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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을 보호한 천 년의 칠, '옻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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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을 보호한 천 년의 칠, '옻칠'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31>

최고의 약술 옻 막걸리

옻을 타는 사람들은 옻 이야기만 들어도 가렵다고 한다. 하지만 나그네가 이 나라 곳곳을 주유하며 마셔본 술 중에서 단연 으뜸은 경북 청도의 옻 막걸리였다. 옻나무 수액을 다려서 우린 물로 빚은 막걸리. 독이 있는 것들은 맛이 뛰어나다. 복어가 그렇고 옻이 그렇다. 게다가 옻은 약효까지 있다. 실제로 독한 소주를 마시고 속이 쓰린 날 옻 막걸리 한두 사발 들이키면 씻은 듯이 술병이 가라앉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단지 마취 효과인줄 알았었다. 하지만 옻에는 실제 약효가 있다.

최근 연구 결과 옻칠액의 주성분이며 옻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옻산 성분이 강한 항암 효과와 항산화, 항균, 숙취 해소, 위염 억제 효과가 있다고 밝혀졌다.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에도 옻의 약효가 기록으로 전한다. 동의보감에는 "마른 옻은 어혈을 삭이며 월경이 중단된 것을 치료하고 소장을 잘 통하게 하고 회충을 없앤다.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며 늙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옻은 오랜 세월 한방이나 민간에서 소중한 약재로 사용됐다. 물론 약효만이 아니라 독성도 가지고 있어서 상당히 조심스럽게 사용된다. 세계적으로 옻나무는 70속 600여 종이 있지만 옻 진액을 사용할 수 있는 옻나무는 많지 않다. 이 땅에는 옻나무와 개옻나무, 덩굴옻나무, 붉나무 등 6종의 옻나무가 자생한다.

한방에서는 주로 구충, 복통, 변비, 어혈, 통경(월경통)과 여성의 생리 불순에 치료제로 쓰인다. 우리가 흔히 아는 옻나무는 작다. 하지만 그 나무들은 칠을 얻기 위해 작게 키운 것이고 다 자라면 키가 10미터 이상이나 된다. 단양의 보발리에는 둘레가 한 아름이 넘는 옻나무 고목도 있다.

▲서유승 작(作), 옻칠 회화 '청마의 꿈' ⓒ옻칠 미술관

옻칠에서 온 말, 칠

옻은 또한 식용이나 약용뿐만 아니라 수 천 년 전부터 공예나 산업용 칠감으로 사용됐다. 이 땅에서도 청동기시대 옻칠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 고구려 고분이나 낙랑, 백제 고분, 경주의 천마총 등에서 출토된 옻칠 제품은 수천 년을 견디고도 그 빛이 변함없다.

도료로 쓰이는 옻나무의 수액을 옻칠이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옻을 채취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한 번에 모든 옻을 다 채취한 뒤 옻나무를 베어버리는 살소법(殺搔法). 살소법으로 베어진 옻나무는 새움이 돋아나 다시 칠액이 생산되기까지 7-8년이 걸린다. 또 하나는 옻나무를 베지 않고 매년 조금씩 칠액을 채취하는 양생법(養生法)이다. 칠액은 옻나무 껍질과 속살 사이의 칠액구에 칼로 금을 그어 흠을 내고 칠액이 흘러나오게 하여 주걱으로 긁어서 수집한다.

처음 나온 칠은 유백색, 우윳빛이다. 원액에서 불순물을 걸러낸 것을 생칠, 햇빛이나 숯불로 수분을 증발시켜 얻은 칠을 투명칠 혹은 정제칠 이라 한다. 숯검정이나 광물성 물감들을 넣어서 흑칠을 비롯한 색칠을 만들어낸다. 6월 상순부터 6개월 남짓 옻을 채취하는 데 그중에서도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 사이에 채취하는 성칠을 최상품으로 친다.

옻 수액을 칠로 쓸 수 있는 것은 옻에 우루시올이란 화학 성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성분 때문에 옻에는 한번 굳으면 산이나 알칼리에도 안전하고 수분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표면에 무언가 색칠을 하거나 바를 때 칠한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옻칠에서 유래됐다. 칠흑 같다는 말 또한 검은 빛의 옻칠에서 비롯됐다.


▲옻칠미술관 작업실에서 옻칠 회화 작업 중인 화가. ⓒ강제윤

가짜 옻칠, 카슈

통영은 옻칠 공예의 본고장이다. 삼도수군통제영 공방들 중 상하 칠방에서 나전칠기를 생산했었다. 그 전통이 400여 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사라져버린 문화가 아니라 여전히 전승되고 있는 문화라 그 가치가 더욱 크다. 통영에서는 어느 집에 가나 나전칠기 공예품 한두 점쯤 쉽게 만날 수 있다. 나전칠기에 고장답다. 통영에는 또 옻칠을 현대 미술과 접목해 옻칠 회화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만들어낸 사람이 있다. 옻칠미술관의 김성수 관장이다.

