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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덩달아 벼락 맞은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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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덩달아 벼락 맞은 한나라당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한나라당의 딜레마

한나라당의 딜레마

중요한 사건의 용의자를 두 사람 붙잡아 놓은 검사에게 고민이 있다. 증거가 충분하면 둘 다 20년형이 되는데, 확보된 증거로는 1년짜리 불법 가택 침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백을 유도하기 위해 용의자를 따로 불러내 이렇게 말한다.

"너희 둘이 모두 자백을 거부하면 1년씩 살게 된다. 그런데 네가 자백을 하고 네 친구가 자백을 거부하면 그 친구는 20년을 살고 너는 방면한다. 네가 거부하고 네 친구가 자백하면 그 반대다. 둘 다 자백할 경우는 5년씩만 살게 하겠다."

이 제안을 분석해 보면 상황은 네 가지다. 둘 다 자백하는 경우. 둘 다 거부하는 경우. '갑'이 자백하고 '을'이 거부하는 경우. 그 반대의 경우.

둘 다 자백하면 두 사람의 형량은 합해서 10년, 한쪽만 자백하면 20년, 둘 다 거부하면 2년이다. 두 사람의 입장을 합쳐서 생각한다면 둘 다 자백을 거부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그런데 떼어 놓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다르게 보인다. '갑'으로서는 '을'의 자백 여부를 좌우할 수 없으니 '을'이 자백을 하느냐 마느냐는 하나의 외적 조건일 뿐이다. '을'이 자백할 경우 '갑'은 자백하면 5년이요, 거부하면 20년이다. '을'이 자백하지 않을 경우 '갑'은 자백하면 방면이요, 거부하면 1년이다. 어느 경우에나 자백하는 편이 거부하는 편보다 이익이다.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로 알려진 이 문제는 집단의 소속원이 개인의 이익만 좇아서 행동할 경우 집단 전체에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단순한 이익을 넘어서는 가치 기준이 있어야만 각자가 이익을 추구하다가 집단이 망해버리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런 패러독스를 느끼고 있지 않을까. 단결해서 총리 임명 동의안을 부결시킬 경우, 다수당으로서 한나라당의 위상은 확립되고 그 소속원은 의정 활동에 유리한 조건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충분한 단결을 이뤄내지 못할 경우 부결에 집착한 사람들은 큰 타격을 입는 반면 이탈한 사람들은 상대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총리 임명 거부의 한나라당 당론이 정책으로서 소속 의원들을 승복시킬 만한 설득력이 있으면 죄수의 딜레마를 면할 것이다. 과연 한나라당이 권력의 그늘에서 이익만 바라보고 모여든 이권 집단일 뿐인지, 아니면 뚜렷한 정책 노선을 추구하는 떳떳한 정당인지가 오늘 판별날 것 같다. 김종필 씨보다 한나라당 자신이 더 중요한 심판에 직면해 있다. (1998년)

▲ 지난 12월 27일 첫 회의를 연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뉴시스

14년 전 김대중 정부 출범 때 김종필 총리 인준을 둘러싼 공방을 보며 썼던 글을 들춰보며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당시의 나는 한나라당을 대단히 좋아하지는 않았어도 그 역할에 대해 다른 정당보다는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기대가 많이 줄어들어 있다.

내가 변하기보다 한나라당이 더 많이 변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보수주의자다. 그런데 그때는 보수 정당의 성격을 꽤 갖고 있던 한나라당이 지금은 하나의 범죄 집단 가깝게 되어 있다고 나는 본다. 14년 전의 한나라당에 범죄 집단의 성격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지금에 비해서는 정당의 기능도 꽤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보수 정당과 법죄 집단의 차이는 무엇인가. 보수 정당은 아무리 타락하더라도 존재하는 이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국민의 행복에 적극 공헌하지 못한다는 정도의 문제다. 그런데 존재하지 않는 이권을 억지로 만들어내기 위해 국민을 일부러 불행하게 만드는 지경에 이르면 정당이라고 할 수가 없다. 한갓 범죄 집단일 뿐이다.

4년 전까지 나는 한나라당 하는 짓 보며 답답해하는 일은 수없이 많아도 진심으로 분노하고 증오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이념이 좀 애매하고 효율성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하나의 정당으로 봐 왔던 것이다. 그런데 2008년 총선에서 국회를 장악한 후 이명박 정부의 범죄적 정책들을 눈감고 방조하는 것을 보며 더 이상 한나라당을 하나의 정당으로 여길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그 역할에 대해 분노하고 증오하게 되었다.

나는 분노나 증오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보수주의자를 자임하는 큰 이유가 정의감이 약한 데 있다고 공언한다. 5년쯤 전 몇 사람이 저녁 식사를 함께 하던 자리에서 얘기 끝에 한 변호사가 어느 헌법 기관의 한나라당 추천 구성원 하나를 놓고 마구 분노를 터뜨렸다. 아주 나쁜 사람이고 더러운 사람이므로 그런 기관에 넣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대꾸가 좀 삐딱했을까?

"우리 국민 중에 나쁜 사람과 더러운 사람들이 꽤 있죠. 그런 사람들도 헌법 기관에 대표를 가질 권리가 있을 것 같은데요?"

사람 사는 집에는 변소도 있고 쓰레기통도 있어야 한다. 인민의 필요에 부응하는 정당 중에는 변소나 쓰레기통 역할을 맡는 정당도 있어야 한다. 4년 전까지 내가 한나라당에게 기대한 역할은 기본적으로 그런 것이었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역할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더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역할.

