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이름은 왜 바뀌었을까? 기본적으로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과학 소설(SF)의 틀 안에서 "누가 나를 죽이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미스터리 구조를 충실히 따라가기 때문일 것이고, 두 번째로는 탐정이라는 존재가 19세기 말 처음 출현했을 때부터 정신분석학자, 의사, 과학자, 기계 그 자체, 혹은 전시대의 영매와 마법사를 대체할 수 있는 기능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 세 명의 예언자에게 애거서 크리스티, 아서 코난 도일, 대실 해밋의 이름을 선사한 건 추리 소설의 그 콘텍스트를 잘 알고 있는 누군가 윙크하며 던지는 작은 농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중 한 명의 예언자, 대실 해밋의 장편 소설 전 작품이 드디어 한국에 소개되었다. 그동안 <몰타의 매>(<말타의 매>라고도 하는)와 <붉은 수확>(<피의 수확>이라고도 하는) 두 권만 출판사를 달리하며 몇 번 번역되었지만, <데인 가의 저주>, <유리 열쇠>, <그림자 없는 남자>까지 한꺼번에 출간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야 비로소 (생각보다는 그렇게 많이, 오래 쓰지 않았던) 대실 해밋이 왜 하드보일드의 대표 명사로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대실 해밋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자동적으로 <몰타의 매>의 탐정 샘 스페이드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동명 영화가 워낙 유명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정작 이번의 전집을 다 읽고 나니, 샘 스페이드는 <몰타의 매> 단 한편에만 등장했다는 걸 깨달았다. <유리 열쇠>에서는 어느 정도 샘 스페이드와 닮았지만 좀 더 인간적인 면모가 강조된 네드 보몽이, <그림자 없는 탐정>에서는 잘 나가던 탐정 직을 은퇴하고 아내 노라와 행복한 가정을 꾸린 알코올 중독자 닉 찰스가 주인공이다.
▲ <대실 해밋 전집1 : 붉은 수확>(대실 해밋 지음, 김우열 옮김, 황금가지 펴냄). ⓒ황금가지 |
놀라운 건 데뷔작 <붉은 수확>이야말로 다시 읽어봐도 <몰타의 매>와 함께 대실 해밋의 걸작이자 하드보일드에 길이 남을 원형이라는 사실이다. 감정 묘사를 극도로 자제한 건조하고 빠른 문체, 비정한 분위기, 남성들끼리의 배신과 끈끈한 유대 등 하드보일드를 수식하는 익숙한 단어들 말고도, 탐정을 '성실한 직업인'에 위치시킨 변칙만으로도 미스터리의 패러다임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그 이전까지 범죄 소설계를 주름잡았던 정교한 미스터리 작가들, 애거서 크리스티와 도로시 세이어즈, 반 다인, 엘러리 퀸 등이 <붉은 수확>이 막 출간되었을 때 읽었다면 과연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를 송두리째 거부하고 부정하는 이 무시무시한 폭탄 같은 소설을.
콘티넨털 탐정 사무소에 소속된 나(소설 속에서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지만, 통상 '콘티넨털 옵'이라고 불린다)는 의뢰인 도널드 윌슨을 만나기 위해 광산 도시 퍼슨빌(Personville)에 온다. 사람들은 '퍼슨빌'이라는 이름 대신 꼭 '포이즌빌(Poisonvill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퍼슨빌에 도착한 그날 밤, 의뢰인 도널드가 거리에서 살해당한다. 콘티넨털 옵은 도널드의 아버지이자 퍼슨빌 전체를 소유한 노인 일라이휴 윌슨을 만나고, 도널드의 살인범 추적과 퍼슨빌의 '청소' 양쪽 모두를 제안 받는다.
이제 콘티넨털 옵이 살펴야 하는 주요 인물은 퍼슨빌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주름잡는 이들이다. 마을의 주류 사업을 휘어잡은 핀란드인 피트, 전당포업자 루 야드, 경찰서장 누너, 도박꾼 맥스 탈러, 돈을 엄청나게 밝히는 매춘부 다이나 브랜드. 콘티넨털 옵의 능란한 손놀림 아래 퍼슨빌은 점점 끓어 넘치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지옥문이 열린 것이다.
