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망가진 삶! 나의 멘토는 달팽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망가진 삶! 나의 멘토는 달팽이!

[2011 올해의 책] 엘리자베스 베일리의 <달팽이 안단테>

'프레시안 books' 송년호(71호)는 '2011 올해의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프레시안 books'가 따로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대신, 1년간 필자·독자·기획위원으로 참여한 12명이 각자의 '올해의 책'을 선정해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장르의 이 책들을 2011년과 함께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몇 달 전 어느 날이었다. 늦은 밤에 그 날 놓쳤던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들이 이어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 친구의 글이 눈에 번쩍하고 들어왔다. <달팽이 안단테>(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지음, 김병순 옮김, 돌베개 펴냄)라는 책에 대해서 한 친구가 '손이 오그라들도록' 극찬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읽은 올해 최고의 과학책이라나.

사람들이 뭔가에 대해서 극찬을 할 때는 보통 이성을 잃고 자신의 자그마한 주관적인 경험을 투사해서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보다는 일단 한걸음 물러나서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곤 한다. 사실 나는 <달팽이 안단테>가 나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랑하는 친구의 극찬이니 무시하고 넘어가지 못하고 다음 날 이 책을 사고야 말았다.

책은 샀지만 이 책은 좀 묵혀두었다가 그 친구의 극찬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좀 지워진 다음에 읽어야지 하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친구를 만났을 때 또 그 책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나는 결국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달팽이 안단테>의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 친구에 대한 나의 사랑이 나의 신념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책에 바로 매료되었다. 베일리의 차분한 문체에 빠져들었다.

병상에 누워 있는 베일리에게 친구가 달팽이 한 마리를 가져다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친구의 트위터 한 구절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샀고 나의 독서도 시작되었다. 달팽이와 베일리의 동고동락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집 마루에서 큰 창을 통해서 쳐다보던 까치집 생각이 났다.

▲ <달팽이 안단테>(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지음, 김병순 옮김, 돌베개 펴냄). ⓒ돌베개

어제도 까치 한 마리가 나뭇가지 하나를 물고 와서 한 시간이 넘도록 앉아 있다가 갔다. 아마 집을 짓기에 적당한 곳인지 탐색을 했던 것 같다. 까치가 집을 짓는 것을 보고 새끼 까치들이 날아오르는 것을 보는 것을 보는 재미는 우리 가족이 공유하고 있는 숨은 자랑이다. 베일리의 달팽이 관찰기를 보면서 느닷없이 까치 생각이 났다. 공명을 일으키면서 <달팽이 안단테>를 읽었다. 그리고 마치 암수한몸이 된 것처럼 독서를 했다. 흥건히 책 속에 빠졌다가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다 읽었는데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감흥의 여진이 오래도록 몰려올 뿐이었다.

그런데 또 막상 서평을 쓰려니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책을 다시 꺼내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읽었다. 그런데도 별로 할 말이 없다. 처음 읽을 때의 감흥이 다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뭉클한 마음이 나를 휘몰아갔다. 결국 나는 이 책을 감흥으로만 독서하고 분석적으로 읽어내지 못할 숙명인가 보다.

더 울컥하기 전에 감흥의 여진을 좀 기술하고 이 글을 서둘러서 마무리해야겠다. 이 책이 올해 최고의 과학책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친구 말에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달팽이 안단테>가 그 친구와 나에게 올해 최고의 감동과 공감을 주었던 책이라는 데는 100퍼센트 동의한다.

<달팽이 안단테>는 앞으로 내달리라고 등 떠미는 책이 아니라 조용히 앉아서 뒤를 돌아보라고 손짓하는 책이다. 연말에 읽기에 딱 좋은 책이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위로하고 싶은 사람에게 속삭이듯 읽어주고 싶은 책이다. 달팽이처럼 느릿하게 찾아와 나에게 스며들며 나를 위로한 책이다.

"달팽이의 타고난 느린 걸음걸이와 고독한 삶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의 시간 속에서 헤매던 나를 인간세계를 넘어선 더 큰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달팽이는 나의 진정한 스승이다. 그 아주 작은 존재가 내 삶을 지탱해주었다."

나는 지나친 감정이입과 몰려온 감흥 때문에 결국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을 공감하는데 실패하고 말았지만, 사실 <달팽이 안단테>는 달팽이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이고 디테일하게 묘사한 훌륭한 달팽이 관찰기이기도 하다. 독서가 중에도 멀티플레이어가 있다면 감흥과 묘사를 모두 놓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