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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딜레마? 의사들의 천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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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딜레마? 의사들의 천국은 없다!

[프레시안 books] 맥스웰 그렉 블록의 <히포크라테스는 모른다>

정신과 의사이자 법학자, 윤리학자, 보건의료 정책 전문가이기도 한 저자 맥스웰 그렉 블록이 스스로 밝혔듯, <히포크라테스는 모른다>(박재영 옮김, 청년의사 펴냄)는 '하이브리드' 작품이다. 임상 진료와 의료 제도, 법과 윤리, 정치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책은 크게 세 가지 테마를 통해서 오늘날 미국의 의료 전문직과 사회가 처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서약에 근거하여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관리 의료(managed care)로 표상되는 미국의 의료 보험 제도 하에서, 의사들은 과소 진료를 통해 국민 의료비 절감에 기여하고 또 그로부터 인센티브를 획득한다.

한편, 의사들은 첨예한 사회적·정치적 갈등에 동원된다.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장병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발병 사례가 폭증하자 부시 행정부는 진단 '남발' 자제와 학회 차원의 진단 기준 수정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의사들은 고문을 동반한 심문 과정에 심리 전문가로서 참여하기도 한다.

이라크 바그다드 근처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대외적으로 (사실 더 실추될 것도 없는) 미국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켰다지만, 어쩌면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은 미국심리학회와 관련 전문가들이다. 또 의사들은 사형 집행 과정에 참여하여 생명과 건강이 아닌 죽음을 선사하는 일을 맡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의사들은 그들의 전문성 너머에 있는 문제들에 대해 전문적 판단을 해줄 것을 요구받는다. 심지어 이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흉악범들이 사건을 저지를 당시 과연 제정신이었는지, 산업 재해로 인한 근로 능력의 상실은 어느 정도인지, 이혼하는 부모 중 누가 더 심리적으로 적합한 양육자인지, 판단이 어려워질수록 사회는 전문가인 의사의 입만 바라보게 된다.

의사의 결정은 개인의 생사를 가르고, 한 가족의 생계를 좌우하고, 한 어린이의 평생을 결정지을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의사들이 이 모든 것에 전문가는 아니다. 많은 경우, 이러한 문제들은 의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사회적 통념과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곤란한 상황에서 '의료 전문가'의 한마디는 이해 당사자와 사회가 결과를 수용하도록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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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포크라테스는 모른다>(맥스웰 그렉 블록 지음, 박재영 옮김, 청년의사 펴냄). ⓒ청년의사
이 모든 상황은 히포크라테스가 살던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신'과 '운명'의 영역이었던 문제를 물질계와 환경의 영역으로 끌어내렸고, 독립적인 장인으로서 내 환자에 대한 헌신과 보호를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당시에 개인적인 의사-환자 관계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진료의 개별적인 목표와 사회적 공익이 상충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오늘날 많은 의사들이 임상 시험 연구에 참여한다. 궁극적으로 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공익적인 것이라 해도, 그것이 당장 이 시험에 참여하는 개별 환자에게 도움이 될지는 불확실하다. 드물지만 부작용 때문에 환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의사는 환자에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는, 혹은 드물지만 해를 끼칠 수도 있는 임상 시험에 참여하라고 자신의 환자에게 권해야 하는데, 이는 히포크라테스 서약과 상충한다. 마찬가지로, 히포크라테스 시절이었다면, 의사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진단을 내리고, 실낱 같은 가능성의 치료법이라도 모두 시도해서 환자를 진료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이렇게 했다가는 국민 의료비가 폭발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저자 블록은 현실을 직시하자고, 히포크라테스 서약으로는 헤쳐 나갈 수 없는 오늘의 상황을 제대로 보자고 주장한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히포크라테스의 신화가 오히려 히포크라테스적 신뢰 유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히포크라테스적 신뢰는 공적 영역에서 의학의 사회적 역할이 점차 증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할 때에만 유지할 수 있다."

이제 저자의 메시지는 두 가지 버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의사들에게 주는 메시지. 온전히 환자만을 생각하며 진료한다는 자기기만 혹은 오해일랑 집어 치우자! 그리고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둘째는 일반 시민과 정책 결정자를 비롯한 소위 '비전문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상황을 그리 만들어 놓고 의사들에게만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기대하지는 말자! 그리고 의사한테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도 말자! 의사는 임상 진료의 전문가일 뿐 세상만사의 전문가는 아니다. 의학이 모든 건강 문제, 심지어 세상사에 해답을 가진 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미국의 악명 높은 의료 제도와 관련한 딜레마에 대해서 블록은 이런 제안을 한다.

"현재 '의학적 필요성'이라는 미명 하에 은밀히 행해지는 '의료 배급(rationing)'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한정된 자원이 합리적으로 분배될 수 있게끔 하는 '눈에 보이는'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이 규칙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규칙이어야 한다." "우리는 '절반의 기술'들이 시장에 등장하는 것을 지금보다 훨씬 까다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의사들이 환자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서도 덜 유용한 기술들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치료법이 의료 현장에 도입되고 의료 보험의 적용을 받기 전에, 그것이 기존 방법보다 우월하다는 증거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데서 출발하면 된다."

