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산천어 축제, 정말로 최선입니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산천어 축제, 정말로 최선입니까?

[기고] 산천어 축제를 보는 삐딱한 시선

산천어 축제는 모범 사례다. 콘텐츠 기획의 콘셉트 차원에서 훌륭할 수 있다.

한국에서 보통 겨울철에는 축제로 마땅한 게 없다. 날씨 관계로 실외 활동이 매우 제한적이다. 한국의 축제가 대부분 먹을거리 위주로 짜이기 때문에 겨울철은 더욱 불리하다. 눈과 얼음 정도가 축제의 매개물로 사용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각 지역별 특색을 갖추기 힘들다. 한국의 축제 대부분이 가족 체험 모델인데, 겨울철에는 이런 체험의 공간이 사라진다.

흔히 이런 축제에는 공간, 체험, 매개물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체험 환경을 만든다면 많은 비용이 요구된다. 따라서 적은 예산 대비 효과가 월등하려면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어야 한다. 리스크 회피를 위해서라면, 콘텐츠 자체를 차별화할 수밖에 없다. 공간과 매개물을 통한 체험이 다른 곳에서는 겪을 수 없는 내용이라야 한다.

겨울철 별다른 비용 없이 공간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은 얼음과 눈이다. 하지만 언제나 얼음이 얼어주고 눈이 내리는 것은 아니다. 이를 인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간다. 또 그 얼음과 눈도 제한적이다. 축제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비용이 발목을 잡으며 이는 다른 공간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화천의 해당 지역은 하천의 얼음이 자연 상태에서 두껍게 언다. 그 얼음의 두께도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가도 깨지지 않을 정도이다. 이런 얼음은 다른 지역과 차별적인 특징을 갖는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떤 기획 콘셉트로 활용하는가이다.

이런 자연 조건이라도 스케이트장으로 활용한다면 콘텐츠의 독보성을 담보하기가 어렵다. 스케이트를 타러 화천까지 올 일은 없으니까. 스케이트를 타러 가느니 스키장을 선호할 가능성이 많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제공해주는 것이 콘텐츠의 월등한 경쟁력이라는 점이다.

여름에는 물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낚시나 고기잡이다. 하지만 겨울철에는 이를 하지 못한다. 얼음과 추위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은 하고 낚시를 하고 싶어 한다. 이것을 부분적으로 충족시키는 활동이 얼음낚시다.

얼음낚시는 인간의 보편적인 사냥, 채집 본능을 충족시킨다. 아이들도 좋아할 뿐만 아니라 낚시 마니아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성들에게도 매력적이다. 얼음지치기와 함께 이루어지는 낚시는 가족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차별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여전히 과제는 있었다. 만약 화천에서 붕어나 잉어를 축제의 매개물로 활용했다면 사람들은 덜 찾았을 것이다. 잉어나 붕어는 다른 지역에서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원도 지역의 이미지 예컨대, 청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잉어와 붕어는 콘텐츠 자체에 유인의 매력이 떨어진다.

산천어는 청정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산천어를 접해 본 이들이 적은 것도 체험 제공의 독보성을 갖는 것이었다. 깨끗한 지역에 사는 희귀종 산천어를 잡는다는 콘셉트는 충분히 일반 시민에게 소구력을 가질 수 있었다. 원거리 방문에 상응하는 주변 전시 효과를 생각 해 본다면, 산천어는 요건을 충족하는 셈이다.

한국인들의 문화 심리도 고려의 대상이다. 한국은 전체적으로 산과 들이 맞물려 있는 사이로 강과 하천이 발달해 있다. 어린 시절부터 하천의 물고기 잡이는 친숙하다. 이 때문에 천렵에 대한 기성세대의 추억이 강하다. 3면이 바다인 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산업화로 실제 추억을 실현할 기회는 점점 사라진다.

이는 고갈한 어족 자원과는 반대로 천렵 욕구가 강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자연산이 부족할 때는 양식 자원을 통해서 대체한다. 오징어 축제의 경우, 오징어의 어획량에 따라 달라지는 측면이 있어 언제나 불안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자연산이든 양식어든 산천어 축제는 세대와 세대를 연결해주는 매개고리이다.

▲ 강원도 화천의 산천어 축제에 참가한 한 외국인. ⓒ뉴시스

그런데 여기에서 산천어 축제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양식 산천어는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한다. 이 때문에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실제로 축제 참여자들에게 손맛과 같은 만족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양식은 자연적 공급이 아니기 때문에 양식 산천어가 대한 의문점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일본산 산천어에 대한 논란은 이러한 본질적인 한계에서 비롯한다. 양식 산천어를 강원도 화천의 계곡에 풀어놓은 것은 실내 낚시장을 야외에 그것도 강원도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다만, 일반 근거리 지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산천어라는 차별성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산천어 축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을 인위적으로 부각하지 않고, 자연의 상태인 것으로 치장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산천어 축제는 인공적인 체험이라도 능동적으로 취하려는 대중의 심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그만큼 자연적으로 즐길 거리가 없다는 점을 나타낸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다른데 있는데 이는 산천어 축제만이 아니고 송어 축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고기 양식에는 많은 사료와 약품이 필요하다. 인공적인 물질을 통해 물고기를 길러낸다. 물론 그런 인공 물질은 수질을 오염시킨다. 또 물고기의 살 속에 축적되어 있다.

무엇보다 산천어 축제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벌써 100만 명의 참여자가 다녀갔다는데, 이들이 행한 행위는 살생이다. 비록 인공적으로 길러졌지만 산천어도 생명체이다. 산천어 낚시는 결국 생명을 죽이는 페스티벌이다. 무엇보다 이 축제는 가족 단위로 참여하는 등 어린이들이 많이 찾는다.

이 어린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살생이다. 생명을 기르고 보존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쾌감을 위해서는 산천어를 인위적으로 길러서 가두어놓고 손맛을 즐기게 해도 된다는 살생의 수단주의를 학습하게 한다. 이는 교육 체험을 표방하고 있지만 반교육적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살생의 확률이 적다. 하지만 수십만 마리를 담은 하천의 낚시는 살생의 가능성을 높인다. 살생의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할수록 살생을 하지 못했을 경우 실망을 하게 된다. 자연 상태의 낚시는 개체를 잡지 못해도 그럴 수 있다고 여긴다. 살생은 필수가 아닐 수 있음을 간주하고 있다.

낚시 자체가 주는 재미를 아예 금지할 것인가. 돈을 내고 물고기 개체를 잡고 다시 자연에 방생하는 친생명적인 축제는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나 산천어 축제는 어차피 인공부화의 양식 산천어이니 풀어주어도 돌아갈 곳이 없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