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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의 '변절'에 분노한 반탁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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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의 '변절'에 분노한 반탁 세력

[해방일기] 1947년 1월 11일

1947년 1월 11일

군정청 공보부는 미소공위 속개에 관해 치스챠코프 소련군 사령관이 하지 미군 사령관에게 보낸 1946년 11월 26일자 편지와 하지가 치스챠코프에게 보낸 12월 24일자 편지 내용을 1월 11일 발표했다. 앞서 1946년 11월 7일에는 8월 12일자 하지의 편지, 10월 26일자 치스챠코프의 편지, 그리고 11월 1일자 하지의 편지가 공개되었었다. (<조선일보> 1946년 11월 8일자)

미소공위가 1946년 5월 초순 정회에 들어가고 나서, 회담 주체인 두 사령관 사이의 공식 편지는 연말까지 8개월 동안 하지로부터 세 차례, 치스챠코프로부터 두 차례 있었던 것이다. 미군정은 회담 공전의 책임을 소련 측에 떠넘기기 위해 편지 내용을 열심히 공개한 것이다. 11월 7일의 첫 편지 공개는 소련에서 먼저 치스챠코프의 편지 내용을 공개한(<동아일보> 1946년 11월 3일자) 직후의 일이었다.

두 사령관 사이의 편지 내용은 정회를 앞둔 미소공위에서 옥신각신하던 문제의 연장이었다. 반탁 세력을 협의 대상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당시 소련 측 양보는 반탁 운동을 벌인 일이 있는 단체와 개인이라도 3상 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서약을 한다면 협의 대상으로 승인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서약을 해놓고도 또 반탁 운동을 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는데, 미국 측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이에 반대한 것이 결렬의 이유였다.

미소공위 정회 이후 이승만 세력이 분단 건국을 획책하며 3상 회의 결정 수정을 주장한 자취를 살펴보면 소련 측 주장은 타당한 것이었다. 미군정의 비호를 받는 남조선 우익 중에 미소공위 파탄을 바라는 세력이 분명히 있었으므로 반탁 운동 등 3상 회의 결정을 벗어나는 움직임은 미소공위 성공을 위해 통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회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지와 이승만 사이의 입장 차이도 드러난다. 하지는 미소공위로부터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고 싶었을 뿐이지, 궁극적 결렬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12월 24일 그의 편지에서는 정회 당시보다 조금 물러서서라도 회담을 속개시키려는 의지가 나타난다. 1월 11일 공보부 발표 중 치스챠코프의 제안과 하지의 수정 제안은 이런 내용이었다. (<동아일보> 1947년 1월 12일자)

치스챠코프의 제안

(1) 공동위원회는 반드시 조선에 관한 모스크바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민주주의정당 及 사회 단체와 협의할 것.

(2) 공동위원회와 협의하기 위하여 초청을 받은 각 정당 及 사회 단체는 적극적으로 모스크바 결정의 반대를 주장하는 데 동의한 대표자들을 임명하지 말 것.

(3) 공동위원회와 협의하기 위하여 초청을 받은 각 정당 及 사회 단체는 모스크바 결정 及 공동위원의 임무에 대하여 此를 반대 또는 반대할 의사를 가지지 않을 뿐 아니라 타인에게 此를 선동치 말 것. 만일 여사한 정당과 단체가 있을 때는 양국 대표의 상호 협정으로써 금후 공동위원회와의 협의에서 此를 제외할 것.

하지의 수정 제안

(1) 공동위원회 성명서 제5호에 서명한 것은 모스크바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성의를 성명한 것으로 간취되므로 서명한 정당과 단체는 최초 협의에 참가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2) 성명한 정당 또는 단체가 모스크바 결정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자당의 의사를 가장 잘 대표하여 주리라고 믿는 대표를 임명하는 것은 그 정당 또는 단체의 권리라고 미국 측에서는 사유하는 바임.

그러나 만일 해 대표가 모스크바 결정 실행에 있어서나 연합국에 대하여 상반된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공동위원회는 상호 협의한 후 성명한 단체로 하여금 다른 대변인을 선정케 할 것.

(3) 다음과 같이 문구를 수정하기를 제안한다.

"공동위원회와 협의하기 위하여 초청을 받은 개인 정당 及 사회 단체는 공동위원회 성명서 제5호에 서명한 후는 공동위원회의 임무에 대해서나 연합국에 대해서나 또는 모스크바 결정의 실천에 대하여 적극적 반대를 교사 선동하지 못함.

공동위원회 성명서 제5호에 서명한 개인 정당 혹은 사회 단체로써 공동위원회의 사무에 대해서나 연합국에 대해서나 또는 모스크바 결정의 실천에 대하여 적극적 반대를 교사 선동하는 자는 이후 공동위원회와의 협의에서 此를 제외할 것.

그리고 여사한 개인 정당 혹은 사회 단체를 제외하는 것은 공동위원회의 동의로써 此를 결정할 것."

(1)은 정회 전부터 합의가 되어 있던 내용이다. 그러나 (2)와 (3)에서는 미국 측이 '표현의 자유'를 절대시하던 자세에서 물러선 것이다.

