 대위는 부하가 센서를 반대로 부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머피 대위는 부하한테 "저놈은 실수할 일이 있으면 어김없이 실수를 한다니까"라고 말했고, 이것이 퍼져나가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일은 잘못될 것이다(Anything that can go wrong will go wrong)"라는 말로 굳어졌다. 지금은 자신이 바라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고, 우연히 나쁜 방향으로만 일이 전개될 때 쓰는 말로 일반화됐다.
기후 변화 대응이 그렇다. 모두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얘기하지만 온실 기체 배출량은 점점 늘어나고,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모두 머피의 법칙을 적용받고 있다.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정말로 그걸 하고 있고, 그게 정말로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 변화 적응 사업이라던 4대강 사업이 그렇고, 신·재생 에너지 의무 할당 제도(RPS)가 그렇다.
4대강 사업은 기후 변화 적응은커녕 이미 보가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거나 물이 썩고 있고, 신·재생 에너지 의무 할당 제도는 생태계 파괴 문제를 안고 있는 조력 발전을 제외하면 가뜩이나 위축되어 있던 국내 재생 가능 에너지 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지난 2월 8일 국회 기후변화대응·녹색성장특별위원회(기후특위)가 통과시킨 배출권 거래제에서 이 정부가 저지른 머피의 법칙의 정점을 볼 수 있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배출권 거래제는 아직도 논쟁 중이다. 국내외 대다수 사회 단체와 많은 학자들이 반대하고 있고, 온실 기체 배출권 거래 제도는 온실 기체 감축 효과가 증명된 바가 없어 아직도 제도를 수정 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별다른 논쟁 없이 법률안이 처리된 것이다. 미국의 자발적 배출권 거래소 회장이 "탄소 시장은 인류가 만들어낸 최대의 시장이 될 것"이라고 극찬을 한 건 배출권 거래제가 가져올 사회적 파급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다. 그것도 부정적인.
그런데도 기후특위는 정부의 말만 듣고 반대하는 사회 단체의 의견은 전면 배제한 채 졸속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머피의 부하들이 이랬을까.
온실 기체 배출권 거래제는 온실 기체를 적게 배출한 기업들은 할당된 배출권에서 뺀 나머지를 다른 기업에게 팔 수 있고, 이를 통해 전체 배출 총량을 맞추면서도 기업의 부담을 줄이자는 의도에서 마련됐다. 그러나 국제 사회에서는 이 제도를 기업과 투기 자본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간 유럽 탄소 배출권 시장은 한 번도 제대로 된 양을 할당한 적이 없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온실 기체 감축 노력을 해서가 아니라 무상으로 과잉 할당된 배출량이나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한 배출량 감소로 막대한 양의 배출권을 손에 쥐게 됐다. 물론 기업들이 이것을 착실히 되팔았기 때문에 온실 기체는 전혀 줄지 않고 기업들만 막대한 이익을 얻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실제로 영국의 비영리 탄소 시장 정책 분석 기관 샌드백(Sandbag)의 2010년 보고서를 보면, 유럽 10대 기업이 2008년 배출권 거래제로 이익을 취득한 액수는 6억8000만 달러 규모에 이른다.
대부분이 철강, 시멘트 등 다소비 업종인 10대 기업은 2008~2012년까지 약 32억 유로(현재 가치로 약 4조8000억 원) 정도의 배출권을 할당받게 되는데, 이는 유럽연합(EU)이 같은 기간 재생 가능 에너지에 투자하기로 한 금액에 맞먹는 수준이다. 또 10대 기업이 2008년 초과 할당된 배출권으로 얻은 이익은 5억 유로(현재 가치로 약 7400억 원)에 이른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알 수가 없다. 산업은행이 몇 년 전에 "탄소 시장은 금융 기관의 새로운 놀이터"라는 우습지도 않은 제목의 보도 자료를 낸 게 오히려 순수해보일 정도다.
