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의 아담한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며 본 풍경은 시계를 수십 년 뒤로 돌린 느낌이었다. 196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봤을 승용차와 트럭을 개조한 버스 그리고 객실을 매단 자전거가 시내의 도로를 메웠는데, 거리의 시민들 표정은 한결같이 편안해보였다.
요시다 타로는 2004년 <생태 도시 아바나의 탄생>으로 쿠바의 도시 농업을 한국에 처음 소개했다. (그전에 타로의 글은 <녹색평론>에 처음으로 실렸었다.)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송제훈 옮김, 서해문집 펴냄)에서 요시다는 쿠바에서 이솝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개미와 매미'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그 사이 공무원에서 대학 교수가 된 요시다 타로가 말하는 이유는 이렇다. 베짱이처럼, 겨울철 먹을 게 없어 찾아가자 "내가 땀 흘리며 일할 때 너는 무얼 하고 있었지?" 하고 심술궂게 묻는 개미에게 매미는 "열심히 노래해서 모두를 즐겁고 신명나게 만들어주고 있었지"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일 밖에 몰랐던 개미는 깊게 반성하고 이제부터 함께 춤추며 살자고 약속했다는 이야기.
등 뒤에서 차가 덮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 거리에서 사람들은 여유로워진다. 다정한 친구와 천천히 움직이며 상가에 진열된 물건을 요모조모 살필 수 있다. '차 없는 거리'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가 대개 그렇다. 갑자기 어려워지더라도 누군가, 그 누군가가 국가든 이웃이든, 도와줄 거라는 신뢰가 있다면, 빈자든 부자든, 그의 삶은 편안해진다. 열광하는 관중을 향해 땀에 젖은 몸을 던지는 무대 위의 인디 밴드처럼, 누군가에 대한 믿음이 분명하다면, 시민들의 삶은 편안할 것이다. 우리 눈에 많이 남루한 쿠바에서 본 시민들의 모습이 바로 그랬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 대처할 여유도 없이 맞닥뜨려야 했던 배고픔을 도시 농업으로 극복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일러준 <생태 도시 아바나의 탄생>은 많은 한국 사람을 쿠바로 안내했다. 2008년 아바나 구시가지에 거치적거리는 아시아인의 대부분이 한국인이었으니 말해 뭐하랴.
한데 북한보다 형편없이 식량 자급률이 낮은 우리는 그 사이 변한 게 있나. 생각 있는 사람들이 옥상에 상자 텃밭을 들여놓거나 교외로 주말마다 농기구 챙겨 나가는 일이 다소 늘었지만 도시 유기 농업 단지는 언감생심이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강을 철근 콘크리트로 틀어막아 재해와 오염 위험을 높인 우리는 오랜 유기 농업 단지를 놀이 시설을 위해 매립하려 든다.
▲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요시다 타로 지음, 송제훈 옮김,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
요시다 타로는 "경제 성장을 이루며 에너지를 펑펑 쓰고 살아도 더 이상 사람들은 행복해지지 않는다. 더 검소한 생활을 통해서만 사람들은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 프랑스 정치경제학자의 '하강 개념'을 강조하며, 쿠바는 사회적 연대와 전통 지식의 부활에 힘입어 '부드러운 몰락'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석유 없이 상상할 수 없는 현대의 산업 문명은 장담하건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머지않았다.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이 이미 지나갔으리라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계는 분명하다. 석유가 희귀해지거나 아예 없어질 사회를 대비하는 행동이 벌써부터 필요했건만, 우리를 포함한 세계는 한사코 외면하고 있다.
<녹색평론> 최근호(122호)에 소개된 요르크 프리드리히스의 주장을 인용하는 요시다 타로는 역사적으로 석유의 급작스런 단절을 경험한 세 나라를 비교한다. 미국 석유에 의존하다 경제 봉쇄가 두려워 침략을 시도하다 큰 낭패를 본 1940년대의 일본과 소련 붕괴로 석유 도입이 차단되면서 해마다 굶주림으로 허덕이는 북한이 그렇다.
비극인 두 나라와 달리 쿠바는 연착륙했다. 소련의 패망 이후 유기 농업과 의료의 자급으로 쿠바는 '부드럽게 몰락'했다는 것이다.
