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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답하라! "예수와 석가는 왜 화해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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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답하라! "예수와 석가는 왜 화해 못하나?"

[프레시안 books] 임마누엘 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백종현 옮김, 아카넷 펴냄)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1793년에 발표한 저작이다. 이 책에서 칸트는 기독교 신앙의 주요 주제들을 철학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를 한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철학 책인지 신학 책인지 정체가 불분명해 보이기도 한다. 칸트 생전에 이 책은 '너무 철학적'이라 종교 칙령에 따른 당국의 검열에 시달렸다. 반대로 요즘에 와서는 이 책은 '너무 종교적'이라 칸트의 다른 저작들에 비하면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정체불명으로 보일 수 있는 그 이중성이 바로 이 책의 정체성이다. 지금과 같은 제목이 붙기 전 이 책의 가제는 '철학적 종교론'이었으며, 칸트는 이 책에서 스스로 "철학적인 종교 연구가"(166쪽)로 자처한다. 그는 종교적 신앙과 계몽적 이성을 화해시키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시도가 성공한다면 "이성과 성서 사이에서 타협뿐만 아니라 일치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하기도 하였다(165쪽. 번역 수정).

오늘날 많은 철학자들은 스스로 종교로부터 거리를 두려 한다. 철학은 근거에 따른 인식이지만 종교는 종종 합당한 근거 없이 맹목적인 믿음을 앞세우곤 한다. 플라톤이 말하지 않았던가. 믿음은 의견(doxa)에 속하는 것으로서 참된 인식(episteme)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철학자들은 한낱 믿음에 머물지 않는 인식을 추구하였고, 믿음의 영역에 속하는 종교는 자연히 철학의 탐구 대상에서 제외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철학이 종교를 무시하는 것은 부당하다. 믿음을 통해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초월해가는 것은 인간 정신의 본성이다. 그럼에도 철학이 믿음의 영역을 도외시할 때 그 자리에 똬리를 트는 것은 맹목적인 욕망과 폭력이다. 오늘날 계몽되었다고 자부하는 사회에서 종교에 의한 야만적 폭력이 그치지 않는 것은 종교적 신앙이 이성에 의해 규제되지 않은 까닭이다. 이렇게 볼 때 종교에 대한 철학의 무관심은 무책임한 태도라 할 수 있다.

▲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아카넷 펴냄). ⓒ아카넷
나아가 이런 태도는 솔직하지도 못하다. 철학자들은 스스로 막연한 믿음이 아닌 명증한 인식만을 추구한다고 자부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기만이다. 철학적 인식은 근거에 따르는 인식이다. 그런데 하나의 근거는 또 다른 근거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철학적 인식은 점점 더 깊은 근거로 파고들어간다. 그런데 그 모든 인식이 마지막에 기대는 근거는 그 자체로 어떤 다른 근거에도 의존하지 않기에 인식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최종 근거에 대해서는 믿음만이 가능할 뿐이며, 결국 철학적 인식은 마지막에 가서는 믿음으로 도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자면 이 책에서 칸트가 신앙과 이성의 화해를 시도하면서 '종교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기꺼이 과제로 받아들인 것은 주목할 만한 공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칸트의 뛰어남은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 아닌 '종교적 신앙 자체'를 철학적 반성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데 있다. 서양 근대 철학자들은 '참된 인식'이 어떤 인식인지를 반성적으로 되물었다. 그렇다면 '참된 믿음'이란 어떤 믿음인가? 이것이 칸트의 물음이었다. 그리고 칸트의 대답은 '도덕적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는 것이었다.

