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교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것을 실천한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지만 다음날 언론의 보도는 기부라는 행위 그 자체보다는 그 이면에 숨은 정치적 의도를 과잉 해석하기에 급급했다. 일부 언론은 "안철수 식 정치 출사표", "정치권 진출 신호탄 해석"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마치 안철수 교수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그 달은 보지 않고 가리키는 손가락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정치인의 말과 행동에 대해 언론은 물론 대중들도 행위 자체보다는 행위의 정치적 의도를 읽는 데 익숙했다. 그리고 이는 어느 정도 타당했다. 정치인들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그 달을 쳐다보다가는 배신감을 느끼기 십상이었다. 많은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였고, 그 정치적 의도 속에서 말은 '들러리'인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안철수 교수의 기부를 놓고 다수의 대중은 '기부'라는 그의 행동, 즉 그가 가리키는 '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반면, 보수 언론을 위시한 지배층은 여전히 '손가락'에 주목하고 있다. '안철수'라는 인물을 놓고 대중의 평가와 주류 정치권의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차이가 바로 여의도 중심의 기성 문법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자, 이 차이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자.
브랜드, 스토리, 정체성을 통해 안철수를 해부하기
그동안 안철수 교수는 책, 인터뷰, 그리고 청춘 콘서트 등을 통해 일관된 메시지를 제시했다. 이번에 나온 <안철수 경영의 원칙>(서울대학교출판부 펴냄)도 그동안 나온 메시지와 거의 다르지 않다. 다만 이 책이 주목받는 것은 '전문가 안철수'가 아니라 '정치인 안철수'로서 달라진 위상과 기대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안철수 경영의 원칙>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안철수 현상'이라는 콘텍스트를 해독하는 작업인 셈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 요건, 즉 브랜드, 스토리, 정체성이라는 축을 통해 '정치인'으로서 안철수의 가능성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같은 메시지라도 안철수가 하면 다르다?
▲ <안철수 경영의 원칙>(안철수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부 펴냄). ⓒ서울대학교출판부 |
<안철수 경영의 원칙>에 따르면 안철수 교수는 안철수연구소를 본격적으로 경영하면서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질문들을 다시 곱씹어 제기했다고 한다. 그 첫 번째 질문은 "왜 사람들이 모여서 일할 필요가 있는가? 지금까지 난 나 혼자 일해서 충분했는데"였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크고 의미 있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 여럿이 모여서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고 답을 내린다.
두 번째 질문은 "회사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였다. 이에 대해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라는 것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존재"라고 답한다. 이 두 가지 해답은 그의 경영의 원칙이 '공존'과 '공익'에 토대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 번째 질문 "기업의 목적은 수익 창출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수익 창출은 기업의 목적이 아니라 '기업 활동을 열심히 한 결과다'라고 말한다.
사실 이는 한국 사회의 수많은 노블리스들이 반복해온 메시지이자 원칙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언급이 상투적으로 들리지 않고 신뢰감을 주는 이유는 바로 안철수라는 인물이 보여준 삶 자체가 '가치를 위한 실천'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사는' 보기 드문 인물이이다. 그는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우울한 청춘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자 했다. 같은 메시지라도 안철수가 하면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공익', '공존', '공감'의 실천, 즉 그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아우라' 때문일 것이다.
안철수라는 브랜드가 '신뢰'를 의미하는 것은 그의 초인적인 성실함이 공익이라는 지향과 결합해왔기에 가능하다. 사실 성실함이라는 태도는 그 자체로는 선도 될 수 있지만 악도 될 수 있다. 대중들이 정치인들, 한국 사회 노블리스의 성실함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갖는 것은 성실함이 더불어 함께 사는 '공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 내 패거리들만을 위한 '배타적'인 것이 되어온 우리의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안철수 교수의 '성실함'은 '공익', '공존'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남다른 '울림'이 있다.
안철수만의 스토리, '사회'를 향해 달려온 도전 그리고 성취
이제, <안철수 경영의 원칙>을 스토리라는 측면에서 해부해 보자. 대개 정치인들의 스토리는 도전과 역경으로 구성된다. 물론 그 궁극적 귀착점은 성공이다. 그 성공은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토양으로 '사회적 인정'이다. 안철수 교수는 그 누구보다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에서 도전을 시도했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왔다.
많은 이들이 인생에서 도전을 하지만 안철수 교수의 도전이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일관되게 '공익'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부터 사회를 바꾸겠다는 식의 거창한 꿈을 꾸지 않았다. 결정의 순간에서 그를 지배한 생각은 "나도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인데"라는 소박한 생각이었다.
