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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MB, 왜 군대·경찰은 민영화 못하나?

[프레시안 books] 폴 버카일의 <정부를 팝니다>

전력, 가스가 아니라 군대, 경찰 민영화라고?

주식회사 군대, 경찰 기업, 민영 교도소…. SF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들이지만, 청와대에 있는 분과 공권력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는 먼 미래의 일이다.

2008년을 선진화 원년으로 선언한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공공 부문에도 경쟁을 도입"하며, "공무원 수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는 빠른 시일 내에 혁파"하는 '시장화' 개혁을 천명한 바 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완전 민영화, 운영권만 민간에 매각, 경쟁 도입 후 단계적 민영화, 통폐합·아웃소싱 등 구조 조정을 통한 경영 효율화로 나눠 차별적인 선진화 정책을 추진하고 나섰다.

하지만 완전 민영화조차도 군대, 경찰, 교도소를 민영화한다는, 야무진 꿈으로 가시화되지는 않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의 국회 날치기 통과 과정에서도 민영화의 파고가 염려되었던 건 전력, 가스, 철도, 상수도 등 필수 공공시설이었다. 그런데 민간 군인, 민간 교도소, 민간 경찰이라고? 너무 나간 것 아냐?

폴 버카일의 <정부를 팝니다>(김영배 옮김, 시대의창 펴냄)는 공항 보안, 항만 보안을 논하면서 공공 서비스를 언급하지만, 필수 공공재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공익 사업(public utility)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이건 한국과 미국에서 성질상 독점적 경향이 있고 국민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사업인 공익 사업의 위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과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공익 사업을 직접 담당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민간 기업이 담당하고 있고, 정부는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 기관을 설립하여 요금이나 서비스 조건 등을 규제해 왔다. 미국은 공기업도 별로 없었고, 대신 공익 사업에 대한 규제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1980년대 신자유주의 광풍에 따른 작은 정부의 움직임이 전형적인 민영화보다는 공익 사업에서의 탈규제(deregulation)로 나타났다. 그리고 다른 영역에서는 중요한 공공 정책에 관련된 업무를 아웃소싱(outsourcing)하는 것으로 가시화되었다. 버카일은 바로 후자의 것을 다루면서, 이를 탈규제와 구별하여 민영화에 포함시킨다.

민영화는 민간의 손을 빌려 정부 활동을 보완하는 것이다. 민영화의 경우, 적어도 미국에서는 탈규제와는 달리 정부 예산을 누가 쓰느냐의 문제보다 해당 활동에 누가 책임을 지느냐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 (26쪽)

미국 로비 회사가 이명박 대통령 연설문 작성

여기서 다루는 민영화의 대상 및 범위는 이라크 전쟁을 통해 명백해진 군사·군수 부문,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를 통해 두드러진 재난 구제, 천재지변, 전통적으로 공공 분야로 수용되었던 교도소 및 경찰의 임무, 그리고 결정 사항 기록이나 연설문 준비, 문서 요약, 리뷰, 정책 '초안' 작성과 같은 정부의 다양한 기관들이 직접 수행하는 고유 업무 등이다.

지난 10월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의회와 상공회의소 등에서 했던 연설이 워싱턴D.C.에 있는 '로비' 업체에서 작성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었다. 주미 한국 대사관이 연설문 작성 전문 회사인 웨스트윙라이터스(West Wing Writers)와 미국 상공회의소 연설문 작성과 의회 합동 연설문 작성, 국빈 방문 관련 발언문 작성을 계약했다는 사실에서 주목할 것은 '미국' 로비 업체가 관여했다는 점이 아니라 멘트, 어휘, 문맥, 논리 전개까지 민간의 시각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진행되는 민영화의 현실을 이 대통령 자신이 체험한 셈인데, 한국에서도 미국 로비 업체와 같은 유능한 민간 계약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버카일은 이러한 영역들에서 정치적 결정권을 민간에 위임한다면 이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 된다고 경고한다. 아웃소싱이 일면 효율적일 수 있지만, 이 점만을 강조하여 정책 결정권마저 민간에 넘긴다면 책임의 문제와 부딪칠 뿐 아니라 민주주의 가치도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한 이러한 아웃소싱은 정부의 덩치 줄이기와 함께 확산되어 왔으며, 이로 인해 정책 결정의 진실성과 유효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이를테면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 정부를 대신하여 미국이 이라크에 최고 행정관으로 파견한 폴 브레머를 호위한 것은 미국 군대가 아니라 민간 기업 블랙워터였고,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을 때 뉴올리언스의 치안을 담당했던 것도 미국 경찰이 아니라 블랙워터였다. 실제로 핼리버튼, M.P.R.I., CACI를 비롯한 민간의 다양한 정부 계약자들은 서로 다른 군사 임무를 수행해 왔다.

이라크에 배치되어 전투 수행 임무를 받았던 민간 군인의 수만 미국 육군 정규군 전력의 15퍼센트에 해당하는, 2만 명이 넘었다. 이러한 민간 군인의 규모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일단 전투 현장에 투입된 민간 군인들이 원래 목적에만 부합하는 활동을 하도록 통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책임감을 갖고 민간 계약자를 이용할 수도 없을뿐더러, 정부가 직접 관리해야만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기능을 아웃소싱할 경우 이 기능을 다시 정부가 수행하려 할 때 합당한 인력을 찾을 수 없어 낭패를 보게 된다.

