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관련한 인간 능력의 한계는 감각의 피로도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 맛을 느끼는 일에는 미각, 후각, 촉각, 시각, 청각 등 온 감각이 동원되는데, 그 중에 특히 미각과 후각이 크게 관여를 한다. 이 미각과 후각은 같은 음식이 5분 정도 지속적으로 제공되면 무뎌지고 이 맛과 저 맛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음식 중에서도 특히 인간의 감각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증명하는 것이 술이다. 처음 한두 잔의 술은 그런 대로 그 맛의 품평이 가능한데, 소주 한 병 정도의 취기가 오르면 그 술의 맛은 고개 너머 풍물소리처럼 입안에서 분별없이 웅웅거릴 뿐이다. 술이 담고 있는 맛과 향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 품평의 마지막이 술 품평이라 흔히 말하지만, 나는 이 허약한 감각으로 감히 술 품평에 근접을 못 한다. 품평을 위해 가끔 서너 종의 와인 또는 서너 종의 막걸리를 한 자리에서 마실 때면 나는 코와 혀끝에 남는 그 조금의 냄새와 맛의 차이를 가르느라 정신이 혼미해진다. 겨우 한 가지 정도의 분별이 잡힐 때이면 취해 있기 마련이고, 그 다음은 유행가 가사대로이다. "취하는 건 마찬가지지."
▲ <태초에 술이 있었네>(김학민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
지은이가 서평을 꼭 내가 썼으면 한다고 프레시안 기자가 말하였는데, 기자가 청탁을 거절 못 하게 할 목적이었지 김학민이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와는 10년 전 즈음 나의 '불손한 초청'으로 딱 한번 잠시 인사만 하였을 뿐 어떤 인연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음식 칼럼니스트이고 나는 맛 칼럼니스트인 것이 인연이라면 인연일 것이다.
서평 청탁이 부담스러웠던 더 큰 이유는, 나는 술 맛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몇 년 사이 막걸리를 줄창 마셔 막걸리 책이면 그냥저냥 서평을 쓸 수도 있을 것인데, 기자가 전하는 책의 목차를 듣자니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술 이야기였다. 이를 어째, 잠시 고민타가 '술꾼이 주종 가리지 않듯 글쟁이도!' 하는 정신으로 받았다.
책을 받고 제법 꼼꼼히 읽었다. 평소 이런 '전공 서적'은 설렁설렁 읽으며 대충의 내용만 기억한 후 컴퓨터 옆에 두고는 글 쓸 때 참고할 뿐인데, 서평을 쓰자니 정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학민이 연재하는 짧은 글은 가끔 읽기는 하였지만 '통으로' 읽기는 처음이었다. 3분의 1 정도 읽자 "이거 '전공 서적' 아니네" 하였다. 그가 책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술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였다. 술은 소재였고 주제는 인간이었다. 술자리에 술은 있지만 그 술자리에서 나누는 것은 사람 이야기이듯. 그렇게 하여, 나는 그가 전하는 사람 이야기에 푹 빠졌다.
김학민은 민중을 압제하는 모든 권력에 대해 거북해하고 있다. 그의 민중 지향적 태도는 이념을 넘어 본능의 것으로 읽힌다. 권력이 술을 팔고 또 금지하는 것을 통하여 민중을 어찌 착취하고 억압하였는지 역사적 사실을 들어 풀고 있다. 산업 혁명 이후 노동자가 알코올 중독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일러주고, 유럽인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행한 '술 식민주의'를 더듬는다.
한반도에서의 술이 일제와 독재 권력 그리고 자본에 의해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도 알려준다. 그 권력의 폭압에 짓눌리고 맞서는 사람들의 술 이야기는 많은 부분을 현재의 것에서 가져왔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는 그와 그의 동지들을 '술자리를 빌려' 책 안에 그려놓고 있다.
김학민은 <난중일기>에서 본 이순신 장군의 과음을 말하면서 "싸움에 나아가 죽는 병사보다 병들어 죽는 병사, 굶어 죽는 병사가 더 많았던 전선 현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봉건 왕조의 부패와 무능 사이에서 (…) 술이라도 마시지 않았더라면 그 엄청난 스트레스를 어찌 이겨낼 수 있었을까?" 하였는데, 그 글에서 나는 '그 독재의 시절에 술이라도 없었으면 나와 내 동지들이 어찌 버티어낼 수 있었겠어' 하고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였다.
책에는 술에 관한 동서고금의 잡다한 지식이 나온다.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술과 얽힌 역사적 사건과 사실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짚는다. 그 내용들은 평소 김학민이 술자리에서 주종에 따라 사설로 풀던 이야기임이 분명할 것인데, 만약 그 술자리에 있었더라면 맥주를 마실 때면 개화기 때의 '피아'가 어떤 맛이었을까 상상하게 만들었을 것이고, 보드카를 마실 때면 러시아 민요 '스텐카 라진'은 독창이 낫네 합창이 낫네 하였을 것이며, 폭탄주라도 돌리는 날이 있었다면 대한민국 장군과 국회의원의 난장 술판에 대한 자세한 '보고'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김학민이 자주 다닌 여러 술집에 대한 품평은 자세하게 나오나, 술에 대한 품평은 그렇게 자세하지도 길지도 않다. 술집에 대한 품평도 어찌 보면 그 술집 주인에 대한 품평이라 할 수 있다. '술보다 인간'인 것이다. 주력이 길어 술에 대한 자세가 남다를 것인데, 이런 아름다운 구절이 눈에 띈다.
"막걸리 병을 마구 흔들어 섞는 것은 좋지 않다. 막걸리가 어지러워 정신을 잃는다." "직화에 주전자를 올려놓아 직접 데우는 것은 금물이다. 이렇게 해도 막걸리가 놀란다."
그의 눈에는, 술도 인간으로 보이는 게다.
술은 알코올에 몇 가지의 향과 맛이 섞여 있는 액체이다. 알코올이나 그 몇 가지의 향과 맛을 탐하는 술자리이면 술은 술일뿐이다. 취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뿐이다. 술의 의미는 그 술자리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며 그 취기를 어찌 즐기는가에 있다. 술이 동물의 것인지 인간의 것인지 나뉘는 지점도 거기에 있다 할 것이다.
<태초에 술이 있었네>는 술을 통한 인문학적 사색을 돕고 있다. 술꾼이면 마땅히 읽어야 할 것인데, 술자리를 인간의 것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먼저, 아직도 폭탄주 돌리기의 허세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의 덜 떨어진 권력 양아치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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