이 소박한 생각이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와 만나면서 '전문가 안철수'라는 반경을 뛰어넘어 우리 사회의 '멘토 안철수'로 대중과 만나게 되었다. <안철수 경영의 원칙>에서도 적시하고 있듯이 안철수 교수에게서 배울 것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 왔다는 점, 즉 그의 사회를 향한 '시각'이다. 아울러 많은 것에 대해 직간접적 체험을 했다는 '도전을 통한 남다른 경험'이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하면서 안철수만의 화려하지는 않지만 꽉 찬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안철수 교수는 뒤늦게 경영인 안철수에서 교수 안철수로 돌아온 것에 대해 "업계 전반적으로 성공 확률을 높여야 한다. 산업 구조가 안 바뀌면 회사가 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도전과 선택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그러하듯이 권력 그 자체를 지향하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직접 정치를 해야 한다는 요청에 대해서도 "매순간 열심히 살다 보면 선택의 순간들이 온다. 미래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단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라고 소박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경영의 원칙'을 넘어서는 '통치의 원칙'은?
마지막으로 안철수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전문가 안철수'는 그동안 안철수 교수가 이룬 신뢰의 브랜드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에 공익을 위한 도전의 스토리가 덧붙여지면서 우리 사회의 '멘토 안철수'가 부상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정치인 안철수', '지도자 안철수'가 되기엔 부족하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안철수 교수의 역사의식, 그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에 대한 상, 즉 '정체성'이 분명해야 '정치인 안철수'로 인정받을 수 있다.
<안철수 경영의 원칙>에서 그의 정체성을 찾아보기란 쉽기 않다. 그가 반복하고 있는 원칙, 특히 안철수연구소를 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세 가지 원칙, 첫째, 한국에서도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 둘째, 한국적인 상황에서도 정직하게 사업을 하면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셋째, 공익과 이윤 추구가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양립될 수 있다는 것 등은 말 그대로 '경영의 원칙'이고 태도이지, 그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에 대한 그의 '구상', 즉 정체성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에게서 '전문가 안철수' 그 이상을 느끼는 것은 안철수만의 일관된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과 본질을 뚫어보는 혜안 때문이다. 그의 행위의 궁극적 지향점은 사회와 공익에 있고 '사회 구조'는 고민의 발판이 된다. 그가 공익과 이윤 추구가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양립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할 때 가장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로 읽혀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국가 통치는 기업 경영의 연장선인가?
본질을 꿰뚫는 안철수 교수의 통찰력은 그에게 최고의 성취와 사회적 인정을 가져다주었지만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한계를 보인다. 그는 10·26 서울 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출마 의사를 피력하면서 '정치의 본질은 행정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안철수 교수와 청춘 콘서트를 같이 하는 '시골 의사' 박경철 씨도 "안 교수는 정치는 자기 체질이 아니라고 믿지만 행정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서울 시장직은 정치가 아니라 행정의 영역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정치의 본질은 행정이라고 보는 사고의 이면에는 기업 경영인으로서의 자신감이 묻어 있다. 그리고 본질을 파고 들어가 그 본질에 직면하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해결 가능하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낙관주의가 배어 있다.
하지만 기업 경영과 국가 통치는 매우 상이한 영역이다. 윤리 경영으로 찬사를 받았던 유한킴벌리의 문국현 사장이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대중의 외면을 받았던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 안철수 교수는 문제 해결을 위해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고 원칙을 단순화하는 과정을 통해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정치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하다. 이익이 아닌 가치 추구, 공존과 공익 등 핵심적인 가치를 유지하면서 본질을 파고드는 '원칙적'이고 '고독한'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정치는 정치인 혼자의 힘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다수 대중을 움직임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에 대중과의 교감이 중요하다. 어떤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상을 제시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원칙을 대중에게 확인받는 부단한 과정이 필요한 이유이다.
안철수가 등장하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한 박정희 모델
<안철수 경영의 원칙>은 '전문가 안철수'를 넘어서 '지도자 안철수'로서의 가능성 못지않게 한계도 드러내고 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교수에 대해 열광하는 것은 이른바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이 안철수라는 인물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정장선 의원실 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들의 57.7퍼센트가 차기 대통령으로 수평적 리더십을 갖춘 인물을 원하고 있다. 사실 우리 국민들은 지도자의 자질로 '강력한 추진력'으로 대변되는 수직적 리더십을 요구해왔고, 이는 박정희를 원형으로 하여 이명박 대통령까지 강고하게 지속되어왔다. 그동안 수직적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수평적 리더십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졌으나 현실적 힘을 발휘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수평적 리더십이 안철수라는 인물과 결합하면서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즉 안철수라는 새로운 모델이 박정희 모델에 균열을 내고 대체하기 시작하고 있다.
안철수 교수는 강연에서 "21세기는 일반 대중이 리더를 무조건 따라가지 않아요. 탈권위주의 시대가 되면서, 지금은 대중이 리더에게 리더십을 부여하지요"라고 언급한 바 있다. 대중에게 강요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대중이 부여한 리더십이라는 변화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현상이 부각된 이후 언론과 대중의 집요한 관심은 안철수 교수가 내년 대선에 뛰어들 것인가로 모아져왔다. 그 대답은 <안철수 경영의 원칙>에도 담겨있지 않다. 다만 "좋아하는 일을 하라, 떠밀려 하지 말라"는 언급이 단서가 될 것 같다. 안철수 교수의 측근이나 가까운 인물들의 말이 아니라 본인의 말에만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아울러 그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으로 보여주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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