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본격적인 활동은 8월경부터 시작되어 각 분과위원회 별로 2~3차례 예산 학습 모임을 진행하였으며 10월 19일 '2012년 본예산 편성 방향 및 재정 현황 설명'을 시작으로 분과별로 1차 회의에서는 담당공무원들에게 예산 설명을 듣고, 2차 회의에서는 토론을 통해서 예산에 대한 분과별 의견을 작성하였다. 이렇게 작성된 의견을 임원 간담회에서 공유한 후, 10월 28일 참여 예산 시민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2012년 본예산에 대한 시민위원회 의견'이 확정되었다.
▲ 참여 예산 시민위원회 전체 회의. ⓒ김기현 |
주민 참여 예산 범위와 수준에 대해서는 몇 차례 토론을 거쳐 부천시 예산 약 1조800억 원 중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 국·도비와 연계된 예산 외에 자체 예산 약 300억 원을 대상으로 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자체 예산 300억 원 중 교육 경비(약 163억), 민간 이전 경비(약 110억), 동 소규모 주민 편익 사업(약 37억)에 대해서는 편성권을, 기타 자체 사업에 대해서는 의견 제출권을 시민위원회에 부여하기로 하였다.
▲ 2012년 부천시 예산 편성 주민 참여 예산 활동 결과(단위 : 억 원). ⓒ김기현 |
내가 참여했던 자치행정위원회의 경우 약 163억 원의 교육 경비가 포함되어 있었다. 지난 6·2 지방 선거에서 선출된 많은 지방자치단체장은 심각한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교육 경비 증액을 공약한 바 있으며 부천시의 경우에도 매년 증액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교육 경비는 부천시에서 기본 방향과 예산 규모를 정하여 교육청에 통보하면 교육청에서 각 학교와 협의하여 기본 계획을 입안하고, 하드웨어 개선 사업의 경우 교육청에서 일차 정리한 내용을 부천시 담당 공무원이 현장 방문을 통해서 우선순위를 정한 후 부천시의회에 상정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교사, 학부모, 학생의 참여가 제한적이어서 장작 꼭 필요한 사업인지, 우선순위가 적절하게 배분되었는지,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예산이 왜곡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자치행정위원회에서는 하드웨어 개선 사업 중 9개 학교를 직접 현장 방문하였다. 현장 방문에서 특히 문제가 되었던 예산은 S고등학교 기숙사 증축 예산 30억 원(시비 15억, 교육청 15억), J중학교 소회의실 조성 1억3000만 원(시비 6800만 원, 교육청 6800만 원)이었다.
기숙사 증축 예산은 부천 지역 우수 학생들의 과학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등 외지 유출을 막고, 명문 학교를 육성한다는 것인데 부천 지역 거주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숙사를 운영하며 학력 증진을 시킨다는 발상, 학생 1400여 명 중 기숙사 입소 학생 80~100여 명을 선발하는 기준과 상대적으로 고가인 기숙사비 문제, 기숙사 입소 학생을 위하여 지속적인 예산 투입의 문제 등 심각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J중학교 소회의실은 해당 학교에게는 필요한 시설이나 구도심 지역의 낙후된 수많은 학교에 비하면 상당히 좋은 교육 환경이 이미 갖추어진 곳에 또 다시 추가적인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물론 현장 방문을 하다 보니 의욕적인 교장 선생님을 만나기도 하고, 예산의 적절한 배분에 공감한 곳도 있었다. 결국 자치행정위원회에서는 문제가 제기된 두 곳 다 전액 삭감 의견을 제출하였다.
민간 이전 경비 중 논란이 된 것은 국민 운동 단체(새마을운동중앙회,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자유총연맹, 자연보호협회)의 행사성 경비였다. 부천시의 경우 약 8억 원의 예산이 사회 단체 보조금으로 편성되어 있고, 비영리 단체가 사업 계획을 제출하면 사회 단체 보조금 심의위원회에서 작년 사업에 대한 평가와 사업 계획에 대한 심의를 통해 예산이 배정된다.
그런데 몇몇 국민 운동 단체의 행사성 경비는 민간 행사 보조로 별도로 편성되어 특별한 평가와 심의없이 집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시민 단체, 국민 운동 단체,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자치행정위원회에서는 심각한 논의 결과 새마을국민교육비 약 1500만 원에 대해서만 전액 삭감 의견을 제출하였다. 그 외에도 판타지아 부천컵 연예인 축구 리그 1억 원, 부천시의회 의장기 생활체육대회 4000만 원 등 행사성 경비에 대해 전액 삭감 의견을 제출하였다.
타 위원회에서 제기된 문제 중 쟁점이 된 것은 김치 체험관 조성 사업비 3억 원 전액 삭감, 기업 사랑 한마당 축제 예산 대폭 삭감, 청소업체 환경미화원 인건비의 투명성 제고 등이 있었는데 시민위원회의 의견이 대부분 수용되어 2012년 부천시 예산이 편성되었다.
▲ 동네 한바퀴 후, 우리 동네 문제를 토론하는 시민들. ⓒ김기현 |
내가 참여한 만큼 지역이 바뀐다
"'도시는 전문가가 만들고 나는 살고 있을 뿐이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 도시의 시민으로서 당신이 하는 일상의 하나하나의 행위가 도시를 만든다. 어떤 집을 선택하느냐, 어떤 길을 걷느냐, 어떤 일을 하느냐, 어떤 물건을 사느냐,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노느냐, 이 모든 것이 도시를 만드는 행위다.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동기들에 의해 매일매일 움직이면서 오랜 시간 동안 만든다는 점에서, 사람이 만드는 것 중에 가장 복잡한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 읽는 CEO>(김진애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도시는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시민 다수가 친환경적인 도시를 원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그것을 요구하면 그 도시는 점차로 그렇게 변한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것을 체감하는 시민이 많지 않다. 현실은 이와 반대로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도시의 미래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각종 조직과 단체의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기득권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 참여 예산에 많은 시민이 참여하면 이 과정이 바뀌게 된다. 지금까지 1조800억 원에 이르는 부천시 예산에 소수만이 (은밀하게) 영향력을 미쳤고,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은 그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과정이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시민들에게 열려있다.
예산 낭비를 문제 제기하든, 새로운 예산을 제안하든, 하나하나의 의견이 시민위원회와 시 집행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검토되고, 그 결과가 제안자에게 공식적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투명하게 진행된다.
따라서 주민 참여 예산이라는 열려 있는 가능성을 더 쾌적한 학교, 더 나은 놀이터, 더 알찬 도서관, 나무와 꽃, 개울 등 녹지 공간의 확보, 안전한 보행길,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등 현실적 성과로 만드는 것은 시민 참여에 달려있다. 지금까지 공무원과 시의원이 각종 도시 문제(개발, 환경, 교통, 복지, 보육, 청소 등)를 결정하는 것을 지켜만 보았다면 이제는 나 스스로가 도시의 주인으로, "내가 참여한 만큼 지역이 바뀐다"는 생각으로 나서야 한다. 열려 있는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전환시키는 것, 그것은 시민들과 시민 사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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