왜 하지는 물러선 것일까? 미소공위 정회 후 좌우 합작을 지원하고 입법의원을 만드는 등 미소공위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는 데 주력한 것을 보면 하지가 미소공위의 결렬을 바라지 않은 사실은 확실하다. 그런데 소련 측은 협의 대상 조선인의 태도에 대한 기준을 바꾸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편지 내용 공개를 통해 미국 측의 무리한 입장을 선전하고 있었다. 물러서지 않는다면 일반 조선인들도 미소공위 공전의 책임을 미국 측에 물을 것이었다.

한편, 반탁 세력은 이제 더 이상 하지에게 믿을 만한 동지가 아니었다. 김구의 임시정부 세력은 원래부터 미군정과 껄끄러운 관계였고, 한국민주당(한민당)은 자기네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몽니를 부리고 딴죽을 걸 수 있는 집단이라는 사실이 입법의원 선거 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승만 세력은 미소공위를 파괴하고 단독 정부를 세우기 위해 하지 자신을 '빨갱이'로 몰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의 타협적인 태도에 대한 격렬한 반응이 우익 정당과 단체들로부터 쏟아졌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1947년 1월 14~15일자)

◊ 독촉국민회 : "지난 12월 24일부 하지 중장이 공위 속개에 대한 치스챠코프 상급대장에 회신한 내용은 조선 민족의 의사를 전연 무시하였을 뿐 아니라 조변석개로 미국의 위신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조선 신탁 관리 문제는 미소 양국의 피차 세력 균형상 필요로 제안된 것임을 잘 알고 있는 조선 민족은 미소 양국의 각축 틈에 희생되어야 할 의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주 독립을 갈망하는 조선 민족으로 내정 간섭을 감수할 리 없다. 미소 양국의 정치 이념과 목적이 근본적으로 상극되고 있어 이로 인하여 조선 민족은 과거 1년 반 동안 비참하게도 희생되어 왔으나 만약 하지 중장이 과연 조선 독립을 원조할 성의가 있다면 당연히 조선 문제를 유엔(UN)에 상정하자고 본국으로 건의함이 당연하였을 것이다. 조선의 애국 동포는 신탁을 전제로 한 공위는 절대 거절할 것이다."

◊ 민통 : "하지 중장의 소위 타협안은 여태 자기가 주장하여 오던 정당한 이론을 자기 손으로 말살하고 조선인에게 신탁 통치를 강요하는 소련과 악수하여 조선을 신탁의 철쇄에 얽어매고 양국이 간섭함으로서 양국의 국제적 마찰을 피하고 열강 간여의 이조 말년을 재연시켜 조선을 국제 노예화시키려는 국제 모략의 성공이다. 자주 독립을 원하는 조선 사람의 절대 다수와 민족 진영의 제 단체는 신탁을 전제하는 일체의 모략 기관에 참가하지 않을 것을 언명하고 조선의 완전 자주 독립을 위하여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것을 성명한다.

미소공위가 일부 소수의 반역도와 더불어 임정을 조직한다는 것은 왜적의 총독부가 우리의 정부가 아니던 것과 같이 괴뢰 이외의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며 자주 독립을 원하는 조선 민족은 또다시 과거의 투쟁을 되풀이 할 것을 각오하여야 할 것이다. 미국 측 및 하지 중장의 우리 민족 전체를 위한 종래의 호의와 신념이 변경된 것은 우리의 심히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 전국학생총련 : "1) 去年 11월 26일 북조선소련주둔사령관 치스챠코프대장과 12월 24일부 남조선미군주둔사령관 하지중장의 교환서한 내용을 우리는 반대한다.

2) 1945년 12월 30일 하지 중장의 전국 방송 及 미 국무장관 방송에 삼상 협정에 대한 해석과 1946년 4월 27일 하지 중장과 아놀드 장군이 공위 제5호 성명 선언서 서명에는 찬탁 반탁의 언질이 없다는 증명과 제2차 미소공위 결렬시의 하지 중장이 세계에 성명한 한국 독립에 대한 성의는 금번 서한으로써 그 모순이 나타났다."

◊ 한민당 : "하지 중장의 제안은 실질에 있어서 신탁 통치를 찬성하는 정당과 사회단체에 한하여 협의의 자격을 허하자는 소련 대표의 주장에 대한 전면적 양보라 할 수 있다. 모스크바 협정의 이행과 상반되는 정당과 사회 단체의 대표를 거부하자는 것은 결국 신탁 통치에 대한 언론 자유를 봉쇄하자는 것이다. 본당은 3000만 조선 민족의 독립의 정권과 세계 평화 재건의 근본 원칙인 민족 자결의 대의에 의하여 하지 중장의 이 제시 조건을 반대하는 동시에 원래 조선의 민주 정당과 사회단체로 더불어 조선 원조(신탁)의 방안을 안출하기로 규정한 모스크바 결정은 그 자체의 조항에 의하여 신탁 통치안을 조선 민족의 총의의 반대로써 자연 해소된 것을 성명한다."