국제 시세보다 몇 곱절로 설탕과 담배를 구입하던 소련이 무너졌을 때, 쿠바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행착오를 거치며 도시 유휴지와 자투리땅에 농작물을 심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식상하다. 본래 기름진 쿠바는 인구에 비해 땅이 넓다. 유기 농업을 받아들일 최상을 조건을 가지고 있다.
민간의 참여와 정부의 적극적인 배려로 도시에 농산물을 심어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된 배경에 공동체의 연대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중의 돈이 많은지 적은지 여부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 존중되며 배려되는 사회에서 자신이 소외될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은 시민들의 행동을 이끌었을 것이다. 이웃과 자식의 내일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은 먹을거리는 물론이고 의료와 주택의 자립으로 이어졌을 테고.
도시 유기 농업만이 위기 극복의 기재가 아니었다. 지구 온난화로 더욱 강력해지는 허리케인은 쿠바를 자주 관통했고, 제대로 보수할 수 없었던 주택들은 여지없이 허물어졌지만 결국 극복했다. 석유도 자재도 드문 쿠바는 때때로 속수무책이었어도 어느새 옛이야기가 되었다.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 건축가 프로그램'이 큰 역할을 했다. 기획과 설계 단계부터 집주인들의 의견을 반영하며 자긍심을 심는데 그치지 않았다. 자원이 부족할 뿐 아니라 허리케인의 피해가 많은 쿠바에서 자립할 수 있는 건축을 생각해냈다. 화산재와 대나무를 이용하는 건축을 실용하자 비용은 물론 이산화탄소 배출까지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늦지 말고 쉬지 말고 일하지 말고"로 표현되는 공무원에 의해 수행되는 과거 농장의 생산력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특징을 가진 다양한 종자를 보전하며 나누는 생태 농업으로 마을이 자급하고, 남는 걸 시장에 내놓으면서 아바나는 물론이고 지역 구석구석까지 만족하게 되었고, 삶의 자세도 달라졌다.
허리케인 희생자가 카리브 해의 다른 나라는 물론이고 미국보다 현저히 적은 건, 재해를 대비하는 음료수와 보존식품을 갖추고 예보에 임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요시다 타로는 말한다. 빈곤층부터 배려하는 그들의 공동체 자세라는데, 국가와 이웃에 대한 전폭적 신뢰가 바탕에 있기 때문이리라.
지속 가능한 건축을 연구하는 한 오스트레일리아 인은 "생활 수준은 선진국에 필적할 만하면서 환경적으로 검소한" 쿠바의 방식을 전 세계가 받아들인다면 지구는 지속 가능할 것으로 평가했다. 맞는 이야기일 테지만, 그렇다고 시민 사이의 불만이나 사회에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다.
미국의 자본주의를 경험한 세대는 드물어졌어도 코앞의 미국 문화가 여과 없이 전파되는 쿠바에서 돈의 위력은 클 수밖에 없다. 쿠바에서 실력을 쌓은 야구나 농구 선수가 미국으로 건너가는 행렬이 계속되고, 그들은 조국에 무시할 수 없는 돈을 부친다. 그리고 그 돈은 시민 사이의 빈부격차로 이어진다. 전에 없던 위화감이 조성된다.
시민들을 위한 일반페소로 근사한 가전제품을 구할 수 없다. 달러와 거의 1대 1로 교환되는 전환페소가 있어야 하는데, 외국 관광객이 사용하는 전환페소는 쉽게 손에 들어오지 못한다. 관광 가이드를 비롯해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상인, 숙박업소 종사자들이 전환페소를 얻을 수 있고, 전환페소를 위해 외국 남성에게 몸을 파는 여성도 드물지 않은 게 현실이다.
2008년 묵었던 호텔에서 은근히 다가온 지배인은 쿠바 산 시거를 내밀었다. 여러 불만에도 쿠바인의 표정은 밝았다. 미국이 코앞에서 으름장을 놓아도 낙천적인 건, 50여 년 전 악랄했던 독재 정부를 물리친 공산당 정부에 대한 지지뿐이 아니라 사회적 결속일 것이다.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한 자신의 저력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굳다.
지금의 쿠바처럼 느리게 살며 자연과 조화롭고 풍요롭던 에도 시대를 그리워하는 요시다 타로는 쿠바에서 일본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식량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하면서 낭비하는 우리의 대안은 무엇이어야 하나. 지금 대한민국은 몰락할 준비가 돼 있는가?
▲ 쿠바 산타클라라 인민위원회 앞에 있는 체 게바라 동상. ⓒ프레시안(손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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