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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폭력, 그 '날 것'을 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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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폭력, 그 '날 것'을 보려면…

[프레시안 books] 김원익의 <신들의 전쟁>

이 땅에 신화가 하나의 학문의 대상으로 대접을 받고 대학에서 강의가 개설된 것은 불과 10여 년 남짓하다. 그 동안 신화는 하나의 현상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여러 민족의 신화에 대한 책들도 상당수 출판되었다. 하지만 신화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한 책들은 의외로 적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나온 김원익의 <신들의 전쟁>(알렙 펴냄)을 반갑게 읽었다.

벌써 10년 전부터 신화에 빠져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를 번역하고, 신화에 대한 책을 저술하는 등 신화에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글쓴이가 이번에는 전쟁을 테마로 신화를 다시 정리했다. 인류는 역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가장 수지가 맞는 장사라는 전쟁을 시작했다. 상대방을 이기기만 한다면 약탈을 통해 가장 손쉽게 엄청난 재화를 얻을 수 있는 전쟁은 분명 불로소득을 좋아하는 호전적 인간들에게 매력적인 사업이었음에 틀림없다.

도구를 제작하고 농사와 목축을 시작한 이래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그리고 부를 축적하기 위해 노동이라는 힘든 일은 계속해야 했다. 인간만이 노동을 하는 유일한 동물임을 생각해 본다면 노동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성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동은 고되다. 혹시 자신이 스스로 노동하기보다는 남을 부려 노동을 하게 하고 그 결과물을 자신이 차지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이상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힘이 센 사람들은 태곳적부터 약한 자들을 착취하고 약탈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웠다. 이런 물리적 힘에 의한 약탈과 착취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가 바로 전쟁이다. 노동이 인류만의 특성이라면 전쟁 역시 인류만이 가지고 있는 못된 행태다.

▲ <신들의 전쟁>(김원익 지음, 알렙 펴냄). ⓒ알렙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상상력과 인간이 겪은 모든 일을 이야기 형태로 남긴 신화에 전쟁 이야기가 빠질 리가 없다. 아니 어쩌면 신화의 핵심이 혹시 전쟁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자연스럽게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관점에서 글쓴이 김원익은 신화를 풀어 나간다. 그리스 신화 역시 이런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다.

천지개벽을 통해 우주가 이루어지자마자 신들은 전쟁을 시작한다. 아들 크로노스가 어머니 가이아의 사주를 받아 아버지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행위부터가 폭력을 이용하여 권력을 빼앗는 전쟁 행위다. 이어 벌어지는 크로노스와 그의 아들 제우스의 권력 투쟁도 똑같은 형태로 전개된다.

아저씨들과 조카들 사이에서 멀어진 이 전쟁은 '티탄 족과 올림포스 족의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제우스는 이 전쟁을 이기고 나서도 진정으로 이 우주의 패권자가 되기까지 거인 족과의 전쟁과 폭풍의 신 티폰과의 힘겨운 싸움을 치러야 했다. 신화는 우주의 시작이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저자는 또한 아르고스 원정대 이야기도 모험심 많은 그리스 영웅들이 흑해의 깊숙한 곳까지 쳐들어가 황금 양털을 약탈해 오는 전쟁 행위로 보았다. 글쓴이는 이어서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 페르세우스의 메두사 머리 베기와 그의 다른 모험,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모험과 그 이외의 업적들, 테세우스의 모험, 테베의 전쟁, 한 미인을 두고 당시의 모든 나라가 참전해 벌인 최초의 세계 대전이었던 트로이 전쟁, 심지어 오디세우스의 항해 모험과 아이네이아스의 모험까지 모두 전쟁이라는 코드로 읽어 내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폭력이 있다는 점에서 이런 시도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하나의 관점으로 신화 전체를 보는 단순화가 갖는 문제점도 상당히 심각할 수 있다. 전쟁과 폭력을 강조하다 보니 프로메테우스나 아테네 여신, 헤파이스토스와 디오니소스 등이 인류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불의 사용과 길쌈, 배 만드는 법, 대장간 기술, 항해술, 술 담그는 법과 같은 유용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한 문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빠졌다.

인간사에서 전쟁보다도 더 중요하다 할 수 있을 사랑 이야기도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러다 보니 신화가 상당히 살벌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한 책에서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다. 앞으로 글쓴이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 신화 책을 쓰기를 기대해 본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 가운데 하나는 신들과 영웅들의 족보를 도표로 잘 정리해 놓았을 뿐 아니라 영웅들이 치른 모험이 어떤 경로를 거쳐 갔는지를 상세히 보여 주는 지도를 실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신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적 자료는 앞으로도 더욱 많이 축적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단점도 꽤 있다. 우선 그리스어의 고유 명사 표기가 일관성이 없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띈다. 또 몇 군데 오타와 내용의 오류도 눈에 거슬린다. 이런 것들은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조금만 더 정성을 기울였으면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찾아보기'가 없는 것은 반드시 시정해야 할 결점이다. 그리스 신화와 같이 수많은 인명과 지명이 나오는 책에서 '찾아보기'가 없다는 것은 모든 독자들에게 엄청난 기억력을 요구하거나 중도에서 읽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불친절한 행위다.

이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리스 신화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열어 준다는 점에서 한번쯤 읽어 보아야 할 책이고, 신화에 관심이 있거나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책장에 꽂아 두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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