"포이즌빌이 날 환대해준 방식이 맘에 안 들거든. 이제 기회가 생겼으니 갚아줄 생각이오. (…) 이제 내가 그를 넝마로 만들 차례고, 바로 그게 내가 하려는 거요. 포이즌빌은 수확할 때가 됐소. 그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난 그 일을 할 거요." "만약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도널드 윌슨의 살인범은 98쪽에서 이미 싱겁게 밝혀진다. 이 소설은 총 350쪽이다. 나머지 252쪽은? 피의 살육전이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제목은 <피의 수확> 쪽이 훨씬 더 잘 어울릴법하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1890년대 코난 도일부터 시작하여 1920년대 애거서 크리스티에서 정점을 맞이한 '퍼즐형' 미스터리와 하드보일드 미스터리가 결별하는 지점이다.
'누가 그/녀를 죽였는가'라는 질문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챙길 게 많아진다. 그 죽음에 얽힌 콘텍스트를 하나하나 치고 들어 가다보면 이 죽음이 놓인 시간과 공간과 인물 모두가 중요해진다. 결국 그 살인이라는 치명적인 행위를 불러온 바로 그 시공간, 그때의 분위기가 훨씬 더 중요해진다. 하드보일드에 이르러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왜 그/녀를 죽였는가, 그/녀는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 다른 선택은 가능하지 않았는가. 대실 해밋은 <붉은 수확>을 통해 그 질문의 방향을 영원히 뒤틀어버렸다.
우선 퍼슨빌이라는 공간이 중요하다. 일라이휴 윌슨 노인은 이곳의 광업 회사와 은행의 사장 겸 대주주이며, 두 개밖에 없는 지역 신문과 다른 온갖 기업을 소유했다. 시장과 주지사와 수많은 의원들도 그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일라이휴 윌슨은 퍼슨빌 자체이며, 거의 카운티 전체와 다름없었다."
노인의 전제왕국과도 같던 퍼슨빌에 평지풍파가 일어난 건 노동조합이 생기면서부터다. 미국 최초의 산업별 노동조합 연합체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의 하부 조직에 속한 광산 노동자들은 윌슨 노인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를 들이밀었고, 노인은 그게 싫었다. 그는 회사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노동자들을 깔아뭉개기로 결심하고 외부 세력을 끌어들였다.
"양쪽 다 많은 피를 흘렸다. 조합원들은 바로 자신들의 피를 흘렸다. 하지만 일라이휴 영감은 총잡이와 파업 방해꾼, 주 방위군, 심지어 일부 정규군까지 동원해서 자기 몫의 피를 대신 흘리게 했다. 마지막 두개골이 깨지고 마지막 갈비뼈가 부러졌을 때 퍼슨빌의 노동자 조합원들은 다 터진 폭죽 신세가 되어 있었다."
노동자들이 떨어져나간 다음부터는 바로 그 외부 세력들이 퍼슨빌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퍼슨빌은 미국의 1920년대 산업화의 풍경을 공공연하게 압축시킨 장소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영국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새롭게 즉위한 미국은 유럽의 여타 국가들이 19세기 중반부터 차근차근 겪어온 근대화의 과정을 한꺼번에 빠르고 격렬하게 치러냈다.
그만큼 탐욕도 강했고 충격도 셌다. 합리성에 근거한 평등이라는 이상이 실현되는 건 요원한 듯 했다. 기업가들은 낡은 봉건제를 타파했다고 떠들어대면서 실상 자신들이 새로운 형태의 봉건제를 완성했고 그 안에서 강고하게 굳어진 계급 제도를 뒤흔들지 못하도록 갖은 수를 쓴다는 걸 모르는 체했다.
퍼슨빌은 그 자체로 시한폭탄 같은 분노로 뒤덮인 곳이었고, 콘티넨털 옵은 딴청을 부리며 성냥불 하나만 그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고는, 펑. 처음엔 작은 권총과 단검 정도로 시작했지만,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실제 폭탄으로 건물을 날려버리는 지경에 이른다.