공공 부문 민영화의 해법으로서 공항 보안의 "공영화"

▲ <정부를 팝니다>(폴 버카일 지음, 김영배 옮김, 시대의창 펴냄). ⓒ시대의창
이 책에 따르면, 정부는 자신의 덩치를 줄이기 위해서,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정부의 분석 기능을 점차 민간으로 넘기고 있고, 이로 인해 밖으로 드러난 것 이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버카일은 이처럼 민주주의적 정책 결정을 저해하는 주권 아웃소싱(outsourcing sovereignty)이 현재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현실을 완전히 뒤집을 수는 없더라도 정부가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의미 있는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음을 보이려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공항 보안이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는 교통안전국(TSA)을 신설하고 공항 보안을 "공영화"하기로 결정하면서, 연방 정부에서 직접 공항 안전 요원을 고용·배치했다. 여기에는 9·11 테러 이후 민간 계약 업체들의 역량을 믿기 어렵게 되었다는 판단이 작용하였다. 안보에 대한 국민들의 염려와, 민영화의 이점을 넘어서는 정부의 고유한 책임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이다. 버카일은 여기에 공공 부문 민영화의 해법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버카일이 민영화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시장기제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아웃소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만, "아웃소싱을 결함투성이 방안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이를 공법의 체계 내에서만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행정법, 규제법 전공학자답게 그의 대안에서 공법은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민주주의 수호에 필수적인 정부 기능만은 무분별하게 민영화되지 않도록 공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규제하고 감독해야 하는 정부 기관과 규제와 감독을 받아야 하는 민간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민간과 공공(효율과 책임) 양자가 법적·정치적 전통을 위협하지 않고 가장 바람직한 선에서 균형을 이룰 방안"을 찾는 것이다. 그는 공익 사업의 재공공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식 공익 사업 규제 전통에 따라 정부가 기능해야 하는 영역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민간 계약자들에 대해 적절한 감독과 통제를 한다면 아웃소싱도 효율적일 수도 있다고 본다.

책임과 효율성 문제의 핵심은 공항 조사관들의 물리적인 기능을 계약에 의해 민간에 넘길 수 있느냐가 아니라, 조사 기능이 적절한 관리 시스템 아내서 수행되고 있느냐이다. 민간의 임무 범위가 계약에 의해 명확히 정해지기만 한다면, 또 계약 준수를 정부가 적절히 통제할 수만 있다면, 민간 계약을 통한 공항 보안이 오히려 효과적일 수도 있다. (104쪽)

이러한 시각을 공공 부문의 민영화가 그에 대한 적절한 규제 장치를 수반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행해졌던 한국의 현실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통신, 정유사 등에 대한 재공공화가 요청됨에도 불구하고 공적 통제조차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 이를 반증한다. 더욱이 "항구에서 9·11 사태와 비슷한 재난이 터졌다면 민영화 논쟁이 항공 보안보다 항만 보안 영역에서 더 격렬하게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언급 속에서, 공공 부문의 민영화에 대한 해결책은 공공 정책의 책임과 공공성을 위협하는 커다란 재난이 일어난 후에야 가능하다는 말인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다.

기술 관료 경영주의를 넘어서는 길은 어디에

폴 버카일은 최소한 민간이 결정해서는 안 되는 정부의 고유 업무와 기능들이 있으며, 여기에서 전문성과 함께 정치적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정부 관료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복잡한 의사 결정 구조 속에서 폭넓은 의사 결정 구성 인자들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가 목적인 민간 컨설턴트들의 견해는 정부가 감당해야 할 역할과 정확히 일치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의 역할을 조언 정도로 제한된다.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파악되는 정치적 의사 결정이 이 책에서는 정부 관료가 정책 결정을 해야 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음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정부의 행정 관료들은) 데이터 수집과 분석은 물론이고 정치적인 계산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맥킨지가 데이터 분석에 능하다 할지라도 정치적 의사 결정에는 약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민간 분야의 의사 결정은 공공 차원의 의사 결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다. (78쪽)

이러한 시각이 대표성도 없는 관료들이 국민의 대표 위에서 군림하는 기술 관료 경영주의로 인해 소위 민주 정부마저 정책 결정에서 관료들에게 휘둘렸던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도 타당할까. 물론 전문 관료보다는 정치적 인사들이 외부 컨설턴트를 더 많이 활용하고, 아웃소싱에 더 많이 연계되어 있을 거라고 보는 버카일의 시각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대한민국이 삼성 공화국으로 변한 데에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인사들이 혁혁한 공헌을 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능력을 갖춘 전문 관료들의 활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에 앞서, 관료들에게 전문성이 있기는 한지, 그들이 시민들과 시민들이 선출한 대표들에 의해 정치적 통제를 받고 있는지가 우선 논해져야 한다.

정부와 민간 사이에서 그 균형을 찾는데 노력하다보니 어떤 성격의 정부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는 점은 이 책의 한계 중의 하나이다. 모든 정부가 헌법과 시민 주권의 가치를 효율성보다 더 우위에 놓고 이를 수호하는 것도 아니고, 민간이 모두 자본으로만 구성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공공성에 대해 정부 관료보다 공공 부문 노동조합과 시민·사회 단체들이 더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한국의 상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내용 이외의 것에 대해서 언급해보자. 이 책은 법학자인 저자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책 곳곳에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는 미국의 다양한 관련 판례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정책 결정에 있어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국의 현실을 감안하고 읽게 되면 오히려 책 전반적인 내용이 쉽게 다가온다.

그리고 번역서 자체가 대중성과 전문성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고 해야 할까. 책 전반에 대한 옮긴이의 해설이나 해제가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여느 번역서와는 달리 미주와 참고 문헌은 물론, 찾아보기까지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미주에 나온 문헌들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간략한 소개를 하고 있어 미주를 참고하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아마 원서를 충실하게 옮긴 덕분이겠지만, 미주나 각주에 대해 이렇게 관심을 갖게 하고, 언급된 문헌에 주목을 하게 만들었던 책도 없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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