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마다 우리는 극단적 현상 일부만 가지고 외부자적 시선으로 전체 무슬림 여성들을 판단하고 단죄해 왔다. 무슬림 여성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제대로 알고 싶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인류학자로서 그럭저럭 30년 이상을 중동 전역을 누비고 다닌 나로서도, 남녀 분리의 전통이 강한 분위기에서 그곳 여성들의 내밀한 정서와 진실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무슬림 여성들에 대해 언급만 해도 이슬람 사회를 너무 옹호한다는 핀잔을 듣곤 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무게 중심을 유지하면서 문화 다양성과 문화 상대주의로 있는 그대로의 이슬람권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찾아왔다. 그 기회를 신학자 현경이 만들어 주었다. 지난 5년간 17개국을 순례하면서 무려 200여 명의 다양한 무슬림 여성들을 만나고 고귀한 보고서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5년 전 어느 봄날, 나에게 여성들을 만나러 이슬람 지역 순례를 떠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의 결연한 의지와 장벽 없는 우주 같은 인간애를 확인했지만, 이토록 절절하게 현장의 진실을 담아올 줄은 몰랐다. 대단하고 고맙다.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을 잡는 순간 그냥 서평을 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말과 내용 대충 훑어보고 서평을 쓸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책에 빠져들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래서 두 번을 정독하고 나서야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현경은 현란한 미사여구나 어려운 신학적인 용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삶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그만의 언어를 쏟아낸다. 그냥 보고 느끼고 만나서 들은 이야기를 전할 뿐이다. 그런데도 그것은 시가 되고 영혼의 울림이 되어 우리를 감동케 한다. 꽉 막힌 오해와 미움의 벽에 구멍을 뚫는 화두로, 편견에 사로잡힌 우리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그것은 진리와 영성, 열린 사랑의 메아리이다. 그의 표현대로 우리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문명에 대해, 종교에 대해 '러브 스토리'를 쓰는 것이다. 갈등과 불신의 시대에 우리가 걸어 나가야 될 선연한 방향이다.
▲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현경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
현경은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 다양한 무슬림 여성들을 만났다. 우정은 섹스보다 중요하다며 서로에게 다른 애인을 허락하는 이집트의 여성 나왈과 그녀의 남편을 통해, 독재와 세속적 권위로 똘똘 뭉친 이집트 사회에서도 무한의 자유를 만끽하는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린다. 히잡을 쓰고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박사 학위까지 받은 중년의 터키 여성학자를 만나서는 성모 마리아 같은 아우라를 느꼈다고 했다. 시리아 여성 사나를 만나서는 일부다처의 또 다른 면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인다. 한 남자를 공유해야 하는 아내들의 불편한 관계, 자기 몫의 밥을 다른 여자가 퍼 먹을 때의 느끼는 불편한 심기를 우리는 이해하게 된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여자가 버림받고 사생아가 갈 곳 없는 서구 시스템보다는 훨씬 인간적이지 않느냐는 반문에는 문화 상대주의를 생각하게 한다. 강요된 결혼이 아닌 선택의 일부다처. 참 풀기 힘든 문제를 이 책은 숙제처럼 던져준다.
이 책을 통해 이슬람 세계 여성들이 자유롭게 이혼할 수 있고, 서구보다 여성들을 위한 사회 보장 장치가 우수하다는 사실은 알게 되고, 미국의 부랑아적인 행동에 대해 분개하기 보다는 웃어넘기면서 철없는 아이들의 미성숙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란 여성들이 여유로움도 배우게 된다.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의 여성 전용 모스크와 여성 이맘의 역할을 소개하면서도,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의 권위주의 정권이 만들어내는 억압과 모순의 대해서는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붓는다. 현경은 파키스탄의 물탄이라는 도시에 머무는 동안 그곳 사람들로부터 오사마 빈 라덴이 그 도시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받기도 한다. 파키스탄 정부가 적극적으로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해주고 있다고 주장하는 현지인들의 생각을 전한다. 만약 이 책이 미리 발간되었다면 오사마 빈 라덴이 더 일찍 잡힐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키스탄의 무크타르 마이의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소설보다 큰 재미, 잠언록에 버금가는 감동과 가르침을 얻게 될 것이다. 부족 간의 복수 전쟁에 희생양이 된 무크타르 마이는 상대 부족의 결정에 따라 수백 명의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4명의 남자들에게 공개적으로 강간을 당하고 처참하게 버림받는다. 분노와 복수의 힘으로 살아남은 그녀는 더 이상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여성들을 돕고 교육하는 일에 뛰어든다. 학교를 세우고 여성 폭력의 보호자로 활동하면서 결국은 또 다른 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7살 연하 남자의 두 번째 부인이 되는 성인의 경지에 도달한 여인이다. 이슬람 세계의 미래 여성상을 보여주는 가장 감동적인 만남이다. 그는 서구식 페미니즘이 갖고 있는 독점적 정의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다양한 무슬림 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그대로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면서 소통을 통해 폭력을 줄여나가자는 마이 여사의 호소에 한없는 존경을 보낸다.
현경은 이처럼 아무런 자각 증세 없이 반복되는 폭력적 고정관념은 물론 자기중심적 문화 우월주의에 대해서도 날 서린 질타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상대주의적 관점의 메아리가 아니다. 어떤 서구 여성도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무슬림 여성들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솔직하고 내밀한 진실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인다. 아랍 민주화 시위를 통해 이미 확인했듯이 아랍 이슬람 세계 곳곳의 구조적인 남성 중심의 부패 구조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고 투쟁하는 한 송이 장미 같은 수많은 무슬림 여성들을 발견하면서 우리는 감동하게 된다. 자신의 권리와 사회적 의무를 결코 방치하지 않는, 목숨을 건 커리어 우먼들의 진보적인 책임감과 정의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본다. 왜냐하면 현경이 만난 무수한 무슬림 여성들은 모두 미래를 향한 '긍정적 분노'를 잉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의 만들어진 횡포에만 익숙해진 탓에 우리 사회가 갖고 있던 단세포적인 무슬림 여성관에도. 이 책은 커다란 경종을 울린다. 이 책을 계기로 무슬림 여성 속으로 들어가 지구촌의 오랜 갈등과 오해의 벽을 허물고 부당한 폭력에 함께 맞서는 용기 있는 한국 여성들도 많이 나오리라 고대한다. 나에게도 앞으로 더 당당하고 자신 있게 강의할 수 있도록 커다란 지적 자극을 주었다. 그렇게 보면 가장 혜택을 많이 본 독자는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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