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시험 감독으로 도서관에 대기하고 있던 그 애 부모와 이야길 나누었다. 미인이었다. 그 애는 둘째인데 언니와 동생은 엄마를 닮았다. 그분은 딸이 학교에서 어떻게 소외되는지 자세히 알고 있었다. 일부러 몸을 부딪치고 사과를 요구하는가 하면 다른 선생님들이 일거리를 줄 때 볼멘소리를 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난 뒤엔 "자식을 이해하면서도 네가 먼저 애들한테 다가가라"고 다그친다며 한숨을 쉬었다. 마침 얼마 전에 읽은 한 책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의 오랜 콤플렉스까지도.
캐롤린 매클러의 <뚱보 생활 지침서>(이순미 옮김, 보물창고 펴냄)는 가족 간 갈등을 통해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비만 소녀 버지니아의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예쁘고 잘생긴데다 모범생인 언니와 오빠는 언제나 비교 대상이다. 아빠는 마른 여자가 좋다고 대놓고 말한다. 어렸을 적엔 뚱뚱했지만 지금은 날씬한 청소년 심리학자인 엄마는 딸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비록 드러내놓고 뭐라 하진 않지만 칙칙한 색상에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특특대호 옷을 권한다. 침묵으로 하는 면박은 버지니아를 더욱 위축시킨다.
▲ <뚱보 생활 지침서>(캐롤린 매클러 지음, 이순미 옮김, 보물창고 펴냄). ⓒ보물창고 |
나의 콤플렉스는 몸이다. 청소년 시절, 나는 몸매를 가리고자 통바지를 입고 다녔다. 한 번은 농구하던 남자들이 나를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여자가 무슨 힙합이냐'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집에 들어와서 괜히 엄마한테 신경질을 냈다. 평소 무뚝뚝한 엄마는 꼭 저 같은 옷만 입는다고 일갈했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몹시 창피했다. 나는 꾸며도 우스꽝스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뿌리내렸다.
지금은 구두를 신는 아가씨가 됐지만 고역이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옷 가게를 간다. 간혹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이 기분 나쁘다. 나를 깔보는 걸까, 내가 우습게 보이나 생각이 꼬리를 문다. 부아도 치민다. 나라는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사실 뭘 사고 나서도 오래 입은 적이 없다. 외모 지상주의 시대에 여자로서 잘 꾸미지 못하니 스트레스가 심하다. 나는 책을 읽으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스스로 소외시키는 고립감, 그 끔찍한 자괴감이 낯설지 않았다.
나와 달리 버지니아는 비교적 발랄한 아이다. 말도 잘 하고 글도 잘 쓴다. 비슷한 점이 있다면 외모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척하지만 실은 마음이 여려서 잘 운다. 우연히 학교 화장실에서 들은 말에,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충격은 머리에서 가시지 않는다.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은 뚱보 생활 지침을 작성하는 것이다. 급기야 서로 좋아하면서도 남자친구를 밀어낸다. 그러다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평소 존경하는 오빠 바이런이 데이트 강간 혐의로 고소된다. 버지니아의 가치관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쉬쉬하는 식구 대신 여자를 찾아간다. 놀랍게도 그녀에게서 의외의 말을 듣는다.
"그날 밤은 내가 바이런을 통제할 수 없었어.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 한 일도 그렇고, 앞으로 미래의 내 인생은 내게 달려 있어. 사람들은 스스로 희생자가 될 수도 있고, 자기 자신에게 선택권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거야. 내가 선택권을 갖는 것."
새로운 정체성에 눈을 뜨게 된 버지니아. 그 동안 저만큼 잘 대해주지 않았던 오빠한테 처음으로 화를 낸다. 아빠가 제 몸에 대해 말하지 않게 하고, 엄마의 의견과 상관없이 원하는 옷을 입는다. 이미 집 밖에서도 하나 둘 변화는 일어났다. 자신을 욕한 퀸카 브라이와 당당하게 대화도 나눴다. 건강을 위해서 킥복싱을 배우고, 뭐든지 할 말 다하는 '지구꽥꽥'이라는 웹사이트도 만든다. 사랑도 되찾는다. 버지니아는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깨달았다.
"언제나 둥글둥글 토실토실, 살찌고 실력 발휘 못 하는 금발 가족의 일원이지 쉬리브스 가족의 일원은 아니라고 얼마나 절실하게 느껴 왔는지 생각해 본다. 그런데 이제는 공식적인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받았다. 그것을 내가 원하는지 아직 확신이 안 선다. '내가 원하는 것이면 꼭 한다'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 아닌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아마도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한다는 말은, 나 자신을 소중히 하되, 남이 나를 좌지우지하게 두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비록 오빠가 저지른 사건이지만 피해자에 대해 당연히 염려하는 마음을 지닌 뚱보 소녀가 세상에 경종을 울렸다. 버지니아는 알게 해줬다. 자신을 억압하는 기제가 무엇인지, 가깝다는 사람들이 나를 은근히 무시하진 않는지, 내가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당당히 거부해야 하는지…. 자조로 뒤섞인 뚱보 생활 지침서를 작성하는 일보다 좋고 싫음을 똑바로 감지하는 게 훨씬 나은 생을 보장해주리라. 나 또한 그 점을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완전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진 않았지만, 기분이 유쾌하고 용기가 솟는 듯했다. 도서관에 잘 오는 아이에게 이 책을 소개하고 싶었다.
비교 대상이 생판 모르는 사람이 아닌 가까운 형제일 때는 스트레스가 더 심하다고 한다. 학부모의 얘기를 듣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게다가 학교에서 받고 있을 눈총도 생각하니 그 애가 더없이 외로워 보였다. 그 애가 내게 건넨 손짓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애가 자주 하는 말 "오늘 반찬 맛있었어요"부터 "반에서 과자 파티한대요. 세 개 샀는데 벌써 용돈 다 썼어요.", "동생하고 싸워서 화해해야 해요"라며 돌아서던 쓸쓸한 발걸음까지 떠올랐다.
그러다 그 애를 꾸짖어 버렸다. 무슨 일로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아 지금에서야 더 미안할 뿐이다. 내 딴에는 자분자분 타일렀지만 역시 기분은 좋지 않은지 팽하니 돌아서는 뒷모습이 눈에 밟혔다. 며칠간 보이지 않다 나타났을 때 사과했다. 아이는 흔쾌히 나를 용서해주었다. 이젠 도서관을 지나칠 때마다 문으로 고개만 빠끔히 내밀고 일부러 인사한다. 급식으로 나온 귤도 살그머니 내 손에 쥐어준다.
책과 현실은 다르다. 훨씬 가혹하고 어렵다. 책이 마음을 위로해준다고 믿어왔지만, 그 애한테 뚱보라고 적힌 이 책을 아무렇지 않게 권해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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