그런데 18대 국회 들어 변소 역할, 쓰레기통 역할이 망가지고 깨어져 버렸다. '도둑적'으로 완벽한 이명박 세력이 정권을 쥔 결과라고 하지만, 한나라당의 타락 속도 자체도 눈부신 것이었다. 미디어 법 통과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통과까지, 대한민국의 실체를 지키려는 저항력을 한나라당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보수 정당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온 국민이 탐욕의 오물 속에 허우적거리지 않도록 막아주는 변소도 쓰레기통도 없어졌다.

"효용이 다 됐다"는 말이 한나라당 안에서 쏟아져 나온다. 무슨 놈의 정당 효용이 15년밖에 안 될 수 있나? 정당, 그것도 보수정당의 효용이 15년에 그치는 것은 잘못 운용했기 때문이다. 사용 설명서의 "정당을 이렇게 운용하면 안 됩니다." 주의 사항을 무시하고 마구 굴린 결과다.

"모진 놈 곁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고 나는 경고했다. 한나라당에도 진짜 모진 놈은 얼마 안 된다. 정신 있는 사람이라면 옆 사람이 이상한 짓 할 때 말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그런 시늉도 별로 없이 4년을 지내고 보니 효용이 다 됐다는 것이다.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 네 달 동안 안철수가 내놓은 정치적 메시지는 많지 않다. 그런데 그가 내놓은 가장 구체적 메시지 하나가 "한나라당의 세력이 더 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바로 이 메시지가 한나라당 비상사태의 촉매가 되었다. 한나라당을 괜히 미워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정치가 도덕에 너무 얽매이는 것이 좋지 않은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무도덕'을 나쁘게 여기지 않았다. 정치인이 자기 이익 챙기는 것, 나는 크게 탓하지 않는다. 벼락 맞을 짓만 않는다면. 그런데 벼락 맞을 짓 골라 하는 '부도덕'한 정권과 만났을 때 원칙과 상식을 지킬 역할을 일체 내버린다면 덩달아 벼락 맞는 수가 있다.

14년 전 한나라당이 처했던 상황과 지금 상황을 비교해 보자. 14년 전에는 꼬리만 잘 잘라내면 몸통을 살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당의 기본 기능은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로 잘려나가지 않으려는 경쟁이 있었고, 그것이 '죄수의 딜레마' 형태로 나타났다. 힘들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당내에서 길을 찾았다. 유지해 나갈 정당 기능이 있었고, 꼭 버려야 할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정당 기능이 너무 쇠퇴해 있다. 지난 4년간 여러 국가적 현안을 정책 기준이 아니라 정략 기준으로 처리해 온 결과다. 그래서 버려야 할 사람이 많다. 전에는 불량품이 섞여 있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독극물이 깊이 배어 있다. 죄수의 딜레마처럼 신뢰와 단결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잘라낼 것을 단호하게 잘라내야 정당 기능을 살려낼 수 있다.

분당이니 재창당이니 하는 것은 많이 잘라내겠다는 뜻이다. '재창당'이라면 '쇄신'을 아주 근본적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말인데, 결국은 '분당'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 쇄신에는 이탈이 따르기 마련이고 정말 재창당 수준의 쇄신을 행한다면 분당 수준의 이탈이 당연히 일어난다. 분당의 위협 앞에 주저한다면 한나라당의 정당 기능을 살려내기 어렵다.

암 세포를 잘라낼 때 전이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부위는 과감하게 잘라내야 수술의 성공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과연 재창당 수준의 쇄신에 성공할 수 있을까? 당사자들이 걱정하고 애쓰는 옆에서 불길한 말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성공을 기약하기 어렵게 만드는 한 가지 요인은 짚어주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만들기'의 집착이다. 대통령직의 과도한 권력 집중은 한국 정치의 가장 큰 구조적 문제점이다. 그 과도한 권력의 오-남용에 누구보다 철저했던 것이 이명박 정권이고, 그 정권과의 만남이 지금 한나라당 위기의 근본 원인이다. 이제 또 대통령 만들기에 명운을 걸면 세력 불리기에 또한 집착하지 않을 수 없고, 이것이 성공적 쇄신을 어렵게 할 것이 걱정된다. '정치공학'에 너무 매달리면 새 '정치철학'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야권을 보라. 대통령직에 '야심'을 가진 개인은 혹시 있을지 몰라도 그 야심이 야권의 흐름을 좌우하지 않는다. 한명숙, 이해찬처럼 큰 경륜을 인정받는 이들이 개인의 야심 없이 좋은 정권 창출에 성심성의를 다하고 있다.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문재인도 본인 야심이 아니라 상황에 떠밀려 그 자리에 와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권력 집중 완화 노력이 지금 야권에는 살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이정우를 만났을 때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들었다. 2004년 총선 때 정권 안팎의 인사들에게 '총동원령'이 떨어졌는데, 확실한 '열외'가 문재인과 자신, 둘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정치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야!")

지난 4년 동안 한나라당을 꽤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었지만, 한나라당도 우리 사회의 자산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한나라당의 타락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본색을 잃고 망가져 버리는 가운데 그중 본색을 잘 지킨 김성식마저 떠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무엇일까. 정치 공학을 뛰어넘어 정치 철학을 모색하는 변화를 한나라당에서 기대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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