배출권 시장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도 이 제도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시범 기간이었던 2005년 이후 6개월여 동안 배출권 가격은 톤당 8.57유로에서 무려 29.80유로까지 4배 정도 폭등했지만, 2007년 말엔 배출권이 남아돌면서 가격은 톤당 0.3유로까지 떨어졌다. 또 1차 감축 기간인 2008년 말에는 다시 톤당 25유로로 올라갔지만, 지난 12월 말에는 톤당 6.5유로로 다시 폭락했고, 올해는 1~2유로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배출권 가격이 떨어지면 기업들은 온실 기체 감축을 할 이유가 없다. 직접 감축하는 것보다는 배출권을 사서 메우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불안정한 시장에다가 제대로 배출권 할당을 할 줄 모르는 정부에게 기후 변화 해결을 맡기는 것은 아직 구구단도 못 외우는 아이더러 미적분 문제를 풀라고 요청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위해 법률을 만들고 많은 재정을 들여 거래소를 만드는 건 도대체 무슨 꿍꿍일까?
▲ 지난 2011년 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사회 단체들이 기후 변화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일각에서는 제도를 계속 수정·보완 중에 있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리면 원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한다. 유럽 배출권 거래 제도는 시범 기간을 포함해 시행 8년이 넘도록 여전히 수정 중인데도 말이다. 지금 당장 온실 기체 감축이 필요하다는 건 인정하면서도 왜 효과가 검증되지도 않은 제도는 계속 기다려달라고 하는지 도통 가늠할 수가 없다.
기업들이 갑자기 윤리적으로 변해서 온실 기체로 돈 버는 일에 매진하는 걸 그만 둘 거라서? 배출권을 할당하는 사람들이 '유레카'를 외치며 목욕탕을 박차고 나올 정도로 갑자기 적정 수준을 깨달을 수 있어서? 배출권 할당은 매우 정치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그것이 지구가 요구하고 있는 수준의 온실 기체 감축으로 이어질지는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경제 성장이니 기업 활동 위축이니 해가며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배출권 거래제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는 면죄부 성격의 오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직 배출하지 않은 오염 물질에 대한 배출권을 할당한 후 서로 사고팔게 해 이익을 보장해 준다는 건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정도면 거의 봉이 김선달이 아닌가!
금번에 통과된 법률안이 기업의 로비와 반대로 그나마도 내용이 상당히 후퇴됐다는 건 더욱 우려스럽다. 가장 대표적인 게 온실 기체 거래 제 법을 적용받는 배출권 할당 대상 업체에 대해서는 온실 기체 목표 관리제를 적용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현행 온실 기체 목표 관리제가 지나치게 느슨해 유명무실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목표 관리제는 기업들이 배출하는 온실 기체를 직접 규제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대부분의 환경 오염 물질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배출량을 제한하면서 유독 온실 기체에 대해서만 직접 규제 방식을 포기하고 우회하는 길을 찾으려 하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온실 기체 목표 관리제를 강화하고 다른 제도로 보완하는 것이지, 제대로 시행해보지도 못한 제도를 화석화하는 것이 아니다.
또 배출권의 무상 할당 비중을 95퍼센트 높이고, 감축 기간 안의 배출권의 이월을 인정해 배출권을 장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목표 관리제에서 지나치게 낮다고 비판받았던 과징금과 과태료는 더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전자의 2010년 온실 기체 배출량 원단위는 1억 원당 5.11톤이었고, 2013년 목표는 3.72톤이다. 그런데 톤당 배출권 과징금이 10만 원 이하다. 삼성전자가 과연 과징금이 무서워서 온실 기체를 줄이려고 할까? 그것도 할당된 배출권의 95퍼센트가 무상 할당인 상황에서 말이다.
온실 기체 배출권 거래 제도는 현실적 대안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직접 규제 방식의 온실 기체 감축 강제 제도다.
현 목표 관리제가 총량 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가 없고, 지나치게 허술한 처벌 규정으로 인해 실효성이 없는 상황이지만, 목표 관리제를 개선하는 것이 배출권 거래 제도를 도입해 기약 없이 수정·보완하면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또 목표 이상 초과 배출하는 양에 대해서는 징벌세 개념을 도입해 기후 변화의 시급성에 걸맞은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인 것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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