칸트가 이 책에 앞서 종교적 주제를 적극적으로 다룬 것은 <실천이성비판>(1788년)에서였다. 거기서 그는 영혼의 불멸과 신의 존재를 말하였는데, 이는 입증될 수 없으며 단지 요청될 뿐이다. 그러니까 영혼 불멸과 신의 존재는 이론적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적 믿음의 대상인 셈이다. 이 점만 갖고 보자면 칸트가 말하는 믿음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통속적인 설교자들의 믿음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영혼 불멸이나 신의 존재라는 대상을 믿느냐 안 믿느냐가 아니라 나의 믿음이 어떤 목적에서 일어났느냐에 대한 반성적 물음이다. 종교적 신앙은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넘어 무한의 세계로 넘어가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초월의 동기는 한 가지가 아니다. 통속적 종교인들은 유한한 나의 힘으로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신을 요청한다. 그러나 칸트는 유한한 나의 힘으로 실현할 수 없는 최고선의 이념을 완성하기 위해 신을 요청한다.

이렇게 선의 완성을 향할 때만이 종교적 신앙은 참된 믿음으로서 정당화된다고 칸트는 생각했다. 이런 도덕 신학적 특성은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에서도 이어진다. "종교란 (주관적으로 고찰하면) 우리의 모든 의무들을 신의 지시 명령들로 인식함이다."(389쪽) 여기서 종교적 신앙은 도덕적 의무에 대한 의식과 결합한다. 따라서 "도덕 신앙만이 모든 교회 신앙 안에서, 바로 거기에서 본래적으로 종교적인 것을 형성하는 것이다."(326쪽)

칸트는 이런 입장에 따라 기독교 신앙의 주요 내용들을 재해석한다. 이를테면 죄란 "신의 계명(지시 명령)인 도덕 법칙의 위반"이다.(215쪽) 그리고 회심이란 오직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심을 선행의 동기로 삼는 "인간의 마음씨 안의 혁명"이다.(225쪽)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원리의 인격화한 이념"이며(244쪽), 교회는 "악의 방지와 선의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신적인 도덕적 법칙 수립 아래에 있는 윤리적 공동체"이다.(296, 308쪽)

그리고 이렇듯 윤리적 이념에 따라 종교적 신앙의 정당성을 재규정하려는 칸트의 입장은 현실 교회의 통속적 신앙 행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인간 각자가 바로 선한 인간이 되지 않고서도 할 수 있는 행위들을 통해 (예컨대 제정법적 신앙 명제들의 고백을 통해, 교회의 계율이나 교훈 같은 것의 준수를 통해) 신에게 흡족하게 되고자 하는 것은 미신적 망상이다."(422쪽) 이 비판은 우리 시대의 교회에도 여전히 같은 울림을 주는 비판이다.

칸트는 이렇듯 새롭게 재구성한 도덕 신학을 통해 '신앙과 이성의 화해'라는 자기 시대의 과제를 수행하려 했다. 그런데 그가 화해시키려 한 기독교 신앙과 계몽주의 이성은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기는 했으나 실상 서양 정신이 낳은 두 자식이다. 그러니 칸트가 중재한 양측의 싸움은 집안싸움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더 절실한 문제 상황은 서양 정신과 서양 바깥의 정신의 대립이 아닐까? 칸트의 과제가 '신앙과 이성의 화해'였다면 우리 시대 종교 철학적 과제는 '신앙과 다른 신앙의 화해'일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칸트에 따르면 "종교란 (주관적으로 고찰하면) 우리의 모든 의무들을 신의 지시 명령들로 인식함이다." 종교적 신앙의 뿌리를 자연적 욕망이 아닌 도덕적 의무감으로 본 것은 칸트가 보여주는 숭고함이다. 그러나 이 숭고함은 유대-기독교적 토양에서 자라난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숭고함이다.

반면 종교에 대한 칸트의 이런 규정은 가령 '신의 지시 명령'에 대해 들어본 바 없는 불교인들에게는 무의미한 기호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칸트의 철학적 이성은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불교적 신앙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

칸트는 이성적 종교의 이념에 따라 보편적 신앙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의 이성은 유럽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이성이었다. 그러니 그가 성취한 화해는 더 큰 화해를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철학적 이성의 중재를 통해 서로 다른 신앙들의 화해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를 궁리하는 것은 이제 칸트의 손을 떠나 우리 시대의 종교 철학자들에게 주어지는 과제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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