공교롭게도 콘티넨털 탐정 사무소는 미국 최초의 사설탐정 업체 핀커튼 탐정 사무소를 곧바로 떠올리게 한다. 대실 해밋 자신이 핀커튼 탐정 사무소의 탐정으로 잠시 일한 적이 있으며, 콘티넨털 옵은 당시의 선배 탐정 제임스 라이트를 모델로 했다고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 핀커튼 탐정 사무소 역시 하나의 '용역' 업체로서 온갖 파업 현장에 투입되어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학대하는 역할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대실 해밋 역시 핀커튼 시절 아나콘다 광산 파업에 투입되었던 적이 있다. 그때 아나콘다 광산 회사 측에선 해밋에게 5000달러를 건네며 노동조합 지도자 프랭크 리틀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해밋의 연인 릴리안 헬먼은 자서전에서 해밋의 당시 기억을 이렇게 들려준다.
"그때 나는 해밋의 조용한 목소리 밑에 깔린 분노를 들을 만큼, 그 웃음 너머의 쓰디쓴 기분을 느낄 정도로 그를 잘 알지 못했다. (…) 이후 몇 년 동안 그는 그 뇌물 사건에 대해 되풀이 이야기했다. 그를 훨씬 잘 알게 된 다음, 나는 그 사건이 해밋의 인생을 관통하는 일종의 열쇠라는 걸 깨달았다. 즉 그때 해밋에게 살인을 사주할 수 있는 권리가 그 간부에게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셜록 홈즈 같은 안락의자 형 탐정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 그 당시 현실 속의 탐정들에게는 비일비재했다. 살인을 둘러싸고 정의를 추구하거나 진실을 폭로하는 고상한 경험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20세기 초반 거대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해 들어가는 복잡한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 나면, 그저 살인 사건만 되풀이 발생할 뿐 실제로 그 누구도 상처받거나 고뇌하지 않는 투명한 미스터리 무대에만 머무를 수가 없게 된다.
해밋은 <붉은 수확>을 통해 창조해낸 하드보일드의 세계에서, 돈과 권력은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된 것이며 거기서 나오는 지령 역시 타락의 속삭임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리하여 하드보일드 탐정들은 설령 타락한 부자들로부터 작업 비용을 지급받을지언정, 그들과 인간적인 유대를 맺는 게 거의 불가능해진다. 탐정은 오히려 그 부자들이 인간 이하로 생각하는 노동자와 마찬가지 상황에 처해있다.
탐정은 먹고 살기 위해 타락한 돈을 받아야하지만, 대신 맡은 일을 아주 철저하게 끝까지 밀어붙임으로써 자신이 받은 돈의 가치를 입증하고 그 직업적 자부심으로 자신을 위로해야 한다. 누군가 자신을 매수하거나 사주하여 최종 결론을 그르치지 않도록, 그는 누구도 믿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두뇌와 주먹만을 의지한 채 살아야 한다.
심지어 <붉은 수확>에서 콘티넨털 옵은 퍼슨빌 청소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하는 고민보다 회사에서 애초에 지시한 작업 내용 이상으로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감출까 전전긍긍한다.
"이 망할 놈의 도시 때문에 정말 환장하겠어. 얼른 벗어나지 않으면 나도 여기 인간들처럼 피도 눈물도 말라 버릴 거야. 지금까지 몇이지? 내가 여기 온 뒤로 살인 사건만 열댓 건이야. (…) 나도 한창 때는 꼭 필요할 때 한두 놈 해치우긴 했어. 하지만 이렇게 광적인 살인 사건에 엮인 건 이번이 처음이야. 여기서는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어. 처음부터 함정에 빠진 거야. (…) 만약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보스가 알면 날 기름에 튀겨버릴 거야. 이 망할 놈의 도시 때문이야. 포이즌빌이 맞아. 독의 도시라고. (…) 20년간 범죄를 다루다보니 어떤 살인 사건도 속사정은 일절 보지 않고 오직 수입원이자 일로만 볼 수 있게 됐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죽음을 계획하면서 흥분하는 건 나답지 않아. 바로 이 도시가 날 이렇게 만들어놓은 거야."
