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종편 전쟁, 기자 지망생에게 권함!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종편 전쟁, 기자 지망생에게 권함!

[프레시안 books] 요리스 루옌데이크의 <웰컴 투 뉴스비즈니스>

<아랍의 거부>(임재경 옮김, 두레 펴냄)란 책이 있다. 1979년 번역판이 나온 이 책은 프랑스 사회학자 막심 로댕송이 아랍의 시각에서 20세기 중동 분쟁사를 정리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스라엘이 선이고, 유대인의 애국심을 배우자는 풍조가 팽배해 있던 때라 이 책은 충격에 가까웠다.

<커뮤니케이션의 횡포>(박성창·원윤수 옮김, 민음사 펴냄)도 떠오른다. 파리 7대학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이자 시사 잡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장 이냐시오 라모네가 현대 언론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은 책이다. 번역판은 2000년에 출간됐는데 "진실이 당신에게서 훌륭한 이야기를 뺏어가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말라"는 미국의 신문왕 윌리엄 허스트의 말이나 '민주적 검열'이란 용어가 실렸다는 점에서 책의 성격이 짐작될 것이다.

네덜란드 언론학자가 쓴 이 책, <웰컴 투 뉴스비즈니스>(요리스 루옌데이크 지음, 김병화 옮김, 어크로스 펴냄)는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이 두 책의 성격을 모두 담고 있다. 아랍의 속살과 뉴스 산업(저널리즘이라 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자)의 실상 드러내기. 물론 후자에 무게가 실렸다. 그렇지만 네덜란드 대표 일간지 <폴크스크란트>의 중동 특파원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에 자연스레 아랍의 참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건 서구의 거대 통신사나 유력 언론을 통해 국제 뉴스를 접하기에 우리 언론의 시각이 편향될 수밖에 없다는 일반적 비판과는 거리가 있다. 아랍의 특수한 정치 사회 구조, 언론의 메커니즘 탓이 크다.

지은이는 1998년부터 5년간 중동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특이한 점은 기자 생활을 특파원으로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집트 카이로 대학에서 1년간 유학을 한 경험을 책으로 엮어냈는데 이걸 본 신문사에서 지은이를 채용한 덕분이다. 저널리즘을 전공한 적도 없고, 기자 경력도 전무한 이를 특파원으로 보내는 것은 우리나라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랬기에 제3자의 눈으로 아랍 관련 뉴스와 언론의 문제점을 신선하게 볼 수 있었지 싶다.

그는 "저널리스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있으면서, 저널리스트들이 다루는 것과 그것을 다루는 방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파헤쳤다. 대기업이나 정부가 행하는 '민주적 검열'만이 아니다. 이미지만 좇는 TV 뉴스의 속성, 독재 체제의 중동 각국에서 겪는 무력함, 객관적 보도의 어려움 등이 망라되어 있다.


▲ <웰컴 투 뉴스비즈니스>(요리스 루옌데이크 지음, 김병화 옮김, 어크로스 펴냄). ⓒ어크로스
2000년 팔레스타인인의 반 이스라엘 봉기인 2차 인티파다를 취재할 때 지은이가 경험한 일이다. 여덟 종류의 커피와 차, 세 종류의 과일주스, 롤빵, 샌드위치가 수북이 쌓인 테이블이 있는 이스라엘 프레스센터에서는 린치 장면의 사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합동 음악회 등 '낙관적 기사', 즉각 대령할 수 있는 인터뷰이와 대변인 연락처 등을 완벽하게 제공했다. 이러니 "우리는 점수를 따고 또 따야 해요. 그러니 누군가가 이미 완성된 '대본'을 갖고 나타나면 마구 덤벼들 수밖에요"란 어느 미국 기자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가.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다. 2차 걸프전을 취재할 때 지은이는 "전쟁이 끝나고 나면 반드시 여러분의 활약에 대해 상관들이 잘했다고 등을 두드려 주게 만들 테니까요"라고 장담하는 미군 홍보 장교를 만났다. 그러니 뉴스 분석이 미군 사령부가 보낸 내용과 일치할 수밖에. '미국의 기술적 우위가 상쇄되고 미군 자체의 손실도 상당하기 때문에' 시가전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는 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언론 조작도 벌어진다. 1990년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라크 군을 몰아내기 위해 미군이 참전한 데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이라크 군이 인큐베이터의 미숙아까지 죽였다는 쿠웨이트 간호사의 TV 증언이었다. 하지만 이 간호사는 주미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었고 그녀는 언론 자문 회사에 이끌려 나온 것이었다. (이 사실은 뒤늦게 꽤 알려져 있다.) 미군의 바그다드 진주 후 이라크 인들이 사담 후세인의 동상을 무너뜨리며 환호하는 장면은 국가적 축제가 아니라 200명가량의 이라크 인과 똑똑한 미군 장교 한 사람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지은이를 좌절시킨 것은 '민주적 검열'만이 아니었다. 국가가 군대를 가진 것이 아니라 군대가 국가를 가진 격인 시리아,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인사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까 두려워 홍보 전문가를 키우지 않는 야세르 아라파트 등 독재자들, 은행 강도가 들었는데 유일한 도난품은 2015년 대통령 선거 결과라는 농담이 통하는 이집트 등 아랍 국가의 정치도 취재 보도를 가로막는 요소다. 밑바닥 민심을 알 도리가 없으니 오사마 빈 라덴이 얼마나 많은 지지를 받는지 등 아랍의 실상을 알 방법이 없다.