1월 13일 우익 31개 정당-단체 명의로 채택한 "연합국 원수에게 보내는 메시지"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조선일보> 1947년 4월 15일자)

"경애하는 각하! 우리 민족은 과거 1年有半 연합국의 후의에 신뢰하여 미소공위를 통하여 독립을 획득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금일의 사태는 민족의 인내성을 무제한으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승만 박사를 UN 총회에 파견하여 민족의 실정을 세계에 호소하는 동시에 급속한 자주 독립을 전취하려 한 것입니다.

영매하신 각하께서는 이 박사의 조선에 관한 모든 발언과 발표가 우리 민족 전체의 부르짖음이라는 것을 확인하여서 조선의 분열을 초래한 얄타 비밀 협정을 폐기하고 모스크바 결정 중 신탁 통치 조항을 삭제함으로 우리 민족의 노예적 환경을 면하게 하는 동시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 땅에 건설하고 이 나라로 하여금 완전한 자주 독립 국가를 만드는 데 크신 공로가 있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하지의 '변절'에 대한 지지의 목소리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 민전 : "우리는 소련 측 대표 치스챠코프 장군의 제안이 가장 정당하다고 지지한다. 이에 대한 하지 중장의 회한에는 제5호 성명에 서명한 것은 모스크바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한 것을 간취되므로 서명한 정당 단체는 전부 최초 회의에 참가할 자격이 있다고 말하였다. 진심으로 이 결정을 지지하는 정당 단체만을 참가시킬 것이다." (<조선일보> 1947년 1월 14일자)

◊ 청우당 : 청우당에서는 공위 속개의 기운이 농후하여 가는 이때 남북 통일과 임시 정부 수립을 겁내는 분자들의 음모에 의하여 정치적 견식이 박약한 군중을 이용하여 공공연하게 공위 속개를 방해하는 언동을 감행하는 것은 단연 용서할 수 없다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신진당 : "반탁 운동과 삼상 회의 전면 지지 운운하는 것은 양자가 다 독립의 길을 가로막는 자멸 행위이니 각 정당 단체는 의견을 일치하고 협력적 공동 전선을 취하여 독립 전취를 도모할 것이다. 각 정당 단체가 일치 협력한다면 미소공위는 속개될 것이요 임정 수립과 동시에 탁치 문제는 자연 소멸될 것이다." (<조선일보> 1947년 1월 16일자)

하지는 1월 16일에 성명서로 재차 입장을 밝혔다.

"나는 남조선에 있는 일부 정당들이 모스크바 결정 중 소위 신탁에 대한 반대뿐만 아니라 조선에 있어서 미국인의 노력을 불신임케 하려고 남조선에서 시위 선동할 광범한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선동은 남조선에 단독 정부가 수립되면 조선의 통일을 가능케 하고 동시에 모든 국제 문제도 외국의 원조 없이 능히 해결할 수 있다는 악선전에 기인된 것같이 보인다. 나는 다음 제점(諸點)을 전 조선 국민에게 지적하고자 한다.

1) 조선은 연합국의 막대한 희생과 그 힘으로 일본 압제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리고 연합국은 조선의 자주 독립을 약속하였다.

2) 엄정한 국제적 협정에 기인하여 조선 임시 정부 수립을 위하여 미소공위를 재개시킬 교섭도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조선인들이 자기의 정부를 수립하는 데 있어서 자유 의사 발표를 주장하는 미국 측의 의사는 변함이 없다.

3) 작년 봄 미소공위가 개최되는 동안 국제 정세를 무시한 몇 사람의 국내적 혼란과 오도된 정치 행동에 의하여 조선 임시 정부 수립이 벌써 수개월간 지연된 것은 사실이다.

4) 조선 자주 독립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합국의 일반 여론은 조선 문제에 대하여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조선의 독립이 하루바삐 달성되기를 원하고 있다.

5) 미국 정부는 재삼 공적으로 조선의 독립을 약속하였고 또한 그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하여 만전의 노력을 하고 있다.

6) 미국 사람들은 조선 독립이 지연된 것을 잘 알고 이에 중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동시에 조선 독립 촉진을 위하여 일층 더 노력하고 있다. 지금에 있어서 이미 조선 사람은 독립을 요망한다는 시위나 소요는 필요가 없다.

7) 남조선에 있는 일부 오도를 받은 정당의 경솔한 행동은 조선 문제에 다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의 친선을 이간하고 또 그 국가들로 하여금 조선 민족은 그 자주 독립을 완성시키려고 조직된 기관에 협력하지 아니하므로 조선은 독립할 준비가 되지 못하였다는 관념을 주게 될 것이다. 조선에 관하여 다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본관 및 미국민은 조선 독립의 호기를 잃은 조선 사람들의 불온한 시위와 행동에 대하여는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본관은 모든 오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전적으로 노력을 다하겠다. 그러나 조선인 간의 무질서 폭행 악질 선전은 조선 독립을 약속하여 준 제국가로 하여금 그 동기를 의심케 하고 조선 민족의 대망인 자주 독립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언하거니와 오도된 조선 단체들의 경솔한 행동은 장래 국제회의에 있어서 조선 전도에 유해할 것이다." (<동아일보> 1947년 1월 17일자)

인용한 신문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바로 가기 :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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