김 관장의 옻칠 회화 '조형물 우주'(cosmos) 앞에서 나그네는 우주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통영 옻칠 미술관은 미늘 고개 부근에 있다. 미늘은 미월(眉月)에서 왔다 한다. 미월은 활처럼 굽은 초승달이다. 가늘고 서늘한 초승달 모양의 고개였을까. 아니면 이 고개에서 보는 초승달이 아름다웠던 것일까. 옻칠미술관은 이 초승달 같은 미늘 고개 부근에 김성수 관장이 사재로 건립했다. 그때가 2006년 6월 15일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옻칠미술관은 모나지 않게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단층으로 자리 잡았다. 건물 안에는 제 1전시실인 칠예실과 2,3 전시실이 있다. 전시실에는 옻칠 회화들 수백점과 옻칠 장신구들이 진열되어 있다. 또 강의실, 수장고, 작업실, 옻칠 상품 판매장 등이 들어서 있어 옻칠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김성수 관장은 옻칠 공예품뿐만 아니라 옻칠 회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옻칠 회화에 대해 설명 중인 옻칠미술관 김성수 관장. ⓒ강제윤

옛날에는 옻이 진귀한 칠이었다. 그러니 특별한 곳에만 썼다. 명품 중의 명품만 썼다. 그렇게 귀한 칠이다 보니 옻칠 제품은 고가다. 그만큼 소비층이 적을 수밖에 없었고 판매가 쉽지 않자 생활고에 시달리던 옻칠 장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서 나전칠기에 옻칠 대용으로 값이 싼 화학 칠인 카슈를 썼다. 사실은 칠기가 칠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슈칠은 너무 역한 냄새가 났다. 사람들이 이 냄새 때문에 칠기 제품을 싫어했다. 김성수 관장은 카슈칠이 다시 부흥할 듯하던 나전칠기 공예의 몰락을 재촉했다고 생각한다.

옻칠은 반영구적 재료다. 보존성이 매우 뛰어나다. 고려 시대 대장경을 보관하는 경함도 옻칠을 했다. 몽고 침입 시절 팔만대장경을 옻칠한 경함에 넣어서 땅속에 숨겼는데 썩지 않고 보존됐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고려 시대의 나전 칠기 작품 대부분은 일본, 영국, 네덜란드 등으로 반출되어 있다. 우리 조상이 만든 옻칠제품을 그 나라들에서는 보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목기에 옻칠을 한 것은 곰팡이나 습기에 강한 방충, 방습 효과 때문이다. 옻칠 그릇에 음식물을 담아서 먹으면 배탈이 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옛날에는 제사를 모실 때 더운 계절에도 옻칠한 제기를 사용하여 음식을 담아두면 오래 노출 시켜도 상하지 않았다. 그만큼 항균 작용이 강했다는 증거다. 일본 사람들이 옻칠 기술을 발달시킨 것도 같은 이유다. 일본은 옻칠 그릇을 써서 전염병을 예방했다.

▲김성수 작, 옻칠 회화 '우주의 눈' 옻칠미술관 소장. ⓒ강제윤

옻칠 회화의 창시자 김성수 관장

김 관장은 한국전쟁의 와중에 설립된 경남도립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 1기생으로 입학하여 나전칠기를 배웠다. 그는 통영 피난시절의 화가 이중섭에게 소묘와 데생을 배우기도 했다. 최초의 서구식 교육을 배운 나전칠기공예가 중 한 사람이다. 1967년 나전칠기 기능보유자로 선정됐고 홍대, 숙대 교수 생활을 하다가 정부 파견으로 아프리카 튀니지로 가서 칠공예를 전수했다. 그 후 파리에서 창작활동을 하다 귀국한 뒤에는 나전칠기와 채화칠기에 바탕을 둔 '옻칠화'라는 새 장르를 개척했다.

처음 외국에서는 옻칠이 래커(lacquer) 페인트칠 취급을 당했다. 그래서 김 관장은 래커 페인트가 아니라 옻(ott)이라는 고유명사로 표기했다. 옻칠 회화는 기법은 전통을 이으면서 이미지는 현대화했다. 미국에서 옻칠화가로 활동하던 김 관장이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귀국해서 고향 통영에 옻칠미술관을 설립한 것이 2006년이다. 김 관장은 그 귀한 옻칠을 건축물에는 쓰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옻칠은 금보다 귀한 것이니 공예품 등에만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이다. 1년 동안 국내 생산량이 겨우 1톤뿐이니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다.

강제윤 시인이 포토에세이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호미 펴냄)를 출간했습니다. ☞ 자세한 내용 보기

□ 7월 <섬학교> 안내 : '홍길동의 율도국' 위도와 채석강, 내소사, 매창 기행
일시 및 장소 : 7월 6일(토)∼7일(일), 서해 절경 위도
위도는 한때 핵폐기장 유치 논란으로 떠들썩했던 섬이지만 실상은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의 모티브가 됐던 섬으로 먼저 알려졌습니다. 영광굴비의 명성 또한 위도 앞바다에서 잡은 황금 조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조기 파시 때면 수천 척의 어선 이 몰려와 흥청거렸던 조기의 섬입니다. ☞ 자세한 내용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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