결국 하마스는 반 이스라엘이지만 유대인 정착민은 반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지 않고, 이스라엘에 폭력을 쓰는 팔레스타인인은 테러리스트가 되지만 팔레스타인 국민에게 폭력을 쓰는 이스라엘인은 매파나 강경파로, 이스라엘 점령 지구는 중동의 분쟁 지구로 불리게 된다. 이처럼 모든 것이 이스라엘 기준으로 돌아가니 '미디어 전쟁'에서 승자와 패자는 정해져 있다.

특히 이를 부채질하는 것은 뉴스 산업의 메커니즘이다. 거대 통신사에서 보내온 뉴스를 입수한 본사에서 '현장'의 특파원에게 이를 알려주고 라디오나 TV에 특파원을 등장시켜 '현장의 소식'을 듣는 시스템에서는 독자적이고, 객관적인 보도는 이뤄지기 힘들다.

결정적인 것은 TV 뉴스다. "말은 마음을 건드리지만 이미지는 본능을 건드린다"고 한다. 영상이 뒷받침되지 않는 소식은 뉴스가 될 수 없다. 평화 회담, 테러 장면은 뉴스가 되지만 아랍인의 일상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 공격은 뉴스가 되지만 '점령'은 취재거리가 안 된다. 자살 테러로 숨진 아들의 시체 앞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에 분노를 표하고 허공에 총을 쏘는 팔레스타인 아버지는 TV에 등장하지만 집안에서 숨죽여 우는 어머니는 브라운관에서 만날 수 없는 이유다.

이렇게 만들어진 뉴스를 세계 각국의 실상을 모르는 편집국장, 부장이 골라 보도하는 것이 뉴스 산업의 현실이다. 이를 두고 지은이는 "현실에서 보도란 빵 공장에 있는 컨베이어벨트와 같다. 기자들은 컨베이어벨트의 한쪽 끝에 서서 만들어져 나온 흰 빵을 자신들이 구운 척 하고 있다. 실제로 한 일이라고는 그것을 포장한 것뿐"이라고 통렬히 비난한다.

주목할 부분은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 등 뉴미디어에 관한 지은이의 지적이다. 이란의 반정부시위는 휴대 전화,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전해졌다. 하지만 지은이는 반체제 시위자들에 의한 이런 여론 형성에 비판적이다.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표를 던진 이란인도 수백만 명인인데 서구의 뉴스 수용자들은 그들의 동기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반체제 측의 일방적 서술만 판을 친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정보의 자유로운 공급만으로는 문제의 일부밖에 해결하지 못한다며 그 정보를 훨씬 더 현명하고 다원적으로 활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는 언론계 지망생에게 새뮤얼 프리드먼의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조우석 옮김, 미래인 펴냄), 빌 코바치의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재경 옮김, 한국언론재단 펴냄), 켄 닥터의 <뉴스의 종말>(유영희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허버트 알철의 <현대 언론 사상사>(양승묵 옮김, 나남출판 펴냄)를 필독서로 권했다.

취업에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오히려 조직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줄 우려가 크다) 고민하는 기자가 많았으면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 목록에 이 책을 꼭 추가해야겠다. <아랍의 거부>보다 새롭고, <커뮤니케이션의 횡포>보다 생생하면서 언론 격변기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 뉴스란 상품을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니 말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