사건이 마침내 종결되고, "퍼슨빌에 계엄령이 선포되어 가시 하나 없는 달콤한 장미꽃밭"으로 바뀐 다음 콘티넨털 옵은 "법률과 탐정 사무소 규율을 덜 어기고 사람을 덜 잡은 것처럼 보이도록 보고서를 꾸미느라" 전력을 다하지만…. "보스는 결코 속지 않았다. 나는 보스한테 경을 치게 혼쭐이 났다." <붉은 수확>의 마지막 문장이다.
서구의 많은 범죄 소설 연구서들이 지적하듯, 하드보일드 소설은 당시 주된 독자층인 '백인 중하층 육체노동자'들에게 철저하게 초점을 맞췄고, 작가들은 자신과 탐정과 그 독자들을 동일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육전을 이끌어가는 스스로의 괴물 같은 모습에 공포를 느끼지만, 막상 사건이 끝나고 나면 탐정에게 남는 건 윤리적 책임감보다는 자신을 지켜보는 존재(회사, 경찰, 혹은 막연하게나마 사회)를 향한 자기 증명의 고민이다.
해밋의 또 다른 대표작 <몰타의 매>에서도 마찬가지다. 동료의 살인범과 대화하는 마지막 순간, 샘 스페이드의 가장 유명한 대사가 흘러나온다.
"당신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한번 얘기나 해보지. 잘 들으라고. 첫째, 파트너가 살해되면 사내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돼. 파트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아무 상관없어. 파트너였으면 뭔가 해야 하는 거지. 둘째, 그런데 우리는 하필 탐정 일을 하고 있었어. 자, 조직의 일원이 살해되었는데 살인자를 놓치게 되면 사업에 지장이 생겨. 다 안 좋지. 그 조직에도 안 좋고, 탐정 업계 전체에도 안 좋아. 셋째, 난 탐정이야. 나더러 범죄자를 잡았다가 그냥 놔주라는 건 개더러 토끼를 잡았다가 놔주라는 것과 똑같아."
<붉은 수확>은 그 자체로 폭탄이었다. 읽는 사람의 정신세계까지 황폐해지는 배신과 음모와 거짓말의 행렬과 피투성이 현장이 끝도 없이 지속되는 가운데 탐정이 묵묵히 직업인으로서의 임무를 추구하는 전혀 새로운 세계. 탐정은 이제 안락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비열한 거리' 한복판을 걸어가는 존재가 되었다. <붉은 수확>은 그 비열한 거리의 출발점이다. 레이먼드 챈들러와 로스 맥도널드, 마이클 코넬리와 데니스 루헤인 등 누구도 대실 해밋의 첫 발자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노파심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붉은 수확>이 '하드보일드'라고 해서 무조건 심각할 거라고만 지레짐작하면 곤란하다. 해밋의 다른 소설들에선 웃음기를 찾아보기 힘들지만(특히 <몰타의 매>), <붉은 수확>은 <그림자 없는 남자>와 함께 해밋의 무미건조한 유머 감각을 실컷 감상할 수 있다. (심지어 <그림자 없는 남자>는 영화 장르에 비유하자면 스크루볼 코미디에 가깝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
"그렇게 된 겁니다, 서장님. 나머지는 그때 제가 말씀드린 대로고요. 맥스가 그랬다고 얘기한 걸 들었다는 얘기만 빼놓은 겁니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입 닥쳐."
누넌이 소리치고 나서 책상 위에 있던 버튼을 눌렀다. 제복 차림의 경관이 한 명 들어왔다. 서장은 맥스웨인을 엄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자식 지하실로 데려가서 고문 전담반에 보낸 다음 가둬 놔." 맥스웨인은 필사적으로 "아우, 서장님!"이라고 간청했지만 경관은 그가 더 말하기 전에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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