한편, 의료 행위의 정치적·사회적 '악용'과 도덕적·윤리적 딜레마에 대해서는 이렇게 제안한다.

"진단 행위가 곧 문화적·도덕적 가치관에 대한 논쟁을 부르는 정치적 행위라는 사실을 인지할 때에만, 우리는 이 문제의 해답을 찾는 일에 시민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전문가 집단에는 윤리적 문제에 관한 한 자율 정화 기능이 있다고 사회학자들이 흔히 말하지만, 전문가 집단은 결국 공적 필요성에 관한 사회와의 대화를 통하여 그들의 윤리 규범을 형성한다. 신의에 관한 히포크라테스 서약도 이런 대화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 특히 문제 해결의 첫 단계로서 현실을 직시하고, 전체 사회가 함께 논의하자는 이야기에 100퍼센트 동의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저자 블록은 환자에 대한 최선의 진료와 의료비 절감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비용을 야기하는 신약·신기술의 엄정한 평가와 규제를 제안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미 첫 장의 자궁내막증 사례에서 이것이 매우 어렵거나 때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상당한 과학적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또 기준이 되고 있는 '기존'의 진단과 치료 기술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도 우리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비해 미국의 의료비 지출이 훨씬 큰 것은 시장 기전으로 작동하는 분절적 의료 체계 그 자체라는 점에서 이러한 처방은 의료비 절감과 의사들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 구조를 만들어내는 더욱 근본적인 요인, 정치경제학적 설명에 눈감았다는 점은, 저자가 협소하게 자신의 진료 공간만을 바라보는 의사들에게 아쉬움을 표현했던 것만큼이나 아쉬운 부분이다. 정치경제학적·사회적 차원에서 원로 의사가 후배들에게 전하는 통찰력이라면 오히려 아널드 렐만의 <미국의 전 국민 의료 보장을 위한 개혁(A Second Opinion)>(조홍준 옮김, 아르케 펴냄)을 권하고 싶다.

또 '하이브리드'인건 좋은데, 과연 누구의 눈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지가 분명치 않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어떤 경우에는 시민 혹은 환자의 입장이었다가, 또 다른 경우에는 '우리'라는 주어를 통해 의사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또 어떤 경우에는 제3의 논평가 목소리를 낸다. 대체로 비(非) 의사 독자를 전제하면서 의사들의 곤란을 이해하고 함께 해결하자는 이야기로 들렸다. 실제로 저자는 '우리'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우리는 보건의료를 '배급'하는 것에 대해 의사들을 공격하는 동시에, 그렇게 해야 한다며 의사들을 재촉한다. 임상적 판단에 정치를 끌어들이는 것에 대해 비난함과 동시에 진단과 치료는 모두 도덕적 규범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의사들은 보험 회사에 휘둘리고, 정치에 휘둘리고, 무엇이든지 합리적으로 판단해 줄 것이라는 과도한 사회적 기대에 부담을 갖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의사들이 집단으로서 현재의 미국 의료 체계가 이렇게 되는데 주요 행위자였다는 점, 의료 기술의 사회적·정치적 남용에서 적극적인 공모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희석시킨다.

물론 이것이 저자의 동업자 편들어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좀 더 분명하게 일관된 '화자'의 정체성을 유지했더라면, 모두의 문제이기에 결국 아무의 문제도 아니게 되는 상황을 피하고 좀 더 적극적인 행위 주체를 호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이 책은 풍부한 근거 자료와 생생한 사례들을 통해 현재 임상 의학을 둘러싼 미국 사회의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의사들이나 의대생들 그리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텍스트임에 틀림없다. (물론 지나치게 상세한 기술에 지루해질 수도 있다).

CIA의 고문 활동에 의사들이 직접 연루되었다거나 사법 체계에서 의사의 판단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들은 그동안 주로 '연구 윤리'와 리베이트 문제 같은 전문직의 '일탈 행위'에 한정되던 한국의 의료 윤리 논의를 확장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해서도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문장은 쉽게 읽히고 또 의사의 번역인 만큼 전문 용어에 대한 설명도 흠잡을 데 없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보험 체계가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는 주석이든 보론을 통해서든 충분한 설명이 덧붙여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관리 의료가 선불제 계약 방식으로 의사들의 과소 진료가 민간 보험사에게 이윤을 가져다주는 구조라면, 한국은 행위별 수가제이기 때문에 진료의 양이 많아질수록 의사나 병원의 수익이 증가한다.

또 미국은 개별 민간 보험 회사들이 진료비를 심사하지만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은 국가 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이를 심사한다. 진료의 독립성 훼손 문제는 일단 덮어둔다고 할 때, 미국에서는 보험이 보장해주지 않는 시술을 하거나 의뢰를 하는 경우 의사들에게 손실이 되지만, 한국은 이에 대한 의사들의 이해관계가 단일하지 않다.

진료비를 상환 받지 못해 수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의사들이 있는 반면, 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새로운 영역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독자들이 책에 기술된 상황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도록 배경 지식을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이건 정말 사소한 부분이지만, 'rationing'은 '배급'보다는 '할당'이라고 번역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 단어가 우선순위 저울질과 조정의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규격화된 강제 배분의 뉘앙스를 갖는 배급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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